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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풍경은 만남과 사랑입니다

소수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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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는 아주 소소한 일상이 시청각장애인에게는 매우 특별할 수 있습니다. 대중교통을 타고, 미용실에서 예쁘게 머리를 자르고, 카페에서 차 한 잔을 주문하는 것조차도 말입니다. 누군가가 반드시 도와줘야 할 수도 있고, 설령 혼자 해도 비시청각장애인에 비해 몇 배의 시간과 힘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만한 시간과 힘을 투자해 한 번씩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바로 ‘카페풍경’입니다.

 

풍경으로 가는 길

‘카페풍경’은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카페 겸 식당인데요. 집에서 차로 30분 안에 갈 수 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제게는 그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저는 트라우마가 있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선호합니다. 그런데 ‘카페풍경’으로 가려면 어쩔 수 없이 지하철도 타야 합니다.

집을 나서면 먼저 버스를 탑니다.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몇 걸음 떨어진 어중간한 위치에서 버스를 기다립니다. 버스 정면에 적힌 번호를 정확히 보지 못해서 버스 옆면에 크게 쓰인 번호를 보고 버스를 탑니다. 사실 제 원룸에서 더 가까운 버스 정류장이 있지만 그곳은 사람이 많지 않아 버스를 타기 쉽지 않습니다. 혼자 정류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으니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버스 기사분들이 그냥 가버리거든요.

버스를 타면 25~30분 정도를 가는데요. 안내 방송은 못 듣고 안내 문구는 가까이에서 볼 수 없어서 어떻게 하차할 정류장을 정확히 구분할지 많이 고민됐습니다. 버스로 몇 번씩 그쪽 주변을 왕복하면서 그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위에 구름다리가 있는 지점을 지나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구름다리를 한 번만 지난다면 헷갈릴 수도 있는데, 정말 다행히 그 구름다리가 3~5초 간격으로 두 번 나옵니다. 창문 밖을 집중해서 보다가 구름다리 밑을 두 번 지나면 벨을 누르고 안전하게 내리곤 합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제가 가장 꺼리는 지하철 개찰구 통과 미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우대권을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개찰구 입구 양쪽에서 또 뭔가 튀어나와서 저의 진로를 가로막으면 어떡하지? 트라우마의 좋지 않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역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되지만, 개찰구를 통과하는 순간은 찰나인 만큼 가능한 한 혼자 해내고 싶었습니다.

한번은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개찰구를 바로 통과하지 않고 옆에서 사람들이 교통카드(또는 보통권)를 찍고 통과하는 모습을 관찰한 적이 있습니다. 개찰구가 5~6개 정도 있는데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특별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개찰구는 사람들이 지나가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교통카드를 정상적으로 찍고 있기 때문에), 가장 구석에 있는 한 개찰구만은 입구가 막혀 있다가 카드를 찍으면 열렸습니다. 그 구석 개찰구의 입구가 막히고 열리는 것만큼은 저의 시력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뒤부터는 항상 그 개찰구로 가서 우대권을 찍었습니다. 그럼 막혀있던 부분이 열리고 저는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걸음으로 개찰구를 통과해서 지하철을 탑니다. 지하철을 내려서 개찰구 밖으로 나올 때는 우대권을 개찰구의 어느 특정 부분에 있는 동전 주입구 같은 곳에 넣으면 되기에 큰 어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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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사랑이 있는 곳, ‘카페풍경’

지하철역에서 나오면 또 20분 정도 걸어야 비로소 도착하는 ‘카페풍경’. 이렇게 멀리 가지 않아도 맛집과 카페는 제가 사는 곳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왜 굳이 이곳까지 오려고 하는 걸까요? 왜냐하면 ‘카페풍경’은 ‘만남’과 ‘사랑’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이곳에서 늘 정이 있는 따뜻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고, 아낌없이 베푸는 ‘사랑’을 가득 받았습니다.

‘카페풍경’은 올해 지인의 소개로 처음 방문했습니다.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곳을 운영하는 조성태 대표님과 구수한 수다를 나누다 그만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맛있는 식사와 차 한 잔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조성태 대표님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카페풍경’에 들어가면 저시력이라 대표님이 어디에 있는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디에다 인사할지 몰라 주방을 향해 어정쩡하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안 대표님은 제가 들어서는걸 보면 하던 일을 멈추고 제게 달려와서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것처럼 반갑게 저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인사해 줍니다.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풍경매콤돈가스’입니다. 살짝 매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이 녀석이 저는 정말 맛있더라고요. ‘카페풍경’의 모든 메뉴를 다먹어보겠다는 버킷리스트를 만들어놓았으면서도, 정작 ‘카페풍경’에 가면 저도 모르게 돈가스를 계속 찾습니다. 하도 여기 돈가스를 좋아하니까 한번은 대표님께서 ‘관찬 전용’이라면서 아주 큰 놈으로 해서 ‘특’풍경매콤돈가스를 만들어주셨습니다.

평소에도 ‘혼밥’을 곧잘 하는 저이기에 요즘은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밥 먹으러 갈 곳 1순위는 항상 ‘카페풍경’입니다. 이곳에 오기 위해서 대중교통, 특히 지하철을 혼자 타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지하철에 대한 트라우마가 조금씩 줄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젠 혼자서도 지하철을 타고 더 멀리까지 충분히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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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그저 다른 겁니다

‘카페풍경’에는 발달장애가 있는 직원이 한 분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소개가 무색할 만큼 대표님의 ‘장애’에 대한 편견 없는 마인드는 참 많은 것을 배우게 합니다. ‘발달장애인 직원’보다는 ‘카페풍경 직원’으로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함께 일합니다. 물론 조금 서툴고 실수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잘못된 점을 가르쳐주고 반복하면서 조금씩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일하는 시간과 휴식 시간을 지키고, 식사할 때 혼자 먹지 말고 직원들과 함께 먹는 등 ‘카페풍경’에서 직원으로 일하면서 사회성을 배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대표님이 참 멋진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대표님은 제가 가진 시청각장애도 잘 이해하시겠죠? 특히 지난여름, ‘카페풍경’의 거제, 전주, 강화로 이어지는 여름휴가 때 저를 초대해주셨습니다. 아무리 단골이라지만 엄연한 가족휴가에 선뜻 초대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그 초대에 대한 감사함보다, 휴가를 함께 보내며 ‘카페풍경’의 사장이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서 조성태 대표님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며 더욱 큰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저를 휴가에 초대한 것에 그치지 않고, 휴가를 함께하는 구성원으로서 소외되지 않도록 저에게 필요한 통역이나 지원을 잊지 않았습니다. 4박 5일의 휴가 기간 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늘 저의 손바닥에 에너지 넘치는 필력으로 “굿모닝!”이라고 적어서 아침인사를 해주십니다. ‘굿모닝’이라는 글자에 느낌표(!)까지 잊지 않으셨죠. 그리고 그날의 일정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런 아침인사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감동을 넘어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휴가 마지막 날 밤에는 남자 대 남자로서 진지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는 물론 요즘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했습니다. 당연히 대표님은 인생 선배로서 애정과 진심이 담긴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지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 그 장애를 이해하고, 방법을 찾아 소통하고 함께하려는 열린 마음을 가진 조성태 대표님. 대표님 덕분에 뜻하지 않게 좋은 만남을 하고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평생 기억에 남을 휴가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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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결의”

하루는 제가 ‘카페풍경’에서 식사 후 조성태 대표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노트북에 대표님이 하고 싶은 말씀을 타이핑하면 제가 그 글을 읽고 대답하는 방법으로 대화합니다. 그날 대표님이 “남자끼리는 원래 형제를 하는 거야”라고 적으셨는데, 그 글을 읽고 저는 감격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표님께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악수했답니다. 그때부터 대표님과 저는 ‘풍경결의’라는 이름으로 의형제를 맺고 ‘형님 동생’하면서 지내게 됐습니다.

의형제를 맺으니 한결 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굳건해진 것 같아서 너무 든든합니다. 제가 시청각장애로 정보접근에 어려움이 있어서 음식이나 커피 등 차의 종류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 있거든요. 페이스북 등 SNS에서 그런 저의 부족함(?)이 드러나면 성태 형님은 그걸 꼭 기억해둡니다. 그래서 다음에 제가 ‘카페풍경’을 방문하면 잊지 않고 그 음식이나 차를 대접합니다. 심지어 그 음식이나 차가 ‘카페풍경’의 정식 메뉴가 아님에도 말입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또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형님은 그저 사람살이하는 것일 뿐이라고, 우린 다 식구니까 당연한 거라고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도 장애인 당사자이고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를 하고 있지만 성태 형님만큼의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 형님과 함께하면서 배우는 것, 느끼는 것이 참 많습니다. 앞으로 사회를 살아가면서 저는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고민이 있을 때 어떻게 비교형량을 해야 할지 등, ‘사람살이’를 배워갑니다. 아직은 장애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성태 형님과 같은 분이 많이 활동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장애인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어떤 사회적 약자도 소외되지 않고 함께하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정말이지 저는 너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사람 좋은 함박웃음을 가졌고,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는 조성태 대표님과 의형제를 맺고 형님으로 모시게 됐으니까요. 이젠 ‘카페풍경’에 가면 형님이 남자끼리 징그러운 줄도 모르고 저를 꽉 안아주고 식사 후집에 갈 때는 처음보다 더욱 꽉 안아줍니다. 요즘은 주문해서 나온 돈가스를 하트 모양으로 디자인해서 내오기도 하고, 기사나 원고 쓸 때 힘내라고 드립백 커피도 챙겨줍니다.

형님에게 받은 관심과 사랑, 가슴 깊이 간직하고 저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다짐을 해보면서 성태 형님과 ‘카페풍경’ 가족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이 글을 통해 전합니다.

작성자글. 박관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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