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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약 잘 먹는 아이가 아니다

정신장애인이 말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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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은 아이가 아니다

정신장애와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을 연관 지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정신장애가 합당하게 연관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를테면 정신장애인이 사회적으로 차별 받는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것들은 옳지 못하다. "정신장애인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정신장애인은 인격에도 문제가 있다."

이런 생각이 발전하면, "정신병 환자는 자각이 없다"라는 미신에 도달하기도 한다. 줄이면 한마디로 '병식'이다. 이 단어는 정신과 의사들도 많이 쓰고, 대다수 혐오자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의 일종이기도 하다. 정신장애인이 약물치료를 받기 싫어한다면, 자기가 원하는 치료 방식을 택하려고 한다면, 기존 의료계의 권위와 방식에 반기를 든다면, 그리고 그냥 정신장애인이 아니라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면, '병식이 없는 것'이라는 딱지를 받는다.

그러나 그놈의 어디에나 갖다 붙일 수 있는 만능 단어 '병식'이 당사자에게 있든 없든, 당사자 역시 인간이다. 이 얘기를 하면서 "당사자도 인간이다"를 먼저 말해야 하는 점이 절망스러운 현실을 느끼게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것을 까먹는다.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사람은 사람이고, 사람은 모두 자기만의 세계 인식과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신장애인을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존재'로 격하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 말이다.

"자각이 없다는 것은 미쳐있다는 것이다"라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펼치는 혐오자들을 종종 목도한다. 뭐, 정말로 자기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당사자도 있기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소수의 장애인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정신장애인의 정체성에 '병식 없음'을 추가하려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많은 장애인이 자기의 판단력을 무시 받고 아이 취급당하며, 때때로 본인이 연장자인데도 생판 모르는 어린 타인에게 이름 두 글자를 불린다. 정신장애인에 이르면 똑같은 상황이거나, 한층 더 심각한 상황이다. 정신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결정력, 판단력 자체를 무시 받는다.

내가 만난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절대다수는 자기의 증세와 입장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그 자각의 방식 및 해결 모색 방안은 각기 조금씩 달랐다. 이를테면 "나는 병이 있으니까 환자로서 의사의 말을 잘 듣고 약을 잘 먹어야 해"라고 말하든, "나는 정신장애인이므로 세상의 편견을 이겨내고 생존자로서 잘 살아남아야 해"라고 말하든, 다 자기 주관이 있었다.

설령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라 조금 우울할 뿐이야"라고 말하는 사람 역시도 판단력이 흐려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 이는 스스로를 정신장애인으로 규정했을 때 받을 사회적 차별이 두려웠고, 그런 선언이 혹여나 자기충족적 예언처럼 작동하여 자기의 믿음대로 삶이 제한되지 않았으면 했고, 자신에게 정신장애가 있다는 사실보다는 자신이 가진 다른 장점들에 주목하는 편이 더 이롭다고 믿었을 뿐이었다. 어쨌든 모든 이가 개별적 인격체였고 자기 생각이 있었다. 정말 '자기가 미친 줄 모르는 미친 사람' 같은 것은 없었다.

정신장애인의 사고 과정과 판단력에 '광기'가 개입하여 방해할 거라는 착각은 정말 유분수다. 이런 상황에서 병식이라는 오염된 용어만 너무 여기저기서 범람하고 있다. 절대 '미쳐 있어서'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왜 그럴까? 앞서 얘기했듯, 정신장애인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개념을 정확히 구분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다.

그러나 이제 개념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으면, 정신장애인을 아이 취급하거나 인간 이하의 어떤 열등한 존재로 상정하는 인식은 버리자. 그리고 제발 기자들은 어떤 흉악범이 해당 범죄와 무관하게, 우연히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병식을 운운하면서 정신장애인들을 싸잡아 비하하지 말자. 알면서도 구분하지 않거나, 알 수 있는 걸 아는 체 마는 체하는 것은 혐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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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약, 약! 지겹다!

흔히 한국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느냐는 것은 '약물 치료'를 받고 있냐는 의미다. 정신과 약물을 투약하는 과정에서, 특히 급성기 환자의 경우, 때로 우리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경험한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흔하게, 우리는 비만, 고지혈증, 칼슘을 손실하는 등의 끔찍한 합병증에 시달리게 된다. 의료계는 그러한 합병증에 대하여 침묵한다.

미국의 경우 정신과 의사들이 약물에 대해 환자에게 설명하지 않으면, 법원으로 갈 수도 있다. 투약을 거부할 권리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약을 먹지 않는 환자에 대해 곧잘 '강제입원'을 논하곤 한다. "위험하다"는 것이다. 무엇이 위험한가? 투약을 거부하는 환자는 곧 '관리'되지 못해 폭력성을 나타내는 환자라는 가상의 존재를 상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런 모습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실존하는지, 정말 투약의 거부와 정신증의 발현이 '폭력적' 행태를 만드는지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환자'는 손쉽게 '범죄자'가 된다.

최소한의 약물과 개인 심리치료 등으로 구성된 '통합 치료'가 약물만의 치료보다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미국의 연구에서 확인되었다. 항정신증 약물은 환각과 망상을 진정시키기는 해도, 견디기 힘든 부작용을 유발하여 대부분 환자들이 약을 끊으려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조현병 치료의 새 가이드라인으로 이 연구의 결과를 제시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통합치료는 유럽에 이미 보급된 방식이다. 왜 한국의 정신의료계는 이러한 '통합치료'에 대한 일언반구의 언급조차 없는가? 약물을 투여해서 생긴 수많은 삶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가?

정신장애인은 사람인가? 단순히 우리가 인간의 장기를 달고 태어났느냐는 의미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사람대접을 받느냐는 의미에서 묻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래야 하듯 정신장애인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고 대우받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나 정신장애인이 생각할 줄도 판단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약을 잘 먹어야 한다'며 관리하려 들고 언제나 '착한 아이'로 호명하려 한다.

이 모든 일이 정신장애인을 동등한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아서 벌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약 잘 먹는 아이’가 아니다. 우리는 생각할 줄 알고 판단할 줄 아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 장애인, 정신장애인일 뿐이다.

 

작성자박은정/정신장애인 인권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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