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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외모는 장애의 경계? 애매한 장애인

왜소증 아리 씨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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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저는 애매한 장애인이죠.”

왜소증이 있는 아리 씨는 인터뷰를 하던 중 멋쩍은 듯 웃으면서 말했다. 왜소증은 절단장애인이나 뇌병변장애인과 다르게 신체적 손상이 눈에 보이진 않는다. 비장애인과 외형적으로 달라 보이지 않아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곤 한다고 했다.

“전 키가 작고 남들과 외모가 다르잖아요. 키가 작을 뿐이라고 해도 다른 비장애인과 일 하면 어쨌든 저는 장애인이잖아요. 그런데 장애인들과 있으면 저보고 비장애인이라고 해요. 그래서 전 ‘애매한 장애인’이라고 말해요.”

왜소증은 <장애인복지법>의 지체장애인 중 ‘신체변형 등에 의한 장애’로 분류된다. 왜소증(저신장증)은 “성장이 멈춘 20세 이상의 남성으로서 신장이 145센티미터 이하인 사람(다만, 왜소증의 증상이 뚜렷한 경우는 18세 이상에서 적용 가능), 성장이 멈춘 18세 이상의 여성으로서 신장이 140센티미터 이하인 사람”이라고 규정돼 있다.

이러한 정의는 장애의 경계를 묻게 만든다. 얼마나 임의적인 기준인가. 누군가의 키가 141cm 또는 142cm 라면 장애인이 아닌가? 결국 장애란 사회가 표준이라고 정한 기준에 몸을 끼워 맞춰 평가하며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갑작스런 자립,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하다

아리 씨는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상담가로 활동한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 20년간 살다 2009년 시설에서 나왔다.

“늘 (시설에서) 나가고 싶긴 했는데 나갈 용기가 없었어요. TV를 보면 비장애인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나도 저렇게 여기(장애인거주시설) 말고 저렇게 살고 싶다. 어렸을 때 제일 무서운 게 밤이었어요. 시설에서는 잠이 안와도 다른 사람도 자야 하니까 누워요. 누워서 천장을 보며 생각하는 거죠.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내가 할머니가 되도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런 그녀가 자립을 결정한 것은 한 순간이었다. 시설에서 가장 마음으로 의지하던 친구가 자립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자립을 결정했다. 그 친구가 같이 나가자고 권유한 것도 아니었으나 그 친구가 없는 시설에 더 살 이유가 없었다.

“마음을 기대던 친구가 포항으로 자립하러 간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어떻게든 나가려고 알아봤어요. 인터넷을 검색해보니까 부산장애인자립센터연합회에서 운영하는 체험홈이 있는 거예요. 거기서 2년 가까이 살았어요. 그러다가 경산에 있는 친구 집에 얹혀살았죠. 시설에 있던 친구들 중에 자립한 친구들이 좀 있었거든요.”

시설에서 나오면 비장애인들처럼 일도 하고 돈도 벌고 멋지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실망했다. 타지인데다 시설과 달리 사람이 별로 없는 체험홈은 낯가림이 심한 그녀에게 외로움을 줬다. 자립해도 결국 하나하나 직접 움직여야 얻을 수 있었다. 장애인인 그녀가 이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친구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아는 교수님이 디자인 일자리를 소개해줘서 포항에 6개월을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던 아리 씨는 디자이너가 꿈이었다. 교수님으로부터 포토샵이나 그래픽 등을 조금 배운 후, 거의 독학으로 디자인을 배웠다. 회사에 나갔으나 정식 직원으로서 급여를 받지 않고 활동비를 조금 받는 정도였다. 처음에는 비장애인들 무리에 섞여서 일한다는 사실 자체에 건 기대가 컸다.

“장애인들끼리 있으면 무능한 사람이고 비장애인 무리에 들어가야 내가 인정받는 것 같았어요. 비장애인하고 같이 있어야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20년의 시설 생활은 비장애인과 관계 맺는 데 어려움을 줬다. 시설에서 비장애인은 모두 선생님이었고, 그들과 나눈 대화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뿐이었다. 통제와 명령 식의 관계 맺기는 사회에 나와서도 그녀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게다가 업무에 대한 경험이나 교육도 없었으니, 실무적으로 인정받기도 어려웠다.

 

가여웠어요

아리 씨가 장애인거주시설에 입소한 것은 갓난아기 때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생일을 알고 싶어 기록를 찾아보고서야 알게 됐다. 선생님들이 자기 생일을 챙기면서 장애인들의 생일은 챙기지 않아, “나도 내 생일이 있을 텐데 언제지?” 하는 생각에 가정환경카드를 몰래 봤다. 카드에는 생일과 이름, 시설에 맡겨진 경위와 사진이 있었다. 처음 본 자신의 아기 시절 모습이었다.

“자고 있는 아기 사진이었어요. 잘 자고 있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고... 가여웠어요. 애기가 말을 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부모에게) 다시 고민해보라고 말할 수 있었을 텐데....”

그녀는 그녀를 버린 건 정부라고 생각한다. 유전으로 알려진 왜소증이기에 아마 부모도 장애인이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장애인은 가난하기 쉽다. “가난한 부모님 입장에서 저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이어서 시설에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라고, 만약 국가가 제대로 된 장애인정책을 시행했다면 그녀도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다. 결국 국가가 그녀를 버린 것이라고 했다.

장애인 거주시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장애인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장애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 건 초등학교 때다. 키가 더 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매일 키를 쟀어요. 열 살 때까지 계속 키를 쟀는데 안 자라는 거예요. 그런데 TV에서 저랑 똑같은 외모가 있는 사람이 나오는 거예요. 아, 나도 저 사람이랑 같은 장애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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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밑이 저예요

아리 씨는 혼자인 삶을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계속 혼자였잖아요. 죽을 때도 혼자 죽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시설에서의 경험과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에 새로운 친구도 사귀기 어렵다. 연애경험도 없다. 그녀의 외모나 성격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좋아했던 남성은 다 비장애인을 좋아했다.

“장애인들도 키 크고 예쁘고 여성스럽고 말도 예쁘게 하고 다소곳한 사람을 좋아해요. 저는 장애특성상 키가 작고 머리가 크고 팔다리가 짧고 골반이나 엉덩이가 커요. 그것 때문에 어려서부터 엄청 놀림을 받았어요. 어렸을 때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좋아해서 그런 옷을 입으면 ‘이렇게 꾸민다고 네가 예뻐지냐’는 소리도 들었어요.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짱구에요. 만화에 나오는 짱구가 머리가 크잖아요. 시설에 있던 관리자가 제 머리가 커서 똑같이 닮았다며 짱구라고 많이 놀렸어요. 너무 싫었어요.”

그녀는 만약 자신이 남성장애인이었으면 옷을 어떻게 입든 지적받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여성장애인이기에 외모에 대한 평가를 더 많이 받는다. 외모 평가를 하는 건 비장애인만이 아니다.

“같은 장애인이라고 해도 비장애인처럼 생긴 사람을 더 좋아하더라구요. 저는 제일 밑이에요. 제일 위는 비장애인 중에 예쁜 사람. 그 다음에는 비장애인처럼 여성스런 장애인. 그 다음에 비장애인하고 비슷한 신체 비율을 가진 장애인. 예를 들어 뇌병변장애인 중에 경증장애인이랄까. 그중 제일 밑이 저인 거 같아요. 키도 작고 팔다리도 짧잖아요.”

 

정체성 그리고 차별

아리 씨가 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장애인들 내 존재하는 상대적 차별이다. 장애인이라고 다 같지는 않다.

“중증장애인이라서 더 힘들고 차별받았다는 말이 과연 맞을까요? 어떤 중증장애인들은 저에게 ‘네가 나보다 몸이 낫잖아’, 그러니까 ‘차별 경험이 없잖아’, ‘더 많이 힘들진 않잖아’ 그래요. 그런데 누가 더 차별받았냐는 다르잖아요. 환경에 따라, 가족이 있냐, 없냐에 따라 다르기도 하잖아요. 어떤 뇌병변장애인은 중증이지만 신체 비율이 좋아서 사람들이 더 좋아하기도 해요. 제 열등감일 수 있는데, 저는 3등신이잖아요. 그리고 시설에 있을 때나 최근이나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키가 작은 거 말고는 장애인이 아니야’ 예요. 그 말이 싫어요.”

이러한 경험은 그녀를 “난 어떤 사람이지?” 라는 물음에 빠지게 했다.

“사회 자체가 장애인·비장애인 구분이 없었으면, 저도 평범하게 낙인 없이 똑같이 살았을 거예요. 그런 구분 때문에 제 정체성이 헷갈릴 때가 많아요.”

그녀가 말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이 없는 사회란, 차별 자체가 없는, 누구나 동등하게 존중받는 사회일 것이다. 그녀의 바람이 이뤄지려면 장애인 차별만이 아니라 외모에 대한 차별, 여성에 대한 차별도 사라져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해본다. ‘애매한 장애인’을 만드는 여러 기준에 맞서는 몸에 대해, 주류가 정한 기준을 흔들 수 있는 우리의 실천은 무엇일까. 몸의 수행능력(기능)을 중심으로 한 의학적이고 생산 중심적인 장애에 대한 기준만이 몸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몸이 자본이 되는 외모지상주의는 몸을 사물화하고 몸에 대한 통제를 문화적으로 공고하게 만든다.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심미적 차별을 없애고 장애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면 사회구조와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미적 기준을 수평화하고 다양화하기 위한 개개인의 인식 전환과 실천도 필요하지 않을까.

 
작성자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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