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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림픽 후] 먹다 남은 찬밥이 되지 않아도 되었을 패럴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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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굳세게, 끝까지를 대회 이념으로 한 제8회 패럴림픽도 곰두리가 잠실벌 하늘 위로 둥실 떠오르며, 바르셀로나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10이간 밝혀 준 성화도 꺼졌다.
수많은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한 생의 한 가운데를 보여준 88서울 장애인 올림픽은 한계성을 뛰어 넘은 도전과 극복 그 자체였다.
사각장애인과 달리는 모습에서 한쪽 다리로 부서진 의수, 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멀리뛰기에서 신기록을 낸 미국선수의 모습에서 우리는 느꼈을 것이다.
결코 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장애를 입었다고 해서 몸이 불편한 게 수치스럽지 않다는 것을, 기형의 몸을 떳떳이 내 보이면서 자신 있게 걸어다니는 외국선수들의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서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선수들이 투혼을 보이는 것에 비해 관중들의 정신은 못 미쳤다. 그저 대단하구나 , 저럴 수가 있을까? 저런 몸으로 무슨 희귀한 동물을 보고 감탄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고, 또 관중이래 보았자, 유치원생, 할머니, 할아버지, 노인들과 어린 학생들뿐이었다. 가끔가다 자매결연 맺은 선교회 등의 응원이 보였고, 그 외에는 텅 빈 좌석뿐이었다.

"장애인 올림픽 관중이 없다" 매스컴을 타고 흘러나오자 부랴부랴 학생들을 동원 견학이니 현장실습이니 하며 경기장 좌석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억지 춘향은 그들에게 경기장을 둘러보며 구경하는 것에 불과했다. 야외 촬영 으리으리한 잠실 경기장 앞에서 기념촬영이 더 재미있는 노인과 학생들, 대중에는 "정말 몰랐습니다. 장애인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자기 자신이 부끄럽다는 김관호(21세 홍은동)씨는 건강한 몸을 가지고도 항상 불평불만을 했던 자기 자신이 부끄럽다고 했다. 또 어떤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외국 선수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아프다고, 기형의 몸을 드러내면서 당당한 모습으로 자유스럽게 행동하는 외국선수를 보며, 한국선수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볼 때는 가슴이 저미어 왔다."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더라도 우리나라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꼭 메달이 목적이 아니다. 참가하는데 목적이 있는 외국선수들에 비해 우리나라 선수들은 메달을 따야한다는 생각과 연금문제까지 결부되어 있었다.  그 피나는 훈련과 코치들의 사고가 바로 굳은 표정으로 만들었고 그동안의 장애인 복지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면 변명일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우리의 장애인들은 움츠릴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여건 속에서 견디어 왔다. 물론 본인에게도 문제가 있다. 장애 자체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도 필요하며 이 모든 환경 적인 여건을 물리치고 스스로 일어 설 수 있는 태도도 중요하다.
아무튼 우리는 이러한 여건 속에서 패럴림픽을 치렀다. 시작하기 전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마친 이번 패럴림픽이 우리에게 시사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모든 면에서 긍정적으로만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보다 이것을 계기로 고쳐야 할 점이 무엇인가를 다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 시기적인 것에서부터 문제성이 방출되었다.
먼저 패럴림픽이 10월 15일 개막한데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87년 모일간지의 기사를 보면 "장애인 올림픽 내년 6월에 개최"라는 타이틀과 함께 "장애인 올림픽은 당초 88서울 올림픽 직후인 내년 10월에 열 계획이었으나 88서울올림픽 최종 준비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문제가 제기돼 앞당겨 개최키로 결정했다." 는 기사가 있었다.
그런데 왜 10월로 미루어졌는지를 따지기 전에 이것은 당연히 앞당겨야 할 여지가 있었다. 그 이유인즉 이번 패럴림픽에 서 보듯이 "찬밥" "먹다 남은 찌꺼기"라는 단어를 갖다 대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조직위에서 말하듯이 "많은 거부반응이 있었지만 이것은 홍보이자 인식 적인 측면에서 꼭 치러져야 했다."는 주장이 라면 당초 계획했던 대로 6월에 개최해야 했다.

둘째 : 준비과정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전과 극복, 평화와 우정, 참여와 평등>의 대회 이념 아래 60개국 4천 2백 8명이 참가한 개막식은 어떠했는가?
"88서울 올림픽 때 표가 없어 개회식에 참가 못했을 뿐더러 그나마 암표라도 있으면 들어가겠다는 열망에서 3만 원짜리 좌석 표가 3백 만원까지 되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주 경기장을 가득 채운 반면 "88패럴림픽은 빈 좌석이 눈에 띌 정도로 많았고 개막식 때 출연작품 9개 중 7개가 하계 올림픽 때 연출된 작품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공무원들은 하계 올림픽기간 동안 비상 근무했다고 집에 가서 쉬라는 휴가철이 패럴림픽이 진행되고 있을 때라는 사실 또한 정부에서 얼마만큼의 관심을 보였느냐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사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조차 "하계 올림픽" 때와 "패럴림픽" 때를 보면 전혀 틀려요. 패럴림픽이 열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도 있어요" 라는 공무원의 말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얼렁뚱땅 큰 (하계 올림픽)것이 잘 치러졌으니 작은(패럴림픽)것쯤이야 하는 식의 인식에서 출발하지는 않았더라도 겉으로 들어 난 결과는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잠실 프레스센타를 가득 메웠던 내, 외신 기자들이 붐볐던 "하계올림픽"과는 대조적으로 패럴림픽 때 썰렁한 프레스센타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셋째 : <경기장의 상황>
한쪽 다리로 갈고리 손으로 눈을 감고 많은 뜨거운 감명을 보여 준 경기장이었지만 아쉬움이 교차되는 순간들 또한 있었다.
상무 경기장에서의 일이다. 호주 대 네덜란드의 축구경기가 열리고 있었는데 대회 운영본부 측은 VIP가 온다며 본부석에 않아 있던 행사요원들을 단하로 밀어내고 보도진들이 앉아 있던 의자를 빼앗아 가는 일이 있었다. 이러한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은 김대중 총재의 부인 李姬鎬씨와 김영삼 총재의 부인 孫明順씨가 동시에 부녀 당원 50여명에 둘러싸여 경기장을 찾아오자. 대회운영본부 측이 동반자들까지 본부석에 앉히는 과잉예우를 한 것이다.
무조건 VIP하면 머리가 땅에 떨어져야하고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한테는 굽실 굽실거려야 하는 것이 법으로 규정된 것이 아닌 것만 내국기자에게는 기자석 표가 잘못된 것이라고 그냥 서 있게 하면서 외신기자에게는 자리에 앉아있던 아줌마, 할머니를 일어나라고 하는 처사 손님대접이라고 덮어주기에는 속이 쓰리다. 또 한 예로 군에서 배출된 자원봉사요원들의 행실이다. 보도진들을 위해서 패럴림픽 때 셔틀버스가 운행되었다. 주 경기장에서부터 올림픽공원 선수촌 상무경기장 이렇게 운행이 되었는데 이 일은 선수촌에서 잠실 주 경기장으로 가려고 하다가 생긴 일이다. 여기서 둘이 봉사요원들에게 "잠실 경기장으로 가는 버스가 이 차입니까?" 라고 물어 보았을 때 그들은 아가씨 아닌데요. 저 위로 저 아래로 하며 재미있다는 듯이 희롱하기 바빴다. 그러다 다른 봉사요원들이 "이 차입니다." 했을 때 외국선수들이 주 경기장으로 가는 버스를 물어보고 있었다. 그들은 정확히 안내를 하고 있었다. 양궁 경기장에서 자원봉사를 한 명지전문대 체육과 생 두 명은 이렇게 말했다. "너무 엉망 이예요. 봉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일이 없어 놀고 있는 사람도 있고 많은 자원봉사요원들이 있지만 적절한 곳에 배치를 못해 활용도가 낮아요"라고 했다. 이 뿐만이 아니라 경기장이 너무 산만하게 흩어져 있었다. 상무 같은 경우 축구, 론볼링, 양궁, 유도 등의 경기가 있었는데 다른 것은 둘째치고 양궁은 집중력이 가장 중요한데 전혀 집중이 되지 않게 되어 있었다. 양궁 장 바로 옆에는 차도이고 앞에는 론볼링 경기장으로 관중들이 많아 떠들썩하다. 그래서 일이 벌어진 것이 양궁선수가 쏜 화살이 론볼링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던 관중의 골반에 맞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는 안될 일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왜 굳이 양궁을 상무 경기장으로 옮겼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화랑 경기장이 있는데, 조직위 측의 말을 빌리자면 화랑 경기장은 너무 크고 비싸며 패럴림픽 양궁 선수들의 숫자는 적고, 또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는 것보다 집중시키려는 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 올림픽 공원에서 있었던 일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탁구, 펜싱, 싸이클, 역도, 수영 등이 열렸던 올림픽 공원에서는 출입문에 따라 입장료를 받기도 하고 안 받기도 해 무료인줄 알고 경기를 보러온 관람객들을 놀라게 했다.
평시 올림픽 공원은 어른 5백 원 학생 2백 50원 씩 입장료를 받았는데 조직위 측이 장애인 올림픽에 관람객이 모이지 않을 것을 우려 장애인 올림픽기간 동안 남 2문과 동문 등 경기장 쪽 출입구에서는 입장료를 받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평화의 문 바로 곁에 있어 공원지역 출입문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는 남 1문에서는 계속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이 같은 차이에 대해 공원 측은 "입장료를 받는 남 1문은 주로 공원입장객이며 남 2문 및 동문 출입 객은 경기장 관람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런 일관성 없는 행정은 이것만이 아니다.
왜? 웃으면서 자유스럽게 떳떳하게 경기에 임할 수 없나? 우리 패럴림픽 선수들은 하고 반문만 할 것이 아니라, 이번 제 8회 장애인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모두 생각해 보자.

<장애인 올림픽과 장애인 복지>
제 8회 장애인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리게 되어 그 동안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 대해 전혀 몰랐던 정상인들에게 알렸다는 측면에서 우선 홍보적인 효과를 보았다. 장애를 입은 사람이 저렇게 많구나! 내 아이만 장애를 입었을 줄 알았는데 하며 부끄럽게만 생각했던 사고에서 탈피하여 "장애는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는 것만을 깨우친 것부터가 장애인 복지의 가능성을 안겨주었고 인식 적인 측면에서도 성과는 컸다.

넷째 : 시상식 때의 국가 연주조차 생략하며 대충대충 의 형식에서 이 패럴림픽이 얼마만큼의 관심을 가졌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각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의 처우 문제이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오로지 경기에 참가해 보겠다는 하나의 뜻 때문에 패럴림픽에 참여했지만 막상 경기가 끝나고 나면 다시 일자리를 찾아 생계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선수들의 걱정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로 팽개쳐지지 말아야 한다.
많은 외국선수들의 그 당당한 모습에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유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장애인들도 느낀 것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설 적인 측면에서는 아직도 낙후성을 면치 못했지만 그나마 을지로에 4대 잠실에 4대 모두 8대의 리프트카를 설치한 것만으로도 우선 패럴림픽이 가져다 준 효과이다.
비록 을지로 전철역에서 잠실 역까지 밖에 못 오지만 그래도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라고 할 정도이다.
앞으로 많은 전철역에 설치하여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고 보면 우선은 한 단계 올라 선 것이 라고 본다.
이번 패럴림픽에서 보았듯이 우리의 태도, 약한 자에게는 강하게 강한 장에게는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자에게는 강하게 약한 자에게는 약하게 하는 습관과 동정이 아닌 함께 느끼고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해야만 이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는 밝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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