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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3] 생존의 벼랑 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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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장애우들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장애우 관련 두 개의 법안이 제정되었다지만 장애우들이 처해있는 열악한 실정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생존의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기층 장애우들, 그들의 현실을 통해 장애우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는 확보되었는가를 묻는다.

<·3월 중 일어난 두건의 장애우 자살사건>
 장애 때문에 소외된 대다수 기층 장애우들에겐 먹고사는 생존만큼 절실한 명제가 따로 없다. 하루 세끼의 밥을 먹기 위해, 그리고 누추한 공간이나마 몸을 누이고 쉴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그들 기층 장애우들은 오늘도 구걸로, 행상으로, 노점상으로 나아가 열악한 작업환경의 공장에서 품을 팔며 생존을 위해 버둥댄다.
 혹자는 이런 기층 장애우들의 처지가 비장애우 도시빈민들의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이야기 하나 명백히 도시빈민과 기층 장애우들의 처지는 일정부분 차이가 상존한다.
 어쨌거나 기층 장애우들은 장애 때문에 더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고, 생활이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일찌감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아래서 생존마저 위협받는다면 비장애우들보다 더 큰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존의 벼랑끝으로 내몰려 할 수없이 죽음을 택한 수밖에 없는 기층 장애우들, 이것이 91년 3월 국민소득 5천불 시대에 사는 이 땅의 기층 장애우들의 현 주소이다.

 지난 3월 2일 오후 11시 20분 경 서울 용산구 원효로 2가 43-2 골목길에서 장애우 장충식(41세)씨가 부근 건물의 3미터 높이 물탱크에 스스로 전기 줄로 목을 매 자살했다.
 3년 전 저혈압 등 지병이 겹쳐 큰 병을 앓아 몸 반쪽을 거의 못쓰는 반신불수의 중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씨는 이날 포장마차를 하기 위해 자신이 미리 장소를 보아 두었던 신한은행 용산지점 앞에서 철거반원들이 무차별 노점들을 철거하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포장마차를 할 수 없게 된 처지를 비관, 실의에 빠져 목을 맨 것으로 밝혀졌다.
 생전의 장씨는 생활이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용산구 용문동에 있는 보증금 40여만원에 월세 12만원의 셋방에서 노모와 부인, 그리고 3남1녀의 자녀들을 부양하며 7년 전부터 노점상으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해 왔는데 최근에는 그나마 수입이 변변치 못해 집세 보증금마저 모두 까먹고 월세마저 열 달치나 밀려 집주인의 방을 비워달라는 독촉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장씨는 그동안 병원비가 없어 몸이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으며, 노모가 파출부 일을 해 벌어오는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약값을 하며 집에서 요양한 것이 치료의 전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생활하던 장씨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지난해 10월경이었다. 빚을 얻어 1백2십만원이라는 큰돈을 들여 어렵게 포장마차 한 대를 마련해 용산구 원효로 1가 부근에서 장사를 시작한 장씨는 불과 한달 여만에 당국의 노점상 일제 단속에 걸려 용산구청 철거반원들에게 포장마차 손수레를 빼앗겨 버렸던 것이다. 부인과 함께 포장마차를 하면서 하루 2∼3만원의 고정 수입이 들어오는 것을 기뻐한 것도 한 순간이었다.

 그 후 장씨는 포장마차를 되찾기 위해 여러 차례 용산 구청에 찾아가 눈물로 호소했으나 구청 관계자는 벌금 30만원을 내야 한다며 장씨의 호소를 묵살했다고 한다. 목돈 30만원을 마련할 길이 없었던 장씨는 하는 수없이 아들 형제와 함께 풀빵 장사로 나섰는데. 그러나 풀빵 장사는 하루 수입이 몇천원 밖에 안돼 도저히 계속할 수가 없었다. 풀빵 장사를 그만두고 며칠을 집에서 쉰 장씨는 다시 빚을 얻어 집 앞 골목에서 포장마차를 제작하며 영업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포장마차가 거의 완성된 3월 2일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장충식씨의 자살에 이어 3월 7일 인천시 부평2동에서는 역시 지체 장애우인 김병식(34세)씨가 생활고를 비관해 세들어 살던 방 부엌 처마께에 빨래 줄로 목을 매 자살한 것이 발생했다.
 한쪽 팔을 못쓰는 선천성 편마비 장애우였던 김씨는 보증금 4백만원의 전세방에서, 재활원에서 만난 역시 지체장애우인 부인과 다섯 살 난 아들과 함께 가난하지만 단란한 생활을 이어 왔는데 이날 김씨가 자살한 직접적인 동기는 심한 우울증 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생전의 김씨는 어려서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고아원과 재활원을 전전하며 자랐는데, 성장해서는 신문팔이를 하다가 10년 전부터는 가방에 수세미와 좀약 고무장갑 등 생활필수품을 넣고 다니며 각 가정을 방문해 판매하는 행상 일을 주로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다리는 멀쩡했지만 한쪽 팔을 쓸 수 없어 그나마 공장에 취직할 기회가 박탈된 자신의 처지를 몹시 비관해 왔다는 김씨는 그러나 외적으로는 생전에 주변 사람들이 짠돌이라고 부를 만큼 악착같은 생활모습을 보여줘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김씨의 자살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김씨는 자살하기 며칠 전 다섯 살 난 아들을 앉혀놓고 "무슨 일을 해서라도 이 자식만은 제대로 교육시켜야 할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결국 김씨는 3월 초 내내 날이 궂어 행상을 못나가게 되자 몹시 침울한 상태에서 찬장에 양념이 하나도 없는 등 극심한 생활고를 확인하고, 거기에다 4월부터 갚아야될 영세민 융자금 3백만원 문제로 부인과 다투게 되자 장난처럼 내가 죽어야지 자조 섞인 한탄을 하며 방을 나간 후 그 길로 목을 매 자살한 것이다.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장애우들>
 자살을 택하지 않은 끈질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기층 장애우들의 삶은 어떠한가. 신장에 사는 소아마비 장애우인 이우연(32세)씨는 요즈음 걱정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생계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는데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쉽게 가닥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씨가 얼마 전까지 했던 일은 덕풍동에 있는 악세사리 공장에서 일당 7천원을 받고 머리핀을 조립하는 단순작업이었다. 악세사리 일이라는게 원체 인건비 따먹기 사업이라 노동시간이 긴 것은 물론 철야 작업도 밥먹듯이 해야했다.
 무엇보다 이씨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비장애우인 사장이 내비치는 공공연한 차별이었다. 여섯 명이 일했던 공장에서 네 명은 장애우이고, 두 명은 비장애우였는데 사장은 월급도 차별 지급하는 등 자신을 비롯한 장애우들을 무시했다. 몇 차례 항의를 해 보았지만 통하지 않자 이씨는 공장을 그만두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 틈틈이 모은 돈으로 보증금 2백만원에 월세 5만원짜리 방을 얻고 처음에는 몇몇 중소기업에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다. 그러나 나이와 장애라는 약점 때문에 이씨는 번번이 면접에서 퇴짜를 맞았다. 그나마 이씨를 오라는 데는 가내공업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소규모 하청공장들 뿐이었다. 예전에 당했던 기억이 있어 이씨는 그러한 월급도 제대로 안나오는 공장에는 선뜻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실망하지 하지않고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공장에 취직하려고 한 달이 넘게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녀 보았으나 이씨를 채용하겠다는 공장은 나서지 않았다. 그래서 이씨는 중소기업 공장에 들어가겠다는 애초의 희망을 포기했다.
 요즈음 이씨는 노점상을 해볼까 궁리중이다. 시장마다 들러 노점 상인들에게 사정해서 덤핑물건이 나오는 루트도 알아두었다. 메리야스와 양말, 악세사리가 그중 마진이 괜찮겠다는 판단도 내렸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노점상이라도 어느 정도 자본이 있어야 하는데 이씨 수중에는 가지고 있는 돈이 없었다. 그리고 막상 노점상을 시작했다손 치더라도 걸리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단속이 심해 장소를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목발을 짚은 몸으로 물건을 떼 오는 것도 힘에 부칠 터였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생계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예전의 악세사리 공장을 찾아가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이씨는 요즈음 괴로워하고 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15년째 구걸을 해오고 있는 시각장애우 정호연(44세)씨, 그는 얼마 전까지 혼자 구걸을 했지만 수입이 변변치 않자 이 즈음에는 역시 시각장애우인 부인과 여섯 살 난 딸을 대동하고 하루종일 승객들 틈을 비집고 숨쉬기조차 거북한 지하철 통로를 누비고 다닌다.
 그렇게 해서 정씨가 버는 수입은 하루 평균 3만원에서 4만원 가량이다. 정씨는 구걸 외에는 딴 직업을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젊었을 때는 안마사다, 침술사다 해서 직업을 갖기 위한 시도도 해 보았지만 생계가 보장되지 않아 일찌감치 그만두었다.

 구걸은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 시작했다. 때때로 비애감을 맛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먹고 살 수는 있었다.
 그렇다고 구걸을 하면서 어려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간혹 가다 재수 없다는 승객들 욕을 듣기도 한다. 그리고 불시에 마주치는 공안 경찰은 정말 겁이 난다. 공안경찰에게 붙잡혀가 바구니를 뺐기고 콩밥을 먹이겠다는 협박을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여섯 살 난 딸이 공안 경찰을 보고 지레 질려서 울음을 터뜨리는 것도 정씨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15년을 지하생활을 해서 그런지 요즘 들어 자신의 건강도 별로 안 좋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죽을 때까지도 이 짓을 하리라. 정씨는 굳게 마음을 먹고 있다.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한 먹고살기 위해서는 다른 방편이 없기 때문이다.
 수원에 사는 장애우 부부 김한수(32세) 오은영(28세)씨는 자신들보다도 주변사람들이 더 두 사람을 걱정해준다.
 정신지체 장애우인 김씨와 뇌성마비 장애우인 오씨가 만나 결혼한 것은 재작년이다. 두 사람은 다 장애가 심해 달리 작업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가족들의 도움으로 여태까지 생계를 이어왔다.

 두 사람이 결혼할 때 김씨 집에서 7백만원짜리 전세방을 얻어 줘 거처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언제까지 두 사람의 생계를 가족들이 책임질 수는 없었으므로 작년 5월 가족들이 동사무소에 사정해 영세민 거택보호자 지정을 받을 수 있었다. 백미 20㎏, 보리 5㎏, 부식비 하루 7백5십원, 연료비 하루 1천원 가량이 두 사람이 최근까지 정부에서 지원 받는 혜택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문제가 생겼다. 정부에서 영세민 자격심사를 엄격히 하기로 했다며 동사무소에서 더 이상 두 사람에게 거택보호자 혜택을 줄 수 없다고 난색을 표하는 것이었다. 동사무소에서 제시한 조건은 재산이 6백만원 미만이 되어야 자격이 있다는 거였다.

 가족들이 재차 찾아가 사정을 해 보았지만 동사무소 사회과 직원은 법대로 해야 한다며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더 작은 방으로 옮기기 위해 두 사람의 가족들은 방을 알아보러 다니고 있다.
 전세 값이 폭등한 요즈음 어디 가서 6백만원짜리 방을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것이 가족들의 하소연이었다.      

 살펴본 것처럼 이 땅의 기층 장애우들은 대다수가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해 지금 이 순간도 고통 당하고 있다. 예를 든 장애우들 외에도 생존의 벼랑끝으로 내몰린 장애우의 예는 얼마든지 많은 것이 기층 장애우의 현실인 것이다. 산재를 당해 노점상으로 나섰다가 단속에 밀려 삶의 터전을 잃고 거리를 헤매고 있는 장애우들, 비장애우들의 모멸과 동정을 받으며 구걸로 연명하는 장애우들, 열악한 시설에서 미래를 포기한 채 하루를 연명하는 장애우들, 살인적인 작업환경 아래서 저임금과 차별로 망가져 가고 있는 장애우들…….

 이것이 장애우들의 자화상이다. 따라서 그 어떤 대책과 획기적인 제도가 생긴다 해도 장애우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인 생존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장애우 복지는 허구일 수밖에 없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일만이 남은 것 같다.

글/이태곤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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