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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위생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

위기거주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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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거주홈은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학대피해장애인의 쉼터입니다. 함께걸음은 348호부터 위기거주홈의 생생한 일상이 담긴 ‘위기거주홈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2017년 서울 한복판에서, 진드기의 악몽

작년 여름 어떤 분이 위기거주홈에 입소했을 때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입소 예정된 날짜는 분명 내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 분이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위기거주홈 앞에 내린 후 입소를 하시겠다고 오셨다.

척 봐도 그의 위생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입고 있던 의복은 언제 세탁했는지도 모를 정도였고, 얼굴이며 팔다리 여기저기에도 오랫동안 씻지 않은 흔적이 있었다. 커다란 화물용 캐리어에 잔뜩 욱여넣어 가져온 의복과 살림살이들 역시 멀쩡한 것들은 별로 없어 보였다.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난 조미료나, 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들 역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은 한참 지나 있었고 식사 후 언제 설거지했는지도 모를 더러운 그릇들과 쥐똥과 각종 오물들, 죽은 해충의 사체로 범벅이 된 잡동사니들까지. 하지만 그는 단 하나의 물건도 버릴 생각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이 물건들과 함께 입소절차를 밟기 위해, 위기거주홈 간사들은 고무장갑을 낀 채로 욕실에 쭈그리고 앉아 입소자분이 가져온 물건들을 하나하나 닦아냈다. 사건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이후에 벌어졌다. 물건들을 세제로 닦고 말리고 시중에서 파는 살충제를 뿌려도 진드기나 진드기가 낳아놓은 알들은 쉽게 죽지 않았던 모양이다. 얼마 후 위기거주홈에서 생활하시던 몇 분과 근무자들이 고통스러운 가려움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추석 연휴 때 극심한 가려움증으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서 연휴 내내 가려움증을 완화시키는 주사를 맞고 팔자에도 없는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입소 전 절차에 대한 고민

다행히 저 때는 죽지 않고 살았지만, 위기거주홈 간사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아쉬운 점들이 있다. 첫 번째로는 질병검사의 부재이다. 현장에서 분리된 학대피해장애인 당사자에게 검진을 위해 병원에 가실 것을 권했을 때 보통은 ‘아프지 않으니까 나는 병원에 가지 않을래요’, ‘나는 하도 병원을 많이 다녀서 병원은 지긋지긋해요’, ‘살기 위해서 나온 거지 병원 따위에 가려고 나온 게 아닙니다!’라고 완곡하거나 혹은 강하게 병원검진을 거부하고 위기거주홈으로 바로 입소했던 사례가 몇 번 있었다.

혹은 보건소에 가서 검진을 받더라도 결과가 나오기까지 보통 일주일이 걸리는데 그때까지는 초조하게 기다려야 한다. 만약 당사자분의 신분확인이 안 되면, 보건소 이용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기간은 더 늘어나게 된다.

운이 좋게도 여태까지 큰 병이 없었고 누군가가 쓰러져 위기거주홈이 발칵 뒤집힌 적은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위기거주홈 특성상 안전에 관해서는 좀 철저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두 번째는 개인 소지품의 정리다. 근무자의 입장에서는 위기거주홈에 입소하시려는 당사자분들이 가지고 오실 개인 소지품들은 간소할수록 좋다. 개인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 혹은 복지카드, 약간의 현금과 통장, 체크카드, 개인이 드시는 약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사례에 따라 예외가 있을 수는 있지만, 학대 현장에서 분리된 경우 대부분의 소지품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비위생적인 경우가 많다. 입소 과정에서 당사자분들의 의견과 생각을 존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좁게는 위생에서 넓게는 위기거주홈 식구들 모두의 안전과 관련된 만큼 타협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제각각, 깨끗함의 기준

위생에는 타협하지 않겠다고 기세 좋게 말했지만, 고민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안 씻는 사람은 3일에 한 번씩 씻는다. 씻으면 하루 종일 재수가 없다거나, 좋은 기가 씻겨 내려간다거나, 씻어도 어차피 더러워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군가가 봤을 때는 왜 잘 안 씻는지 잘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위기거주홈 당사자분들이 생각하는 개인 위생기준 역시 너무나도 다르다. 물론 위생관리가 잘 되시는 분들은 요즘 같은 덥고 습한 날씨에 땀을 흘리고 불쾌하다 싶으시면 욕실로 달려가 씻으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오후에 외출을 하고 온 뒤 ‘오전에 씻었으니 오후에는 씻을 필요 없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도 있다. 한번은 이 분에게 식사 전에 다 함께 손을 비누로 씻자고 말씀드렸더니 본인께서는 이미 손을 씻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언제쯤 손을 씻으셨어요?”

“5시간 전에!”

“…….”

학대현장에서 분리된 경우, 당시 씻을 환경이 마땅치 않아서, 씻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위기거주홈에서 짧게는 1~2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생활하면서 위생관리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분들도 많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은 있다. ‘위기거주홈 근무자를 위해’ 씻지는 말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근무자가 있으니 씻어야 한다”라고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이런 분들 중에는 위기거주홈을 퇴소하게 되면 근무자가 없으니 씻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 예전의 위생 상태로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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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을 위한 모두의 노력

씻어도 악취가 나는 분들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씻는 방법을 제대로 모르고 씻으시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위기거주홈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알려드리면 당연히 민망하고 불쾌해하실수 있다. 그럴 때는 위기거주홈 근무자들이 대중목욕탕에 함께 가서 씻으며 방법을 알려드리면 곧잘 따라 하시고, 또 나중에 그걸 기억했다가 위기거주홈, 또는 자립 이후에도 그때의 방법과 똑같이 씻는 모습을 보여주시고는 한다.

실제로 그런 분이 위기거주홈에 입소하신 적이 있었는데, 인근에 있는 목욕탕에 모시고 가서 함께 씻으며 이 분이 씻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히실 수 있도록 한 적이 있었고 결과도 매우 좋았다. 그때의 경험 이후로 위기거주홈에서는 정기적으로 근무자들과 위기거주홈 당사자들이 함께 인근에 있는 목욕탕에 줄곧 다녀오고 있다.

또 위기거주홈에서는 목욕을 하면서 벗어놓은 의류는 당일 세탁 후 건조대에 널어놓으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정집에서는 보통 빨래를 모아놓았다가 한 번에 세탁하지만,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위기거주홈 특성상 본인 빨래는 본인이 처리해야 한다. 빨래하는 일에 익숙해지기 위함이다. 때문에 위기거주홈에서는 본인 빨래는 각각 개인이 하고 직접 건조대에 널어서 건조되면 정리까지 한다.

최근에는 위기거주홈 샤워꼭지에서 나오는 물 냄새가 조금 역한 것 같아 요즘 SNS에서 그렇게 ‘핫’한 물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를 걸러주는 샤워 필터도 구입해 욕실마다 전부 설치했다. 또 근무자들은 욕실 목욕용품이 떨어지지는 않았는지를 특히 더 신경 써서 확인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당사자 분들이 위기거주홈에 처음 오셨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다른 모습을 보이고 계신다. 심화과정(?)에 이르신 분들은 어디선가 스킨, 로션을 구입하셔서 세안 후 얼굴에 바르신 후 향수를 뿌리는 경우도 간혹 있다.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도 한 번 더 그 사람을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의 자기관리 척도의 한 축이자 첫인상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또 자립을 위한 취업과도 연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생과 관련해서만큼은 더 고집부리고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작성자장명훈/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위기거주홈 간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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