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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에게 만신이 되어야

인권이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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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참 밝은 봄의 끝자락. 아주 뜨겁지도 따갑지도 않고, 바람은 시원해 외출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늦잠 자도 좋은 주말 이른 아침에 우리는 놀러가고픈 마음을 애써 누르고 안산에 있는 선감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올해로 세 번째인 선감학원 추모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가는 곳도 바닷가이니 끝나고 해물칼국수를 먹으면 외출이지 않겠냐며 서로를 다독였다.

몇 년 전 처음 일제시기 감금된 아동들의 고통이 곳곳이 서린 선감도 일대를 정진각 안산역사연구소장의 설명을 들으며 탐방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납치되듯 끌려와 일하던 곳, 탈출하려고 새벽에 몰래 건너던 바다. 건너편 뭍이 가까이 보이는 바다에서는 시체로 나타나기도 했다고 한다. 이제 그 섬은 도로로 연결돼 섬이 아니다. 15번이나 탈출하려 했던 피해생존자 이대준 씨는 아홉 살에 끌려와 열아홉이 돼 탈출할 수 있었다.

선감학원은 일본 식민시대인 1942년 경기도 대부도 근처에 설치된 아동수용시설이다. 일본은 부모가 없거나 부랑아로 보이는 아동을 섬에 가두고 전쟁 동원을 위한 훈련이나 강제노역을 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일제가 만든 선감학원은 해방이 되고나서도 폐쇄되지 않고 운영되다가 1982년이 되어서야 사라졌다. 여전히 아동 감금과 폭력, 강제노역은 유지됐다. 강제로 끌려온 아동들은 농사를 하거나 가축을 기르는 등 맞아가며 일을 해야 했다. 구타와 노역을 견디다 못해 탈출하려던 아동들은 건너편 섬에 닿지 못한 채 익사하거나, 도착하더라도 다음날 선감학원의 관리자들이 마을을 헤집는 탓에 다시 끌려가야 했다. 그렇게 죽은 아동들은 야산에 묻혔다. 그 억울한 영혼들을 달래는 추모제다.

 

억울한 영혼을 달래는 일

이번 추모문화제는 예년과 달리 만신(무녀(巫女)를 높여 이르는 말)들이 와서 위령굿을 했다. 난생 처음 보는 굿, 호기심으로 기다렸다. 선감학원에서의 폭력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도 전에 김하나 만신이 선감도를 지나다 죽은 어린 영혼을 만났다고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혼령의 곡소리를 듣고 그가 선감학원에서 죽은 소년인 걸 알게 됐고 그래서 그가 죽었던 장소에 먹을 것을 사다가 위로해줬단다. 원혼을 만나다니 신기했다. 망자는 쌍둥이 형으로 또 다른 피해자인 동생은 살아남았다.

위령굿은 5시간이나 되는 하나의 대규모 공연이었다. 추부성거리, 칠성거리, 영정거리, 군웅거리, 타살거리, 장군거리, 대감거리, 조상거리로 구성됐는데, 죽은 영혼의 말을 만신이 내뱉기도 했다. 희생자인 쌍둥이 형에게 빙의된 만신은 피해생존자의 손을 잡고 말한다. “힘들었지? 나는 여기서 잘 있으니 나중에 만날 때까지 너도 잘 지내.” 진짜 빙의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억울하고 속상했을 말들을 대신해주는 듯했다. 빙의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만신은 자주 애도와 격려의 말을 했다. “희생자들의 넋을 잘 위로해줘야 남은 생존자들도 편히 살 수 있다, 살아있는 친구들 저승에서 잘 보살펴 달라.”

굿이란 위로구나! 따뜻한 만신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이렇게 포근하게 하는데 피해생존자들은 더 위로받겠구나 싶어 뭉클했다. 만신이란 그렇게 속에 담아둔 말들을, 듣고 싶었던 위로의 말들을 꺼내주는 사람이구나. 갑자기 우리는 누군가를 따뜻하게 위로해준 적이 얼마나 있던가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의 만신

말의 힘, 위로의 힘을 느끼며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그러다 서울 에너지공사 목동본사 75m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파인텍노동자 박준호, 홍기탁의 200일 투쟁에 함께했다. 사실 파인텍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는 5명, 작은 사업장이다. 여러 연대자들이 오체투지도 하며 파인텍노동자들과 합의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의 행태를 시민들에게 알렸다.

오체투지 기간 동안 비도 오고 햇빛이 따가웠다. 열기가 오른 아스팔트에서 오체투지를 하니 몸도 뻐근했다. 다행히 파인텍 노동자들의 억울함이 언론에 많이 보도됐다. 연대자들은 모두 기뻐했다. 오체투지를 마치고 뒷풀이를 하는 자리에서 땀으로 범벅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말한다. “언론에서 파인텍 상황이 많이 보도돼 신나요. 무엇보다 파인텍 동지들이 자신감을 얻은 거 같아 내가 너무 뿌듯해서 힘든지도 모르겠더라구.”

갑자기 일주일 전에 만났던 만신의 모습이 겹쳐졌다. 아, 저 사람이 바로 파인텍 해고자들의 만신이구나. 우리는 몸으로 연대하며 그렇게 서로의 만신으로 존재하는구나. 쌍용차해고노동자는 언제부터 만신이 되었을까, 어떻게 만신이 되었을까 괜스레 혼자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본다. 그도 해고노동자이니까 파인텍해고노동자들의 힘겨움과 외로움을 짐작할 테니까. 쌍용차는 시민들의 연대를 듬뿍 받은 곳이니까 그 가치를 알 테니까, 체화됐겠지.

그러고 보니 선감학원 추모제 때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왔었다. 형제복지원은 군사독재정권시절 부랑인들을 교화시킨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내무부훈령 410호에 따라 감금과 폭력을 대놓고 했던 부산의 수용시설이다. 그들도 옷이 허름하다는 이유로, 껌을 팔고 있다는 이유로, 공원에서 잠을 자다가 납치되다시피 강제 수용된 사람들이다. 누구보다도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의 처지를 공감할 수 있을 게다. 서로의 만신이 되려면 공통점이나 공통의 경험이 있어야 하는 건가.

그러던 중 옆자리에 있던 연대자 한 명이 비슷한 말을 한다. 파인텍 고공농성 200일 투쟁이 잘돼서 오늘은 푹 잘 거 같다고. 그는 해고된 경험이 없는 젊은 여성이었다. 공통의 경험이 없더라도 상대의 처지와 마음을 헤아리려 한다면 충분히 서로의 만신이 될 수 있구나! 좋은 벗이 될 수 있구나!

 

아픔의 연대와 공감

도대체 우리를 공감으로 진입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연대로 연결하는 계기는 무엇인가. 파인텍 고공농성 200일 문화제 때 공연한 416합창단을 보고 그 실마리를 찾아본다. 416합창단은 세월호참사 유가족을 중심으로 구성된 합창단으로 전국 곳곳에 합창으로 연대한다. 아픈 마음을 이끌고 짓밟히고 싸우는 현장에 많이 간다. 파인텍 고공농성장에도 여러 번 연대공연을 온 적이 있다. 아파보고 차별받고 배제된 사람이 그 심정을 안다고 했던가. 합창단에 속한 창현이 엄마 최순화 씨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어렴풋 알 것 같았다. 최순화 씨는 파인텍 노동자들을 격려하며 참외나무 모종을 선물했다. 안산 생명안전보건회 부지에서 퍼온 흙으로 심었다고 했다.

“참외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기 전에 굴뚝에서 내려왔으면 좋겠다. 적어도 열매가 맺을 때쯤엔 내려오셨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때까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싸우는 수밖에 없다. 목표를 이룰 때까지 함께 손잡자”

그렇다. 공감이란 공통의 경험이나 직접적인 이해관계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공감이란 희망에 바탕을 둔 적극적 의지이자 행동이다.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 홀로 행복해지거나 편안해질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행동이며 낙관적 태도다. 세월호 가족들이 75m 고공으로 보낸 것은 희망이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 <민중>을 다시 읊조린다.

 

내 목에 아직 목소리를 갖고 있을 때 나는 무덤 사이에서 그를 찾았네. 그리고 아직 먼지로 변해버리지 않은 그의 손 꼭 잡고서 이렇게 말해주었네.

“모두가 떠나지만 너는 살아있으리. 너는 생명을 밝혀 네 자신의 것을 너 스스로 만들었네.” 그러니 아무도 놀라지 말라. 나, 혼자 있는 듯 보여도 혼자가 아니니. 누구와도 함께 있지 않으나 모두를 위해, 나, 말하노니…….

어떤 이들은 무지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내가 노래하는 사람들,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계속 태어나고 또 태어날 것이며, 그들은 끝내 이 지상을 꽉 채울 것이다.

- 파블로 네루다, ‘민중’ 중

작성자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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