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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영화관람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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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16일 '시,청각장애인의 영화관람 차별행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사진제공. 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기자가 예전에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007 시리즈’ 영화를 보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영영칠 정말 재미있네요.” 라고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상대방은 “영영칠이 아니라 공공칠입니다.” 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맞습니다. ‘007’을 ‘공공칠’이라고 읽죠. 하지만 청각장애인은 영화 자막으로 나오는 ‘007’을 보고 사람들이 뭐라고 읽는지를 정확하게 듣지 못합니다. 덧붙이자면, 기자는 ‘VIP고객’에서의 영어단어도 한동안 ‘브이아이피’가 아닌 ‘빕’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번듯하게 문자로 나와 있는 내용임에도 잘못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러한 문자조차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외국영화에는 한글자막을 통해 무슨 대사가 오가는지 보여주듯이, 한국영화는 청각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한글자막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한글자막이 없는 한국영화를 청각장애인이 관람하게 하는 것은, 비장애인이 한글자막이 없는 외국영화를 관람하는 답답한 상황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지난 2017년 제기된 ‘영화관 영화자막 미제공에 따른 청각장애인 편의제공 소홀’ 진정사건에 대하여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인권위는 기각 사유에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 제5항은 편의제공 의무가 있는 자를 ‘영화, 비디오물 등 영상물의 제작업자 및 배급업자’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관 사업자는 편의제공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장애인에 대한 편의제공 의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며, 영화관 사업자에게는 의무가 없으므로 차별행위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제15조에 따르면, 300석 이상 규모의 영화상영관을 운영하는 사업자는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화관 사업자의 장애인에 대한 편의제공 의무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권위가 잘못된 법조항의 적용으로 기각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이 기각 결정으로, 영화관 사업자들은 장애인이 영화관람에 필요한 편의 미제공이 차별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게 됐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5조(재화·용역에서의 차별금지)에 의하면, 서비스 제공자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에게 제공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동등한 편리를 가져다주는 서비스 및 편의를 제공해야 합니다. 즉 청각장애인은 한글자막을, 시각장애인은 화면해설의 편의제공을 통해 시·청각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여가활동으로서 영화를 관람할 권리가 있습니다.

위와 같이 시·청각장애인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의제공처럼,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어 편리하게 하자는 것이 바로 ‘배리어프리(barrier free)’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배리어프리 버전, 즉 화면해설이나 한글자막으로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곳은 전국 영화관의 0.02%밖에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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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16일 '시,청각장애인의 영화관람 차별행위'에 대해 당사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사진제공. 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비장애인은 관람하고 싶은 영화를 검색해 상영시간표를 확인한 후, 자신의 여건에 맞는 상영시간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반면 배리어프리 버전의 영화가 극소수인 현실에서, 장애인이 영화를 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한없이 좁습니다. 비장애인이 ‘기생충’을 보고 우리 현실에 공감하고, ‘봉오동 전투’를 보며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며 의미를 새기듯이, 장애인도 그와 같은 느낌을 영화를 통해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이렇게 비장애인이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장애인이 실질적으로 동등하게 받지 못한다면 장애인에 대한 차별에 해당합니다.

한편 지난 7월 16일에는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영화관람 차별행위로 다시 한번 인권위에 진정서가 제출됐습니다. 2017년에는 청각장애인이 진정인이었다면, 이번에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진정인입니다.

배리어프리 버전이 없는 영화가 이미 상영중인 시점에서는, 장애인이 편의제공을 요청하더라도 당장 영화를 볼 권리를 실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배리어프리 버전, 즉 화면해설이나 한글자막을 제작하는 데에 일정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영화를 제작하는 초기 단계부터 배리어프리 버전을 고려하여 제작하면 좋지 않을까요? 영화에는 감독과 배우, 작가, 연출과 조명, 음악 등 중요한 요소들이 있는데, 그러한 요소들 중에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도 함께 추가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러한 문제(인권위에 진정)가 발생하는 경우를 줄일 수 있고, 장애인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충분히 개선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국민 4명 중 1명이 보며 대한민국 사회에 뜨거운 분노를 일으켰던 영화 ‘도가니’, 청각장애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임에도 정작 청각장애인은 자막이 제공되지 않아 제대로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영화 ‘도가니’에서는 수어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그 수어가 무슨 뜻인지 한글자막이 나옵니다. 만약, 수어가 나오는 장면에서 한글자막이 없다면 수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영화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바로 한글자막이 제공되지 않아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청각장애인과 같은 상황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비장애인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큽니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데,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동정하고 측은하게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고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인식, 배리어프리를 통해 장애인이 편하면 비장애인도 편하다는 인식이 정말 필요합니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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