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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이것이 문제다] 에덴하우스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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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장애우 자립작업장에서 장애우들이 신음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열악한 작업환경과 인권유린, 그리고 철저하게 운영자가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전락되어 버린 혐의가 짙은 임의단체 장애우 자립작업장 문제는 최근 묻혀져 있던 에덴하우스 내 자립작업장의 그간 실태가 밝혀지면서 매우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단적인 예로 처음 빚을 얻어 시작한 에덴하우스는 이제 수억원의 자산을 소유한 복지법인으로 발전했지만 수용되어 있는 장애우들의 처지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에덴하우스, 무엇이 문제인지 그 내막을 밝혀 본다.

<·후원을 받기 위해 장애우들을 빌려오기도 해>
 장애판 관계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에덴하우스(서울 구로구 개봉1동 50-8 소재)는 지난 83년 말 전 국가대표 유도선수였던 정덕환(45세)씨가 서울 구로구 독산3동에 있는 4층 건물 내 방 한 칸을 빌어 다섯명의 장애우를 데려다가 숙식을 제공하며 자립작업장을 개설한 것이 그 시초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에덴하우스 원장을 맡고있는 정덕환 씨는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직업재활과 영적 재활을 병행하여 나가는 장애우 공동체를 꿈꾸며 에덴하우스를 설립했다고 하는데 에덴하우스는 여타 신앙 공동체가 그랬던 것처럼 설립 속이 곧 방송전파를 타게되고, 방송을 듣고 찾아오는 소외된 장애우들이 늘어나면서 30∼40명 가량의 장애우들의 일시에 수용, 장애우들에게 주로 전자부품을 조립하는 하청작업을 시키면서, 한편으로는 각처의 후원을 받으며 성장을 거듭, 구로 5동 빈교회 건물을 거쳐 87년 11월에 개봉동 현부지로 확장 이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에덴하우스가 설립될 당시 정덕환 원장의 제의를 받고 관리직으로 함께 일했다는 한 관계자는 에덴하우스의 초기 실정에 대해 일정한 자본이 없이 시작한 에덴의 집(에덴하우스의 초기명칭) 운영은 처음부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면서 스물다섯명 부식비가 하루 천 몇 백원밖에 안될 정도로 비참한 실정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장애우들게게 일은 시켰지만 단돈 몇 만원의 임금도 제대로 지급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에덴하우스를 설립할 당시 정덕환씨의 재산은 한 아파트단지 내 청과물 가게를 부인이 운영했던 것이 전부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관계자는 덧붙여 실정이 열악하다보니 자연히 각계의 후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는데 정덕환씨는 후원금을 받는데는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 측근들을 놀라게 한적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교회를 옮겨다니며 후원을 받고 그것도 모자로 외부로는 20∼30명밖에 안 되는 수용장애우들을 70∼80명에 이른다고 선전해 후원자들이 찾아오면 다른 장애우 단체에 요청해 장애우들을 빌려오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기업체에 수용장애우 명의로 "우리 원장님이 우리들을 위해 노심초사 수고하신다"면서 "우리 원장님을 도와달라"고 애절한 편지를 쓰게한적도 있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덕환씨는 그의 수기「절망은 없다」에서 "그 시절 우리와 관계를 맺은 적도 없는 산정중학교에서 위문품을 가져오는가 하면 지하철 공사에서 갑자기 지원을 받게되었고, 그 외에 예상치 못했던 도움이 쏟아졌다"고 술회해 이 관계자의 주장이 상당부분 근거가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닭 두 마리로 50여명이 먹는 등 비참한 생활 이어져>
 에덴하우스는 85년 6월, 그간 세들어 있던 건물이 은행 빚에 넘어가 매각되면서 1천만원 가량의 은행 융자를 받아 구로 5동내 빈 교회 건물로 이전을 하게 된다. 그때는 어느새 수용장애우가 50여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려운 에덴하우스 실정이 연이어 방송전파를 타자 태광하이텍 등 전자회사에서 일감을 맡겨와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수용장애우들의 생활 실태는 역시나 비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점은 정덕환씨가 그의 수기에서 "숙소가 좁아서 한방에 20∼25명씩 자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한명이 화장실에 가려면 방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다 헤치고 가야 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잠을 깨곤 했다. 더구나 화장실도 하나뿐이고, 좁아서 한번 이용하려면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차례를 기다려야 했을 뿐만 아니라…"라고 술회하고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와 연관지어 당시 수용되어 있던 한 장애우는 닭 두 마리를 가지고 50여명이 먹어야 했을 정도로 생활이 비참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겨울에는 김치와 김치국이 부식의 전부였고, 여름에는 연료를 아낀다고 오이냉국만 해줘 장애우들이 배탈로 고생을 하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당시 에덴하우스는 작업환경 또한 매우 열악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에덴하우스에 몸  담고 있었던 장애우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에덴하우스 내 장애우들은 전자테스타기 조립과 무선 무전기 해드부분 조립 등 전자부품 조립 작업을 설립 때부터 최근까지 해왔는데 작업과정에서 디핑(납 끓는 물에다 기판을 넣었다 꺼내는 작업)과 후가공(디핑을 하고 난 후 납이 엉긴 것을 일일이 떼어나는 작업)작업을 비롯, 선을 연결하는 납땜 작업을 주로 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작업을 창문이 보일까 말까한 반지하 건물에서 했으며, 안전장치라고는 환풍기 두 대가 고작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한 장애우에 따르면 디핑작업을 오래 한 장애우 김 모씨(39세)의 경우 피를 토한 적이 있으며, 현재 여수에 내려가 요양하고 있는 후가공 작업을 주로 했던 장애우 배모씨(35세)는 전신무력증을 앓고 있는데 의사들이 원인이 납중독에 있는 것 같다고 진단을 내린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수년째 에덴하우스에서 납땜 작업을 한바 있는 한 장애우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역시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해 수용되어 있는 장애우들이 집단으로 직업병에 걸리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자가 정덕환 원장과 대면해 확인한 사실에 따르면 우선 정덕환씨가 보여준 당시 작업장을 찍은 사진에서 기자는 납연기를 빠져나가게 하는 후왕이라는 안전장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점은 현재도 에덴하우스에 있는 한 장애우가 안전장치를 1년 전인 90년 초에서야 비로소 설치했다고 이야기 한바있어 사실여부를 가리기가 비교적 용이한 논란이었다. 결국 정덕환씨는 "시설 자체를 본인 사재로 유지하다보니 안전장치가 미흡했던게 사실"이라고 그동안 작업환경이 열악했던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정씨는 장애우 김모씨가 피롤 토하거나 배모씨가 전신무력증에 걸렸다는 주장은 금시초문이라며 절대 그럴리 없다고 앞서 언급한 바 있는 한 장애우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기자가 무엇보다 충격을 받은 것은 장애우들이 열악한 작업 환경에 방치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기 건강진단을 단 한번도 받아 본적이 없다는 사실의 확인이었다. 

<·열악한 작업환경, 납중독 걸렸다는 의혹 제기돼>
 에덴하우스내 자립작업장에서 그동안 일했던 장애우는 수백명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평균 작업인원은 50여명이었는데 이들은 아침 8시30분에서 저녁 6시30분까지의 정상근무 외에 9시30분까지 연장근무를 할 때가 부지기수였고, 한 달에 3∼4일 씩은 꼬박 철야 근무를 한적도 있다고 한 중증장애우는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고단한 작업 시간에 비해 장애우들이 받았던 평균임금은 88년의 경우 10만원에서 11만원을 넘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보너스나 연장수당도 없이 혹사당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장애우들이 받았던 임금과 관련하여 에덴하우스측이 내논 86년 12월 급여명세서에 따르면 장애우중 제일 많은 임금을 받은 경우가 7만5천원 이었고, 전체적인 평균 임금은 3∼4만원을 넘지 못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한재현씨의 경우 수령액이 2만6천4백원, 전한규씨는 2만1천5백원으로 각각 기록되어 있었다.

 이렇듯 터무니없이 낮은 장애우들의 임금에 반해 정덕환씨의 12월 임금은 무려 7십만원이 지급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충격을 주었다. 그 달 50여명 장애우 주식비가 6십만원, 부식비가 또한 6십만원으로 책정되어 있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씨는 50여 장애우들이 한달 먹는 주식비를 웃도는 높은 급료를 받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86년이지만 50여명의 인원이 한달에 1백2십만원으로 끼니를 해결하도록 했다는 것은 정씨의 도덕성과 관련 비난을 면치 못하게 하고 있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정덕환씨는 이밖에도 몇 가지 일화에서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행동들을 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여자 원생들과 봉사자들로 하여금 밤늦게까지 자신에게 안마를 하도록 시켰다던가 후원자가, 에덴하우스를 찾아올 경우 특별한 중증장애우를 사무실을 왔다갔다 오가게 한 후 내가 이렇게 심한 장애우를 보살피고 있다고 자랑한 적도 있고, 또한 후원자들 앞에서 어리숙한 장애우를 불러 실제로는 임금을 많이 주지 않으면서도 많이 주는 것처럼 가장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덧붙여 한 장애우는 정덕환씨가 평소에 원장님이란 호칭보다는 사장님이란 호칭을 더 선호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와 연관지어 다음과 같은 일화를 관계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88년 여름, 에덴하우스내 장애우들이 작업환경과 생활환경 개선, 그리고 후원금 내역을 밝힐 것을 요구하면서 집단으로 이틀 간 작업을 거부한 적이 있었다. 당시 정덕환씨는 후원금이 쓰인 내역에 대해 장애우들 숙식에 다 쓰였다며 무마를 하려고 했다고 한다. 장애우들이 구체적으로 얼마가 쓰였는지를 밝힐 것을 재차 요구하자 정덕환씨는 "나는 사업주다. 사업주는 이익을 남겨야 한다. 이익에 대해서 왜 왈가불가 하느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는 것이다.
 몇몇 장애우가 "그렇다면 좋다. 그런데 왜 우리를 파느냐"며 재차 항의하자 정씨는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라는 말로, 장애우들의 항의를 묵살해 보려 결국 몇몇 장애우가 에덴하우스 자립작업장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 일화의 내용이다.

<·왜 우리를 파느냐 항의한 적 있어>
 그밖에도 정덕환씨는 관리직에 인척을 앉혀 인척들이 일을 잘 못하다던가 외출금지를 어겼다는 이유로 장애우들을 구타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앞서 살펴본 내용 중 문제가 되고있는 후원금 내역에 대해서는 관계자들은 에덴하우스를 후원하는 후원자들은 외국에 있으며, 그 수는 수백명에서 수천명에 이르고 후원금은 많을 때에는 한달 기천만원, 적을 때는 수백만원에 달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덕환씨는 들어오는 후원금을 그때그때 원생들에게 전부 지급해서 현재는 오히려 적자라며 후원금액 수가 만만치 않다는 세간의 지적을 부인했다. 그러나 정덕환씨의 이러한 부인은 후원금 장부를 보여달라는 기자의 집요한 요구를 끝까지 거부했고 동석한 경리로 근무하는 여직원이 "전자작업을 했을 때는 몇백만원 정도가 항상 모자랐다. 후원금을 떼어서 메꿀 수밖에……"라는 설명을 황급히 정씨가 제지한 정황으로 보아 후원금의 쓰임 내역에 대해 의문을 풀지 않을 수 없었다.
 정덕환씨는 이렇듯 자신과 관련된 비난과 의혹에 한 사실을 격려는 못해줄망정 매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덕환씨의 해명의 요지이다.

<·정덕환씨, 에덴하우스 의혹 없다 주장>
 3월말 현재 에덴하우스내 자립작업장은 그동안 해온 전자부품 조립 작업 대신 한달 전부터 서울시내 각 구청에 납품하는 쓰레기 비닐봉투 제작작업만을 하고 있다. 쓰레기 봉투 제작은 얼마전 한 일간지에 보도되어 여론의 동정을 산바 있듯이 수의 계약으로 독점 공급해 오던 것을 각 구청이 공개 입찰방식으로 전환하는 바람에 판매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덕환씨가 비닐봉투 생산작업을 시작한 것은 3년 전 88년부터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흥시 신천동 83번지 일대 땅 70여평에 별도의 공장을 설립, 비장애우를 고용해 작업을 해왔는데 비닐봉투를 제작 판매해 생기는 수익과 관련, 한 관계자는 에덴하우스 간부회의 때 나왔다는 이야기를 인용하며 1년 매출액 20억, 한달 수익이 1억원을 웃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덕환씨는 1년 매출액이 50톤×1백50만원인 7천5백만원에 그치고 있다면서 20억원 운운 주장은 터무니없는 낭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편 정덕환씨는 지난해 12월 6억2천여만원의 자산으로 복지법인 에덴하우스를 설립, 가까운 시일 내에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시설을 현재의 부지위에 건립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복지법인 설립인가를 받게된 경위에 대해 정씨는 87년 4월경 교회 간증 때 알게된 어느 집사가 내논 현재 부지 2백3십2평을 2천만원 빚을 얻어 구입했다며, 그동안의 지가 상승으로 땅 자체가 10억원을 호가해 땅을 자산으로 복지법인 인가를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세간에서 제기하는 의혹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정씨의 주장이다.
 이렇듯 정씨는 자신의 입장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에덴하우스에 몸담았던 관계자들은 정덕환씨의 복지법인 설립과 관련해, 어쨌거나 정씨가 수용되어 있는 장애우들의 희생 위에서 법인을 설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장애우들의 처지는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고 정씨를 비난하고 있다.

 이런 관계자들의 비난을 뒷받침하듯 에덴하우스내 한 수용장애우는 에덴하우스의 최근 실태에 대해 전체 45명의 장애우중 아직까지 3만원의 월급을 받는 장애우가 5명, 6만원의 월급을 받는 장애우가 6명이 있는 등 신천리 공장에 근무하는 비장애우들이 60∼70만원의 월급을 받는데 비해 형편없이 낮은 임금체계가 개선되지 않고 있고, 식사 또한 일반인이 먹기 대한 해명에서 "환경 개선은 제도권(법인) 안으로 들어가서 할 생각이며, 후원금을 밝히는 것 자체가 바람직스럽지 못하고, 중증장애우를 후원자들에게 보인 것은 후원자들의 인식개선을 위한 내 스타일이며, 수용 장애우들에게 복지시설보다는 근로시설 이라는 개념을 시간 날 때마다 주지시킨 것은 에덴하우스는 자활 능력을 키우는 곳이기 때문에 당연하며, 장애우들에 대한 관리상 구타는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자신이 월급을 받은 것은 소신 있게 일하기 위해 받았다며 자신을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주로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덧붙여 정덕환씨는 "자신이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우 자립작업장을 만들었고, 이런 시설은 이 땅에 단 한군데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며 "지금 이 순간까지 자신이 해온 사업 중에서 오점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원장직을 사퇴할 수 있다"고 소신 있게 일해 왔음을 강조했다. 임의 단체가 복지법인으로 발전에는 힘들 정도이며 화장실 변기가 다 고장나는 등 시설환경 또한 열악한 실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나마 낮은 임금도 두 달째 밀려 있는 상태이며, 비닐 작업 시 먼지가 많이 발생하는데도 에덴하우스 측은 안전장치 설치를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에덴하우스에 수용되어 있는 장애우들은 오갈 데가 없어 할 수 없이 있는 장애우들이 대다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장애우들은 애초의 자립작업장 설립목적인 자립과는 거리가 먼 힘든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데 장애우들이 문제제기를 할 경우 정씨의 측근들은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 너희들 아니라도 들어오고 싶어 안달하는, 너희들 보다 장애 상태가 양호한 장애우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반 협박성 발언을 서슴치 않은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더해 주고 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상 언급한 에덴하우스 이외에도 에덴하우스에 있다가 불만을 품고 갈라져 나간 소위 장애우 자립작업장을 표방하는 단체는 현재 평화의 집, 인천 다솔, 태멘, 엠마오 등 대여섯개 단체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단체 또한 실정이 에덴하우스와 비슷해서 대부분이 장애우들을 고용해 주로 전자부품 조립하청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기자가 취재 때문에 방문한 한 단체의 작업장 내부 또한 납연기가 심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안전장치 하나 제대로 없는 위험한 작업 환경에 방치된 채로 장애우들은 무심한 눈길로 전자부품 조립작업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에덴하우스에서 만난 한 장애우의 다음과 같은 하소연이 가슴을 쳤다.
 "나 자신은 몸도 망가지고 월급도 쥐꼬리만하게 받고 있지만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에덴하우스를 나쁘게 얘기하지 말아 주십시오. 원장님이 비닐 봉투가 팔려야 월급을 준다고 했습니다. 어떡합니까 먹고살아야지요……"

글/이태곤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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