[번역연재]미국에서의 자활에 대한 이슈들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번역연재]미국에서의 자활에 대한 이슈들

본문

15년 전 샌프란시스코만 지역에 있는 일반 훈련시스템은 휠체어를 타는 장애우가 접근할 수 없었다. 승강장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보클리에 있는 시청도, 우체국도 물론 갈 수 없었다.

당시에는 휠체어 경사로(램프시설)이란 말을 듣지 못했다. 또한 매우 소수의 장애우만이 모
터자동화된 휠체어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다른 지역 장애우들은 이보다 더 열악하였다.

자활운동이 시작되었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1972년 10명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장애우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10명중 8명이 장애우였는데 이들은 장애우를
지원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구를 만들어서 장애우도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제공할 수 있는 기본적 서비스는 출입할 수 있는 주택 구조개선과 소개, 보론
티오와 충분한 상담, 그리고 개별적 변론을 해주는 것이었다.

이것이 주체적 자활운동의 시초이며 장애우를 위한 최초의 자기 결정이었다. 그리고 장애우
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 것인지를 선택한 최초의 일이었다.

오랫동안 제도화되었던 잘못된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낡은 방식들은 더 이상 장애우에게 소용이 없다며 대사회운동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장애우
들은 장애우들의 권리를 요구할 준비를 했다.

버클리자활센터(The Center for independent Living in Berkeley)는 장애우에 의해서 운영되
는 최초의 기구였고, 대다수의 이사진과 참모진은 장애우이어야 한다고 회칙에 규정되어 있
다. 이 센터는 다양한 종류의 장애우가 더불어 일하는 최초의 기관이며 장애우가 독립적으
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사명으로 시작되었다.
이 센터는 차차 강력한 정치적 목소리를 국가와 사회에 요구하였다. 이제 장애우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수년 동안 버클리자활센터는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첫째는 자활을 획득하기 위해서 센터이용자들과 함께 일했고, 둘째는 차별을 제거하고 기회
를 확보하기 위해서 사회를 변화·발전시키고자 했다.
이 센터의 목표는 장애우를 모든 차원에서 사회에 통합시키려는 것이었으며 "분리됐지만 평
등한(Seperate & equal)"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활운동에 생명을 주
는 하나의 철학은 더 이상 물러 날 수 없고, 발전만이 있을 뿐이며 그러한 것들은 지난 15
년 동안 줄기차게 일어났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전국적인 자활센터가 있다. 즉 전국자활협회(The National Council on
Independent Living, or NCIL)가 그것이다.

1982년 자활협회의 이사그룹이 모여서 전국적·지역적 문제들에 관해 토론하여 창설하였고
이협회는 여러 유형의 장애우에 의해서 운영되는 유일한 전국적인 조직이었다.

전국자활협회는 미국의 자활센터들로 구성되었다. 이 센터들은 사회활동에 기반을 두고 있
으며 다양한 유형의 장애우에 의해서 통제되는 비영리 법인체였다.

이 센터들은 네 가지 핵심적인 서비스를 장애우에게 제공한다. 변호, 정보와 위임, 자활기술
훈련(Independent living skills training or ILS)과 동등한 차원에서의 상담이다. 미국에는
100여 개의 이용자가 통제하는 센터가 있다.

전국자활협회는 자활운동의 적극적인 변호활동을 이행하고 자활센터를 돕기 위해서 조직되
었다. 이 협회는 기술적인 도움, 대중교육과 다른 회원의 서비스의 확장을 통해서 자활센터
를 강화시키는 것을 추구했다.

전국자활협회는 6년 이상 동안 성과물과 서비스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예를 들면 조심스럽
게 연방의회의 연설을 청취했다. 이것은 자활센터와 장애우 시민권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연방의회는 종종 장애문제에 관한 전문적인 상담과 증언이 필요하였고, 협회가 이에 응해
재활법 7호(Title Ⅶ of the Rehabilitation act ?)의 개정으로 큰 성과를 얻었다. 이 법은 대
다수의 자활센터의 이사회는 장애우로서 구성되어야 함을 명시했다.

1986-1987년에 협회는 의회와 재활법에 의해서 정당화가 된 계획을 감독하는 미국무성으로
부터 법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자활센터에 대한 이용자의 통제를 위임받는 것이었다.

또 다른 값진 성과물도 있었다. 전국자활협회는 이 협회의 "자립을 위하여(Towards
Independence)"의 발전과 출판을 위해서 기술적 지원 즉, 장애우에 영향을 주는 연방정부의
법률에 대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시민권회복법과 관련된 법안, 통과를 위해서 주도적
역할을 지속적으로 이행했다. 이해 3월에 미국 의회는 그 법안에 대한 레이건 대통령의 거
부권을 무시하고 장애우의 포괄적인 시민권을 제공하는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성공적인 노력은 다른 기구들과 협조하여 1986년의 "항공기에 탈수 있는 법안(the
Air Carriers Access Act of 1986)도 통과시켰는데 이것으로 어느 정도의 장애우에 대한 차
별을 금지시켰다. 협회는 활동적으로 이 법안을 이행하기 위해 법률의 기안에 직접참여를
했었다.

지난해에도 전국자활협회는 여러 가지 주요한 활동에 참여했다.

1987년 9월에 대중운송수단에 접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이슈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데모를 하
였다. 이때 1000명 이상이 참여했고 이중 300명 이상이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1988년 3월에 세계에서 유일한 청각장애우 대학인 갈로테르 대학(Gallaudet University)에서
청각 장애우에 대해서 거의 무식하고 심지어는 수화(Sign langwage)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총장으로 채용하였다. 학생단체와 기구는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였고, 이런 반항하는
용기와 의지 때문에 총장을 사임시키고 134년 학교역사에 최초로 청각장애우 총장을 채용하
는데 성공하였다.

지난 15년동안 많은 성과가 있었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시작의 선상에 있다. 전세계에는
수많은 장애우가 있다. 잔지 장애우이기 때문에 기본적 인권을 무시당한 수많은 장애우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다.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세계적인 동
질성을 획득한다면 세게적인 투쟁에 참여할 것이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무엇이든 할 것이며 죄수처럼 투옥시킨 모든 구조가 철폐될 때까지 열
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일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지역에서 모든 장애우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참 사회가 올때까지 싸움을 멈
추지 않을 것이며 이것이 우리의 임무라 생각한다.

이것이 시대적 사명이며, 우리의 책임이며, 우리의 권리일 것이다.

*"제 16차 세계국제재활협회"에 발표된 보고서이다. 1988년 9월 5일에서 9일가지 일본동경의
Keido plaza Inter-Continental Hotel에서 개최된 회의 내용을 발제 번역한 글이다.

작성자함께걸음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과월호 모아보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