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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은 다 똑같지 않다

그녀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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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보이는 다른 색깔들

유튜버가 대세다. 초등학생의 꿈이 크리에이터(창작자)가 많이 나올 정도다. 유명 유튜버들은 사회적 영향력도 크고 수익도 많이 올린다. 정치 분야에서도 진보니 보수니 할 것 없이 유튜버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건넨다. 장애인,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도 유튜버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만든 채널이 막말과 가짜뉴스의 진원지라면, 사회적 소수자들이 만드는 채널은 문화다양성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깨는 소통과 교양의 장이기도 하다. 아마도 소수자들이 유튜브를 이용하는 이유는 기존 미디어와는 다르게 생산자가 원하는 방식과 내용을 스스로 정하고 전파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만난 이샛별 씨는 ‘농인부부’라는 유튜브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농인 당사자다. 그녀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게 된 것은 농인에 대한 여러 편견을, 당사자인 자신이 직접 보여주는 게 제일 빠를 거라고 생각해서다. 그녀는 말한다. 농인들은 소수집단이니까 청인들 입장에서는 굳이 농인에 대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고. 소수자가 직접 나서야 하는 이유다.

“아기 낳기 전인 2016년부터 농인 부부는 어떻게 사는지 사람들이 궁금해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농인은 청인이랑 결혼해야 한다는 편견, 즉 청인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다는 편견이 있잖아요. 흔히 청인부부보다 농인부부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고요. 청인들이 장애인부부가 둘이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해서, 농인이라고 해서 다른 게 없다. 살아가는 모습은 다 똑같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직 유튜버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나는 ‘농인부부’를 보며 알콩달콩 신혼부부의 달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임신했을 당시 만들었던 영상도 청인들의 삶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기도 했다. 영상을 보면서 몇 가지 궁금함이 생겼다. 어쩌면 그 궁금함은 다양한 농인의 삶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하트 같은 자막효과도 있던데 그건 누가 만들었지? 배경음악이 있던데 청인의 도움을 받아서 음악을 깔았나?’ 등등이다.

그녀를 만나 이런 궁금함을 풀었다. 자막부터 특수효과, 배경음악까지 모두 그녀가 직접 만든다고 했다. 유알못(유튜브를 알지 못하는)인 나로서는 그런 고급기술을 어떻게 할 줄 아는지도 신기했다. 그녀의 전공이 시각디자인이고, 원래 하던 일이 미디어 관련 일이기에 기술을 알고 있다고 했다. 7년 동안 농인을 위한 뉴스 편집을 담당하고 있어서 기본적인 것은 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녀는 경기도농아인협회에서 운영하는 방송국에서 일한다.

처음 만든 영상은 배경음악이나 효과음을 넣지 않고 만들었으나, 나중에 청인 구독자 중에서 음악이 없으니 밋밋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넣었다. 그러나 아직도 농인 구독자 중에는 왜 음악이 필요하냐는 의견도 있어서 음악을 넣는 게 좋은 건지, 아닌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음악도 모두 제가 직접 선정해요. 어플에서 보고 정해요. 제가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음악이 뭔지는 모르지만, 음악에 대한 설명을 읽고 그 느낌이 영상과 맞겠다 싶은 걸 사용해요. 예를 들어 ‘잔잔한 음악’ 이렇게 쓰여 있으면 그걸 쓰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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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은 다 똑같지 않다

이렇게 그녀는 유튜버로 활동하면서 농인뿐만 아니라 청인들과도 소통한다. 농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편견도 깨고 다양한 농인의 삶을 보여주는 일이기에, 힘들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의하면 현재 농인 유튜버들은 십여 명 된다고 했다. 그녀에게 농인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농인은 한글을 읽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글을 읽을 줄 아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서 너무 당황스러워져요. 물론 과거에는 농인들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한글을 못 배운 농인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요. 유튜브에 자막을 넣은 이유도 농인들도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어요. 일일이 자막을 넣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그리고 청각장애가 있으면 무조건 수어를 사용한다거나 말(구어)을 아예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어요. 하지만 꼭 그렇지 않아요. 수어와 말을 동시에 사용하는 유튜버도 있어요.”

실제 그녀는 구어도 하고 수어도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구어보다는 수어가 익숙하다. 그건 그녀에게 청력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남편은 청력이 조금 있어 보청기를 사용하면 조금 들을 수 있지만, 그녀는 달팽이관의 이상으로 태어날 때부터 청력이 없다. 청인인 어머니로부터 의사소통을 입모양으로 하면서 배웠기 때문에 구어를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초·중·고를 청인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구어에 익숙하다. 이렇게 살아온 교육환경에 따라 농인들은 구어나 수어를 사용하게 된다.

그녀는 대학에 가서야 수어를 처음 접했다. 수어를 하는 농인 친구가 있어서 배우게 됐다. 그 친구는 구어를 못하고 그녀는 수어를 못했다. 서로 답답할 것 같아서 친구에게 수어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수어는 혼자서는 배울 수 없다. 그녀가 수어책 한 권을 보고 단어를 외우면, 그걸 바탕으로 친구가 일대일 과외처럼 가르쳐줬다. 너무나 신기했고 배울수록 즐거웠다. 초·중·고를 다니는 동안 주변과 소통할 수 없었던 그녀는 수어를 배우고 수어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인간관계 및 활동범위도 넓어졌다.

“유치원에 가면서 제가 친구들과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그전에는 동네 친구들과 제스처로 이야기하면서 놀았어요. 유치원 친구들은 제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을 테고. 그때부터 성격이 소극적이게 되었어요. 그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잘 놀았었는데…. 그때부터 친구들하고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책을 읽고 지냈어요. 어머니도 수어에 대해선 전혀 모르셨고. 그런데 수어를 하니까 소통도 잘 되고 대화도 능숙하게 하니까 기분이 좋지요. 제 마음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수어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수어도 가르치고 대회에도 나가고, 전국농대학생회가 있어서 활동이 늘어났어요.”

그녀가 간 대학은 천안에 있는 나사렛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다. 대학을 선정한 기준은 문자통역서비스 제공여부였다. 문자통역서비스가 있으니 공부가 더 재미있었다. 집에서 멀다보니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지만 즐거웠다. 남동생도 청인이라 집에서 가족들과의 대화는 깊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수어를 배우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학교 친구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수어를 하고 난 후 그녀의 표정이 밝아진 것을 알게 된 그녀의 어머니도 수어를 배우겠다고 나섰다. 어머니는 수어로 노래를 발표한 적도 있다. 요즘은 농인 사위와 수어로 간단한 대화를 한다.

 

농인엄마로 산다는 것

그녀에게 결혼은 서로 의지하고 대화할 수 있는 가족 구성원이 있다는 의미였다.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살다보니 아플 때 남편이 와서 간병해주곤 했는데, 그때 저 사람과 같이 살면 든든하고 따뜻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청혼도 그녀가 먼저 했다. 물론 연애를 먼저 하자고 한 사람은 남편이다. 남편과는 사내커플로, 근무지는 다르지만 전국농아인협회에서 같이 일한다. 결혼준비도 두 사람이 번 돈으로 다 해결했다.

처음 결혼했을 때, 양가 집안에서는 유전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아이는 낳지 말고 둘만 행복하게 살라’고 했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둘은 아이가 농인이든 청인이든, 낳으면 아이를 어떻게 양육할지가 큰 부담이라는 정도의 이야기만 했다. 누군가 장애인 아기가 태어나면 어쩔 거냐고 물으면, 그래도 잘 키울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임신이나 양육을 고민해본 적은 없다. 그러다가 결혼한 지 3년 만에 임신을 하게 됐다.

임신 초기에 농인이라 임산부 배려석에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말을 하지 못해, 지하철을 서서 가야 하는 어려움은 어찌 보면 소소한 것들이다. 산후우울증으로 100일 넘게 고생을 했던 그녀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현재 여성농인을 이해하고 수어를 하는 여자상담사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농인을 이해하고 수어를 할 수 있는 상담사를 육성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말하는 출산 장려책에서도 농인엄마에 대한 지원책은 없다. 그 외에도 농인엄마로서 겪는 어려움은 많았다.

“아기가 울면 울음소리를 알려주는 보조기기가 있어요. 그런데 그걸로는 100% 알 수 없어요. 아이가 우는데도 쳐다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한번은 아이가 떨어져서 우는데도 설거지를 하느라 한참 후에야 알아챈 적이 있어요. 그래서 아이 울음소리라도 들으려고 보청기를 신청했는데, 세 번이나 거절당했어요. 왜냐면 제가 완전 농인이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보청기가 불필요하다는 거예요. 보청기는 정부보조금이 들어가는 것이다 보니 (보청기 사용 결정이) 쉽지가 않아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아이가 급하게 큰소리라도 외치면 들을 수 있으니까 보청기가 절실하죠. 겨우 보청기 신청이 됐어요. 보청기를 착용하면 큰소리는 조금 들을 수 있어요.”

현재 12개월 된 그녀의 아기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아기가 청인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모두 농인이어서 음성언어를 자연스레 배우려면 어린이집에서 듣고 따라하게 하는 게 필요해서다. 수어는 밥, 물 정도의 간단한 단어(베이비사인)만 알려줬다. 아이가 크면 자연스레 수어를 배우겠다고 할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가 기록하려는 이유

그녀는 클수록 장애인 차별을 더 많이 느꼈다. 집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사회에 나오니 더 많아졌다.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게 많다. 농인들의 노동권이 보장되려면 직장에서 수어통역 지원을 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비용이 든다며 농인들을 고용하지 않고 벌금으로 끝낸다. 그러다보니 주변에는 전문기술이 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단순노동을 하는 농인들도 있다. 남성중심사회에서 농인사회도 비장애인과 비슷하게 성차별도 존재한다. 직장이든 협회든 대표자급은 남성들이 많고 성희롱도 여성들이 주로 당한다.

하나하나 바꾸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그녀는 그 길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2016년 광화문 광장 집회에서 처음 수어통역사를 세웠을 때 집회에 참여할 수 있어서 기뻤던 기억이 있다. 무슨 내용인지 몰라 집회를 해도 동참하지 못하고 지나가곤 했는데, 수어통역사를 세우니 농인친구들과 함께 참석도 하고 구호도 외칠 수 있었다. 이렇게 더디지만 조금씩 변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유튜브 외에도 양육하면서 겪었던 고민을 글로 남기려고 한다. 소수자니까 청인 중심의 사회에서 농인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려면 당사자가 나서야 한다. 그래야 농인에 대한 차별이 조금씩 깨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녀의 이야기에 우리 사회가 행동으로 변화를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숙제를 남긴 채 인터뷰를 마쳤다.

작성자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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