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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문제다 1] 묵묵부답에서 발생된 것이 난동으로 밖에 볼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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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호에 발생된 일인데 9월호에 김동호 씨의 편지글을 게재하게 되어 10월호에 취재의 글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복지 사회건설을 위한 장애인복지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국립재활원이 문을 연 것은 1986년 10월 30일.
서울시 도봉구 수유동 산기슭에 자리잡은 국립재활원은 이름 그대로 우리나라 심신장애인들의 요람이다.
그런데 국립재활원에서 불미스런 일이 발생했다. 지난 9월 28일, 재활자립작업장에서 일을 하는 학생(재활원 측 명칭) 들이 자립장의 유리창과 기물을 부수고, 한사람은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전화 연락을 받고 국립재활원에 도착한 시간은 그로부터 1시간 30분 후였다.
학생들의 이름을 대면서 만나러왔다고 했지만 수위실에서는 그 학생은 외출 중이어서 들여보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경찰에 연행되어 나간 것도 수위실 직무성격상 외출(?)일지도 모르겠으나, 어느 정도의 사태를 파악하고 간 기차로서는 내부의 사태에 대해 더욱 의혹의 덩어리가 커져만 갔다.
수위실의 만류를 뒤로하고 재활자립 작업장의 위치를 물어서 찾아가 보았다. 문 앞에 깨어진 유리조각 위에 크러치가 세워져 있음은 자립 장 내부의 상황을 암시해 주기에 충분한 전경이었다.  자립 장 내부는 더욱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한쪽 벽 대형 유리창이 전부 파손되어 있고, 서있기 어려운 미싱은 누워 있었으며, 서있기가 재미없는 미싱은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가 하면, 어느 미싱은 동료미싱을 베고 비스듬하게 누워있는데 하얀 천 조각들은 널브러져 방문객들의 발길에 채어지고 있었다.
학생들이 외치는, 장애인복지의 민주화로 가기 위한 몸부림이 꼭 이래야만 하는가? 라고 의문을 던질지 모르겠으나 어느 학생은 "이러한 우리들 행위가 옳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방법 이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라고 말한다.
정말 이 방법밖에 없었을까? 를 생각하기에 앞서 왜? 라는 의문을 던져보자.
문제의 재활자립장은 올해 초에 설치되었는데, 어느 품목을 선택할 것이냐에 대해서 재활원 측과 학생들과의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원망의 대상이 된 미싱이 들어왔다. 재활원 측에서도 학생들이 희망하는 전자조립 쪽 품목구입에 노력을 했지만 안되었다. 일반기업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부족과 불신으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기업체도 장애인에게 하청을 주기란 하나의 커다란 모험이라는 생각에서 응해주지 않았던 것일까?
이러한 상황에서 미싱은 들어왔고, 일감이 생겨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학생들은 거부를 하였다. 그러나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한 번 해보고 나서 정말 힘들면 그때 다른 방향을 모색해보자" 라는 재활원 측의 설득으로 결국 일이 시작되었다. 밤늦게까지 철야작업도 하면서 신체조건이 맞지 않는 어려운 작업을 했지만 사람에 따라서 월 급료는 2만원에서 많으면 6만원선. 이러한 결과에 대해서 재활원 측은 학생들이 책임감 없이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다그칠 뿐이었단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에 앉아서 어떻게 미싱을 밟으란 말인가? 그래도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느냐는 말이 옳은 듯하여 일을 시작했지만 불편한 다리를 움직여 무리한 작업을 하다보니 허리가 아프고 도저히 할 수 없기에 다른 직종으로 바꾸어 달라고 재활원 측에 요청을 하였다. 그러나 생산실적도 높아지고 수입도 올라가고 있으니 참고해보자 고만 하고, 다른 대책을 세워달라는 요구에 "너희들이 뭐 부족한 것이 있느냐, 따뜻한 밥이 있고 방이 있는데 무엇을 더 요구하느냐", "사실 미싱 일이 불편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여기에서 일을 할 수 없다", "정상인을 입사시켜서라도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등 하청의 경로와 판매단가 당을 학생들에게 밝혀주지 않고 "너희들은 일이나 해라"는 식의 대답뿐이었다. 이에 5명의 (휠체어를 타야하는)장애인이 도저히 여기에서는 일을 할 수 없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립할 수 없고 국립 재활원에 들어온 것을 후회한다"며 자퇴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자립장 담당자는 5명이 자퇴의사를 밝혔을 때 보류를 시키고 나가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고 나서 결정하자고 설득하여 며칠 간 유예기간을 주었지만 이들은 끝내 퇴사를 하고 말았다. 그 후 퇴사 자들은 다시 재활원에 들어오고자 희망을 밝혔지만 다른 시설이 마련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들어와야 무얼 하겠느냐며 받아주지 않았고 그 사람들의 지체특성에 맞는 작업이 준비되면 들어오기로 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자립장 담당자는 현재 인원 12명 전원이 미싱을 밟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싱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몇 명이 미싱을 밟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실밥을 뜯는 등의 보조 일을 하므로 조화를 이루어가며 일을 해 나갈 수 있다고 한다.
7,8,9월, 일을 해 보고 나서 월수입 10만원 수준이 안되면 다른 직종으로 돌려보자는 재활원 측은 오후 6시까지만 일을 해도 월 10만원 수입이 된다고 했지만 학생들은 그때 가서 장애인올림픽과 추석연휴 등 급료인하의 명분을 들고나올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 작업에 대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으며, 다른 품목으로 대체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판에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고 새로운 미싱 한 대가 추가로 들어와 이에 격분, 결국 이런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자립장으로 할당되는 예산은 따로 없으며, 작업실적에 따른 수입전액을 가지고 학생들을 3등급으로 분류 능력별 차등급표를 지급해 주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늦게까지 일을 하면 하는 만큼 수입이 올라가니까 철야작업에 따르는 학생들의 불만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하청업자들로부터 일정량의 목표량을 일정기간 동안에 납품을 해야하므로 늦게까지 일을 해야하는 경우가 있었으리라
오후 4시가 되자 원장 및 훈련과장과 재활자립장 담당자 그리고 학생들은 난장판이 된 자립장에 모여 서로의 의사를 밝히는 토론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학생들은 지금까지의 문제점과 요구사항을 토론했는데, 학생들의 요구사항은 "미싱 일은 도저히 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부터 미싱 일은 하지 않겠으며, 하루 8시간 근무에 월수입 10만원을 보장해 주고, 시설허용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장애인을 수용해야 하며, 장애인에 대해 좀더 알고 이해해줄 수 있는 전문요원을 자립장에 배치시켜줄 것과 보사부장관의 면담"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이홍윤 원장은 미싱 일에 대해서 학생들이 거부한다는 소식을 듣고 1개월 전에 다른 직종으로 바꿀 수 있도록 지시를 했으며, 현재 장애인들이 실시하고 있는 작업장을 학생들과 함께 견학할 수 있도록 해서  함께 직종을 선택해보자고 제의하고, 8시간 근무에 급료 10만원은 현재로서는 확실한 보장을 할 수 없으며, 시설이 허용하고 작업량에 따라 최대한 수용할 수 있는데 까지 장애인을 수용할 계획이며, 보다 효율적인 재활원 운영을 위해서 당국에 전문요원을 요청해 놓았다고 밝혔다. 또한 이원장은 보사부 산하단체에서 사용하는 물품들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추진 중에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 국립재활원 재활자립장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은 전자제품조립이라는 그들의 희망하는 일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무너뜨리고 난데없이 미싱이 들어온 데서부터 싹트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계속 업종을 변경해줄 것을 계속 건의했지만 들어주지 않고 미루어오다가 미싱 한 대가 또다시 들어옴으로 해서 학생들의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를 관심 있게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고 그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자립 장안만을 맴도는 힘없는 울림이 되어버렸을 때 자신들의 무기력함에 대한 분노는 매우 컸을 것이다. "이러한 행동이 잘했다고는 볼 수 없으나 이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에게 우리의 입장을 알려서 심판을 받아보고자 했다"
그러기에 학생들은 자기들을 계속 기만했다고 생각하는 재활원 직원들과의 면담 때에는 본의 아니게 기자가 그 자리의 증인으로 서게 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그러한 것을 원하는 학생들의 의도를 알아챈 재활원직원은 기자의 재활원 방문이 학생들의 난동을 부채질한 것이 아니냐는 식의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다.
앞으로의 수습대책에 대해서 묻자, 이원장은 다른 직종이 생길 때까지 미싱일 을 할 수 있는 장애인에게는 계속 자립장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하며, 내년으로 추진하고 있는 재활자립장이 완공되면 더 많은 장애인들이 여러 직종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립 재활원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재활원이기에 구성원들의 틀에 박힌 경직된 업무 등으로 창의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조직이다. 그랬기에 학생들의 요구를 융통성 있게 대처해나가지 못하고 원칙론만을 되풀이했다.
이런 일은 국립재활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우리나라 모든 장애인이 겪는 사회 속의 문제이다.  이보다 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금니를 깨물고 가난과 싸우면서 아무소리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 들의 고통은 누가 알아줄 것인지.
"장애인을 이웃으로 감싸주어야 한다. 장애인들은 자긍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이원장의 말을 뒤로하고 문을 나서면서도, 그전에 자립장 담당자가 난장판이 된 자립장에서 널브러진 천 조각을 주우며 "이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잖니, 일감을 우리에게 맡겨준 사람 것이잖니?" 라는 말에 "그냥 놔두세요. 지금까지 일한 것에서 그만큼 까버리면 되잖아요" 란 말이 머릿속에서 따나지 않는다.

작성자함께걸음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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