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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복지시설의 성폭행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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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역, 구타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많은 "죽음" 등 수용시설의 인권유린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욱이 이러한 수용시설에서 여성, 아동들이 당하고 있는 인권유린으로서 "성폭행"은 이들 대부분이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시설"이라는 "시설왕국"에서 행해지는 여성과 아동의 인권유린 그 현장을 고발한다.

<·"정신박약아가 말한걸 어떻게 믿어">

 지난 5월 중순 경기도 하남시 천현동에 있는 정신지체특수학교인 성광학교(교장 황의경)에서 초등부 1학년에 재학중이 최모(16)양이 이 학교 건물에 세들어 있는 기독교예술신학교(학장 염행수) 학생 서모씨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4월 중순경 일요일 보육사 강모씨가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최양이 코피를 흘리며 옷에도 역시 피를 묻힌 채 "무섭다. 오빠가 어떻게(성폭행을 지칭) 했다"며 울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학교에서는 이 사실을 최양이 부모에게 즉시 알리지 않았을 뿐 아리나 며칠 뒤 교무회의에서 한 보육사가 "성폭행" 사실을 거론하자 "공식회의에서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교장이 만류하기까지 했다.

 한편 4월 26일 성광학교 소풍날 이 사실을 처음 알게된 최양의 어머니는 학교를 찾아가 최양과 강보육사 서씨 등을 불러 사실을 확인하려 했으나 서씨는 "정신박약아가 말한 것을 어떻게 믿느냐"며 오히려 최양의 부모를 "무고죄"로 고발하겠다고 말하면서 강보육사에게도 "죽여버리겠다"는 폭언을 퍼부었다.

 또한 한때 감독 소홀을 인정하고 서씨에게 사실을 인정할 것을 종용하면서 "도와 주겠다"던 교장도 이틀 후 최양 집에 전화를 걸어 "맘대로 하라"고 하는 등 태도를 돌변 자신이 교장으로 있는 학교 학생의 인권유린 사건에 대해 사죄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의 부모에게 큰소리를 쳤다.

 피해자인 최양은 지능지수 50∼60정도로 지난해 성광학교에 입학 현재 초등부 1학년이며 전화를 받는 등 일상생활은 물론 최양의 부모가 알아보지 못한 지난해 담임 선생님을 소풍 때 만나 먼저 인사할 정도이며, 서씨의 경우 학교 마당에서 "저 사람"이라고 지목한 점, 그리고 서씨의 자취방을 알고 있는 점을 들어 여러 차례에 걸쳐 성폭행이 자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양은 현재 학교 기숙사에서 나와 집에서 쉬고 있으나 충격으로 인해 학업은 중단하고 있는 상태이며 "창피해서 더 이상 문제삼고 싶지 않다"는 최양 부모의 태도로 미루어 법적인 대응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특수학교나 시설의 여성은 "성폭행" 당한 사실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일반의 "무관심"과 "편견", 그리고 감독관청의 "묵인", "방조"를 등에 업고 "시설왕국"으로 전락한 시설에서 성폭력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몇몇 사건을 통해 "구조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성폭력"의 실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본다.

<·성폭행으로 성교육(?)-영생애육원사건->
 충남 아산에 있는 영생 애육원의 생활교양담당 정기섬 목사가 성교육을 빌미로 소녀 원생들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88년 3월 17일 구속되었다.
 영생 애육원은 85∼86년에 걸쳐 정부의 시설 지방화 시책에 의해 충남 아산으로 이전해 갔으며 정기섬 목사의 추행사실은 88년 1월 이 시설이 서울에 있을 때 자원활동을 하던 "애지회" 회원들이 방문했을 때 한 원생이 고백함으로써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원내 학생들의 보호문제, 자원활동 근거 상실 등을 우려 고발을 미루던 애지회는 개인자격으로 두 명의 회원이 인권단체인 "여성의 전화"와함께 정씨를 고발 구속되었으며, 정씨는 6월 23일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공판을 참관했던 관계자의 기록에 의하면 정씨는 5월 12일 1차 공판에서 "아이들간에 이성관계가 있다는 눈치를 채고 있었는데 한 남자아이의 다리에 피부병 증상이 심해 약을 사 먹이고 아이들을 위해 성병검사를 실시하였는데 그것이 좀 심했는가 보다" "내가 신경통이 심해 아이들에게 안마를 부탁했는데 전신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몸이 아파 고통스럽다는 표정, 울먹이는 말소리로 공소사실의 대부분을 부인하였으며,「아이들을 위한다는 그가 결국 그 어린아이들을 증인으로 법정에 세우기를 요청하였다. 지켜보는 많은 사람이 분개하였으나 그것만이 진실을 밝히는 유일한 길이라면…」

「6월 13일 "정기섭을 보는 순간 아이들이 몸을 부르르 떨더군요"」「함께 증언을 마치고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입을 꼭 다문 채 한 명, 한 명 나오는 아이들을 보며 지켜보는 모든 이의 눈가에는 물기가 어렸고 쉽게 아물지 않을 이들의 상처를 생각하며 또 한번 분노를 삼켰다.」

「들릴 듯 말듯한 검사의 5년 구형이 있고 정씨가 눈물과 함께 "…물의를 일으켜 죄송…" 운운하는 최후진술이 마치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쏘아보는 듯한 강한 시선을 남기며 퇴정하는 정씨의 마지막 한마디 "미안합니다" 누구를 향해서인가? 하지만 아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한마디를 들을 수 없었다.」(시설 문제연구회발생「우리소리」제2호 88. 7 재인용)

 그러나 이와 함께 원내의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할 원장이면서도 84∼86년에 걸쳐 원생을 성폭행 한 이기섭은 피해자인 원생이 고소를 취하함으로써 행정적 차원에서 직위해제만을 당했을 뿐이다.

 한편 영생원 사건을 계기로 육아시설활동단체들이 "영생애육원 성폭행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꾸려졌으나 영생원의 사후대책문제, 시설지방이전문제, 육아시설에 대한 사회의 그릇된 인식의 문제, 보모권익옹호문제 등 시설의 당면과제들에 대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5월 이후 재판의 진행과 더불어 해체되어 버렸다.

<·"시설왕국"-무장애육원사건->
 전북 고창군 무장애육원 이사장 김절준(57)이 원생 신모양(19)등을 성폭행 한 혐의로 88년 10월 14일 구속되었다.
 10월 11일「전라일보」는「원생 신모양이 자신이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지난 86년부터 이사장 김씨에게 안마를 강요받고 수 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으며 이 외에도 2∼3년 전부터 여자원생 12명을 두 명씩 짝을 지어 매일밤 교대로 자신의 방으로 불러 반라 차림을 시켜 안마를 가용하고 성폭행을 일삼아 왔다」고 보도해 무장애육원의 추악한 범죄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 사건을 처음 접한 무장면 Y 종합고등학교 중학교 2학년 박모 교사는 자신이 담임으로 있는 김모양(14세)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이사장이 자신을 성폭행 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육원과 접촉을 하자 김이사장이 김양에게 "소문을 내고 안마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가 부러질 정도로 때린 사실이 밝혀져 사건 내용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애육원측은 박교사가 학생을 세뇌 애육원을 말살시키려 있다고 헐뜯는 한편 "신경통 때문에 원생들에게 안마를 시킨 사실은 있으나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고창경찰서는 10월 12일 김절준 무자애육원 이사장을 "보호자 간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했는데 경찰에서 김이사장은 "간음은 시인하나 피해자와의 합의에 의한 것이므로 결코 강간은 아니다"라고 주장해 수사관들을 실소케 하기도 했다.

 한편 피해를 입은 9명의 원생은 박교사와 고창성당의 주선으로 천주교 재통의 시설로 옮겨졌다.

<·"양의 탈을 쓴 이리" -샬롬한가족선교회 사건->

 충남 천안 경찰서는 90년 7월 16일 샬롬한가족선교회 대표 김만국 목사(40)를 "보호자 간음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충남 천원군 성환리 영락교회 목사이며 샬름한가족선교회라는 장애우 수용시설을 운영해 온 "양의 탈을 쓴 이리" 김만국의 범죄사실은 "하루 밥 세끼 먹을 것을 한끼 줄여 우표와 편지지를 사서 자기들처럼 불행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다"는 영락교회 소개 방송을 듣고 이 교회를 도와왔던 이정란(여·41)씨의 고발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정란씨에 의하면 6월 20일 영락교회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던 자신에게 이 모양(22·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반신불수)이 다가와 "아빠에게 전화걸 돈을 빌려 달라"고해 "무슨 일로 전화를 걸려고 하느냐"고 묻자 이양이 울먹이면서 "김목사에게 당했다"고 말해 이 사건을 처음 알게 되었으며, 시설에 수용도어 있는 다른 장애우들로부터 더 많은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틀 뒤인 22일 부든 동네에서 영락교회에 다니는 이성애씨는 기도를 하려고 교회에 들어갔다가 난데없는 고함소리에 깜짝 놀랐다.

 "너 이 집사에게 뭐라고 그랬어"
 그 목소리는 김목사가 이양을 다그치는 김목사의 거친 목소리였다.
 곧이어 이양의 울부짖음과 함께 김목사가 미친 사람처럼 "가슴을 도려내겠다" "팔 다리를 잘라 버리겠다"는 등의 폭언을 하며 몽둥이와 발길질로 이양을 무차별 구타하고 있었으며 이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30여분 이상 구타를 계속해 "생 똥"을 싸기까지 했다.

 이날의 구타로 이양은 전치 4주의 중상을 입었으며 이러한 이양의 모습을 안쓰럽게 생각한 이정란씨가 자신의 집에서 며칠 간 안정을 취한 후 데려오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자 김목사는 "내가 어떻게 이 아이들을 모았는데 마음대로 데려가느냐 안돼!" 하면서 거절했으나 23일 새벽 김씨가 소홀한 틈을 타 빠져나와 평택 노외과에 이양을 입원 시켰다.
 25일 서울에서 내려온 이양 아버지의 고발로 천안 경찰서에 수감된 김만국은 이양이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우기며 범죄사실을 부인했으나 이양은 클래식음악을 즐겨듣고 시 쓰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20대 여성이었다.

 정신지체장애우 등 20여명이 수용되어 있는 샬롬선교회는 수용장애우의 가족들이 매달 보내는 생활비(많을 경우 1백만원까지 된다고 함)와 전국 각지의 교회와 개인적으로 보내오는 후원금 등으로 엄청난 치부를 해 86년 2천5백만원의 빚으로 시작한 교회가 3년만에 5백여평의 밭과 3천5백만원 상당의 개인주택까지 지닐 정도로 날로 번창(?)해 왔다.

 더욱이 수세식 화장실 하나 없는 초라한 시설에 대해 "이렇게 하고 살아야 후원금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집 지을 돈이 있어도 일부러 집을 안 짓는다"라고 말하기까지 해 시설운영에 대한 그의 철학(?)을 극명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재산권 싸움에 성폭행 시비마저… -의정부 "사랑의 동산" 사건>

 의정부시 호원동 "사랑의 동산"(이사장 박태현) 사건은 십 수억원에 이르는 재산권 다툼에서 시작해 성폭행 사건으로 비화한 복마전인 시설문제의 내부를 극명하게 드러내준 사건이었다.

 1950년 황금일(여·73 미국거주)씨가 설립한 "사랑의 동산"은 60여명의 원생이 수용되어 있으며 연간 예산이 1억 2천만원이나 되며 법인 자산으로 십억이 넘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경기일원의 대표적인 시설이다.

 "사랑의 동산" 사건의 발달은 90년 7월 83년 시설을 안한용(44) 목사에 넘긴 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황금일씨와 아들 황기정씨(44)가 안목사에게 원을 넘길 당시 약속된 계약 조건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안목사의 성폭행과 관련된 진정서를 작성 청와대를 비롯한 관계요로에 보냄으로써 표면화되었다.

 이렇듯 재산을 둘러싼 분규로 시작된 사랑의 동산 사태는 문제의 성폭행 녹음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성폭행시비로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그간 사랑의 동산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해오던 가성회, 푸른벗, 실천사랑 등 3개 자원봉사 단체가 "사랑의 동산 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구성하고 전 원장인 황씨가 시설의 운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성폭행 사건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공대위에서 피해자로 주장하는 ㅈ양은 의정부 모여상 1학년에 재학중인 88년 9월경 드라이브하자는 안목사에 끌려가 도봉산 모 카페에서 강제로 술을 먹었으며 보육원에 돌아온 안목사가 자신의 방에 데리고 들어가 방문을 잠그고 성폭행을 했다고 주장했으며, 보육원생들의 취사를 맡아왔던 ㅎ씨의 경우는 88년 11월 안목사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임신 4개월만에 낙태수술을 받았고, ㅇ씨는 88년 가을 안목사로부터 강간당하고 상해를 입었다고 각각 주장했다.

 고발을 당한 안목사는 피해자들을 만나 강간당한 사실이 없다는 각서를 받았으나 피해자들은 "각서는 안목사가 강요해 써준 것"이라며 각서 내용을 번복하는 등 황씨와 안목사간의 시설재산을 둘러싼 싸움이 됐다.

 안목사는 성폭행 시비가 황씨 등이 사욕을 채우기 위해 고소인들을 배후에서 선동해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일고의 가치도 없으며, ㅈ양과 ㅇ씨의 경우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시간에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시기가 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ㅎ씨의 경우 방이 머러리 떨어져 있어 강제로 끌고 가 강간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사건이 확산되자 황금일, 황귀정 모자는 미국으로 도피했으며 감독관청의 의정부 시청에서는 10월 25일 이은형원장을 감독책임을 물어 해직시키고 새로운 원장을 선임 사태수습에 나섰으나 성폭행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ㅈ씨의 남편 태모씨(24)가 안목사를 폭행해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혀 안목사의 처벌을 요구하며, 원내에서 농성을 벌이던 김모(25), 이모(22)씨 등과 함께 "폭력 및 기물손괴" 협의로 법정 구속되고 진상규명 활동을 하던 전 보육원 간호사 이모씨(34)도 "명예훼손"으로 고발되어 법정에 계류되었으나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서로 고소를 취하했으며,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안목사가 11월 말경 미국으로 떠남으로써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연장아에 의한 성폭행" 은평 천사원 사건>

 91년 2월 은평구 구산동 복지법인 "은평아동복지 천사원"(이사장 박근수 목사) 산하 보육시설인 "은평천사원"(원장 조규환·55)에서는 연장아(복지법상 만 18세 이상으로 보육시설에 수용될 수 없는 시설출신 고아)들에 의한 아동 성폭행 사건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최기훈(23), 이강수(27), 연보(40)등 연장아(?)들이 여섯살에서 열한살에 이르는 다섯명의 원생들을 수년간 성폭행 했으며 피해자 중에는 남자원생도 있는 것으로 밝혀져 수용시설의 아동보호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피해아동의 생활상담을 통해 처음 드러난 이 사건은 연장아들인 시설에 상주하면서 대낮에 피해 아동들을 뒷산에 끌고 올라가 성폭행 했으며, 연장아 문제의 대책을 요구하는 보육사들을 위협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시설운영의 파행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성폭행 사실이 드러나자 천사원측은 가해자 중 이강수를 2월 7일 경찰에 고발하고 최기훈에게는 경고와 함께 원내출입을 금지시키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천사원은 이전에도 연장아 이모씨가 보육사 딸을 성폭행해 전주교도소에서 5년째 복역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이번 사건이 "우발적"인 것이 아님과 함께 모든 보육시설 운영, 관리자들의 묵인 속에 원생들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는 소위 연장아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 그동안 정부측의 시설아동 대책이 얼마나 허점 투성이였는가를 밝혀 주었다.

 1959년 설립 이후 30여년 동안 은평천사원을 비롯 80년 정신지체아 시설인 은평소망의 집(원장 윤경숙 설립자 윤성렬 손녀), 81년 은평복지학교(교장 김재균)을 잇달아 여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직원만 90여명이 넘으며 4백여명이 넘는 장애, 비장애 아동이 수용 또는 교육을 받고 있는 "은평아동 복지 천사원"은 수억이 넘는 재단규모와는 달리 최근까지 30인 이상 수용시설에 의무적인 생활지도교사 조차 "예산이 없어" 채용하지 못하는 등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시설 운영자들이 스스로 조장하고 있음이 밝혀져 시설의 소유와 운영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시설 여성, 아동의 성폭행 사건이 끊일 수 없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또한 다른 모든 사건과 마찬가지로 천사원의 아동 성폭행 사건 역시 문제 제기를 했던 보육사가 뚜렷한 이유 없이 갑자기 퇴직하는 것으로 세간의 관심 밖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절묘한 조화(?)>

 88년 이후 밝혀진 몇 건의 사례를 살펴보면 시설여성, 아동의 인권유린으로서 "성폭행"이 시설운영자, 관리자 그리고 연장아 등을 통해 "구조적"으로 자행되고 있으며, 시설운영자는 물론이고 감독 관청인 보사부나 시, 군, 구 역시 속수무책으로 방관만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로서는 "개선"이나 "해결"의 전망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보사부가 발표한 `91 장애우복지사업지침에 의하면 현재 전국에는 139개 장애우 수용시설에 약 1만5천여명의 장애우가 수용되어 있으며, 아동복지시설의 경우 전국 338개소에 3만7천여명의 아이들이 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있는 시설의 경우이며, 각종 종교단체나 무허가 수용시설을 모두 더할 경우 그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더욱이 이들 시설은 각각 인건비의 90%와 시설운영비의 80%를 정부에서 지원 받고 있으면서도 시설만이 아니라 그곳에 보호를 위탁받은 여성장애우나 아이들의 인격까지 "내 것"으로 여기는 뿌리깊은 "사유화" 의식과 더불어 무장애육원 김절준 이사장의 경우처럼 부인이 원장으로 또 아들은 애육원 안의 부랑인 시설 "호정원" 원장으로 있는 등 친·인척을 무분별하게 운영에 끌어들여 "시설기업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시설의 사기업화와 함께 시설문제 해결의 또 다른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시설종사자들의 경우 저임금(87년말 현재 32만여원으로 전체평균 56만여원의 57%수준)과 장시간 노동(12시간 근무자 15%, 24시간 근무자 45%)에 시달려 평균 근무기간이 불과 4.4년 밖에 되지 않는 등 "사랑과 봉사" 그리고 "현실"과의 괴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구조적인 부정, 인권유린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보다는 될 수 있으면 소리 없이 넘기려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

 시설장의 "사유화의식"과 직원들의 "무사안일주의" 그리고 감독 관청의 "묵인, 방조"에 여성을 단지 "성의 도구"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자본주의적 성 규범의 절묘한(?) 조화가 시설 "성폭행"이라는 독버섯을 낳은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67년 7만, 75년 4만2천, 87년 3만7천여명 등으로 시설수용아동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반면 장애우 시설 입소자는 85년 90개소 9천3백명에서 91년 139개소 1만4천여명으로 계속 늘고 있는 형편이다.

 세계최고의 자랑하는 산업재해, 교통사고 등 이미 장애우가 양산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와 장애우의 사회참여를 철저하게 차단하고 오로지 시설로만 내모는 정책 그리고 현실을 외면하고 눈감아 버리는 우리의 무감각뿐만 아니라 인간을 오로지 착취의 도구로 밖에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자본주의라는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될 것이다.

 "아줌마 나 이렇게 매 맞았어요. 아줌마 가고 나면 나 또 매맞을 거예요. 또 매맞으면 난 이제 살 수 없어요. 은혜랑 같이 약 먹고 죽을 거예요. 제발 살려주세요…"
 김만국 목사의 몽둥이와 발길질로 만신창이가 된 샬롬한가족선교회 이경희양의 절규는 바로 우리 모두에게 외치는 "고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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