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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번역] 일본의 여성장애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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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장애우 문제는 장애우 문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장애우 문제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에 본지는 미력하나마 일본의 예를 들어 문제 제기를 하고자 한다. 이 번역의 원본은 일본 "광생관 출판사" 간행 1983년 판「장애인 복지와 인권」중 장애우 운동의 전개 부분에서 발췌한 것이다.

 장애우 문제는 바꾸어서 생각하면 여성문제와도 매우 밀접하다. 그것은 장애아를 가진 어머니로서의 정신적, 육체적 피로, 장애우 아내로서의 개호문제, 경제문제에다 여성으로서 출산, 육아, 생리 등 일상 생활 가운데서 겪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애우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나날의 고뇌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며 또 장애우의 생활을 바꾸어 나가는 하나의 힘찬 운동력이기도 하였다.
 장애우 운동 가운데서 여성 장애우 자신이 주체가 되어 활약해 온 발자취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나날의 생활 가운데서 조금씩 체험하여 쌓아 올린 발자취가 하나의 움직임으로 장애우 운동 전체의 흐름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하여 몇 가지 예를 들어 살펴보고자 한다.

<"흙 집"으로부터의 도정>

 전후의 혼란기를 거쳐 장애우에 대한 처우가 전개되어 나가는 시기에 스스로의 생활 방식을 갖추어 장애우 생활의 존재 형식을 나타내고자 한 사람이 기무라 히로꼬였다. 기무라 여사는 전신장애우로서 "세계신체장애자예술가협회"의 일원으로서 활약하고 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뇌성마비가 되었지만 남아 있는 왼쪽 발가락에 붓을 끼워 그림을 그렸고, 왼쪽 발가락의 기능으로 그는 새로운 삶을 발견하여 주체적으로 생를 개척한 사람이다. 그의 생활 태도는 노래집「발가락에 산다」「나의 반세기」에 상세하게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주체적인 생활에 대한 노력을 지탱해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노력의 시작은 어느 운동의 시작도 그러하듯이 개인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첫걸음은 수용된 시설에서 비롯되었다.
 사회복지 서비스가 생존 보장에 역점을 두고 희미하게나마 생활보장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한 시대였다. 학교 교육서비스나 복지 서비스에서의 적극적인 원조가 없는 가운데 전신성 장애우는 절대적으로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끈이 끊어졌을 때 수용시설에 의존했다. 죽을 수도 없고, 생활할 수도 없게 되면 달리 방도가 없는 막다른 골목이 수용 시설이었다.

 1960년 고도 경제성장기 분류수용시설 확충 시대의 시작도 전신성장애우에 있어서는 강건너 일과 같은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퇴소 명령은 죽음을 의미한다"라고 일컬어지는 시대, 감히 시설이라는 테두리는 나에게 적합하지 않고 위축된 나의 손을 보면서 시설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신체장애우 고민 상담소"를 방문하였다. 거기서 자립의 수단, 배설, 식사, 옷을 입고 벗는 등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배우게 되었다. 즉 생활의 지혜를 얻게 되었다.
 그의 인생의 전기에 있어서 어려웠던 것은 첫째 노래 둘째 그림이었으나 그것 역시 극복하였다.
 29세 때 "전술한" 협회원으로서 인정된 후 사회에서 뇌성마비 장애우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해 주기를 바라면서 노래집과 반생기를 출판하였다. 이 책들을 통하여 "지금 일본의 가족제도는 붕괴하고 있다. 형제는 독립하고, 부모가 늙어서 필요할 때 돌볼 사람이 없다. 장래의 보장도 없고, 심술궂은 가정의 한구석에 불치의 몸을 누이고 있다"는 진술의 그 후 "흙회" 활동의 에너지가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전해주고 있다.

 시설과 가정으로부터 버림받은 중증장애우를 위한 "휴식처" 만들기,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따뜻한 시설"만들기를 목표로 하여 그 후 흙집 운영이 결실되었다. 또한 일찍이 생활의 지혜를 얻은 체험에서 생활 훈련소를 만들고, 중증장애우가 서로 도와가면서 훈련에 힘쓰는 장소도 설치하였다.
 1983년 오끼나와에 "흙집"을 개설하였다. "흙은 인간의 생명 다음에 중요한 것이다. 흙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소화하여 새로운 것을 싹트게 하고 길러 나가는 것이다. 그와 같이 흙 집도 사상·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을 받아들여 자연 가운데서 서로 이야기하며 참된 평화를 바라는 둥지이며, 친구를 만들어 행동하며 나가는 장소이다"라고 책 중에 쓰여있다.

 이제 한 사람의 신체장애우를 위한 휴식처가 장애우라는 조건을 뛰어 넘어 일반인, 아동들에게도 번져나가고 있다. 곧 "전쟁의 참혹성을 배우고 함께 자연 가운데서 인간다움을 길러간다는"것의 긴요함을 호소하여 거기에 평화가 있고 그것을 전제로 하여 사회복지가 이루어진다는 "흙의 집" 운동의 새로운 단계를 전개하려고 한다.
 "사람과 사람과의 교제 속에서 참된 이해와 복지가 생기며, 사회 속에 참여하여 살아갈 때 진정으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방식을 느낄 수 있다"는 말에서 기무라 히로꼬씨의 운동을 지탱하는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삿뽀르 "딸기회"와 보호주택 설치>

 삿뽀르 "딸기회"를 만들기까지의 토대 구축은 북해도의 복지촌 만들기에 있었다. 그 중심은 당시 운동의 주도적 담당자였던 중도신체장애우 부모회였다.
 부모로서의 요구는 부모 없는 자식들이 생활해 나갈 수 있는 장소의 보장이었다. 그 구체적인 안이 제출된 1974∼1975년까지 부모들은 운동에 자기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해 쓰라린 생각을 했고, 그 운동을 지켜보아 온 자식들이 스스로의 요구를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착수한 것이 "딸기회"였다. 1977년의 일이었다.
 그냥 지내기에도 험한 북해도의 추운 겨울철 중증장애우가 모여서 회를 발족하게 된 것은 "그 후의 에네르기슈"(정력적이라는 말)회의동향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이 운동체의 특징은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요구를 보다 구체적이며 유효한 요구로 바꾸어 나가기 위해 스스로 실천하면서 요구를 확인해 나간다는 데 있다. 그리고 회의 중심적 멤버가 그러한 것처럼 시설 생활의 오랜 경험에서 얻어진 "그대에게 맡겨진 생활, 살아가는 것만의 생활"로부터 탈피하는 단서를 발견해 나간다.  
 그리고 그는 본래 좁은 생활의 체험 가운데서 나온 요구가 가지는 한계를 실증하고 연구해 나가는데 서부터 진짜 요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운동으로서의 위치 정립이라고 했다.
 장애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살아있는 몸으로 살아가는 연구를 하였던 것이다. 장애우 자신이 연구운동을 전개해 나간다는 새로운 방향을 보이고 있다. 장애우 운동에서 장애우 자신이 요구해 나간다는 형태는 당연한 것처럼 되어졌지만 전신성 장애우 특히 중증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립 생활을 위한 연구운동을 하는 의미는 크다. 전문직도 아니고 연구자도 아닌 본인 자신의 필요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 운동가운데서 확인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생존에서 생활로"라는 구호에 걸맞은 시대였던 기무라씨 개인 차원의 활동 시대를 거쳐 인간다운 생활을 요구한 시대에 들어서서는 물질적, 정신적 풍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복지 요구로서 확인되었고, 그 욕구와 진정한 충족이 되었는가 하는 물음이 주어졌다.
 거기에 자원봉사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과 행정당사자가 한 덩어리가 되어 그것을 풀어 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다. 특히 서비스를 받는 자와 주는 자 사이의 관계에서 도움을 받는 측의 자립심을 키워나가는 것도 동시에 지향하는 것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 요구가 아무리 합리적일지라도 남는 과제는 같은 장소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자세와 노력이 것이다.
 "딸기회"에서는 그 후 1983년 자립하는 집이라는 소규모 수산소의 활동도 시작하고 있다. 또한 그 해 겨울 북해도에서 보호주택전문위원회를 발족했다고 한다. 이 운동은 예산 배분으로 서비스의 실태가 표시된 사회복지서비스의 체질에 예리하게 다가선 것이었다.
 즉, 아무리 많은 액수의 예산을 확보하고, 아무리 값비싼 시설을 하여도 그것은 아무런 욕구의 충족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획일적인 고가의 복지서비스보다도, 사람마다 일상 생활의 스타일이 각양각색인 것처럼 서비스를 선택하는 것도 바로 그 사람이 필요한 서비스가 준비되는 것이야말로 첫째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장애우 문제를 생각하는 모임 "역풍">

 모임의 표어는 "장애 여성 일반 여성 함께 "여성"을 생각하자"라고 되어 있다. 회의의 발달은 1979년 제4회 휠체어 시민전국집회에 처음으로 설치된 여성장애우 문제분과회의였다. 거기서 새삼스럽게 문제로서 인식된 것은 집회에 대한 여성장애우 참가가 저조했으며, 발언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낳게 된 배경에는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과제가 있다는 것이 재인식되었다.
 특히 개호에 대해서도 많은 문제가 있었으며 그러한 점을 깊이 생각하여 "진정으로 대화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일이 시작되었다.
 1980년 전술한 분과회의 기획자가 중심이 되어 발족한 것이 "역풍"이었다. 일상 생활은 월례회를 한 달에 한번씩 가졌으며, 회원은 반수가 전신성 장애우로서 휠체어 사용자였으며 재탁자와 시설이용자로 구성되었다. 나머지는 일반 여성이었다.

 "여자이기 때문에 밖에 나갈 일도 없으니까 집안에 얌전히 있어라"는 생활의 이중적 어려움을 내세워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방식에 적합하게 서로 도와가면서 지탱해 가는 친구 만들기"를 지향하고 있다.
 현재 설립 7년째를 맞아 회원의 생활에 변화가 일어나 각자의 생활 방식을 찾아나가는 신념이 전해졌다.
 결코 빛나는 활동이 전개되고 있지는 않지만 역풍회의 움직임을 지켜볼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역풍"활동에서 토의된 테마를 예를 들어 살펴보자. 노동, 결혼, 생활, 화장실, 가계(용돈), 주거의 안정, 연금 등 제도, 사설 생활, 그리고 우생사상, 자궁적출 등이었다.
 노동, 연금, 주거에 관한 문제는 전국 수준의 운동에서도 논의되기 쉬운 과제이다. 그러나 남은 주제는 내놓고 공공연하게 논의하는 것이 어려웠다.

 즉, 노동이나 연금 혹은 주거에 관해서는 경제·사회 관계 속에서 탈피하여 할 부분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행정이 관여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고 요구도 내세우기 쉬웠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문제는 특히 개인적인 것으로서 일본 사회에서 금기시되어 왔다는 배경을 가지고 있어 공동 인식을 하기에 어려운 영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은 극히 일상 생활 그 자체, 혹은 생존과 밀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었다. 장애우로서 가장 마음이 쓰이는 영역인 것이다. 여성장애우의 화장실 이용이 남성이상으로 고통이 되고 있다. 그리고 출산과 육아는 여성이기 때문에 부과되는 생활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런 문제에 뛰어 든 "역풍회"도 고야마가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개호의 문제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것은 하고 싶은 것을 참는 것이 아니고 개호자 찾기의 어려움을 참고 있는 것이다. 그 힘든 것과 어떻게 맞닥들일 것인가에 대해 서로 대화하는 것에서의 해결의 길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상적인 개호를 통하여 개호를 받는 쪽과 개호를 하는 측이라는 인간관계를 통해 동지로서 전환해 가는 것,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문제를 생각하고 해결해 가는 것이 두 입장의 일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고야마씨 등이 추구하고 있는 개호의 부분과 마찬가지로 "역풍회"도 개호 문제의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개호자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장애우 역시 부끄러워하는 것이다"라는 개호의 기본 원칙이 정말로 실행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장애우와 비장애우와의 관계가 장애우측에서 일방적으로 이해를 구하는 것에 그쳤다는 지적도 있다.
 일반화라는 사상이 일상화되어 상호 침투해 볼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상 세 가지 사례에 공통되는 것은 겨우 서비스의 손이 닿으려고 하는 전신장애우라 하는 중증장애우의 문제이다.
 그리고 전국조직운동 가운데서 활동하기보다 개개의 필요성을 충족해 가느냐는 극히 손쉬운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며, 전국 차원의 운동 조직과 같은 정치력이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작성자함께걸음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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