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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 발생하면, 난 꼼짝없이 죽어야 해!

17년 전 기록과 2020년 현재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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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해와 장애’를 주제로 발제발언을 하고 있는 故 이현준 열사의 모습(2003년 월간 <함께걸음>에 수록된 명함 크기의 지면을 재촬영해 보정했음)

월간 <함께걸음> 객원기자 출신인 故 이현준 열사는 장애인차별금지와 관련된 여러 법 제정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법안 제정활동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그는 이러한 법 제정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제안했다고 동료활동가들은 기억하고 있다. 최근 그가 남긴 한 편의 기고문이 화제가 되고 있다. 2003년 여름에 공개한 글인데, 지금의 현실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는 점이 특히 주목되는 내용이다. 지난 17년 동안 철폐되지 않은 근본적인 차별이 무엇인지 재확인되는 소중한 자료라고 믿어지기에, 그 기고문을 여기에 수록하며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당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토론회에서 ‘재해와 장애’라는 주제로 발제했던 (당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실 이현준 간사의 글을 요약·정리했다. (이 원고는 이현준 열사의 동생인 이현제 씨가 제공했다.)

 

재해·재난, 사회적 약자에게만 해당

재해 시 발생되는 장애인 차별은 지금까지 그다지 거론되어 온 바가 별로 없다. 분초를 다투는 재해가 일어났을 때 이동에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어떤 적절한 대책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 지금까지의 귀결이었다.

그러나 재해 시 차별의 문제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과거의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지난 1999년 화성 씨랜드 사건은 유치원생들이 그 피해자였는데, 소방장비 67대, 526명의 인력이 동원되었음에도 진화에 어려움이 많았다. 건물 구조가 컨테이너를 개조한 조립식 가건물이고, 내장재는 보온을 위한 스티로폼과 합판으로 마감한 재질이어서 불이 급격히 번졌으며, 피난 계단이 부족하고, 화재신고가 늦었으며, 소방도로가 없어 피해가 더욱 컸다.

50여 명의 사상자를 낸 1995년의 경기도 용인여자기술학원 기숙사화재는 사회복귀를 꿈꾸던 무의탁 여성들이 그 피해자였는데, 기숙사 창문 밖으로 이중 삼중의 쇠창살을 쳐 놓아 탈출을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참사를 당해야 했다. 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의식 속의 차별의 일단이고 이러한 차별이 어떠한 결과를 빚는지 증명해 주고 있다.

 

꼼짝없이 죽어야 하는 환경

재난 시 장애인 차별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1993년 4월 19일 발생한 충남 논산 서울신경정신과의원 화재사건을 들 수 있다. 오전 2시 10분 여자병실 부근에서 일어난 화재는 칸막이벽을 타고 입원실과 홀 쪽으로 옮겨붙은 뒤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이로 인해 잠자고 있던 입원치료환자 34명(남자 23, 여자 11)이 사망했다. 소방대원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갔을 때는 2명만이 살아 있을 뿐, 나머지 환자들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이 시설은 19명밖에 수용할 수 없는데도 41명을 수용했고, 조립식 건물의 내·외부 출입문이 대부분 잠겨 있거나 아예 폐쇄되었고, 병원 측이 환자들의 바깥출입 통제를 위해 링거 주사용 호스로 발목을 묶어놓아 사망자가 크게 늘어났다. 그런데 환자들이 거의 탈출 시도도 해 보지 못하고 얌전히 누운 채 엉켜서 죽은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을 주었다. 화재진압에 나섰던 한 소방대원은 사태 수습 후 "수많은 화재현장을 누벼왔지만, 이번처럼 ‘얌전히’ 죽어간 사체들을 보기는 처음"이라고 증언했다.

당시 현장에는 여자병실에 11명, 남자 A병실 9명, 남자 B병실 8명, 화장실 4명, 홀 2명 등이 별다른 탈출노력을 한 흔적 없이 눕거나 엎드린 채 숨져 있었다. 비교적 병세가 양호한 일부환자들만이 출구를 찾아 헤맨 듯한 흔적이 있을 뿐, 대부분의 사망자들은 각자의 방에서 그대로, 또는 2,3명이 서로 껴안은 채 발견되는 등 전쟁에서나 볼 수 있는 참상을 남기고 있었다. 물론 이 사건은 1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어서, 지금과 비교하기 어렵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상황은 현재도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지난 2000년 11월 서울 중곡동 김경빈신경정신과에서 발생한 화재로 환자 8명이 사망했는데, 논산의 사건과 유사한 상황에서 벌어졌다. 이 병원에는 알코올중독환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데다, 폐쇄 감시를 위해 통로를 막고 쇠창살을 설치해 8명 사망이라는 큰 피해를 냈다.

이런 사건들 외에도 장애인시설의 화재가 종종 일어나고 있는데, 대개 가건물이고 스티로폼 같이 화재에 약한 재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소방시설도 제대로 구비하고 있지 않고 화재 시 관리자가 없어 곧바로 참사로 이어진다는 점이 큰 문제이다.

지난 1999년 7,8월 경기도 건설안전관리본부가 실시한 <어린이, 노약자 등의 이용시설에 대한 안전관리실태조사> 결과 30%가 소화기 미비, 누전차단기 고장, 비상통로 미확보 등 대형화재 발생 시 큰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조사 당시 경기도 내 노인 및 장애인시설 64곳 중 59곳이 재난위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몇 가지 사례만을 살펴보아도 대다수의 미신고시설들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재해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단지 장애인들이 그날그날의 생존을 연명하는 데만도 급급함을 알 수 있다.

 

보험가입 거부도 한 몫

재해 시 장애인 차별을 조장하는 것은 안전불감증만이 아니다. 보험 차별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 간 국내 주요 10개 보험회사와 6개 손해보험회사의 보험계약인수지침 등의 조사에 착수해 74개 장애인시설에 대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장애인시설이라는 이유로 상해보험·여행자보험·화재보험 등 대인배상특약 가입을 거절당했다고 응답한 곳이 30%에 달했다. 장애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거처의 화재에 대비한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실제로 1999년 통계에 따르면, 전국 장애인복지시설 193개 가운데 72%만이 대인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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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5일 정오에 인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선착장에서 ‘故 이현준 열사 15주기 추모제’를 마친 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이 추모제에 쌓여 있던 국화꽃들을 한 송이씩 바다로 보내고 있다. 꽃들이 던져지는 지점은 이현준 열사의 유족이 15년 전 새벽 썰물 시점에 갯벌 위로 내려가, 그의 마지막 흔적을 뿌려놓았던 바로 그 자리이다.

재해 시의 실제상황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지난 2001년 9·11사건으로 사라져 버린 세계무역센터빌딩. 이 빌딩은 10년 전인 1993년 2월 16일에도 지하주차장 폭탄 테러로, 지하주차장 밑에 있는 지하철역 천장이 무너지고 건물이 크게 흔들리고 전기가 끊기는 등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다. 1976년에 설립된 장애인의 생명 안전과 관련한 특별행동대의 사무국장인 에드워너 주이렛은 세계무역빌딩 사건과 관계하여, 장애인의 피난 문제를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주이렛은 뉴욕시 소방국을 재촉하는 한편, 뉴욕 및 뉴저지항만공단(Port Authority)의 특별 조치를 근거로 폭발 당시 세계무역센터에서 실제로 피난을 경험한 27인의 장애인을 대상으로, 사고 후 발생한 다양한 문제를 검증하기 위해 1993년 7월 인터뷰를 실시했다. 이 인터뷰는 ‘테러리스트의 폭탄에 의한 혼란과 경보 속에서 청각장애인은 긴급 지시를 어떻게 수취했을까? 체중이 100kg을 초과하고 50kg 가까운 휠체어에 실렸던 지체장애인 남성은 도대체 어떻게 계단을 내려왔을까? 천식이나 심장장애를 갖고 있거나, 또는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연기가 가득 찬 공간에서 어떻게 긴급 피난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했다.

인터뷰의 결과를 대략 살펴보면, 피난 시간은 1시간에서 9시간 이상 걸린 사람까지 다양했으며 평균 3시간 20분 정도를 소요했다. 19층에 있었던 사람은 좌측 편마비로 다리에 보조기를 착용하고 있고 지팡이를 사용하지만, 피난하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5층까지는 자력으로 계단을 내려왔지만, 다리 경련과 현기증을 느껴 다른 사람에 안겨 내려왔다. 인터뷰 대상자 중 5인 정도가 40분에서 90분까지 비교적 단시간에 피난이 가능했다.

71층에 있던 청각장애인은 컴퓨터의 전원이 멈추었을 때 처음 이상을 느꼈다고 말했다. 폭발음도, 충격도 감지할 수 없었지만 동료들이 떠들썩하는 것을 알았다. 그는 청각에 장애가 있는 동료로부터 연기가 차고 있다고 들은 뒤 계단을 통해 대피했다. 가장 길었던 대피시간을 경험한 사람은 양 무릎 아래 다리를 절단하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으로, 70층에서 피난하는 데 무려 9시간 이상이나 걸렸다. 그에 따르면 다른 이들에게 부담을 주고 이러한 상황에 동료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당초 피난하지 않고 구조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의 상사와 몇 명의 동료가 함께 남았다. 연기가 점점 차오르자, 사무실 내부의 아래로 내려갔다.1시간 정도 기다리다 항만공단경찰에게 연락하려고 했지만, 통화중이어서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오후 4시 반 경 경찰이 도착하자 무선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처음 경찰관이 온 것은 2시간 후였다. 8시 반이 되어 경찰과 구조대가 도착해, 중간피난층인 43층까지 그를 안고 내려왔다. 이후 일단 휴식한 후 아래까지 내려왔다.

 

재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 사건이 있은 후 세계무역센터 측은 장애인에 대한 대책을 세웠다. 세계무역센터 측이 3주 후 작성한 비디오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점이 강조되고 있다.

첫째, 주전원부, 전원, 그리고 디젤 비상발전기의 3중 전원장치가 건물 밖에 설치되었다. 따라서 전원이 완전히 차단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게 됐다. 두 번째, 휴대폰이 건물 곳곳에 비치되었다. 그리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계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EVAC-Chair(계단이동의자)가 배치됐다. 또한 응급센터가 확충됐다. 뿐만 아니라 배연 팬을 위한 비상전원도 확보되었으며, 계단코와 난간에 형광테이프를 붙이거나 형광 도료를 칠했다. 계단으로부터 실내에 돌아올 수 없도록 할 경우에는 그 취지를 명기하고 계단 수를 표시했다. 계단 입구에는 쌍방향 통신시스템이 설치됐다.

단 한 번의 재해로도 그것을 경험했던 장애인들과 인터뷰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안전책을 세우는 나라, 재해를 방지할 수 있는 시설구조는커녕 재해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리자조차 없는 우리 현실. 장애 때문에 이동에 한계를 가진 사람들이므로 별다른 방법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는 관계자나 정부는 잠재적인 살인자나 마찬가지다. 편의시설이 단지 장애인만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듯, 재해를 대비해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인 대안을 하루속히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작성자글. 故 이현준 열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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