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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성명서] 연대회의 제안서

기만적인 "장애인의 날"을 규탄한다

본문

 또 다시 기만적인 하루가 지났다. 
 귀를 찢는 음악소리와 철없는 10대들의 굉음 속에서, 그리고 휠체어를 미는 여·야 정치인들의 인자한(?) 미소 속에서 열 한 번째『장애우의 날』역시 마찬가지로 "법석"과 함께 그렇게 지나고 말았다.
 그 날의 행사에 대한 한줄기의 보도기사조차 싣지 않는 것은 개개의 모든 행사가 무의미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날" 자체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성명서와 공개질의서로 "장애인의 날"을 대신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자괴감을 가지면서 오늘의 이런 "패배"를 거울삼아 장애인, 아니 모든 민중이 기쁨에 넘쳐 웃고 즐길 수 있는 "참세상"의 그 날을 하루라도 앞당겨야 한다는 "결의"를 다신 한번 다져본다. <편집자>

<성 명 서>

-"장애인의 날"을 "생존권 쟁취 결의의 날"로!-

 지금 이 땅의 사백만 장애인은 풍요로운 복지국가를 부르짖는 정부, 여당의 화려한 한판 쇼의 무대 뒤 어두운 그늘에서 "생존권 박탈"이라는 삶의 벼랑으로 내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처절한 상황에 처해있다.
 지난해 말, 십여년이 넘게 사당동과 노량진 산동네 철거민촌을 전전하다 간신히 얻어 들어간 세 평 남짓 하꼬방마져 채 이삿짐을 풀기도 전에 철거반이 담장까지 뛰어넘어 와 때려  부수자 "우리가 이 땅의 마지막 철거민이고 싶다"고 울부짖으며 부엌 천정에 목을 메 자살한 고 김효순씨.

 또한, 올 삼월 초에는 마지막 생계수단인 포장마차의 꿈마저 경찰, 구청의 노점상 강력단속에 걸려 좌절당한 장충식씨가 더 이상 반신마비의 몸으로 노모와 부인 그리고 네 자녀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음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며칠 뒤 행상으로 어려운 생활을 근근히 이어가다 끝내 삶을 포기해 버린 인천 김병식씨의 경우 찬장에 소금 한줌, 간장 한 방울 없을 정도의 비참한 생활이 밝혀져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이처럼 수많은 장애인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조차 거부당하는 심각한 상황임에도 정부는 이들의 피맺힌 절규는 철저히 외면한 채 또 다시 장애인의 날을 노래와 춤, 그리고 눈물과 동정이 흘러 넘치는 한판의 "쇼"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장애인의 날」이 더 이상 우리 장애인의 삶을 짓밟고 외면하는 자들의 한낮 노리개 감으로 전락하는 것을 거부하며,「장애인의 날」이야 말로 이 땅, 어둡고 척박한 구석구석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당해왔던 모든 장애인들이 "스스로의 권리와 존엄을 되찾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는 날"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선언」을 가로막는 그 모든 세력은 반드시 사백만 장애인, 그리고 칠천만 민중의 이름으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경고하는 바이다.

생존권 보장 없이 복지국가 웬 말이냐!
사백만이 하나되어 장애인 생존권 쟁취하자!
1991년 4월 19일
장애인총연맹,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전국지체부자유대학생연합회, 장애인운동청년연합, 서울지역장애인단체협의회, 전국특수교육학과연합회.

<장애인 생존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를 제안하며…>

 지금 이 땅 4백만 장애인은 "복지국가 건설"을 떠들어대는 정부, 여당의 선전과는 정 반대로 생존자체를 위협 당하는 "삶의 벼랑"으로 떠밀리고 있다.
 지난해 말, 십여년이 넘게 사당동과 노량진 산동네 철거민촌을 전전하다 끝내 강제철거로 삶의 뿌리를 뽑히자 "우리가 이 땅의 마지막 철거민이고 싶다"고 울부짖으며 자살한 김효순씨를 비롯, 올 삼월 초 마지막 생계수단인 포장마차의 꿈마저 공권력에 의해 좌절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충식씨.
 그리고 찬장에 소금 한줌, 간장 한 방울 없을 정도의 비참함 삶을 수세미 행상으로 근근히 이어가다 끝내 삶을 포기해버린 인천의 김모씨에 이르기까지 이 땅 사백만 장애인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목적인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될 것을 강요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정부, 여당 등 소위 기득권자들은 이러한 장애인의 열악한 현실을 외면하고 자동차세 감면이나 아파트 몇 채 특혜분양 등의 기만적인 정책으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만적인 정책으로 인해 장애인간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그나마 몇 안 되는 특혜장애인 조차 결국 잘못된 정책의 희생양이 되어 "투기꾼"이라는 엉뚱한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지난 수년간 장애인들의 피어린 노력으로 쟁취한 장애인고용촉진법마저 경총등 자본측의 요구와 정부측의 무기력한 대응으로 의무고용 비율이 형편없이 축소(91년의 경우 300인 이상 기업체의 1%) 되었으며, 그나마 기업들은 벌금을 내는 한이 있어도 장애인을 쓸 수는 없다는 반사회적 작태를 드러내고 있는 일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장애인을 기만적인 복지정책의 들러리로 이용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4백만 장애인의 생존권쟁취를 위해 장애인문제, 더 나아가서 고통받는 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공감하는 모든 민주세력과의 연대회의를 제안하는 것이다.

1991년 4월 20일
<연대회의 소집을 위한 준비위원회>
장애인총연맹,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전국지체부자유대학생연합회, 장애인운동청년연합, 서울지역장애인단체협의회, 전국특수교육학과연합회.

 정무장관실에서는 공개질의서를 보낸지 한 달이 넘도록 공식적인 서면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이에 항의하는 두 번째 공개질의서를 다시 보낼 예정이다. 만약 이번에도 정무장관실의 회신이 없을 경우「예술제」에서 빚어지는 모든 문제의 책임은 대회장인 정무장관이 져야할 것이다.

<공개질의서>

발 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수 신: 정무제1장관 
참 조: 비서관
제 목: 사단법인 한국지체장애인협회(회장 장기철)의「장애인 종합예술제」의 정무장관 대회장 승인에 관한 건
 1. 4백만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시는 귀 장관의 성원에 감사 드립니다.
 2. 사단법인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주관으로 열리는「장애인 종합예술제」(91년 4월 28일)에 귀 장관이 대회장을 맡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 그러나 많은 장애인과 장애관련 단체에서는 이번「장애인 종합예술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우려를 하고 있어 본 연구소에서는 다음과 같이 질의를 하오니 91년 4월 27일까지 회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다 음 -
 첫째, 지금까지 지체장애인협회에서 열었던「장애인 종합예술제」는 막대한 소요 경비에 비해 그 효과가 의문시되는 일개 사단법인이 주최하는 행사임에도 정무장관이 대회장을 맡게 된 경위.
 둘째, 지체장애인협회는 예술제 경비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수백여 기업체와 유명인사에 정무장관 명의의 협조 공문을 남발하여 많은 기업들로부터 행사지원금 명목의 기부금을 강요하고 있다는데 이것은 정무장관의 지시인지 아니면 지체장애인협회의 독단적인 행위인지의 여부.
 셋째, 대회장은 그 행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항간에는 지체장애인협회가 이제껏 예술제 예산내역을 공개하지 않아 대회 경비를 유용하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데 대회장으로써 행사 재원조달 방법과 소요경비 등에 관한 재무보고를 받고 있는지의 여부.
 넷째, 만약 재무보고를 받고 있다면 항간의 의혹을 깨끗이 씻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이를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정무장관의 생각은 어떠한지.

 4. 정무장관께서 평소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장애인을 빌미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존재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장애인과 관련된 행사에는 항상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겉치레만 요란한 행사에 이름 석 자 빌려주는 책임 없는 자세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1991년 4월 18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 이 성 재 변호사
 

작성자이성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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