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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위기거주홈 2년, 여정을 마치며

위기거주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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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다른 삶의 모습

대한민국 의무교육제도 아래 똑같이 공부를 했던 친구들을 어른이 되어서 만났을 때, 서로의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놀랐던 적이 있었다. 우리 중 제일 철이 없어 내가 보기엔 절대 결혼 못 할 것 같았던 친구는 의외로 일찍 장가들어 ‘딸바보’가 되어 있고, 미대입시를 준비하던 친구가 어느 날 뭔가 깨달은 계기가 있어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 부사관으로 군에 입대해 직업군인의 길을 걷고 있는 등. 각자의 삶의 모습이 다르다.

위기거주홈을 거쳐 간 사람들 역시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 주간에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주간에 보호작업장에 다니시는 분도 있고, 일은 하시지 않고 수급비로 생활하시며 인근 지역에 있는 장애인 복지관 프로그램을 이용하시는 분도 있다.

거주하시는 곳도 다 다르다. 대부분 다 갖추어진 풀 옵션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시는 분, 비교적 넓은 빌라에 입주하여 공동생활 하시는 분, 본인 의사로 옥탑방에서 생활하시며 하나하나 채워 나가시는 분,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고시원에서 임시로 생활하시다가 좀 더 생활여건이 나은 거주지로 옮겨가신 분도 있다. 비록 개개인의 삶이 다를지라도 공통점이 있다면 이 분들은 자신 각자 원했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근무자의 시선으로 본 아쉬운 점

인원 대비 넓은 평수의 집에서 오는 안락함과 안정감, 대인관계를 향상 시킬 수 있는 공동생활 등. 처음 위기거주홈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위기거주홈을 정리할 때쯤에서야 드는 아쉬운 점들도 있다.

⑴ 위기거주홈 자체 소유공간의 부재

위기거주홈은 집주인의 허락 없이 함부로 좁은 화장실이나 냉, 난방 설비 등 여러 가지를 임의로 개조할 수 없다. 그래서 특히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겨우 할 수 있었던 것은 휠체어가 현관으로 좀 더 진입하기 쉽도록, 판자를 엮어서 임시로 얼기설기 만든 경사로를 놓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반 가정집의 형태의 쉼터는 중증 지체장애인이 사용하기에는 조금 어렵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장애의 유형, 등록여부를 막론하고 모두 입소 가능하다는 취지는 참 좋았으나, 오히려 몇몇 분들의 생활을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아 좀 머쓱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⑵ 공동생활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위기거주홈은 거실과 주방을 공유하는 공동거주의 형태로 운영되었으며, 당사자들에게는 2인 1실이 제공되었다. 2인 1실 제공으로 인한 문제점들 역시 존재하는데, 당사자 간 사생활 침해나 금품을 절도하거나 도둑맞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또한 어떤 분은 본인이 해야 할 가사 일들을 스스로 해내는 반면 어떤 분은 다른 분에게 본인의 가사 일을 죄다 떠넘기거나 하는 분도 있었으며, 때로는 잘 하시는 분이 다른 분의 가사 일을 대신 해주는 등 개인 자립의 취지가 무색하게 당사자 상호 간 의존과 같은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 외에도 TV채널 독점 문제, 소음 문제, 냉장고 공간 공유로 인한 간식다툼 문제 등의 일들로 큰 갈등이나 소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들은 위기거주홈 생활이 아닌 퇴소 후 각자 개별생활을 하면서 해결되었다. 처음부터 큰 공간을 하나 얻어서 나눠 쓰기보다는 작은 개인공간과 개인조리가 가능한 개별공간을 배정하는 게 당사자들의 개별 만족도 측면에서도 좀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⑶ 긴급입소자와 자립생활훈련 당사자는 분리되어야 한다

공동생활 이야기가 나와서 첨언하자면 올해는 당사자 본인이 동의하지 않은 입소가 몇 건 있었다. 설사 현장 분리 단계에서 동의를 하였다고 해도 여관에서 자고 싶다거나 하는 식으로 마음이 바뀌어 퇴소를 요청하는 분들이 고함을 치거나, 과격한 행동을 보여 기존 인원들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경우가 있었다. 전자와 후자 모두의 안정을 위해서는 긴급입소와 자립생활 훈련하는 물리적 공간과 인원이 같은 공간에 있기 보다는 어느 정도는 안정될 때까지 따로 지내셔야 할 거 같다.

⑷ 소진이 빠른 근무 환경

두 번에 걸쳐 10명이나 되는 근무자들이 과도한 업무의 부담으로 위기거주홈 퇴직 의사를 밝히고 복지현장을 떠나거나 타 기관으로 이직하였다. 업무에 있어서도 긴급입소자 피해사례 긴급지원, 위기거주홈 내 당사자의 자립훈련, 퇴소한 당사자의 지역사회 정착지원과 같은 모든 일들을 한 사람이 동시에 다 해결 할 수는 없었다. 2년 동안 근무한 나의 생각을 밝히자면 위기거주홈에 너무나 많은 기능이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이며 추후 이와 같은 형태의 지원체계가 다시 등장한다면 기능을 각각 분리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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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전하는 모두의 근황

고3이 된 키위(〈함께걸음〉 2018년 10월호 ‘위기거주홈 이야기’ 등장인물)는 얼마 전 보치아 대회에서 은메달을 손에 넣었다고 흥분해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입문 1년 만에 이뤄낸 값진 성과다. 얼마 전 키위는 본인이 자립한 자립주택에서 근무자들을 초대하여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세상에 내가 저녁을 차려주기만 했었는데 내가 역으로 저녁을 얻어먹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자립생활보다는 단기생활시설에서 잠시 생활하시고 계신 △ 씨. 이분은 하루에 한 번씩 나를 비롯한 근무자들에게 전화를 건다. 그것도 본인 기상시간인 6시에 맞춰서! 언젠가 본인이 있는 지역으로 오면 ‘고기’를 사주겠다고 하시는데 무슨 고기라고 말씀을 안 하셔서 나는 잘 모르겠다.

연세가 많은 두 분은 개인 주택을 얻어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인근 복지관 이용자들은 이분들을 ‘오빠’라고 부른다. ‘오빠’소리 들을 때마다 이분 얼굴은 빨개지지만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나도 불러드릴걸 그랬나.) 유일한 여성분이었던 □ 씨는 본인이 원하는 좀 더 넓은 주택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원하는 걸 얻는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항상 무기력하게 방에만 계시던 △ 씨는 혼자 살게 되자 오히려 최근 활동량이 크게 늘었다. 여러 가지 음식도 사서 드시고 지출도 꾸준히 하시는 걸로 봐서는 희망이 있다. 오히려 가사와 같은 일상생활 수행은 더 좋아졌다. 직업만 구하게 되신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잦은 음주로 걱정을 끼치던 ◇ 씨는 최근 자립체험주택에 들어가 홀로 생활하며 금주를 실천하는 등 몰라보게 달라져 생활한다. 거기 여자 선생님이 좋긴 좋은가보다.

우리집 인근 그룹홈에 사는 ○ 씨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나와 고기를 먹자고 한다. “거 그룹홈 사람들하고 고기 먹으면 어디 큰일납니까?”라고 했는데, 됐고 무조건 나랑 먹어야 된다고 한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 씨와 삼겹살집에서 보낼 거 같다.

몇몇 분들은 아직도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다. 위기거주홈 공간은 사라졌지만 12월에도 위기거주홈 근무자들은 전과 마찬가지로 동분서주하며 지내고 있다. 위기거주홈 근무자들은 이제 와서야 야간근무가 없어져 총 인원이 한자리에 모여 회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이 바쁘고 때로는 돌발 상황이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같은 자리에서 한 번도 그런 자리를 갖지 못했었는데 지난 11월에 와서야 그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정말 끝났다.

위기거주홈 근무자와 당사자 모두 함께한 노력이 없었다면 여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위기거주홈 이야기를 마쳐야 할 것 같다.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작성자글과 사진. 장명훈/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간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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