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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누구를 위한 편의시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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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공정아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지난 2018년 5월부터 12월까지 8개월동안 전국의 약 19만여 개의 시설물을 대상으로 장애인 편의시설을 조사한 바 있다. 복지부의 <2018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 발표에 따르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율은 80.2%, 적정설치율(설치된 편의시설 중 법적 기준에 맞게 적정하게 설치된 비율)은 74.8%로 각각 나타났다. 이 비율은 편의시설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1998년에 비해 약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난 수치라고 복지부는 밝혔다.

수치상의 비율로만 따진다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는 복지부의 발표처럼 예전보다 많이 발전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 편의시설’이라는 이름으로 형식적인 틀만 갖추고 있을 뿐, 그 본연의 기능은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그렇지 않다면 편의시설을 이용하면서 불편함을 겪는 장애인들의 불만과 하소연이 요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자주 언급될 리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화장실에 들어가는가

작년, 기자가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예방 모니터링단으로 활동하며 한 고속도로 휴게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휴게소는 백화점에 온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내부가 화려하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각 층 별로 에스컬레이터가 운행되고, 화장실도 기자의 감탄을 이끌어낼 정도로 깨끗하게 돼있었다.

그런데 휴게소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장애인 화상실 입구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화장실 입구 한쪽에 점자표시를 해두었는데, 화장실 출입문(자동문)을 열기 위한 버튼은 출입문 건너편에 붙어 있었다.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라면 점자로 된 표시 근처에 출입문을 여는 버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점자표시 근처도 아니고 출입문을 지나 건너편에 있으니, 시각장애인이 혼자서 버튼을 누르고 화장실로 진입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장애인 화장실’이지만 정작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의 눈에 예쁘게 보이도록, 즉 ‘시각적 효과’에 더 초점을 두고 디자인 된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출입문의 한쪽에 점자표시와 출입문을 여는 버튼이 위아래로 있는 것보다, 출입문의 양쪽에 각각 어떤 디자인이 있는 것이 더 보기 좋을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시설은 사람들의 눈에 예쁘게 보이기 위한 목적이 아닌, 장애인이 이용하기 위한 편의시설이다.

휴게소 직원에게 문제점을 지적하자, 전혀 몰랐다면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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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서울에 있는 어느 건물의 장애인 화장실은 내부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은 화장실에서 변기를 이용하려면 변기 양 옆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안전바’다. 그런데 덩그러니 변기만 있을 뿐, 변기 양옆으로 안전바 하나 장착되어 있지 않다. 휠체어에서 변기로 옮겨가고, 변기 위에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장애인을 생각해본다면, 안전바가 없는 변기는 결코 편의시설로서 장애인 화장실이라고 할 수 없다.

다른 장애인 화장실은 내부의 넓은 공간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변기가 한쪽 구석에 너무 치우쳐져 있다. 변기가 구석의 벽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장애인이 변기 위에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계속 벽에 몸을 부딪치며 이용에 불편을 겪게 된다.

장애인 화장실의 또다른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는, 남녀 화장실은 구분하면서 장애인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되어있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 화장실이 남녀 공용으로 하나만 있고, 그것을 남녀 구분없이 모든 장애인이 이용하게 된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게 될까. 이용하기 많이 부담스럽고 불편해질 것이다.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화장실은 남녀 구분을 하면서, 장애인이 이용하는 화장실은 남녀 구분을 따로 두지 않는 것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사회복지 관련해서 대표성이 있는 공공건물이 있다. 이 건물의 장애인화장실은 남녀공용일 뿐만 아니라 화장실 내부가 너무 좁아 아예 문을 열어놓고 볼일을 봐야할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이름뿐인 편의시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 지하철 역에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승강기다. 지하로 내려가고 지상으로 올라오기 위해 꼭 필요한 편의시설이다. 보행이 가능한 사람은 예스컬레이터가 고장나면 계단을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승강기가 고장나면 어떻게 지하철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까?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했는데 목적지 역의 승강기가 고장이라서 지상으로 올라갈 수가 없다. 그럼 다시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의 이전 역에서 내린 뒤, 목적지까지 그냥 휠체어로 와야 하는 경우가 있다. 목적지가 초행길이면 길을 찾아가기도 어렵고, 정해진 스케줄이 있는 경우라면 시간 또한 지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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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기다리다보면, ‘발빠짐 주의’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정차한 지하철과 인도 사이의 단차가 넓어서 발빠짐을 주의해야 한다는 뜻인데, 이 공간에 발만 빠질 수 있는게 아니라 휠체어 바퀴도 빠질 수 있다. 심지어 휠체어가 그냥 지나가도 괜찮을지 의심이 들 정도로 단차의 간격이 넓은 지하철 역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지하철을 탈 때는 역무원에게 지원을 요청하여 안전발판서비스를 받을 수 있더라도, 목적지 역은 단차가 너무 넓음에도 불구, 미처 전화로 역무원을 부를 여력이 없을 수 있다. 미리 역무원을 부르면 좋지만 각 역마다 단차가 어느 정도인지 예상할 수 없다.

한 휠체어 이용자는 “휴대폰도 고장날 수 있듯이 승강기도 고장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하지만 승강기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나 유모차, 노인 등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만큼 최대한 정기적으로 점검하여 고장의 빈도를 줄여야 하는데, 요즘 지하철역의 승강기가 고장나는 곳이 너무 많은 것 같다”라고 불편함을 호소했다. 그리고 “장애인이 마음 편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고 승강기나 단차의 간격 등 여러 변수를 늘 고려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정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맞는지 의심스럽다”라고 현재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규정이 전부는 아니다

도움호출벨, 촉지도, 안전바, 점자 블록, 승강기 등 장애의 유형과 특성에 따른 장애인 편의시설은 다양하다. 이러한 편의시설의 설치와 기준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등 법률로서 명문화하고 있다.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법에 따라 편의시설을 디자인한 것만으로 장애인이 편의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위의 여러 사례들처럼 분명히 장애인 편의시설이지만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 있다. 또 바르게 디자인된 장애인 편의시설이라도, 그곳으로 장애인이 접근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역시 편의시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바르게 디자인된 장애인 화장실이 있지만, 그곳으로 접근하는 길이 자갈밭으로 되어 있어서 휠체어 이용자가 접근할 수 없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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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하고 장애인 편의시설이 조금이라도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완공 전 장애인 이용자들의 시연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실제로 편의시설을 이용하게될 장애인들이 직접 체험해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면, 시공 중인 편의시설에 어떤 문제점이나 개선사항이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고 보다 나은 편의시설이 완공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경사로는 휠체어만 다니는 게 아니다. 유모차도 다닐 수 있고, 다리가 불편해 계단을 이용하기 어려운 분도 다닐 수 있다. 즉 장애인에게 편하면 모두에게 편한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는 복지부에서 발표한 편의시설 설치 비율의 수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편의시설의 안전바 하나, 출입문 버튼 하나, 점자의 점 하나까지도 그것을 이용하는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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