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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문화향유권을 둘러싼 차별 없애는 밑거름이 될 것

시청각장애인 영화관람 차별구제청구소송 인터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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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7일, 시·청각장애인 영화관람 차별구제청구소송에 대한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피고인 멀티플렉스 사업자들에게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영화 관람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이번 판결은 2년이라는 긴 시간을 할애한 수확으로, 소송을 이끌어 온 장애인 단체 연대와 변호인단에게 의미가 크다. 지난 10월, 현장검증에서 기기 시연까지 치르며 소송에 몰두한 백지현 씨(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에게 소송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청각장애인 영화관람 차별구제청구소송(이하 영화관 소송)이 1심 판결에서 전부 승소 결과를 받았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예상했던 결과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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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좋은 판결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국내 대형 멀티플렉스 사업자 3곳을 상대하는 소송이고, 선례도 없다보니 변호인단에서도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추측을 내놓지 못했었다. 1심에서 패소한다면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사실 1심 판결까지 2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나중에는 판결 선고에 대한 생각보다 과정에 집중했다.

 

1심 판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는데, 특별히 길어진 이유가 있었나?

애초에 다툼이 많았다. 피고 측에서는 아예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관련 조항 자체를 다르게 해석했다. 그러다보니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명확하게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에서부터 다퉈야했다. 현장 검증 하나 하는데도 피고 측에서 현장 검증 하는 것 자체를 거부해서 수차례 과정을 거치고서야 현장 검증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다투다보니 길어진 것 같다. 또 한 가지는 1년 정도 진행된 시점에서 재판부가 한 번 바뀐 것도 영향을 줬다. 처음 재판부를 대상으로 주장해 온 것들을 새로운 재판부에게 다시 설명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필요로 했다.

 

다툼이 많았다고 말할 정도로 쉽지 않은 과정이었던 것 같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피고 측의 태도가 너무 공격적이었다. 동등한 문화향유권이 주어지지 않는 지금 상황이 차별이라는 것조차도 아니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어떻게 그렇게 모른 척 할 수가 있는지 답답했다. 피고 측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였다. 일단 영화상영업자들이 시・청각장애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피고들이 자막이나 화면해설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유가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개방형은 비장애인의 영화관람권 침해이고, 폐쇄형은 보조기기에 대한 비용을 이유로 사유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국내에서는 아직 보조기기들이 상용화돼 있지 않으므로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러면서 배급업체에 책임을 돌리려고 했다. 그런 주장들에 일일이 반박하고 피고 측과 재판부를 원론적인 것부터 이해시켜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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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이전에 청구취지 변경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피고들이 계속해서 문제 제기한 부분 중에 저작권이 있는데, 이미 만들어진 제작물인 영화를 상영업자가 2차 가공하는 행위가 저작권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무시할 수가 없었고, 재판부에서도 청구취지를 명확하게 쓰라는 요청이 있어서 결국 청구취지를 변경하게 됐다. 배급업자에게서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 받은 영화에 한해서는 비장애인과 동등한 관람이 가능하도록 기기를 마련하라는 것과 장애인들이 미리 어떤 영화가 기기를 제공하는 영화인지 알 수 있도록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적합한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하라는 것이 변경 사항이다.

 

변경된 청구취지로 인해서 판결에 ‘원고들이 관람하고자 하는 영화 중 제작업자 또는 배급업자 등으로부터 화면해설 또는 자막 파일을 제공받는 영화’에 한해서 제공하라는 부분이 있다. 결국 제작업자 측에서 파일을 만들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 게 아닌가?

마땅한 지적이다. 청구취지 변경을 할 때도 내부적으로 논의가 많이 된 부분인데, 양보를 좀 하더라도 일단 승소를 하고 이후에 소송 외의 방법으로 아쉬운 부분을 채워나가야 한다는데에 의견이 모였다. 지금까지는 보조기기가 상영관에 마련돼 있지 않아서 자막이나 화면해설이 있어도 활용할 수가 없었는데, 승소를 통해 그 일부 영화라도 동등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소송의 목표점을 조금 하향한 것이다.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보면 배급업자의 자막 및 화면해설 제공은 ‘노력의무’로 돼 있다. 때문에 배급업자들이 자의적으로 나서서 만들어줘야 하는데, 적극적으로 할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이번 영화관 소송으로는 이 부분을 해결하기 어렵고, 추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개정하는 등의 후속활동이 필요하다. 해외에서는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기관에서 배급사들에게 화면해설이나 자막을 만들 수 있도록 기금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장애인을 소비자로 인식하고 자체적으로 만드는 게 보편적이다. 한국에서도 점차 인식이 변화해서 제작이 당연한 일로 정착되리라 믿는다.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소송과 판결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일까?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10년이다. 2017년에서야 문화향유권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싸우고 겨우 1심 판결이 났다는 게, 매우 늦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첫 걸음이 큰 의미를 가진다. 재판부가 일부가 아닌 전부 승소를 줬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앞으로 문화향유권을 둘러싼 차별을 없애는 활동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생존권을 위협 당하는 장애인들도 여전히 많은데, 문화향유권으로 다투는 것을 시기상조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권리에 대한 우선순위를 감히 누가 매길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실제로 이번 영화관 소송에 참여한 시・청각장애인 당사자분들은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변론기일에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소송을 끌고 가는 변호인단, 장애인 단체들조차도 꼬박꼬박 참석하지 못했는데, 그 분들이 버스를 대절하면서까지 참석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소송이 당사자분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뒷전일 수 있는 권리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열일 제쳐두고 싸워서 얻고 싶은 권리일 수 있다. 비장애인이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도 영화보기를 선택할 수 있고 누구도 그것을 비난할 수 없듯이, 장애인도 자신에게 중요한 권리를 우선순위에 따라 선택해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항소심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일단은 항소심 준비를 잘 하고, 최종판결 이후에는 그 판결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도록 활동하는 것이 단체들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1심만 2년이 걸렸는데 최종판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법원이 스스로 만든 판례를 책임지고 모니터링하고 이행을 촉구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긴 시간 힘들게 싸운 결과가 그림의 떡이 되지 않도록 연대 단체 모두가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작성자글과 사진. 조은지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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