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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나의 소원, 나의 행복

위기거주홈 이야기

본문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오,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백범일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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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거주홈은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학대피해장애인의 쉼터입니다. 함께걸음은 348호부터 위기거주홈의 생생한 일상이 담긴 ‘위기거주홈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원했고 나는 여자 친구가 좀 있었으면 좋겠고, 각자 소원하는 것은 다 다르다. 쉼터 거주 당사자들도 마찬가지라 원하는 것은 다양하기도 하거니와 예상을 뛰어넘는, 어떤 면에서는 기상천외하기까지 하다(예를 들어 한 분은 식당을 차려서 본인이 계산대에서 돈을 받고 나를 주방에 배치해 칼질을 시키겠다고 하신다).

‘이렇게 해 드리면 좋을 것이다, 좋아할 것이다’라는 예측은 근무자의 경험과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당사자들의 욕구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이럴 경우 우리는 가능한 한당사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지원한다.

 

나는 자연인이다

소크라테스가 사망한 후 소크라테스의 제자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 BC 445?~BC 365?)는 철저한 금욕주의와 함께 명예와 부, 쾌락을 경계할 것을 강조했다. 그의 제자 디오게네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서 필요한 것만 취하면 인간은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진짜 그 말대로 커다란 나무통 안에서 물컵 하나만 가지고 생활했다. 나중에 그마저도 지나가던 개가 혀로 물 마시는 걸 보고 뭐하러 이런 게 필요하냐며 물컵을 내다 버리고 개를 자신의 스승으로 삼아서 지냈다. 여러 사람들 질문에 답하기도 귀찮았는지 누가 질문이라도 하려 하면 “나는 개다. 그러니까 꺼져!”라고 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요즘 같이 주택난이 심각한 오늘날에는 꽤나 괜찮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만, 디오게네스가 월세가 부담돼서 그런 건 절대 아니고, 문명에서 나온 관습과 예절, 생활양식마저도 자연을 거스르는 것으로 보고 철저하게 거부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스승과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은 본인의 제자들에게 항상 욕망을 버리고 살라고 이야기했지만, 본인은 정작 커다란 집에 살았다. 이 사실이 못마땅했던 디오게네스는, 어느 날 진흙투성이 발로 플라톤의 집에 들어가서는 더러운 발로 침대를 마구 짓밟아놓고 나왔다. 다만 플라톤은 디오게네스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지 사람들이 그에 대해 물어보면 ‘그냥 미친 소크라테스요’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이 이 괴짜 철학자의 소문을 듣고 그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 부하 몇 명만 대동한 채 그를 찾아왔다고 한다. 마침 디오게네스는 양지 바른 곳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나는 알렉산더, 대왕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더니,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나는 디오게네스, 개다” 대꾸했다. 이에 알렉산더 대왕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보아라. 뭐든지 들어주겠다”고 하니, 디오게네스는 무엄하게도 “그럼 내 햇빛 가리지 말고 저리 꺼져!”라고 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내가 왕이 아니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라며 화가 난 부하들을 진정시키고 그가 햇빛을 쬘 수 있도록 비켜주었다고 한다.

 

원하는 것 들어주기

나는 인스턴트 라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모 만화가가 무명시절 동료 만화가와 자취하며 삼시세끼를 라면만 끓여먹었다고, 애증의 음식이라며 자신의 작품에 잊을만하면 등장시키기도 하고, 나트륨 함유량도 높고, 최근 오해가 풀리기는 했지만 MSG의 인위적인 맛도 좋아하지 않아 내가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일은 밥이 없을 때 빼고는 없다. 간편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 눈에는 고집스럽게도 요리에 멸치나 새우, 다시마로 직접 육수를 내서 쓰거나 하는 식이다.

외부 직원들과의 회의가 끝나고 서둘러 위기거주홈으로 돌아가려는 나에게 함께 점심식사라도 하고 갈 것을 권하며 ‘홈에 계신분들끼리 라면 끓여 드시게 해도 될 것 같은데’라는 직원들의 말에 ‘학대현장에서도 많이 드셨고 여기서 나가시면 자주 끓여 드실 텐데요’라고 하고 서둘러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작년에 다른 생활시설에서 생활하시던 장애인 당사자 세 분이 자립 체험을 하기 위해 약 2주일간 우리 위기거주홈에 머무르신 적이 있었다. 우리 위기거주홈 직원들 이분들이 오신다고 그때 참 준비 많이 했다. 서울 구경부터 시작해서, 물건 구매하기 연습, 음식 만들기, 직업체험 이것저것 짧은 2주 안에 다 체험해 보실 수 있도록 했었다.

그분들과 함께 지내던 무렵 어느 날 점심때였나, 무엇을 준비해야 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아 오늘 당사자분들과 점심으로 무엇을 함께 먹으면 좋을지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당연히 뭔가 거창한 게 나올 줄 알고 잔뜩 기합 넣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분들이 오늘 점심으로 드시면 좋겠다고 했던 음식은 의외로 라면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스턴트 라면에 대한 나의 주관과 생각이 투영됐기 때문에 라면을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 은연중에 위기거주홈 주부식 구매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이후 장을 볼 때마다 당사자 분들이 원할 때 끓여 드실 수 있도록 라면을 몇 묶음씩 사다 찬장 안에 넣어 놓는다.

 

내가 머물 곳, 나의 공간

위기거주홈에서 계셨던 당사자 분이 자립해 주거하실 곳을 알아보던 중 이분이 탁 트인 옥탑방에서 살아보고 싶으시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옥탑방이 TV 속에서 나오는 돈 많은 사람들 사는 펜트하우스 같은 곳이면 참 좋겠다만(어쨌든 둘다 건물 꼭대기에 있다) 사실 옥탑방은 옥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두드러지는 곳이다. 공용공간인 옥상은 다른 층 입주자들에게 개방해야 하는 곳이다 보니 범죄에 취약하기도 하고,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 이런 것들을 충분히 설명해 드렸었고 위기거주홈 실장님도 몇 번 설득하신 것 같았는데 이 분은 계속 옥탑방에서 살고 싶어 하셔서 옥탑방에 들어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지금도 이분은 옥탑방에서 잘 생활하고 계신다.

 

뜻대로 하세요

라면도 그렇고 옥탑방도 그렇고 사실 당사자분들의 욕구를 접했을 때 저분이 왜 저런 걸 원할까? 라는 의문이 앞설 때가 많다. 아무리 봐도 불편하고 딱히 좋지 않아 보이는 게 많다. 근무자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여태껏 고생하셨으니 좀 편하게 사셨으면 하는데 진심으로 걱정돼 드리는 말씀이나 좀 더 좋은 쪽으로 권유해도 거의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금 속상하긴 하지만 당사자의 선택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이상 근무자 입장에서는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알렉산더 대왕도 햇빛을 가리지 말라는 디오게네스의 말을 듣고 말없이 그가 햇빛을 더 쬘 수 있도록 비켜 주었다. 하물며 나라고 당사자가 햇빛 좀 가리지 말라는데 비켜주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결국 본인들 원하시는 걸 하시면서 그 안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아내신다.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

위기거주홈 PCP 사람중심계획 교육(PATH와 MAPS)이 지난 4월 5일 자로 마무리됐다. ‘나에게 그 어떤 소원이라도 단번에 들어주는 마술 지팡이가 생긴다면?’ 이라는 멋진 주제로 본인의 꿈, 소망, 좋아하는 것, 행복한 것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당사자와 당사자가 꼭 참여하길 원하는 주변인(가족도 포함되지만 위기거주홈 당사자들은 가족관계가 단절된 분들이 많아 대부분 위기거주홈 근무자들, 이분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기관 근무자분들이 참석했다) 6~7인이 앞에 당사자분과 함께 앉아서 진행됐다. 총 2시간 반 넘게 계속 앉아 있는 시간이 지루하실 법도 한데 끝까지 앉아 계시는 것이 인상 깊었다.

이 날 참여하시게 된 당사자 분들은 본인이 원하시는 것들을 이야기 하시고 본인의 행복을 위해 참석자 중 누가, 어떻게, 언제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사까지 구체적으로 밝히시며 즐거워 하셨다. 이야기가 마무리 될 쯤 당사자 주위의 참석자들은 구체적으로 이분을 도울 것을 당사자에게 약속하고 각자 응원의 메시지를 적고 마무리 했다.

여태까지의 활동이 당사자의 욕구와 필요를 근무자의 시점으로 예상해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당사자의 시점에서 당사자가 행복해 하는 것에 맞추어 지원해보는 색다른 방법이다. 제주도 여행, 인천 차이나타운에 직접 방문해 화교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자장면 먹어보기, 직접 김치 담그는 법 배워보기, 다양한 비디오게임 해보기 등 당사자와 근무자 모두에게 색다른 도전과 경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애타게 파랑새를 찾았는데 알고 보니 키우던 새가 파랑새였다는 동화처럼 파랑새는 의외로 멀리 있지 않은 듯하다. 행복을 찾는 여정을 함께하는 우리 모두를 응원한다.

작성자장명훈/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위기거주홈 간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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