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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10년 넘게 병원 냉동고에 버려졌다

사건으로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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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걸음 자료

201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바로 그 사건 이야기다. 원주 귀래 사랑의 집 사건,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발달장애인들의 열악한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 관심이 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강원도 원주 외곽 인적 드문 외진 산기슭에서 ‘귀래 사랑의 집’이라는 시설을 운영하던 장 모씨가 있었다. 그가 유명세를 탄 건 슬하에 무려 22명이나 되는 자녀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의 호적에 오른 이 22명의 자녀 중 실제 친자식은 단 1명뿐, 나머지 21명은 전부 양자로 호적에 이름이 오른 장애인들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오갈 곳 없는 장애인들을 자식으로 거둬 돌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세상은 그를 '천사'라고 불렀다.

장씨 본인도 넉넉지 않은 형편이면서도 어렵고 오갈 데 없는 장애인들을 자신의 호적에까지 올려가며 보살핀다는 그의 행적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그를 칭찬하고 안타까워했다.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수많은 후원금과 도움의 손길이 그를 향했다. 하지만 그 ‘가짜 천사’의 날개 밑에 감춰진 그늘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사건이 드러났을 때 그와 살고 있던 장애인은 단 4명뿐이었다. 21명 장애인 중 2명은 이미 오래 전 싸늘한 주검이 되어 10여 년 동안 병원 냉동고에 방치됐고, 나머지 15명은 주민등록마저 말소된 채 그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

사건의 시작은 충북 충주에 있는 한 병원 관계자의 제보에서부터 시작됐다. 그에 따르면, “2000년 5월 영양실조로 입원한 한 장애인이 수술 도중 사망했는데 보호자가 그 시신을 찾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병원 측은 보호자에게 지속해서 시신을 찾아가 달라고 요구했지만, 보호자는 도리어 병원 측의 의료과실을 주장하고 있고, 그러는 사이 12년이 흘러 시신의 보관비용은 무려 2억여 원에 이르게 됐다. 병원 측은 보호자에게 그동안 들었던 모든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고 장례식을 치르는 데 드는 금액까지 주겠다고 했지만, 보호자는 그 제안마저도 거절했다,

이어 원주 의료원에서도 비슷한 제보가 이어졌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에 10년째 찾아가지 않는 시신이 있다. 이 시신은 2002년 11월 뇌출혈 수술 후 욕창 등으로 사망했지만, 보호자가 시신을 찾아가길 거부한 채 의료사고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의료기관 냉동고에 보관된 시신의 보호자는 같은 인물이었고. 바로 장씨였다. 그는 두 시신의 아버지로 자식이 병원에서 사망했는데 사망신고는커녕 사망진단서조차 발급받지 않았다. 대신 그는 사망 후에도 두 자식에게 나오는 장애수당과 기초생활수급비를 꼬박꼬박 받아 챙겼다. 방치된 두 시신은 살아 있었을 때 1급 발달장애인이었다.

당시 장씨를 만난 관계자에 따르면 “두 장애인은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묻자, 장씨는 “복지시설에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 15명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또 있었다. 당시 장씨가 데리고 있던 4명의 장애인들 상태였다. 가서 보니 이들의 팔다리는 심하게 말라 있었으며, 모두 삭발을 당한 채 색상과 무늬가 비슷한 낡은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위생상태도 매우 불량했으며 남녀가 구분되지 않은 좁은 방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식사시간에는 밥상도 없이 맨바닥에서 밥을 먹었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의 몸에는 크고 작은 흉터가 무수히 많았으며, 한 장애인의 팔에는 장애유형 등 인적사항과 전화번호가 까만색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활동가들은 시설을 찾아갔다. 시설로 통하는 유일한 길은 ‘출입금지’라는 팻말과 함께 단단한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철문을 뚫고 시설에 도착한 활동가들은 시설 내 장애인들에 대한 직접 면담을 장씨에게 요구했으나 장씨는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또 사라진 장애인 15명의 행방과 장애인 2구의 시신을 병원에 10년 넘게 내버려뒀던 이유에 대해 물었으나, 장씨는 정확한 대답을 피한 채 고성을 지르며 전혀 관계없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활동가들은 시설에 있는 4명의 장애인에 대한 안전을 우려해 우선 분리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사라진 장애인 15명의 소재 파악과 장씨의 드러난 학대 혐의에 대한 고발도 논의했다.

그 와중에 이 사건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32년 전, 천사 목사라고 알려졌던 장씨에게 13살의 장애인 아들을 맡겼다는 한 어머니가 나타났다. 32년 전 당시 어머니와 아들의 삶은 매우 궁핍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장애인을 거두어 친자식처럼 보살핀다는 장씨를 찾아가 아들을 맡겼다. 그게 아들의 행복을 위하는 길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수 년이 지난 후 그리운 마음에 아들을 찾았지만, 아들과 장씨는 이미 종적을 감춰버린 지 오래였다. 사진 한 장으로 그리운 아들을 찾아 헤맨 지 32년, 어머니는 방송으로 다시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방송에 나온 병원에 방치된 시신이 살아있을 적 얼굴이 아들과 닮아 있었다. 어머니는 시신의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고, 결과는 일치했다. 어머니가 32년간 찾아 헤맨 아들이 차디찬 시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후에도 장씨에게 장애인 자식을 맡겼다던 부모들의 연락은 계속 이어졌다. 모두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장씨를 믿고 아이들을 맡겼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시설에 자식들은 없었다.

장씨는 1964년부터 갈 곳 없는 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하기 시작했고, 유력 언론에 미담으로 소개되면서 ‘천사 목사’로 전국에 알려졌다. 그 후 유명세를 타면서 전국 각지에서 장씨에게 후원금과 물품들이 전달됐다. 정확한 액수는 추정할 수 없으나 꽤 큰 금액으로 알고 있다. 장씨의 선행 아닌 선행이 세상이 알려지자, 당시 전국에서 생활형편이 어려워 장애인을 돌볼 여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하나둘 장씨에게 자식을 맡겼다. 장씨는 이 장애인들을 친권자의 동의 없이 1978년부터 친자로 올리기 시작했으며, 1986년 총 21명의 장애인 자식을 둔 아버지로 둔갑했다. 장씨는 장애인의 친권자가 아님에도 장애인들에게 지급되는 수급비, 수당 등을 오랫동안 횡령했으며, 겉으로 선행을 베풀고 있는 목사처럼 꾸며 장애인을 후원금 모금에 이용했다.

그런 장씨는 데리고 있던 장애인들을 방치해 2명의 장애인을 영양실조 상태로 몰아넣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으며, 사망신고조차 하지 않은 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식이라는 장애인을 시신으로 병원 냉동고에 버려뒀다.

2012년 당시 귀래 사랑의 집 사건은 시설 내 4명의 장애인을 장씨에게서 떼어내 안전한 곳으로 분리하고 시설을 폐쇄했으며, 가해자인 장씨가 구속돼 재판에서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해가 바뀐 2013년 초, 서울 광화문에서 병원 냉동고에 버려졌던 발달장애인 장성희 씨의 장례식과 추모식이 열렸다. 다른 병원에서 역시 10년이 넘게 냉동고에 방치돼 있던 발달장애인 이광동 씨는 2012년 9월 사망한 지 12년 만에 친어머니가 찾아와 장례식을 치뤘다.

그로부터 7년여가 흐른 지금, 이 사건이 하나의 계기로 작용해 발달장애인지원법이 만들어지고, 대통령 입에서 발달장애인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얘기까지 나왔지만 과연 무엇이 달라졌나. 발달장애인들과 부모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고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여전히 시설에 갇혀 있다. 바뀐 건 거의 없다. 그나마 귀래 사랑의 집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드러나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지금도 발달장애인들이 귀래 사랑의 집 같은 곳에 갇혀서 인권을 착취당하고 있는데 혹시 우리가 모르고 있는 건 아닌 건지, 주위를 돌아봐야 할 때다.

 
작성자이태곤 편집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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