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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미숙 씨의 첫 바다

학대 피해 장애인,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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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가명. 41세)씨는 최근에야 비로소 바다를 보았다.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제주에서 본 바다는 수평선께는 먹물처럼 짙고 해안가에 가까울수록 파랗고 투명했다. 미숙 씨는 어쩌면 그 바다에서 자신의 인생을 비춰보았을 지도 모른다. 고아원에서 자라 약 15년이라는 세월 주점 등지에서 노동착취와 학대 피해를 입었던 그녀는 그렇게 거듭 자신을 휩쓸고 간 인생의 파도를 거쳐 푸른 물보라가 넘실대는 하얀 백사장에 두 맨발을 내딛는다.

 

“가까이 올수록 푸르더라고요”

“꽃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 본) 바다였어요. 바다가 정말 푸르더라고요. 그런데 맨 끝(수평선 근처)에는 검은 물인 거 같은데 (가까이) 올수록 파랗더라고요. 처음 본 거예요. 그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미숙 씨는 당시를 회상하듯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기자는 처음 ‘맨 끝에는 검은 물’이었다는 표현을 즉각 인지할 수 없었다. 그러다 잠시 헤아려보았고 이윽고 그 바다가 눈앞에 선연해졌다. 수평선께 먹물처럼 짙은 바다는 해안가에 가까워질수록 에메랄드빛으로 투명하다. 기자가 십년 전 쯤 본 제주 바다도 그랬다. 그리고 그 바다는 40년 넘는 세월을 지낸 미숙 씨 인생의 첫 바다였다.

“아버지는 오빠만 데리고 떠나고 저만 여섯 살인가 고아원에 버려졌어요. 거기서 생활하다 19살 돼서 순천에서 서울로 혼자 올라왔어요.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신기해서…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녔고 식당에서 배달하면서 먹고 자고 했어요.”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에 걸려온 한 통의 제보 전화가 있기 까지 약 13년 간 지적장애인 미숙 씨는 학대와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처음에는 주점 청소와 설거지 등의 허드렛일 등을 담당하기로 했지만 손님에게 술을 따르는 행위가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성추행이 있었던 내막도 드러났다. 가해자인 60대 여사장은 장사가 잘 된 날이면 미숙 씨에게 1~2만 원 정도 용돈만 쥐어주고 말았을 뿐 임금은커녕 기초생활수급비까지 착취했다. 게다가 미숙 씨는 피해자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일면식도 없는 어떤 중국인과 법률혼 상태이며 아버지의 상속채무가 있다는 사실을 추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술 끊었어요. 옛날에 (주점에서) 일할 때 계속 먹었어요. 여기(위기거주홈)에 오고 나서 줄여갔고, 이제는 안 마시고 있어요.”

미숙 씨는 담배도 하루에 두 개비로 줄인 상태다. 이제는 그토록 진절머리가 나는 술과 하루에만도 한두 갑의 담배가 간절했던 그녀의 과거 13년에 대해서는 차마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열심히 모아야겠어요”

“저번 주에는 노량진 수산시장 처음 갔어요. (시설이) 깨끗하고 좋더라고요. 가서 소라랑 새우도 보고, 광어회도 먹고… 주말에 피곤하면 하루 종일 그냥 쉴 때도 있고 가끔씩 (남자친구가) 바람 쐬러 가자하면 따라가고 산책도 하고.”

여느 연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미숙 씨의 데이트코스였다. 그녀를 만난 곳은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운영 중인 위기거주홈이었다. 그간 순자 씨(가명. 8월호 주인공) 모자를 제외하고 남성 당사자만 인터뷰해왔고, 미숙 씨와의 인터뷰가 요청 두 번 만에 성사된 터라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 긴장감이 더했다. 미숙 씨도 인터뷰 초반 조금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 경색된 분위기가 완화되기 시작한 건 그녀가 남자친구에 대해 언급하면서였다.

“된장찌개를 잘해요. 된장을 풀어서 두부는 이따 넣고 감자 버섯 양파 이것저것 넣어서 두부 넣고… 콩나물국도 잘해요. (남자친구가) 음식을 다 잘 먹지만 이 두 가지는 더 맛있다고 해요.”

미숙 씨의 요리 중에 특히 된장찌개를 좋아한다는 남자친구는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에 그녀의 사례를 제보한 당사자이다. 그렇게 둘은 인연이 돼 만남을 이어갔고 미숙 씨가 위기거주홈에서 자립한 이후 둘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제 혼인 신고할 날만을 앞두고 있는데 최근 숙원 했던 법률혼 문제가 처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효소송은 증거부족으로 패소했고, 얼굴도 모르는 중국인과는 이혼으로 서류 정리가 됐다.

“(청약에 대해) 전 계획이 없었는데 오빠가 5만 원이든 10만 원이든 하자 해서 함께 은행에 갔어요. 얼마 전에 첫 5만 원을 넣었고 앞으로 15일마다 (통장에서)나가게 돼요. 열심히 모아야겠어요.”

미숙 씨와 남자친구는 얼마 전부터 청약을 시작했다. 주변의 조언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둘은 오로지 둘만의 필요에 의해 은행으로 향했다.

미숙 씨도 장애인 일자리를 얻어 서울시내의 한 자립생활센터에서 평일 4시간 씩 청소, 정리 등의 업무를 하고 있고, 그녀의 남자친구 역시 세탁 일을 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제 2의 간사, 미숙 씨

입소 첫날부터 미숙 씨를 지원했던 위기거주홈 최우영 간사는 처음에 그녀가 불쑥 불쑥 화를 내는 바람에 애를 먹었지만 많이 개선됐고 지금은 여러모로 미숙 씨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숙 씨가 길눈이 밝은 것은 물론 꼼꼼한 편이라 다른 장애인 당사자들을 많이 돕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쉼터 간사들은 그녀에게 ‘미숙 씨도 이곳의 간사예요’라며 농담반 진담반의 당부를 한다고 했다.

최우영 간사가 미숙 씨에게 가장 감동받은 사연은 따로 있었다.

“미숙 씨가 자동이체로 빠지는 비용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인출해서 생활비를 쓰시는데 월급이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미숙 씨에게 조금씩이라도 모아두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거든요. 사실 다른 분들이라면 ‘예’ 하고 말았을 것 같은데 미숙 씨는 그날부터 빠듯한 돈을 절약해 몇 달 뒤 80만 원이나 모아 오셨더라고요.”

인터뷰 당일 미숙 씨의 핸드폰에 담긴 사진들을 구경했는데 사진 중 상당수는 영수증이었다. 미숙 씨는 스마트폰에 가계부 앱을 다운 받아 그날그날의 지출 목록을 저장하고 사진을 첨부한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이와 같은 가계부 정리를 배웠는데 그 누군가가 바로 지난 5월호의 19살 뇌병변장애인 주원(가명)이다. 미숙 씨는 한때 주원이의 활동보조인이었다.

“주원이가 가르쳐 줬어요. 꽤 오래 했는데 주원이가 하는 걸 보고 다음 날부터 시작했어요. 아껴 쓰는 데 도움이 돼요. (앱의 기능을 기자에게 일러주며) 이렇게 현금이면 현금… 식비 천원을 넣고(기입하고)…….”

기자는 그렇게 미숙 씨로부터 가계부 정리를 사사했다. 그런데 통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미숙 씨도 그랬지만 주원이에게 ‘역시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5월호의 주원이 기사를 되짚어본다면 다들 어느 정도 동감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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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눠먹어야 맛있잖아요!”

“(바다 사진을 보며) 저기 봐요. 저기는 시커멓고 여기는 파랗고… 이건 피자 먹을 때 그 피클이에요. 이건 우리 꽃, 우리가 심은 고추랑 토마토랑 상추, 상추는 죽었어요. 이건 가죽공방에서 만든 거예요. 열쇠고리 같은 거… 이건 하늘에서(기내서 찍은 창밖)… 주원이가 찍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냥 찍었어요.”

미숙 씨는 그 뒤로도 한참동안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영수증 외에도 그녀가 처음 접한 바다와 기내에서 바라 본 하늘, 그녀와 남자친구가 심고 가꾸는 꽃과 식물 모종들, 그리고 자조모임 등에서 만든 가죽제품과 비누 만들기 등의 추억들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녀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활동 중에 하나는 봉사자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독거 장애인에게 음식을 배달하는 일이다. “화요일마다 음식 해서 나누는데 함께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이모들이 음식 만들면 저는 도와주고 그렇게 혼자계신 장애인 분들 나눠주는 거예요. 민철(가명. 7월호 주인공)아저씨랑 정수(가명. 3월호 주인공) 아저씨랑 저희 집에서 가까워서 제가 배달하고요. 나눠먹어야 맛있잖아요!”

 

“그거 신청해야죠. 아동수당!”

그날 기자는 인터뷰 후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미숙 씨와 동행했다. 실은 미숙 씨가 남자친구와 마트에서 장을 보기로 해서 따라나선 셈이었다. 음료수를 사들고 돌아왔을 때 기자의 눈에 어느새 립스틱으로 붉게 물든 미숙 씨의 입술이 포착됐다. 급하게 칠했는지 매무새가 조금 고르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웃으며 남자친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화제가 청약이었을 때 그녀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어요. (아기) 안 생기면 우리 둘이 사는 거고 언제 생기면 가져야죠. 아기 갖게 되면 좋잖아요. 그래도 다 무섭긴 해요. 낳는 것도 그렇고 키우는 것도 그렇고.”

그리고 “그러려면 아껴 쓰셔야겠어요.”라는 기자의 노파심으로 그녀가 “그거 신청해야죠. 아동수당!”이라고 했던 당찬 대답도 말이다.

기자에게 인생의 첫 바다에 대한 기억은 없다. 다만 경이로운 바다는 때론 막역한 친구처럼 따스했고, 마냥 설레지만 익숙함도 있었다. 바다가 끌어오는 다양한 감정과 추억. 그렇게 미숙 씨도 저 먼 제주에서 첫 테이핑을 끊었다.

작성자글. 김은정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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