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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남아 있다

‘원양어선 노예사건’에 대한 경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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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센터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지난해 12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자신이 피해자의 친척 조카라던 한 여성이었는데, 지적장애가 있는 자신의 삼촌을 도와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그녀의 삼촌이라는 A씨는 지적장애가 있고 몇 해 전 간암 수술을 받아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으며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고 하였으며, 무서운 사람들에게 쫓겨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추운 겨울에 한강 주변을 배회하며 지내고 있다고 했다. A씨는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을까?

 

원양어선 노예 사건?

A씨 측의 주장에 따르면(이하는 A씨측의 주장) A씨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공장 등을 전전하며 어려운 세월을 보냈다. A씨는 이 모든 것이 가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돈을 벌어 어머니와 동생과 재회하겠다는 꿈을 갖고 2000년부터 원양어선을 타기 시작했다.

그러던 2003년 가을, 조업을 마치고 육지에 머무르는 동안 자주 가던 단골식당 주인의 소개로 한 노래주점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노래주점 주인인 B씨와 카운터를 봐 주던 B씨의 노모를 만났다. B씨의 노모는 A씨에게 자신의 작은아들 역시 원양어선을 타고 일을 하러 갔다가 사고로 죽었다며, A씨를 보니 죽은 작은아들을 보는 것 같으니 앞으로 가족같이 지내자며 접근했다. 가족과 헤어져 유년시절을 보낸 A씨는 가족이라는 말에 마음을 열게 되었고, B씨의 가족과 함께 어울리며 친분을 쌓았다. 이들의 행동은 A씨가 갖지 못했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일깨우게 만들었다.

한번 조업에 나가면 길게는 1,2년 동안 바다에 머무르는 원양어선의 특성상, 망망한 바다 위 선원들의 삶은 외로움 그 자체였다. 조업을 마치고 잠시 육지에 머무르는 동안 A씨는 ‘가족’이라던 B씨 일가를 찾았고, B씨의 가족들은 A씨를 돕는다며 미리 정해둔 여관에만 머물게 하면서 모든 생활들을 통제하고 감시했다.

2005년 어느 날, 세관공무원인 B씨의 남편 C씨는 A씨에게 돈을 얼마나 모았는지, 정산금은 얼마나 받았는지, 돈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상세하게 물어보며, 가족이므로 통장관리는 이제부터 본인들이 하겠다고 하였다. A씨는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잘 살았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지적장애가 있는 A씨(가해자들은 당시에 A씨에게 지적장애가 있음을 몰랐다고 주장)가 제대로 재산관리를 못하지 않느냐며, 세관공무원인 C씨를 믿고 통장을 맡기라며 지속적으로 요구하면서, ‘이자를 많이 주는 은행에 돈을 맡겨 목돈을 만들어 주겠다’고 꼬드겼다. A씨는 ‘공무원이 설마 사기를 치겠나’하는 생각에, 임금이 입금되는 통장과 인감, 신분증을 결국 B씨 부부에게 모두 맡기고 말았다.

그러나 B씨 부부는 약속과 달리 A씨의 돈을 가로챘다. A씨의 계좌에서 현금 또는 수표 출금, 계좌이체, 통신료 또는 공과금 자동이체 등 2005년부터 2018년까지 총 509,071,092원을 가로챘다. 또 A씨에게 재산을 늘려 주는 것이라면서 총 9개의 보험에 가입하게 하고, 6,000여만 원을 보험료로 납부하게 하였으나 보험 수익자를 B씨로돌렸다. 또한 보험 약관 대출을 받거나 환급금으로 7,700여만 원을 가로챘다. 또 원양어선에서 근로한 댓가로 받은 정산금 중 2억6천여만 원을 목돈을 만들어 주겠다며 편취하고, 결혼을 시켜 주겠다며 소개비 명목으로 7,000여만 원을 가로채는 등, 10억 원이 넘는 돈을 B씨 및 B씨의 남편 C씨, 그리고 B씨의 딸 D씨가 가로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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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에 방송된 방송화면 모습(SBS 방송화면 갈무리)

또 다시 반복되는 지적장애인 대상 학대인가

A씨와 A씨의 친척 조카의 진술에 따른 내용들은 그동안 끊임없이 보고되었던 지적장애인 대상의 노동력 착취 및 경제적 학대사례와 그 구조가 동일했다. 2014년 전국을 충격에 빠뜨린 일명 ‘염전노예사건’ 역시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이 스스로 재산관리를 하지 못하고, 타인의 유혹이나 감언이설에 잘 속아 넘어간다는 점을 이용하여,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돌봐준다’는 명목으로 (형편없는) 숙식을 제공할 뿐 임금을 주지 않거나 매우 소액만을 지급했던 사건이었다. 축사·농장·고물상·식당 등지에서 발생하는 지적장애인 대상 노동착취사건들 역시 마찬가지로, 가해자는 피해자가 의사결정이나 판단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을 악용하면서도 자신들이 그러한 피해자를 ‘돌봐 주었다’라고 주장한다. 유사한 사건을 많이 경험해 본 인권센터 측에서는 이 사건 역시 비슷한 유형의 장애인 학대사건으로 판단하고 사건에 접근하게 됐다.

 

지원의 손길, 그리고 마주친 새로운 국면

A씨와 A씨의 친척 조카는 화우 공익재단에 먼저 도움을 요청했으며, 화우 공익재단에 서는 이 사건을 심각한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지원에 착수해서, A씨 측의 요청에 따라 서울 동부지방 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후 화우 공익재단의 권유로 A씨 측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의 문을 두드렸고, 인권센터에서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변호사들과 상의해 인권센터·공감·화우에서 공동의 팀을 이뤄 함께 A씨 측을 지원하기로 했다.

사건은 A씨 측의 요청에 따라 언론에도 알려지게 되었고, 한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에도 보도가 되었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인권센터와 대리인단은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방송사 취재팀은 취재 과정에서 A씨의 친척 조카가 A씨를 돕는 의도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했고, A씨 측의 주장 중 일부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내기도 했다. 장애인이라고 하기에는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어 보이는 A씨의 생활 모습 역시 취재팀뿐만 아니라 검찰에게도 과연 A씨가 장애인인지 여부에 대해 의심을 갖게 하였다. 결국 부산지방검찰청은 B씨와 C씨, 그리고 B씨의 딸의 혐의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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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폭로 초기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방문해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A씨의 모습(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함)

앞으로의 계획과 과제

장애인 학대사건은 피해자의 장애가 사건의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하고, 또 수사 과정에서도 피해자의 장애특성이 제대로 반영돼야만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장애를 바라보는 사법기관의 관점 역시 사건의 결말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가해자들이 흔히 하는 변명인 ‘오갈 곳 없는 피해자를 돌봐 주었다.’라는 주장이 사법기관에 실상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가해자들은 ‘불쌍한 장애인을 돌봐 준 사람’으로 무죄 방면되거나 솜방망이 처벌만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장애인을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의 장애를 악용한 파렴치한 범죄자들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기에, 장애인 학대 범죄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는 현실을 사법부도 엄중히 직시해야 한다.

장애인 학대의 피해자 중에는 지적장애인이 가장 많다. 노동력 착취나 경제적 학대의 경우,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장애의 정도가 경증인 장애인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일을 시키거나 노예처럼 부리더라도, 일반적인 의사소통이나 노동이 가능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일상생활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복잡한 계산이나 금전관리 및 상황에 대한 판단과 대처가 어렵고, 누군가에게 잘 속거나 이용당하기 쉬운 경우가 많다는 게 공통된 특징이다. 과거 학대피해장애인 지원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에는 어렵게 학대사건이 발견돼 피해자를 구출하고 소송을 하는 등 지원을 하더라도 피해자가 머물 곳이 없어 당사자가 사라져 버린다던지, 어렵게 받아낸 합의금이나 배상금을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 가로채 버리는 일을 막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전국에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만들어졌고, 연구소에도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많은 사건들을 접하며 쌓인 경험과, 피해자들의 눈물로 아롱진 ‘진심’이 있다. 우리는 복잡하게 얽힌 사건 관계 속에서도 진실을 파악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피해자가 진정으로 피해를 회복할 수 있도록, 어렵게 되찾은 권리를 또 누군가에 의해 빼앗기지 않도록 앞으로 신중하고 치밀하게 이 사건을 검토해, 추가 고소·고발을 비롯한 조치와 피해자의 피해 회복과 자립을 위한 종합적인 지원들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작성자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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