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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나쁜 장애인, 나쁜 페미니스트, 나쁜 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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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은 HIV 감염인과 AIDS 환자를 일컫는 말로 People living with HIV/AIDS의 줄임말이다. Disabled People을 People with Disability로 바꾸어 부르는 맥락과 유사하다.
*HIV: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후천성면역결핍증을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지난 주말, 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이라는 단체의 여름인권캠프에 초대를 받아 다녀왔다. 2012년에 결성된 이 단체는 10~20대 HIV감염인들이 가입해서 각자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공감을 나누며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곳이다. 캠프에 참여한 이들 중에서는 본인의 삶을 ‘장애’와 연결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장애로 인정해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 사례를 들은 이도 있었다. 이들 대부분이 치료제를 복용하면서 매우 ‘건강한’ 삶을 살고 있었기에 먼 얘기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HIV 감염인과 장애인이 겪는 차별과 억압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걱정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큰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차별로 해석하기

이번 여름의 ‘알’ 캠프 이전에도 HIV 감염인이 경험하는 차별을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됐다. 특히 HIV 바이러스를 가지고 살다가 기회감염으로 AIDS 환자가 된 이들 중에서 말기 환자들은 요양병원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전무한 실정에 있었는데, 한 요양병원에서 발생한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사회에 고발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거의 모든 요양병원들이 에이즈 환자의 입원을 거부하게 되면서 당장 생사를 오가는 환자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등 인권단체, PL 단체,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러한 요양병원을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사실 장애인과 HIV 감염인이 겪어온 차별과 낙인의 방식은 격리와 배제였다. 시설에서, 병원에서, 집안에서 장애인과 HIV 감염인은 보이지 않게 숨겨져 왔다. HIV 감염인을 위한 시설은 없었지만 낙인을 내면화해서 스스로 숨기도록 강요당했다. 그리고 이 격리와 배제는 성적 권리와 재생산 권리를 박탈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국가는 사회적으로 무능력하다고 평가받고 나쁜 것을 오염시킨다고 인식되는 이들의 성과 재생산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미래를 박탈한다. ‘소아마비 박멸’, ‘에이즈 퇴치’라는 정책구호들의 사회문화적 효과는 소아마비를 가진 사람, HIV 감염인을 배제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 박멸과 퇴치는 공중보건을 위한 구호이지만, 소아마비 균과 HIV 바이러스는 공중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을 때 의미가 있고, 추상적인 구호일 때는 중립적으로 느껴지지만 사람의 구체적인 삶에서는 엄청난 억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장애인과 HIV 감염인뿐만 아니라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좋지 않은 국민, 바람직하지 않는 국민, 국가에 부담만 주는 국민이기에 국민의 대표로서 재현될 수 없고, 의견을 가진 사람으로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으며, 아주 소수의 ‘성공한’, ‘극복한’ 이들만 대중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지금도 소수자들은 미래를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서 싸운다. ‘나의 자녀’를 낳고 키움으로써 싸우기도 하지만, 다음 세대에도 소수자들이 존엄성을 가지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권리로 주장하기

사회가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사회복지 서비스에 어떻게 HIV 감염인을 포함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현재 한국사회의 장애인복지법이 가지고 있는 분류와 등급 체계에서 모든 HIV 감염인이 장애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에이즈환자 중에서는 다양한 합병증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입어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기 때문에 장애인지원정책안으로 포섭될 필요가 있다. 물론 HIV 감염인은 국가로부터 치료제 비용을 지원받고 있고, 기초생활수급권도 신청할 수 있으며, 임대아파트를 신청할 자격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 굳이 장애인지원정책안으로 들어가야 하는가를 질문하는 HIV 감염인도 있다. 오히려 장애인 정책에 포함되면서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노출되고, HIV 감염인이라는 낙인에 장애인이라는 편견까지 겹쳐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인 것이다. 사실 이러한 걱정은 매우 합리적이다. 장애인정책이 수십 년 동안 끊임없이 진화해 왔지만,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낙인은 뿌리가 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IV 감염인이 장애인지원정책의 일부가 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국가와 사회가 HIV에 대한 사회정책적 지원을 왜, 어떻게, 얼마나 할 것인가에 대한 응답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HIV 감염인에게 제공되는 정책들은 인간다운 삶과 평등을 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현재 지원되는 정책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해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의 목표와 방향은 HIV 감염인의 인권과 평등이라기보다는 공중보건을 위한 관리로 출발했고, 여전히 그러하다. HIV 감염인이 경험하는 의료기관, 고용상 차별, 사회적 낙인을 해결하려는 의지 없이 실행되는 이러한 정책은 사회적 배제와 고립을 유지시킬 위험이 있다. 여전히 HIV 감염인을 가족, 이웃, 동료, 시민으로서 통합하려는 정책보다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임대아파트가 게토가 돼 단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된다는 인식 속에 놓여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그 어떤 질병도 그 질병을 관리하는 특별법을 통해서 지원정책을 실행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한 국가 대응이 사회적 공포에 상응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HIV 감염인이 장애인에 대한 지원정책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실행되는 정책의 변화를 통해 현실화될 가능성이 많다. 또한 장애인의 개념과 범주 또한 사회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다양한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을 포함해 확장될 것이다. HIV 감염인이 우려하는 낙인의 강화는 장애인이 되지 않음으로써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결국 장애인에 대한 낙인 자체를 철폐해나가는 것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그동안 HIV 감염인에게 주어졌던 사회적 지원의 의미가 관리와 통제를 위한 것에서 출발했으며, 여전히 그러한 시각에서 정당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보편적인 권리이자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정책의 일부가 돼야 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혐오와 낙인의 뿌리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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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캠프에서 사실 가장 솔직하게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는 HIV 감염인에 대한 혐오와 낙인의 뿌리를 들여다보고, 그것이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지, 그것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과, ‘장애’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어떻게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였다.

나는 퀴어활동가로 활동하면서 HIV 감염인 중에서도 특히 게이 감염인을 자주 만나왔다. 게이 커뮤니티는 성소수자 인권을 부정하고 공격하는 이들이 흔히 만들어내는 에이즈와 관련된 혐오와 낙인에 큰 영향을 받아왔다. 특히 게이로서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성적으로 문란해 결국 에이즈로 사망할 운명’이라는 혐오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혐오와 낙인에 대해 게이 커뮤니티와 PL 커뮤니티가 함께 힘을 모아 대응하고 있다. HIV/AIDS 인권활동가네트워크를 구성하고 매달 ‘키싱 에이즈 살롱’이라는 행사를 열고 있다. 이 행사를 통해서 HIV 감염인과 비감염인, 여러 활동가들이 사랑, 섹스, 혐오, 에이즈예방법 등에 대해서 솔직한 대화를 나눈다. 게이 커뮤니티가 HIV/AIDS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고 자기 내면과 사회에 자리한 혐오에 대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픈 것’, ‘나이드는 것’, ‘아름답지 않은 것’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게이 커뮤니티가 가진 ‘외모’ 자원에 대한 강력한 욕망과 가치화, 위계화로 인해서 더욱 강해진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아지고, 에이즈 치료제의 발달로 인해서 HIV 감염인이 비감염인 못지 않은 건강과 수명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낙인과 혐오가 강고한 이유는 ‘성적 활발함’을 ‘성적 문란함’으로 읽는 도덕적 태도와 더불어 외모와 건강에 대한 정상성에 대한 압박으로 수렴된다.

 

나쁜 PL, 그리고 PL 프라이드

2002년에 출간된 <나는 나쁜 장애인이고 싶다>라는 책은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나쁜 장애인’은 순수하고 고분고분하며 봉사에 감사하며 타인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주어지는 지원을 그대로 수용하며 그 너머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 ‘착한 장애인’을 거부한다. 2014년에 출간된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는 페미니스트로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착한 여성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는 어떠해야 한다는 정형화와 규범화에 대해서도 저항한다.

그렇다면 나쁜 PL은 어떨까. 나쁜 PL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순수한 피해자라고 설명하거나 정부의 관리와 통제에 고분고분 순응하거나 차별과 낙인을 자신의 탓으로 수용할 수 없다. 많은 여성들이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서 부딪치는 성적 낙인과 성적 주체성의 문제를 나쁜 PL 또한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나쁨’이 소수자 프라이드가 되길 바란다. ‘장애를 가진 몸은 아름답다’, ‘흑인의 몸은 아름답다’, ‘성소수자임이 자랑스럽다’라는 구호들로 표현되는 프라이드가 ‘나쁨’의 가치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매우 연약하다. 아름다움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주류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아도, 혹은 지배질서에 도전하는 것이 자랑스럽기 위해서 ‘나쁨’이 절실히 필요하다.

작성자글. 나영정/장애여성공감・HIV/AIDS인권연대 나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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