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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그 삶의 현장을 찾아서] 여성장애우 공동체 비둘기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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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서 버스를 타고 세검정 국민학교에서 내리면 비둘기 집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구역상 서울의 중심인 종로구에 속해있지만 세검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여유 있고 한적한 동네일 것만 같다.
"세검"이라는 어원은 인조 반정 때 이귀, 김유 등의 지사들이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씻어 칼집에 넣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마치 그러한 내력을 말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동네 전체에 산새들의 지저귐과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낭랑히 들리는 곳이다.
버스에서 내려 오른편으로 개천을 끼고 가다보면 법왕청이란 건물을 볼 수 있다. 마치 그 동네를 감싸듯이 크게 서 있다.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처음 마주치는 회색대문의 아담한 양옥집이 바로 비둘기 집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작은 마당에는 갖가지 화초는 물론이고 고추, 가지, 호박 등이 잘 가꾸어져 있다. 이 집의 상징인 듯한 우람한 목련 나무가 담을 넘을 정도로 크게 가지를 뻗어대고 서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마당을 가로지르면 곧바로 현관에 다다르고 오른편으로 꺾어 돌아가면 작업장이 닿는다. 계단이 없는 긴 경사로가 인상적이다. 작업실로 가는 도중에 서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이 말 그대로 비둘기 집이 지체 장애우 신앙의 기술 공동체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비둘기 집의 설립 목적은 장애로 인하여 타 기관에 취업이 불가능하고 자립이 어려운 여성 장애우들이 배운 기술과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여 공동체를 형성, 서로 나눔의 생활을 함으로써 재활 할 수 있는 터전마련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이 곳에는 실질적인 가장이며 큰언니인 양수자씨를 중심으로 6명의 장애우 식구가 출퇴근하는 외부직원 세분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비둘기 집은 1986년 4월에 비둘기 교실의 졸업생 5명을 주축으로 수유리에서 시작하여 현재 살고 있는 종로구 신영동 91번지로 이사온 것은 87년 5월이다.

비둘기 집의 모태가 된 비둘기 교실은 현재 삼선교에 위치하고 있는, 지체 장애우들에게 기술 교육을 하는 교육장을 말한다. 설립자인 양수자씨가 비둘기 집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이 비둘기 교실에서 여성 장애우들에게 등공예를 가르치면서부터이다.

"처음에 비둘기 집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비둘기 교실에서 교육을 마친 졸업생들을 취업시켜보니까 정신적·육체적으로 한계를 느껴 오래 있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에요. 아마도 육체적으로 건강한 일반인들과 똑같이 일해야 하니까 체력이 뒷받침되지 못했겠고 그에 따르는 갈등을 극복하지 못했나봐요. 지금에야 장애우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지만 5년 전만 해도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일들이 사소한 것에서부터 많았거든요. 그래서 가정에만 안주하는 장애우가 많았고 과잉 보호를 받는 장애우들의 경우는 정신력이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육을 받고 취업을 해도 오래 견디지 못했던 것 같아요"

수유리에서 살았을 때는 20평 남짓 한 좁은 전세방에서 숙식과 작업을 함께 했고 작업 시간도 아침 9시부터 저녁6시까지였다. 남들은 저녁 8시 9시까지 일을 하는데 6시까지도 못하겠느냐 싶어 힘들어도 참고 일하는 자체를 기쁨으로 생각했는데, 1년 후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견디지 못하고 떠난 장애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세검정으로 오면서부터는 오후 4시까지만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식구들의 장애 정도는 하반신 마비나 뇌성마비 장애우들로서 작업을 할 수 있는 정도이고 연령은 모두 20대이다. 이 곳의 가족이 되고 싶은 장애우의 경우 원하기만 하면 모두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단 비둘기 집에 받아들여지고 나서 1개월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의 여부를 시험한다. 개인적인 감정을 우선하거나 욕심이 많은 장애우의 경우는 아무리 본인이 원한다고 해도 한 가족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한다.

규정이 이렇게 까다로운 것은 그만큼 공동체 삶의 질서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에는 집에 갔다가 일요일 오후에 돌아오게 되는데 집에 가면 잠만 실컷 자다가 온다고 말하는 식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항상 웃고 즐겁게 생활하지만 다른 식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늘 긴장하며 지내는 면도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여름이나 겨울에 휴가를 얻어 며칠 동안 집에 가 있다보면 비둘기 집이 너무 그립다고 말한다.

작업장에 들어서면 한 아름은 넘을 듯한 감나무가 중앙에 서 있고 그 감나무를 중심으로 일의 순서에 따라 작업라인이 나뉘어져 있다. 작업장이 비좁아서 늘려짓다 보니 불가피하게 감나무가 작업장 가운데 들어와 있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비둘기 집에서는 의류를 생산하고 있는데 이 곳에서 만들어지는 옷은 성당에서 쓰이는 것으로서 수녀님과 신부님들의 의류가 대부분이다. 수도복, 외투, 작업복, 속옷 등의 수도자 의류와 수도회 입회 자 준비 물품, 스웨터, 털 바지 등을 만든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제품은 주문생산이 원칙이지만 일부는 카톨릭회관 4층 재활제품 전시장에서 전시, 판매되기도 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주문을 받아 만들어 놓고 보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실수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주문만 하면 알아서 척척 만들어 낸다.
그동안의 시행착오가 이젠 축적된 경험으로 일을 하는데 밑받침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작업장 오른편 첫 번째 작업대를 맡고 있는 유일한 비 장애우 남자 분은 식구들이 흔히 화초 속의 잡초라고 부르는 수유리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함께 하며 일을 도와준 외부직원이다. 처음에 장애우들만의 공동체이니까 우리끼리 하는 데까지 해보자는 식으로 고집하다가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난 다음부터 직원을 채용하기 시작했는데 직원들이 아주 성실하고 일을 잘 이끌어 주고 있다고 한다.

외부 직원의 채용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고 양수자씨는 얘기한다.
비둘기 집의 자랑은 무엇보다 자립기반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외부 도움 없이 식구들이 일해서 생기는 수입으로 충분히 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 그래서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무엇을 도와 주면 좋겠느냐고 물어보면 서슴없이 일감을 달라고 얘기할 수 있단다. 그리고 모두 한 식구라는 생각으로 가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도 큰 자랑이다. 비둘기 집에서는 따로 월급이라는 것을 주지 않는다. 대신 일정한 액수의 용돈을 준다. 특별히 더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 만큼의 용돈을 더 지급한다. 이러한 것은 마치 일반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용돈을 주는 것과 똑같다. 평생 같이 살아갈 가정이라는 차원에서 운영에 모두 함께 참여하고 있다. 남남이 모여서 별다른 문제없이 살수 있는 바탕에는 이러한 공동체 정신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양수자씨는 비둘기 집과 같은 공동체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장애우에게 기술교육을 시키는 기관은 많아도 취업까지 책임지는 기관은 거의 없어요. 특별히 중복장애나 중증 장애를 지닌 장애우들에게는 그나마 교육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아 우리 비둘기 교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일은 걸리지만 교육을 받으면 재활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장애우들이 의외로 많다고 봅니다. 더욱이 장애로 인하여 일반 직장에서는 외면 받고, 부모님 사후의 생활과 여러 가지 불편한 여건 등으로 곤란을 받는 장애우들은 자신이 배워 익힌 기술을 최대한 발휘하며, 좋은 마음으로 함께 하기를 원하는 비장애우들과 생활 공동체를 이룩하여 자립의 길을 걸음으로써 얼마든지 좋은 환경에서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비둘기 집과 같은 공동체는 많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특별히 남의 동정에 의한 삶에서 벗어나 동등한 사회인으로서 건전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곳이라고 확신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집을 늘릴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비둘기 집 같은 공동체가 많이 있으면 좋지만 지금보다 구성원이 더 많아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위에서도 그런 건의를 하는데 양수자씨 생각은 더 커지면 분가를 하는 것이 좋겠단다. 그 이유는 식구들이 많으면 올바른 가정 공동체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남성 장애우에 비해 더욱 열악한 여성 장애우들의 현실을 감안해 볼 때 하루 속히 비둘기 집 같은 기술 공동체가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은 비단 기자만의 바램만은 아닐 것이다.

연락처 : 서울 종로구 신영동 91번지
TEL : 354-4964

조계식/기자

작성자조게식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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