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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이것이 문제다 1] 특수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전국특수교육학생들의 외침은 하나로 모아지고

본문

이제는 잠시의 눈을 붙일 시간이다. 하루의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가장 안락한 장소에서 가장 편한 마음으로, 내일을 위하여 안정을 취할 시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잠을 잘 수 없다. 10월 하순의 싸늘한 날씨에 시멘트바닥 위 이불 하나 없이 그대로 잠을 이루어야 할 밤이다. 고향 땅 따스한 안락이 있지만 그것을 멀리 두고 우리는 이곳에 모였다. 갈아입을 옷 하나 제대로 갖추고 떠나온 것이 아니다. 단지 단 하나의 참을 수 없이 복받쳐 오르는 가슴을 안고 이곳에 모여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시멘트바닥이 차갑기 때문이 아니다. 이불 하나 없어서가 아니다. 춥고 배고픈 것 때문도 아니다. 시멘트바닥 위에 라면 박스 하나 깔면 그 어느 호화 찬란한 고관집 안방보다도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잠을 자면 더 이상 포근한 이불은 없다. 빵 한 조각을 서로 나눠먹으면 그 어느 성찬보다도 기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먼지가 괴여 있는 이 강의실에서 뒤척여야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왜 우리는 펜을 던지고 전국특수교육학과 학생연합회란 이름 아래 전주에서, 대구에서, 공주에서 서울 이곳에 이렇게 모였던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자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4월로 거슬러 올라가야겠다. 진리를 찾고 사회에 공헌을 하고자 했던 우리는 도서관과 강의실을 찾아 노력했다. 그러던 중 우리에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인간애로써 사람을 보고자 했고 자신이 인간애를 실천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을 가질 때만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창조하고 사회에 공헌한다고 우리는 믿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를 이행하려고 전문적 기술을 익혀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전문적인 기술 습득을 무시한 채 우리를 저버린 특수교사자격검정고시를 실시하고자 한다는 소문이 들렸던 것이다. 실시에 관한 궁금을 풀기 위하여 대구시 교육위원회에 문의했으나, 교육위원회는 그런 계획이 없다 했다. 하지만 특수교사자격검정고시에 관한 문의는 계속되었다.
4월 25일 그렇게도 믿었던 교육위원회의 행정을 부정하게 하는 일이 생겼다. 업무 연락이라는 명목아래 특수교사검정시험 안내라는 제목을 붙여 8월중에 특수교사자격검정이 있을 예정이라는 것을 안내하고 있는 문서를 발견한 것이다. 이 내용의 안에는 시험을 응시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들이 제시되었고 3월 1일에 보냈으며 마지막에는 "보신 후 소각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장까지 쓰여 있었다.
행정의 공문사 이렇게 일개의 집단들에게만 유리한 조건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몇 권의 책명을 제시함으로써 일률적으로 공부하도록 한 것은 4년 동안 고된 훈련과 경제적 부담으로 습득한 전문 기술을 무신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것에 매우 분노했다. 더욱 분노하게 한 것은 검정고시 합격자가 4년 동안 고된 훈련으로 기술을 익힌 자보다 더 빨리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사명의식으로 장애아동의 생존을 지켜 주고자 얼마나 뛰어다니고 있었던가! 그런데 이것이 사회의 모습이란 말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천직의 길이 이렇게 무심히 깨어질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그대로만 있을 수 없었다. 우리는 질의서를 만들어 인간애를 행정 아래 보는 처사를 막아 줄 것을 간곡하게 당국에 부탁했다. 그러나 문교부는 우리의 의사를 무시한 채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편 우리의 이러한 정신에 동조한 교수들은 건의서를 만들어 문교부에 제출했으나, 문교부는 참고하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일축했다.
전국특수교육학과 학생연합회에서는 문교부로 찾아가 대화를 하자고 요청하자 문교부는 전국시교육위원회에 일임했다고 일축했다.  전특련에서는 시교육위원회에 질의서를 보내기로 했다. 전국시도교육위원회에서 온 회답은 장애 아동의 실질적인 질적 향상을 도외시한 채 법규정에만 의존하고 국립사범대 및 교육대 졸업자 적체현상 때문에 특수교육과정을 이수한자로 선발하지 못하고 특수교사검정고시를 실시할 수밖에 없다는 행정적인 입장만을 나타내고 있어 실질적인 장애아동 교육을 도외시하고 있었다.
인간의 존엄성에는 차이가 없음에도 교육의 권리에 차이를 두는 것은 정의만을 배워왔던 우리에게는 참으로 분격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믿었다. 진실은 밝혀질 것이요, 정의는 행해 질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다시금 문교부에 교육위원회에 진실을 이야기하고 정의를 행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교육위원회와 문교부는 이러한 우리의 의사를 묵살하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들의 믿음에 신이 다른 면으로서 응답을 하듯이 교수와 문교부와 연석회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신이 주는 진실에 대한 선물이라 믿고 그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교수와 문교부와의 연석회는 실지로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신의 선물로 여길 정도로 미루고 있었다. 검정고시는 현재의 행정에서 드러내고 있는 무자격 교사의 수 안에서 실시되고, 문제 난이도 등 모든 것을 어느 정도 자질을 갖추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정당한 것은 반드시 실현되리라고 믿는 우리는 이러한 것이 실시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10월 초에 우리들의 선배로부터 들은 충격적 소식 무자격 교사의 특수학급이 1,800개임에도 불구하고 5,500여 명이 1차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이것은 너무나 기만적 사실이고, 이 나라의 교육에 있어서는 안될 불행의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근본에 교대, 국공립사립대 졸업생의 적체해소 방안으로 인정되었을 때 과연 하늘은 누구를 보고 있단 말인가.
진리는 밝혀져야 하고 정의 는 행해 져야 한다. 그랬을 때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행정의 권력으로 인하여 진리가 밝혀지지 않고 정의가 행해지지 못할 때 그 밑의 응달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삭으러져가는 생명이 있다. 자신들의 권력과 만족을 추구할 때 그 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생명,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 그것을 아는 인간으로서는 그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항하여 싸워야 할 것이다.
합리적인 방법이 안 될 시는 차후 방법으로 뛰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를 밝히고 정의를 행하기 위해 우리들이 이 삭막한 벌판을, 뛰는 것이다.

지난 10월 20일 9시쯤 평민당 중앙 당사에 격분을 누르지 못하여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학생 8명이 들이 닥쳤다. 대구대학교 특수교육과에서 올라왔다고 하는 이들은 잠자리를 제공하여 줄 것을 요구했다. 문교담당 국회의원과의 면담과 모든 업무가 끝난 뒤라 서둘러 숙직 자로 담당국장의 전화번호를 돌렸고, 다음 날 만날 것을 약속했다. 아무리 준비가 없을 지라도 찬 마룻바닥 밖에 제공할 수 없어 설득으로 돌려보냈다.
다음 날 이들은 다시금 평민당에 찾아왔고 담당국장에게 문교담당 국회의원을 만나도록 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5시 한 대의 관광버스가 평민당사에 도착했고, 60여 명의 학생들이 평민당의 좁은 복도를 메웠다. 이들은 격양된 모습으로 구호를 외쳐댔고 노래를 불러댔다. 밤이 이슥하도록 새벽동이 트기 전에서야 비로소 찬 시멘 바닥에 등을 대고 서로를 부등켜안고 안정의 시간을 보냈다.
10월 22일 햇살이 떠오르자마자 이들은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빵 한 조각과 우유로 배를 채우고 어디론가 모두 흩어져 나갔다. 그리고 저녁이 돼서야 이들은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고, 격한 구호와 노래를 외쳤다. 하루 일을 토론하고 다음 날의 일을 생각하며 서로의 마음을 함께 하자고 했다.
다음 날도 아침에 이들은 또 흩어져 나갔고 저녁에는 60여 명이 더 모여들었다. 그리고 대구대학교 학생만이 아닌 이화여자대학교의 특수교육과 대표, 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 대표도 자리를 함께 했다. 무엇인가 긴박한 상황으로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그러더니 다음 날 평민당 당사를 그들은 모두 떠났다.
10월 24일 오후 2시 종합청사 후문 인도에 전국특수교육학과 학생연합회라는 이름을 표명하는 대구대를 비롯한 4개 대학학생 200여 명이 전경들과 전경 차에 둘러 쌓인 가운데 구호와 노래를 외치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져가고 시멘 보도에서 차가운 기운은 온몸으로 시며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흩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밤을 세운다고 표명했다. 그리고 라면상자를 준비, 바닥에 깔고 서로 간격을 좁히고 좁혀 밤 세울 준비를 했다.
또, 우유와 빵을 준비했다.

이에 종로경차서장과 문교부 직원들은 해산할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이들은 완강히 흩어질 것을 거부했고, 종로경찰서장은 강제해산 명령을 내려, 이들을 전경 차에 싣고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10월 25일 오후 3시 종합청사 후문 인도에 이들은 또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제보다도 더 많은 약 400여 명의 학생들이 인도를 가득 채우고 구호와 노래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에 문교부는 면담을 가질 것을 요청했다. 6명이 면담에 응하더니 결렬을 선언하고 나왔다. 그러자 문교부는 면담을 요청하고 대표들은 면담에 응했다. 2시간 동안 밖에서는 구호와 노래를 외친 후에 대표자들이 나왔지만 그들은 머리를 숙이고 혼란을 가져왔다. 그러나 서로가 질서를 외치며 조용히 학생답게 자리를 떴다.
10월 26일 오후 4시 단국대학교 공대의 한 강의실에 단국대 특수교육과 학생을 비롯한 6개 대학 특수교육과 학생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국에 흩어진 이들이 다 모여서 한 가족의 핏줄을 나눈 이들처럼 이들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며 격분했다. 그리고 이들은 다짐의 다짐을 결의했다.

10월 27일 오후 5시 50분 경 서울시 시교육위원회 정문에 전국특수교육과 학생들 500여 명이 모여 구호와 노래로 연좌의 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 때에 갑자기 20여 명의 학생이 정문을 넘어 뛰어들었다. 도교육위원회 안에서 전경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였다. 이어 전국 특수교육과 교수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그 밖의 학생들은 흥분과 걱정의 분위기의 격양을 악양 되었다.  끝내 교육감과 면담 약속을 하고 이들을 질서 정연하게 해산했다.
10월 28일 오후 1시 학생들은 서울시 교육위원회 정문 앞에 다시금 모여들었다. 그리고 어제 있었던 면담 요청을 요구했다. 그러나 면담 요청을 했을 당시에 약속을 했던 학무국장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런 약속이 없었다는 일방적인 통고에 이르렀다. 이에 격분한 학생들은 서울시 교육위원회를 성토하며 문교부로 행진을 시작했다. 문교부 근처에 이르자 전경과 심한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전진하려는 몸과 막으려는 몸, 그러나 폭력과 함께 이들은 모두 전경 차에 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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