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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학교로부터 첫 강의 의뢰

지난 1월 초,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부산 모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번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강의 주제는 ‘이야기가 있는 음악여행’으로, 제가 첼로를 배우게 된 과정과 왜 첼로를 좋아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첼로 연주도 해달라는 겁니다.

강의를 수락한 뒤 방문할 학교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면서 그곳이 특수학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겁이 덜컥 났습니다. 발달장애학생이 많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발달장애학생들과 소통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거든요.

저의 이야기를 어떻게 발달장애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할 수 있을지, 발달장애학생들과 어떻게 소통을 할지, 학생들의 반응에 대해 제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등 고민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못하겠다고 할까? 내가 이런 주제로 강의하기에 충분히 준비가 되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정말 많은 고민과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첼로 선생님과 주변의 많은 분들로부터 조언을 구하며 조금씩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강사로 활동하다보면 이런 내용의 강의를 할 기회가 앞으로 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강의를 통해 스스로를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는 포인트로 삼고자 마음먹고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음악여행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강의를 갔던 1월 말의 부산이 놀라우리만큼 참 따뜻했는데, 강의를 하는 내내 제 마음도 따뜻해짐을 선명하게 느꼈거든요.

발달장애가 있어서 소통이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건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그러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시청각장애라고 하면 전혀 보지도 전혀 듣지도 못하는 유형으로 생각하는 편견을 가진 것처럼 말입니다.

강의에서 발달장애학생들 몇몇이 앞으로 나와 하고 싶은 말이나 자기 이름을 저의 손에 적어주면서 저와 ‘직접’ 소통을 했습니다. 특히 강의 중간에 제가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나오는 학생이 있었는데요, 그 학생은 제 손에 하고 싶은 말을 쓰기 전에 꼭 자기 이름을 먼저 적었습니다. 자신이 누구라는 걸 먼저 저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제가 눈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누구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 수도 있고, 말할 때 본인의 이름부터 말하는 습관일 수도 있습니다. 어디에 해당되든 그 학생이 그렇게 해준 덕분에 저도 그 학생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학생이 세 번째로 앞으로 나왔을 때는 제가 먼저 “OO 학생”이라고 부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해본 강의와 다른 내용이었기 때문에 시작을 하면서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평소 강의를 잘 하겠다고 마음먹던 때와는 달리, 이번 강의에서는 제가 강의를 잘 하는 것보다 학생들에게 강의를 통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했습니다. 강의가 ‘교육’이라기보다 주제처럼 ‘이야기’가 있는 내용이어야 하니까요.

제가 가진 장애에 대한 이야기, 헬렌 켈러 이야기, 손바닥 필담을 통해 대화하는 방법, 우연히 본 영화를 통해 첼로를 배우고 싶었던 이야기, 첼로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과 첼로를 배우면서 겪었던 에피소드, 첼로라는 악기에 대한 소개 등 하나씩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습니다.

제가 강의를 하면서 가장 궁금해 하면서도 안타까워하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저의 강의를 듣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나 분위기를 제가 다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집중해서 제 강의를 듣고 있다는 걸 제대로 볼 수 있다면 그 사람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저도 더욱 열정적으로 강의를 할 수 있을 텐데, 누가 졸고 있는지, 누가 다른 곳을 보고 있는지 등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강의에서만큼은 피부로 와 닿는, 저의 느낌으로 알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와의 소통방법으로 손바닥 필담을 알려주고 직접 해보기 위해 앞으로 나온 학생은 물론, 강의를 진행하며 중간 중간 학생들 앞으로 다가가면 보이는 초롱초롱한 눈망울, 얼마나 순수하고 선한 눈빛인지 그 정도는 저도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첼로 연주로 들려준 곡은 ‘어머님 은혜’, ‘오버 더 레인보우’,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마법의 성’입니다. 모든 곡에 스토리를 담아 소개를 하고, 그 곡의 연주가 끝난 뒤에는 학생들과 소통을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선곡한 곡들이 학생들도 대부분 아는 곡이라 너무 기뻤습니다.

강의 마지막에는 저의 첼로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 중 제가 좌우명처럼 여기며 가장 좋아하는 말을 전했습니다.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불가능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지 말고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도전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주어진 인생을 즐겁게, 열정적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강의를 마무리한 후 학생들 한명 한명과 악수를 나누고 강의에 대한 소감을 듣는데 제가 다 뭉클해집니다. 저의 눈을 마주보면서 강의가 좋았다고 손에 적어주는 학생의 그 한 마디가, 지금까지 제 강의에 대해 좋은 말씀이나 평가를 해주셨던 그 누구보다도 짠하게 와 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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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억으로 담고 싶은 강의

이번 강의는 여러모로 저에게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부산으로 강의를 간 것도 처음이고 특수학교로 강의를 간 것도 처음입니다. ‘처음’이라는 타이틀을 붙일 정도로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까지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번 강의는 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우선 강의를 준비하면서 연락을 주고받은 학교의 특수교사 분은, 지금까지 제가 강의 건으로 연락해본 담당자 중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강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써주셨습니다. 첼로를 연주할 때 필요한 의자의 종류는 물론, 어떤 커피를 마시는지 등 세심하게 챙겨주신 덕분에 정말 편한 마음으로 강의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일전에 장애인식개선 교육 강의를 소개받은 모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담당자가 제가 시청각장애가 있다고 하자 돌연 강의를 취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담당자도 장애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면서도 시청각장애에 대해 잘 몰랐던 만큼 제가 강의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할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아직도 그 담당자로부터 사과는커녕 일방적 강의 취소에 대해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는데, 그런 면에서 이곳 학교 담당자는 제가 가진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먼저 손바닥 필담을 시도하는 등 적극적인 마인드가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저의 첼로 연주입니다. 역시 제가 직접 소리를 듣지 못하니 진동으로만 느끼는 것으로 만족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활로 첼로의 줄을 그을 때 진동으로 전달되는 첼로의 소리가 풍성하면 좋을 텐데, 저는 아직 한 번씩 떨리는 소리가 납니다. 어쩌다 다른 줄을 건드리기도 하고, 다른 음정을 짚기도 합니다.

예전에 저의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연주하는 첼로의 울림이 떨리는데 그 떨림에 저의 굴곡진 인생이 그대로 담긴 것 같다고요. 물론 다른 연주자처럼 풍부한 소리를 내며 연주를 잘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렇게 소리를 내는 것도 듣는 사람에게는 또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나봅니다. 그래서 첼로에 저의 이야기가 담길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가 있는 음악여행’이 완성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번에 부산에서 만난 아이들이 부산의 따뜻한 날씨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푸른 새싹으로 성장하길 소망해봅니다.

작성자글과 사진. 박관찬/시청각장애인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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