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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소수자가 보이도록 촛불을 켜자

인권이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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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투쟁 1주기가 다가오니 언론사마다 1주년 기획으로 분주하다. 박근혜 퇴진 투쟁 때 서울 광화문광장에 다녀간 사람만 연인원 1,700만 명이다. 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더해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으니 역사적 사건이다. 그래서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그 영향을 내다보는 일은 중요하다. 그렇다 보니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후, 과연 사람들의 삶, 생각은 얼마나 변했는지 묻는 일들이 많다. 답하자면 ‘조금은 변했고 많이는 변하지 않았다’가 아닐까. 적어도 이른바 을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모여 권력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은 패배적 세계관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집안에서, 직장에서 경험한 차별의 상황들이 달라지지 않을 때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두터운 벽을 체감했을 것이다. 정치권력은 바꿀 수 있지만 일상의 삶은 바꿀 수 없는, 묘한 얽매임의 세계에서 우리가 정말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보일 때까지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는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참여했다. 장애인, 청소년, 성소수자, 노숙인 등이 함께했지만 사람들은 잘 모른다. 보이지 않으니까. 그래서 평상시에 생각 못했던 우리 주변의 소수자에 대해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알게 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얼마 전 열린 ‘2017 서울인권컨퍼런스’에 참여한 수화통역사인 장애인권활동가 박미애 씨가 들려준 이야기도 비슷했다. “과거 미선이·효순이 사건, 광우병 사건, 세월호 참사 등 이 사회 시민운동에 농인들이 참여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우리가 자세히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고, 보려 하지 않기에 누군가는 ‘여기 있다’고 외치고 실천해야 겨우 조금 보일까 말까 하는 거다. 수화통역은 농인들의 존재를 드러내게 하는 일 중 하나다. 그는 박근혜 퇴진 1차 집회에서 수화통역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주최 측에 먼저 연락해 무대 수화통역을 성사시켰고 이후 농인들의 참여가 늘었다. 수화통역은 어두운 광장에 농인들이 보이게 하는 촛불 하나인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돼 어둠속에 저만치 서 있는 농인들을 비췄다. 그리고 한 명의 농인당사자가 무대에 서서 자유발언을 통해 수화의 역할에 대해 말했다. “저 작은 수화창이 누군가에게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보면 사회적 소수자들이 보이지 않는 건 어둠 탓이다. 소수자들의 조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정책과 편견이 어둠이다. 영국에서는 장애아동의 부모들이 장난감회사에 ‘다양한 신체를 반영한 장난감’을 만들어 달라는 ‘토이 라이크 미’ 캠페인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에는 장애인을 형상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양쪽 귀에 보청기를 단 인형,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든 인형들이 만들어졌고, 레고에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피규어를 만들었다. 이런 인형과 장남감을 보고 자란 사람은 사회에 장애인들도 있다는 것을 보고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투명 인간’임을 알게 될 때

차별과 배제의 어둠을 얼마나 밀어냈을까. 1년이 지났는데 세상은 얼마나 변했을까. 정권은 교체됐지만 차별과 폭력은 비슷해 보인다. 작년 촛불집회 때 잠깐 보였던 사회적 소수자들을 국가나 사회는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는 것일까. 주류인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신들(만)의 처지에서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정부가 그러한 정책을 세우고 집행할 때, 사회적 소수자는 없는 존재, 투명인간이 된다.

비장애인이 ‘별 생각 없이’ 만든 장난감과 인형이 비장애인만을 형상화한 것처럼 말이다. 사실 소수자가 소수자임을 느낄 때가 바로 투명인간 취급당할 때가 아닐까. 명절에 모인 친척들로부터 “결혼 안 하냐?”는 채근을 당하는 성소수자나 비혼주의자들, 친목모임에서 휠체어가 들어가지 못하는 식당을 모임장소로 정할 때 등등 일상에서 겪는 일들은 쌓여 있다. 24시간 차별을 당하지 않더라도 차별의 순간에 사회적 소수자임이 자각된다. 의도가 어떻든 애초에 다른 상황과 조건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이성애자라거나 모두가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상만이 아니라 정치에서도 소수자들과 관련한 정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촛불집회에 많이 나오고 자유발언을 적극적으로 했던 청소년들은 박근혜 탄핵 후 대통령선거 때 투표권이 없어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 퇴진투쟁 때는 선거권 연령하향이 이슈가 됐고, 대다수 정당이 지지하는 듯 했지만 18세로 선거권을 낮추는 선거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어른들만의 정치,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선거연령이 낮아질지 알 수 없다.

생각해 보면 다수가 아닌 사람들, 주류가 아닌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할 시스템은 언제나 다수의 논리에 의해 밀려나기 쉽다. 민주주의를 다수결로 협소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무언가를 결정할 때는 소수자들의 처지와 입장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류 중심의 사회에서 소수자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장애인 교육권이 무릎 꿇은 이유

장애인의 권리도 대다수의 비장애인들이 정하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비장애인들이 정한다 할지라도 장애인의 의견이 존중되고 반영돼야 한다. 2016년 12월 기준, 전국에 등록된 장애인 수는 25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다. 등록되지 않은 장애인 수는 더 많을 것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노동권, 교육권 등은 누가 정하고 있는지, 누구의 의견이 중시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얼마 전에 강서구에 장애인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장애인부모들이 무릎을 꿇으며 학교설립을 호소했다. 지역 주민들이 ‘집 값 하락’을 우려해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장애인의) 교육권과 (비장애인의) 재산권이 부딪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재산권을 인권으로 보아야 하는가와 관련된 논점을 빼고 보더라도 ‘권리 간의 갈등이 아니라 차별’이다. 장애인은 한국에서 교육 기회가 여러 이유로 많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은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의 대상이다. 적극적 조치는 사회구조나 사회구성원들의 특정한 태도, 행동 등으로 인해 한 집단에 대해 차별과 불이익을 시정할 목적으로 특정 집단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흑인에게 우선적으로 기회를 주거나 조건을 만들었던 반차별 정책이다. 정부의 장애인교육정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주민들 간의 갈등처럼 보이는 것도 문제다. ‘대다수 국민의 이해’라는 수의 논리, 여론을 핑계 삼아 국가는 장애인의 인권을 내팽개친다.

누군가는 호소하지 않고 무릎 꿇지 않아도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세상이다. 헌법에는 모든 국민의 교육에 대한 권리와 교육의 의무가 명시돼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장애인학생들이 사는 지역에 특수학교가 없어 1시간을 넘게 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수업을 받으러 가는 경우가 많다. 통합교육은커녕 특수학교도 거의 없다. 특수학교 설립 반대집회에 나온 사람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쁜 꽃과 아기를 보며 살고 싶지, 장애인 보며 살고 싶겠나”라는 차별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그의 ‘생각 없음(편견)’이 장애인당사자나 가족의 억장을 무너뜨린다. 촛불 1주년, 부패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권력자를 몰아낸 것만을 기억해선 안 되지 않을까. 촛불집회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의 존재를 알게 됐던 기억, 사회적 소수자들과 함께 투쟁했던 것, 그/녀들이 요구했고 여전히 요구하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 소수자에게 차별적인 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고, 가려진 사회적 소수자들을 보이게 하기 위해 더 많은 촛불이 밝혀져야 하는 게 아닐까. 정권만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기에, 일상의 차별을 발견하는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먼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알려고 애써야 할 때가 아닐까.

작성자글. 명숙/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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