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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육 내 방치된 청각장애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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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육을 받는 청각장애 학생의 수는 매년 증가해, 2017년 청각장애 유형의 특수교육대상자 중 75% 이상이 일반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다. 하지만 가뜩이나 미흡한 통합교육 지원이 주로 타 장애유형에 집중돼 있어, 청각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는 지원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청각장애 학생 4명 중 3명은 ‘일반학교’

청각장애 2급 판정을 받은 고등학교 3학년 유소영 학생은 부모님의 권유로 유치원 때부터 줄곧 통합교육을 받았다. 보청기를 착용한 한쪽 귀를 통해 어느 정도 소리를 듣는 동시에 입모양을 보고 정확한 의미를 추측하기 때문에, 멀리서 나는 소리를 들을 때는 다소 어려움을 겪는다. 때문에 선생님이 칠판을 바라보며 설명을 하거나, 2명 이상이 동시에 발언하게 되는 조별활동 시간 등에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수업을 마쳐야 했던 적이 많았다. 공부욕심이 있는 유소영 학생의 경우 몇 번이고 다시 내용을 묻는 편이지만, 질문이 반복될수록 “왜 그걸 이해하지 못하냐”며 오히려 질책하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피구, 농구 등 의사소통과 팀워크가 중요한 활동이 이뤄지는 체육시간에는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수업에서 아예 빠졌다. 유소영 학생은 “그 어디에서도 학교 내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지금까지 학교생활을 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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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매년 발간하는 2017년 특수교육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특수교육대상자 중 청각장애유형 학생 수는 3,358명이다. 이 중 농학교 등의 특수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특수교육지원센터에 소속된 학생은 약 25%인 839명이다. 이 숫자의 3배가 넘는 나머지 2,519명(75%)는 일반학교에서 비장애 학생들과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장애로 인한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 유소영 학생과 같이 어느 정도 구화(口話)가 가능한 수준이라면, 부모가 특수교육대상자로 등록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아 일반학교 내 청각장애 학생은 밝혀진 수치보다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익명을 요구한 특수교사 A씨는 “보통 청각장애 학생들은 다른 장애유형과 비교했을 때 친구들에게 크게 피해를 끼치는 일 없이 대부분 조용히 잘 앉아있기 때문에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청각장애 당사자이기도 한 서울정인학교의 배성규 특수교사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서는 ‘특수교육대상자가 일반학교에서 차별 없이 개개인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내가 일반학교를 다니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일반학교 내 청각장애 학생에 대한 차별은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고, 그 속에서 학생들은 어렵게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박학교 내 청각장애학생 지원체계 사실상 전무

지역에 따라 일부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는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보조공학기기를 일부 지원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학생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또 이 같은 지원이 일반학교보다는 주로 특수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일반학교 청각장애 학생들에게까지 미치는 일은 드물다. 무엇보다 현재 거의 유일하게 지원되고 있는 보조공학기기 조차 청각장애 학생들에게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업을 진행 중인 사회적기업 AUD의 박원진 대표는 “시중에 보조공학기기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제품을 직접 사용해본 결과 청각장애인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만큼 좋은 질을 가진 기기는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일반학교에 재학 중인 청각장애 학생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다.

유소영 학생을 포함한 주변 일반학교 청각장애인 학생들 역시 학교에 다니는 동안 보조공학기기 등의 지원내용에 대해 단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좋은 성적을 유지해온 유소영 학생은 수화가 가능한 가까운 비장애인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수업내용을 친구가 수화로 설명해 줬고, 덕분에 원하는 대학에도 합격할 수 있었다. 만약 그 친구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공부를 할 수 있었을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상당수의 청각장애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 공부에 흥미를 갖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 다른 일반학교에 다니는 청각장애인 친구들이 있다.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나보다도 더 잘할 것 같은 친구들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나는 청각장애인이라서 안 돼’라는 무기력에 학습돼 있다.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청각장애인이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을 대부분 먼저 떠올린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학교 내에서 보조공학기기와 같은 단편적 지원이 아닌, 장애 특성과 상황에 따라 개별화된 지원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배성규 특수교사는 강조했다. “흔히 청각장애 학생들을 지원한다고 하면 보조공학기기, 속기 등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것들만으로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단정하는 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통합교육 현장에서 이 같은 지원으로 인해 오히려 비장애 학생들이 방해를 받지는 않는지에 대한 고려도 함께 해야 한다. 듣기시험에서는 대부분의 학교가 청각장애 학생에게 학년의 평균점수를 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이것이 어떤 학생에게는 부당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이것이 선결되지 않으면 역효과로 인해 통합교육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장애 정도와 특성, 수화사용 여부, 교과목 등 여러 상황에 따라서도 지원과 평가방법은 달라야 한다. 한 예로 국어과목에서 ‘팔랑팔랑’과 같은 의태어를 설명할 때, 청각정보에 약한 장애학생에게는 비장애학생과 차별화된 교육방법이 필요하다. 또 국어, 사회와 같은 수업에서는 속기지원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체육수업에서는 또 다른 지원방법이 고민돼야 한다. 이처럼 총체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지원 주체로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같은 고민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성공적 통합교육의 핵심은 장애학생 아닌 교육전체의 변화

하지만 이런 학습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과거 애화학교에서 통합교육 업무를 담당한 경험이 있는 배성규 특수교사에 따르면, 일반학교 청각장애 학생들은 학업뿐만 아니라 교우관계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음성언어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어려운 청각장애 특성상, 이 현상은 다른 장애유형보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유소영 학생 역시도 “나를 포함해 주변의 일반학교 청각장애인 친구들 중 왕따를 경험하지 않은 친구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통합교육 현장에서 심한 괴롭힘 혹은 완전한 단절을 견디지 못한 몇몇 학생들은 상처를 안고 특수학교로 전학을 선택하고 있다.

배성규 특수교사는 통합교육 현장에서 이 같은 현상이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국내 통합교육의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이 필요하다. 통합교육의 본질은 나 혼자 공부 잘하고 잘 살자는 게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사회에서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잘 살자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통합교육 현장에서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본질은 뒷전으로 둔 채 물리적 통합만을 강행해, 통합교육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부각되고 있다. 비장애인 기준에서 일률적 잣대로 매겨지는 학업, 입시 중심의 교육 분위기 속에서 진정한 통합은 결코 이뤄질 수 없다. 부족하거나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음성언어 대신 또 다른 방식을 사용하는 나와 다른 존재, 하지만 똑같이 대우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매김하지 않는다면, 한정된 지원 내에서 통합학교의 장애학생들은 계속해서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배성규 특수교사는 학교 내에서 장애로 인해 상처를 받는 학생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장기적인 시각에서 정책적 고민도 함께 이뤄질 것을 당부했다. “교육은 장기간에 걸친 프로젝트다. 정책에 대한 효과는 물론 부작용이 발생하기까지도 시간이 다소 소요되다 보니 이 분야에 대한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학생들에 대한 차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회적 손실과 문제들에 대해서도 국가가 장기적인 시각에서 생각해 주길 바란다. 이 부작용에 대한 값을 치루는 것 역시 국가의 몫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작성자글과 사진. 정혜란 기자  sousms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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