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과자공장에서 착취당한 모자, 그 겨울의 끝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15년 과자공장에서 착취당한 모자, 그 겨울의 끝

학대 피해 장애인, 그 후

본문

  16246_16067_4031.JPEG  
 

작은 평수의 임대아파트는 6월 말무더위에도 맞바람이 불어 절로 시원해지는 곳이었다. 게다가 얼음이 동동 띄어진 콩국수를 겸하니 더욱 그랬다. 그런데 60대 중반의 어머니는 벌써부터 다가올 겨울을, 그 한파를 걱정하고 있었다. 30대의 아들조차 모친의 기우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충남 당진에 소재한 한 과자공장에서 약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착취당해왔던 지적장애인 두 모자에게 그간의 겨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겨울이 걱정이야”

순자 씨(가명. 64세)는 거듭 다가올 겨울을 어떻게 지새워야 할지 염려하는 눈치였다. 시선을 창밖에 두고 그렇게 몇 차례 걱정을 드러냈다. 아파트는 따뜻하다고, 난방 온도를 높게 유지해도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 것이라 아무리 안심시켜도 소용이 없어 결국 그냥 직접 겪어보시는 게 최선일 거라고 단념했다.

충남 당진 소재의 면사무소에 걸려온 한 통의 제보전화로 그 지역 한과공장에서 약 15년간 노동력을 착취당해왔던 지적장애인인 순자 씨와 민종 씨(가명. 38세) 두 모자(母子)가 발견됐다. 당진시청과 면사무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가 함께 현장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공장은 오로지 두 모자에 의해 돌아갔음이 드러났다.

모자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는 날 없이, 오전 7시부터 대개 12시간 혹은 철야작업까지 불사했지만, 임금은커녕 유족연금과 장애연금까지 가해자인 과자공장 사장에 의해 횡령당하고 있었다.

“쌀을 튀겼다가 빻는 거야… 한과를 묻히고… 민종이는 나르고 (가해자에게) 맞기도 하고… 나는 맞지는 않았어. 거기서(가해자) 가끔 반찬도 가져다주고, (남편) 제사도 지내게 했지만 임금을 못 받았어.”

순자 씨는 당시의 기억을 더듬었다. 여사장인 가해자는 두 사람의 주민등록증, 복자카드, 통장을 모두 관리하고 있었는데 횡령, 장애인복지법 위반,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등으로 고발조치 당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2017년 8월부터 복역 중이다. 그리고 당시 두 모자가 매서운 겨울 한파와 여름 혹서를 보냈을지도 모를 거처는 공장 옆에 나란했는데 공장 비품들로 가득해 창고처럼 보였다고 한다.

 

“콩국수. 맛있더라고”

“콩국수. 쉼터에 있을 때 한 번 먹어봤는데 맛있더라고.” 순자 씨는 단박에 콩국수를 외쳤고 그날 모자의 보금자리인 임대아파트에서의 점심 메뉴는 그렇게 낙찰됐다. 맞바람이 불어 시원한 거실 겸 안방에 상을 펼쳐 콩국수를 두고 두 모자와 그들을 돕고 있는 활동보조인, 기자와 함께 동행했던 인권센터의 조주희 팀장이 둘러앉았다. 두 모자가 지난 3월 입주한 이곳 임대아파트는 자그마하지만 두 사람이 쓰기에는 손색없어 보였다. 아직 주변이 개발 중이거나 전이라 푸른 논밭이 창 너머로 넘실거리는 평화로운 곳에 단지는 자리하고 있었다. 두 모자의 자립에는 다른 학대 피해 장애인들에 비해 그야말로 ‘운’이 따랐던 편이다.

조사 당시 당사자들의 의사에 의해 모자는 피해자 쉼터로 긴급 분리됐으며, 면사무소에서 기초생활수급비 신청, 민종 씨 주민등록 재신청(민종 씨는 2013년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였고, 명의 도용을 당해 신용불량자 처지에 놓여 있다) 및 장애등록, 임대아파트 신청 등을 지원하고, 피해자쉼터에서는 피해자 보호, 자립준비지원 등을 지원했으며 인권센터및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에서는 형사고발 및 법률지원, 심리상담 등을 진행했다. 현재 노동력착취에 대한 손해배상을 위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조주희 팀장은 두 모자의 경우 당사자에 대한 ‘통합지원’의 의미가 잘 드러난 사례라고 짚어주었다. “이번 당진시의 모자사례는 지자체,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인권침해피해자 쉼터, 지역 장애인복지관 등 여러 관계기관이 함께 머리를 모아 지속적으로 후속대책을 논의해 왔던 사례예요. 여러 관계기관의 다양한 견해와 당사자들의 의사를 반영해서 피해자 가족이 해당 지역을 벗어나지 않고 원래 살던 지역에 재정착할 수 있었어요. 연구소에서는 학대 현장에서 피해자를 분리하고 지원하는 업무를 오랫동안 해왔지만, 지역 내 다양한 지원기관들 간에 한 개의 사례를 두고 꾸준히 공유하면서 지원해온 선례는 많이 없었어요. 지역에 자립하신 이후에도 당사자분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데, 당진시에서는 각 기관별로 그 역할도 잘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 좋은 선례가 되는 것 같아요.”

그날 민종 씨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초반에만 해도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당일 오전 심각한 상태의 충치 몇 개를 발치해 지혈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활동보조인에 따르면 민종 씨가 오랜 기간 이어진 치통으로 저작행위 없이 음식물을 넘겨왔을 만큼 치아가 방치된 상태였기에 치료 속도가 더디고 경과 또한 그리 낙관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나마 틀니라도 할 수 있었던 순자 씨는 나은 편에 속했다.

 

“엄마도 연습 좀 해야 해요”

민종 씨는 지난 6월 1일부터 보호 작업장에서 조립하는 훈련을 받고 있다.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얼마 뒤면 첫 월급을 받게 된다. 평일이면 매일 복지관을 나가고 있는데, 모친과 함께 가는 요일을 제외하면 집에서 복지관을 시내버스로 왕복한다. 그래서 버스카드도 만들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훈련을 했지만 잘못 하차하는 경우가 있었고 그럴 때면 활동보조인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민종 씨는 이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서울로의 여행을 희망하거나, 홀로 버스 이용을 두려워하는 모친을 독려할 만큼 자신감이 붙은 상태다.

“엄마가 시내버스 잘못 내릴까봐 걱정돼요. 그래도 엄마도 다른 지역으로 다니는 연습 좀 해야 해요. (안 그러면) 힘들어! 콜택시 부르면 요금이 더 비싸니까요. 엄마도 지금이라도 충분히 연습하면 괜찮을 거예요.”

그래도 순자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여행 일정 혹은 아파트 입주 일에 관한 질문에 순자 씨는 에둘러 대답하는 편이었지만 그때마다 날짜를 콕 집어 정정하는 쪽은 민종 씨였다. 얼마 전 어버이날 민종 씨는 어머니에게 직접 만든 카네이션을 달아줬다. 멋쩍었는지 “만들라고 해서 만들었어요”라던 민종 씨의 무뚝뚝한 대답에도 순자 씨는 생전 처음 받아봤다며 해맑은 미소를 보였다. 민종 씨는 쉼터에서 지낼 때 바리스타 교육을 받기도 했다. 그 커피도 ‘만들라고 해서’ 만들었던 거냐고 묻자 그는 그것만큼은 완강히 손을 저었다.

“(바리스타 교육은) 괜찮았어요. 3개월 정도 했어요. 어머니한테 한 번 해줬는데 어머니가 맛있다고 했어요.”

바리스타 교육 못지않게 민종 씨가 관심을 드러낸 분야는 요리였다. 그는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볶음밥, 라면 끓이기, 계란프라이 외의 요리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등 한동안 질문을 이어갔다.

 

  16246_16068_4033.JPEG  
 

“내 나이가 어때서~”

“지원 받아서 비행기 타고 갔는데…두 밤(2박) 잤어. 한라산도 가보고… 가다보니까 다리가 아파서 돌아오긴 했지만… 말도 타고 (제주도에 있는 다른)복지관에도 가고. 바다도 가고. 그래도 귤 따는 게 제일 좋았어. 그 자리에서 바로 먹고 선물도 했어.”

순자 씨의 첫 제주도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감귤농장에서 귤을 따보는 체험이었다. 안방에는 말안장에 올라 앉아 멋들어지게 브이 자를 그리고 있는 모자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민종 씨는 그 기념사진 촬영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일주일이 바빠. 월, 수, 금은 아침에 복지관 나가서 5시 넘어서 집에 와. 요가도 하고, 댄스랑 스포츠도 배우는데 제일 재밌는 건 수요일에 있는 노래교실이야.” 순자 씨에게 애창곡을 묻자 그녀는 흥에 겨워 즉석에서 18번을 불러줬다. “내 나이가 어때서.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순자 씨는 머리도 단정하게 다듬고 곱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활동보조인과 함께 구입한 얇은 외투도 장에서 내어 선보이기도 했다. 이미 여러 차례 안면이 있는 조주희 팀장이 안 그래도 그간 몰라보게 예뻐지셨다고 인사를 건네자 순자 씨는 빼는 법도 없이 18번을 열창하던 이전과 다르게 이번만큼은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결혼해야지. 앞날이 창창한데”

“그건 좀 어려울 거 같아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엄마랑 지내는 게 좋아요. 만약 엄마가 시설에 가신다면 혼자서 (생활이) 어려울 거 같은데 그때 가봐야 알 것 같아요. 지금은 (자립에) 적응한 지 얼마 안 돼서…….”

모친과 떨어져 혼자 자립할 수 있을지 의향을 묻는 질문에 민종 씨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대답했다. 외로움을 잘 타는 순자 씨에게 사람이 많았던 이전 쉼터는 적적하지 않아 좋은 곳으로 기억됐고, 같은 이유에서 소란함이 민종 씨를 조금 고달프게 했던 모양이다. 거기에 한파에 지레 겁을 먹은 순자 씨는 아들에 대한 그간의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며 협박용(?)인지 정 아니다 싶음 쉼터로 들어갈 것이라고 장난 섞인 으름장을 놓았다. 그럼에도 민종 씨 앞날에 대한 걱정의 끈은 놓지 못했다. “민종이도 결혼해야지. 앞날이 창창한데. 여자 친구 데려오면 잘 해줄 거야. 며느리인데.”

복지관에 가지 않는 주말이면 순자 씨와 민종 씨는 인근에 있는 노인 회관을 찾는다. 젊은 민종 씨의 방문이 처음에는 뜬금없었지만 대강 사정을 파악한 어르신들에게 이제 두 모자는 빼놓을 수 없는 한 식구가 됐다. 함께 식사를 나누기도 하고 윷놀이, 노래 부르기, 고스톱 등 다양한 오락을 즐긴다. 민종 씨는 특히 윷놀이를 좋아하는데 본격적인 게임 전에 그가 하는 것은 노인 회관 청소이다. 알고 보니 순자 씨가 그날 유난히 피부가 고왔던 이유도 전날 노인 회관을 찾아와 마사지 봉사를 하고 간 이웃들 덕분이었다. 얼마 전에 그곳 어르신들은 노인 회관에서 먹을 김장 외에도 별도로 순자 씨 모자의 김치를 더 담갔다고 한다. 도움을 구한 순자 씨는 자기 몫의 김칫거리를 사와서 김장을 거들고 과정을 눈에 익혔다.

순자 씨는 현재 경제적 자립을 위한 훈련을 받고 있고 그 일련의 과정 중 하나로 직불카드만 쓰고 있는 상태다. 지출 후에는 활동보조인과 함께 가계부 정리 등을 한다.

 

“왜 하기 싫어요? 하면 괜찮을 거 같아요”

그날 모자의 집에 느닷없는 방문객이 찾아왔다. 새로 입주해 인사를 온 옆 집 신혼부부였는데 그들이 꾸벅 인사를 하고 내민 손에는 두 개의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아이스크림이 약소하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의 기척에 난감함을 느꼈는지 그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고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세상을 조금씩 넉넉하게 만들어가는 것은 꼭 거창할 필요 없는 작은 관심에서 비롯된다고들 한다. 15년간 임금 착취당하던 지적장애인 두 모자는 세상에 나왔고 그들은 여느 모자처럼 서로를 더없이 염려하기도 때로는 토닥거리며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가고 있다. 그 과정에는 지적장애인의 학대에 부당함을 느끼고 부러 수화기를 들었던 제보자의 관심이 있었고, 담는 김에 조금 더 바지런을 떨어 이웃을 위한 김칫거리 한 단을 추가했던 여유와, 주말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 얼굴 마사지를 하는 봉사자들의 작은 미덕이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괜한 오지랖(?)이 종종 어긋날 수도 있음을 당일의 한 가지 일화를 통해 전한다. 민종 씨는 9월에 있을 제 24회 충청남도 장애인체육대회에서 멀리뛰기 등 육상 종목에 출전을 앞두고 있어 8월 초부터 20일간 공식훈련을 하게 된다. 본인이 진정 원해서 하는 건지 괜한 노파심에 민종 씨에게 “민종씨 그거 원해서 하시는 거예요? 싫은데 억지로 하시는 건 아니죠?” 묻자 그는 대뜸 “왜 하기 싫어요?”라고 반문해서 조 팀장과 기자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민종 씨는 대수롭지 않게 “하면 괜찮을 거 같아요”라고 덧붙였는데 그 우문현답에 우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기자의 부족한 필력의 한계가 그 당시 상황을 잘 재현해냈는지는 의문이다.

장애인 체육 대회 관계자에 따르면 대회 출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과 보호자 의사인데 민종 씨 쪽에서 대회 참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당시는 대회 참가자 모집이 종료될 시점이라 테스트를 미처 하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는 민종 씨의 첫 출전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순자 씨와 민종 씨 두 모자는 그렇게 그 겨울의 끝자락에 있다. 그들에게 그리고 소외된 이웃들의 겨울 이후가 응당한 작은 도전에 주저함이 필요 없는, ‘하면 괜찮은’ 세상이길 기원한다. 그리고 언젠가 나비효과로 나타날지 모를, 세상에 대한 우리의 작은 관심을 더불어 말이다.

작성자글과 사진. 김은정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과월호 모아보기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