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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선수처럼 축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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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우연히 TV에서 프로축구 올스타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 때 선수와 코치, 팬이 함께 이어달리기를 하는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당시 남부선발팀의 파란 유니폼을 입은 한선수가 마지막 주자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는데요. 환하게 웃으며 달리는 그 선수가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모릅니다. 경기에서도 혼자서 두 골을 넣어 팀을 승리로 이끈 그는 ‘올스타전의 사나이’로 불리는 이동국 선수입니다.

 

비 오는 체육시간이 좋았던 이유

이동국 선수를 처음 본 후, 축구를 정말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체육시간에 정말 축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6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축구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끼워주지 않았거든요. 팀 스포츠에서 중요한 소통이 어려워서 함께 해주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제가 선생님들로부터 받은 특혜나 차별 대우로 인해 소위 ‘찍힌’ 게 더 큰 이유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단체로 벌을 서도 늘 제외되고, 항상 배려나 혜택을 받고. 저는 도움을 줘야 하는 대상이라고 거의 강제로 주입받았을 것입니다. 배려나 혜택의 타당한 근거에 대한 설명은 물론이고, 학생 본인의 동의나 의견조차도 구하지 않고 ‘무조건’ 도움을 주게 하니 당시 한참 성장기에 있는 또래들은 쉽게 납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축구를 제대로 못 하게 되면서 체육시간을 자연스럽게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축구경기를 보는 것도 좋아했지만, 저와 함께해 주지 않는 아이들이 하는 경기를 보는 게 즐거울 리가 없죠. 그래서인지 체육시간이 있는 요일에 비가 오면 정말 좋았습니다. 비가 오면 체육시간에 운동장이 아닌 교실에서 자습을 했거든요.

직접 축구를 해볼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이동국 선수가 뛰는 경기를 보면서 운동장을 동경한 적이 많았습니다. 운동장을 마음껏 달리며 상대선수와 몸싸움을 하고, 발로 공을 요리조리 다루는가 하면, 같은 팀 동료에게 정확한 패스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백미는 골이죠. 골을 넣고 유니폼 상의를 벗어던지기도 하고, 운동장을 전력질주하기도 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어떤 기분일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축구동아리에 가입하다

그래서 제가 대구대학교에 입학한 뒤,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바로 축구동아리 가입이었습니다. 그것도 학기 초에 있는 동아리 가두모집 때가 아닐 때, 직접 찾아가 가입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의 경험과 저의 장애를 감안한다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그만큼 축구가 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가입했던 동아리는 ‘푸른삶’이라는 중앙축구동아리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대학생활 중에서 제가 가장 잘했던 결정 중 하나가 푸른삶 가입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푸른삶 활동은 동아리 이름처럼 제가 푸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공을 차러 갔던 날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날 공을 차러 나온 선배들이 모두 돌아가면서 저에게 소개를 해줬는데, 축구경기를 할 때 전술 등을 지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스케치북에 한 명씩 큼직큼직한 글씨로 이름과 학번, 학과 등을 적어 소개해 줬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도 인사했지만, 아무래도 처음 접하는 자리라 긴장도 하고 어색했습니다. 그러다 어떤 선배의 차례가 되었는데, 스케치북에 이렇게 적어서 저에게 보여줬습니다. “지금 기분이 너무 안 좋아요.” 다짜고짜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하니 저는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한 것처럼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그 선배가 다시 스케치북에 글을 적어서 보여줬습니다. “후배님이 들어오기 전에 푸른삶에서 최고로 잘생긴 사람이 나였는데 이제 저는 2위가 되겠네요.” 그제야 저도 긴장을 풀고 웃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와 소통하려는 모습에 감사함을 느끼며 ‘정말 가입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푸른삶은 ‘축구’를 전제로 하는 동아리임에는 분명하지만, 반드시 축구를 잘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함께 공을 차고 친목을 도모하는 동아리입니다.

 

황당한 첫 골

하지만 저에게는 단순히 축구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리 생활을 하는 것도 녹록치 않았습니다. 저는 저시력이기 때문에 솔직히 공이 무서웠어요. 그냥 땅볼로 굴러오는 공은 ‘발’로 받으면 되지만, 공중에서 날아오는 공은 ‘머리’나 ‘가슴’ 등으로 받아야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공중에서 오는 공을 항상 한 박자 늦게 봤기 때문에, 저는 경기에서 제대로 된 헤딩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공이 날아오는 궤적이나 공의 스피드도 다양하기 때문에 낙하지점이나 헤딩해야 하는 타이밍을 맞추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제가 축구를 하게 된 뒤, 처음으로 골을 넣었던 날은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날은 공격수로 뛰게 되었는데요. 어떻게든 골을 넣어보려는 의지로 골대 바로 앞에서 서성이며 공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패스가 오면 받아서 골대로 차 넣겠다는 기세였죠. 그런데 측면에서 동료가 공중으로 띄어 차올린 공이 저의 눈에 정통으로 맞고 골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공이 바로 코앞에까지 온 그 찰나의 순간에서야 공이 날아온다는 걸 알았지만 헤딩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죠. 공은 골대 안으로 들어갔는데 저는 충격으로 운동장에 큰대자로 넘어져 버렸습니다. 골을 넣으면 꼭 이동국 선수가 하는 골 세리머니를 따라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기다리던 첫 골이었지만 세리머니도 못하고 머쓱하게 되었습니다.

 

내게는 어려운 타이밍 맞추기

경기를 뛰고 쉬는 시간이 되면 운동장 터치라인으로 모여 휴식을 취하는데요, 그때 저를 비롯한 신입생들은 먼저 달려가서 준비된 물이나 음료수를 들고 터치라인으로 걸어오는 선배들에게 줍니다. 처음에는 저도 어떻게 하는지 몰라 제일 뒤에서 터벅터벅 터치라인으로 걸어가다가 동기들이 하는 걸 보고 따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시력으로는 같은 유니폼을 입은 선배들이 걸어오니까 다들 비슷비슷하게 보입니다. 가장 기수가 높은 선배에게 먼저 물이나 음료를 줘야 하는데, 제대로 보지 못하고 기수가 낮은 선배에게 먼저 준적이 많았습니다. 그럼 그 선배는 마시지 않고 더 높은 기수의 선배에게 주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실수한 것 같아서 뒷머리를 긁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동아리 활동을 하다 보면 회식을 할 때가 있습니다. 공을 차며 땀을 한 바가지 흘린 몸을 시원한 샤워로 피로를 풀고 회식에 임하면 정말 즐겁습니다. 피곤함을 잊고 그날 경기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축구, 학교생활 등으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하지만 이렇게 즐거운 회식 자리에서도 저는 늘 마음 한편에 긴장과 불안의 마음을 품고 참석하게 됩니다. 회식에서 술(특히 소주)을 마시게 될 경우, 선배의 잔이 비어 있는 걸 보면 눈치껏 먼저 술을 따라야 하는 게 예의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술을 따르는데 유리잔에 액체가 채워지고 있는 정도를 정확히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소주잔처럼 작은 잔이면 따르는 데에 온 신경이 집중되곤 합니다. 잔에 적당히 따랐음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잔을 넘치게 따른 적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잔에서 넘쳐흐른 술이 안주 위로 떨어질 때 얼마나 당황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컸던지. 그냥 다른 동기나 선배들이 술을 따를 때를 기다려도 됐지만, 저도 푸른삶의 회원으로서 함께 분위기에 녹아들고 어울리고 싶었습니다. 계속 시도하고 노력하면서, 나중에는 제가 따르는 술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따랐을 때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11명이 둥글게 어깨동무를 하고 파이팅을 외칠 때 또는 회식에서다 같이 건배하기 전에 구호를 외칩니다. 구호는 회장이 ‘푸른’이라고 하면 나머지 회원들이 ‘악’이라고 외치고, 이어서 회장이 ‘악’ 하면 나머지 회원들이 다시 ‘악’이라고 외칩니다. 즉 푸른~! 악! / 악! 악! / 악! 악! 이렇게 번갈아 외쳐야 되는데, 제가 잘 듣지 못하니까 항상 외쳐야 되는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겁니다. 한번은 푸른삶에서 저의 생일을 함께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날은 제가 주인공이라고 건배하기 전 저보고 구호를 시작하라고 해서 얼떨결에 ‘푸른’이라고 외쳐보게 되었습니다만, 시작만 제대로 하고 뒤에 ‘악’하는 부분은 제대로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마음껏 소리 내 ‘악’을 외쳐보고 싶네요.

 

비 오는 날의 축구

이동국 선수의 전매특허인 멋진 발리슛을 하거나 많은 골을 넣기는 쉽지 않지만, 사람들과 함께땀 흘리며 운동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기뻤습니다. 지금껏 장애를 가진 회원과 함께 공을 차본 적이 없었던 푸른삶 사람들도 어디까지가 관심이고 배려인지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관심이나 배려를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축구’라는 매개체 속에서 함께 공을 차고 선후배 간의 돈독한 관계를 맺으며 대학생활에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했습니다.

언젠가 수요일에 비가 내린 적이 있습니다. 중·고등학생이었다면 정말 좋아했겠지만, 푸른삶은 수요일이 공차는 날이기 때문에 비가 오면 정말 시무룩해지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에도 공을 찬다는 회장의 공지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축구화 속으로 빗물이 다 들어오고, 머리를 감고 막 나온 것처럼 머리칼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마냥 좋았습니다. 달릴 수 있고 공을 찰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말이죠.

푸른삶 활동을 하면서 마음속 깊이 새긴 말이 있습니다. “열심히 달리며 땀을 흘릴 때, 난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주 단순하고 어쩌면 사소하기조차 한 말일 수 있지만, 다수의 사람들과 무엇을 함께 하는 데 있어서 시각과 청각에 있는 장애로 받는 제약은 너무나 큽니다. 장애로 인해 소속된 공동체에 해가 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준비해야 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이 많았지만, ‘시청각장애를 가진 법대생’이 아닌 ‘23기 박관찬’으로 받아준 푸른삶 일동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작성자글과 사진. 박관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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