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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꿈, 임대사업자

소소한 사회통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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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뭔가에 꽂혀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겁 없이 장애인단체를 설립하였습니다. (물론 꼼꼼하게 3년 치 사업계획서와 법인의 방향에 대해 A4 용지 10장에 빼곡하게 정리했지요. 설마 그 정도 준비도 없었겠습니까? 하하) 장애인 당사자나 가족이 아닌, 소위 비장애인이 장애인단체를 설립하였으니 얼마나 다양한 시선들과 마주해야 했겠습니까마는(예상했던 일이라 크게 맘에 두진 않았습니다), 함께 곁을 지켜준 많은 이들 덕에 세상 신나고 재밌게 일했습니다.

 

2020년 2월

그렇게 6년. 또 다시 뭔가에 꽂혀 단체의 대표직을 사임하였습니다. 당신은 그렇다 쳐도, 곁에서 같이 사는 사람은 뭔 죄가 있냐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참다가 참다가 답답하니 결국 아내가 직장을 구하더군요. 덕분에 육아는 제가 전담하게 되었고요. 하하하.

웃는 게 웃는 게 아닙니다. 어찌 되었든 지금의 저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장애인복지현장(장애인복지 현장이란 데가 따로 있겠습니까? 살아가는 모든 곳이 현장이지요) 실무자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꽂힘

2014년도에 저는 장애인의 문화·예술·스포츠 활동에 꽂혀 있었습니다. 발달장애인 합창단과 축구단을 그 시기에 만들었고, 주말에도 활동할 수 있도록 토요학교를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스포츠사업단을 창단해 더 다양하고 전문적인 스포츠 활동의 장을 만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아…, 물론 저는 입으로만 떠들었고, 직원 분들이 고생 많았지요. 2020년의 꽂힘은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주의! 그냥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들이니 너무 큰 기대는 삼가주세요.)

 

에피소드 하나

지금으로부터 약 17년 전. 그러니까 제 나이 스물아홉. 한창 혈기왕성하고 세상 무서울게 없던 때였습니다. 장가가려고 얼마 되지 않는 박봉을 쪼개 살뜰히 모아 두었던 적금에다 ‘부모님 찬스’ 보태 직장 근처 14평 빌라 한 채를 장만하였습니다. 거실 겸 큰 방 하나에 옷 방 하나, 코딱지만 한 주방에 화장실이 전부였으나, 싱글이었던 제겐 과분할 정도였습니다. 지척에 부모님 댁을 두고도 제 이름으로 된 집이 좋아 일부러 분가해 살았지요. 부모님과의 유대관계를 위해, 빨래나 식사는 부모님 댁에서 해결하는 센스도 잊지 않았습니다. 하하.

혼자 사는 총각 집은 어떤 모습일까요? 밥하고 빨래는 부모님 댁에서 해결하니 세탁기나 식기류는 패스. 쌓아둘 물건이나 옷가지가 없으니 가구도 패스. 음악이나 영화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으니 가전제품도 패스. 그냥 분양한 빌라 모습 그대로 몸만 들어와 잠만 자고 살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한 2,3년 살다 보니 제 이름으로 된 집이 있다는 기쁨도 잠시, 나이 서른 넘어 혼자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심정이란. 컴컴한 집구석만큼이나 마음구석도 칙칙했던 것 같습니다. 이래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당장 결혼은 어려울 것 같고, 그럼? 어? 어…, 어…, 그렇지! 머리에 섬광이 지나갑니다.

그때부터 3년 동안 찬우와의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던 찬우의 건강 상태는 누워서 손가락 몇 마디만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음식은 물론 대소변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활동지원제도가 그리 성숙하지 못해, 제공시간이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귀가하기까지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다 총각 때 집을 산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가 싶어, 활동지원 제공인력을 평일로 집중해서 부모님 귀가 시까지 공백이 없도록 하고, 주말엔 저의 집에서 저와 함께 지내기로 했습니다.

밤새 주기적으로 몸을 뒤집어 체위를 변경시켜야 하는 관계로 수면 부족에 시달리기도 하고, 밥도 떠 먹여 줘야 하고, 소변은 그렇다 쳐도 대변 뒤처리까지 해줘야 하니, 이건 뭐 장가도 못 가보고 허리가 나갈 판이었습니다. 너무 피곤해 골아 떨어져 체위를 바꿔주지 못하면, 꼭 귀에다 대고 나지막한 소리로 “제 쌤…, 제 쌤…!” 속삭이는데 소름이 쫙. 간혹 제대로 씹지 못한 딱딱한 음식이나 일미 등으로 인해 변을 보지 못할 때는, 손가락에 약 바르고 이때다 싶어 똥꼬(?)를 후비적후비적. 기다란 일미를 끄집어내고서야 상황이 종료될 때도 있었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3년을 함께 보내고 20대 초반. 가장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을 남겨두고, 찬우는 그렇게 우리들 곁을 떠났습니다. 지금도 너무 그립고 보고플 때면, 여전히 밝고 환한 모습 그대로 멈춰 있는 찬우의 SNS를 기웃거립니다. 글을 남기면 금방이라도 답글이 달릴 것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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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둘

몇 해 전 5명의 성인발달장애인들과 함께, 2주간 필자의 집에서 하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셋이지만) 아이 둘에 저와 아내, 그리고 5명의 하숙생, 도합 9명이 한 집에서 2주를 보낸 셈입니다. 박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코 골고 이 갈고, 먹기는 또 얼마나 먹어대는지 냉장고는 채움과 동시에 비워지고, 9명이 화장실 두 개로 버텨야 하니 비슷한 시간대에 시동이 걸리면 병목현상으로 배를 움켜잡고 다리를 배배 꼬다 급기야 인간성이 나오고.

제대로 씹지 않고 뱃속에 털어 넣기 바쁜 친구들의 음식물들이 소화되지 않고 위에서 하나의 큰 덩어리를 형성해 어떤 날은 돌덩이, 어떤 날은 굵은 바나나의 자태로 세상 밖으로 나오면 여지없이 변기를 막아, 멋모르는 뒷사람이 물이라도 내리면 세상에, 세상에, 부글부글 차오르는 변기 물에 둥둥 떠다니는 앞 사람의 분신을 보면 머리는 온통 하얘지고.

새벽 미명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아내와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에 몰래 잠입해 아내의 머리맡에 서서 물끄러미 내려보다, 오싹한 느낌에 눈을 뜬 아내. 모두 네 개의 눈알이 위아래에서 서로 교차되는 순간의 공포감은 또 어떠한가. 느낌이 오시나요?

그렇게 2주를 보내고 가장 서운해 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우리 집 아이들이었습니다. 형 오빠들 간다고 울고불고, 어린이집 안 간다고 난리부르스를 추고. 참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하하하. 그 다음 해에도 일주일 정도 성인발달장애인들과 함께 하숙집을 운영하였습니다.

장애인복지사업법에는 장애인들의 자립과 사회통합을 위해 그룹홈, 자립홈, 체험홈 등 다양한 형태의 주거유형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조금 아쉽습니다. 요즘 청년 혹은 시니어 사이에서 유행하는 주택의 트렌드는 ‘공유’입니다. 공유주택, 셰어하우스, 코하우징, 코리빙 등 주거 유형별로 다양한 형태의 주택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필자가 거주하는 경남에도 ‘경남청년셰어하우스’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시가 5억 상당의 2층 집을 리모델링해 1층에는 남성, 2층에는 여성이 거주한다고 합니다. 미혼 남녀들이 한 지붕에 모여 함께 산다니 얼마나 설레고 좋겠습니까?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니 뭐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하하.

장애인을 위한 주거모델도 좀 이렇게 시대에 맞게 변해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게 아니라, 이건 명칭만 들어봐도 딱. 아…, 이러지 않겠습니까? 올 초 발달장애인 요양보호사 보조일자리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참가자가 제게 물었습니다.

“지부장님, 어디 기숙사 없어요? 협회는 기숙사 안 해요?”

“와(왜)?”

“나도 나이가 서른입니다. 돈도 버는데 부모님께 용돈 드리고, 저금도 하고, 내 돈으로 월세 내면서 독립하고 싶어요.”

“원룸 하나 구해서 살면 되지. 요새 원룸 싸던데.”

“에이, 심심하잖아요. 친구들하고 같이 지내고 밥도 같이 해 먹고, 내 방만 있으면 돼요.”

저도 찬우랑 지낼 때가 참 좋았습니다. 그 좁은 집에 9명이 미어터지도록 살아도 참 재미있었고요. 협회를 사임하고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실 아직 ‘이거다’하고 딱 필이 꽂히는 건 없습니다. 시간을 가지고 다양한 사례들을 접하고, 비슷한 고민에 필이 꽂힌 사람들과 만나면서 조금씩 구체화시키다 보면, 언젠가 “아, 이거네!” 하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열심히 일해서 돈 좀 벌어야겠습니다. 새로운 꿈이 생겼으니까요. ‘임/대/사/업/자’입니다. 하하하.

 
작성자제지훈/사회복지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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