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연재]장애해방이란 무엇인가-나의 성장과 해방운동의 자각(2)- >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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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연재]장애해방이란 무엇인가-나의 성장과 해방운동의 자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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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나의 서장과 해방운동에의 자각(2)
<「장애인」으로서의 자각과 해방운동과의 만남>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차별을 받고 고통을 맛보는 가운데, 나의 가슴에는 점차 차별에 대한
노여움이 쌓이고 문제의식도 높아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나에 도달하기까지는
역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예를 들어 용곡대학에 입학하기 이전, 나는 한편으로 꿈
과 기대가 컸으나 그만큼 비장애우에 대한 열등감도 컸다.
 그 결과 대학에 입학한 당시에 나는 "겨우 들어왔다"라는 안도감에 젖었다. "나는 다른 맹
인하고는 다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에 대한 주위의 눈이며 평가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고수가 강
의할 때 나를 지명했으나 내가 볼 수 없는 것을 알고, "아, 자네는 됐네."라고 말할 때는 너
무도 분해서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그는 볼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라
고 말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었다. 때문에 교내에서 흰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대단
한 고통이었다. 모두 나만 보고있다고 생각하자 더 이상 배겨낼 수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가능한 지팡이를 놓지 않으려고 했다. 맹인학교에서도 선생님에게 "흰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이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지팡이 없이는 걸을 수가 없
기 때문입니다."라고 몇 번이고 말했다.
 
대학에서도 흰 지팡이를 들고 다니면 다른 학생들이 "야, 안마사다"라고 속삭이면서 놀렸다.
이런 말을 들은 날은 고통스러웠고, 집에 돌아와서도 그 말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흰
지팡이를 가진다는 것이 참을 수 없었고, 어떻게든 버리고 싶었다. 또, 여학생으로부터 식사
를 초대받았을 때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도 내가 먹고 잇는 것을 쳐다본다는 생각이 들
어 거절하기도 했고, 함께 갈때는 먹기 쉬운 덮밥만을 시키곤 했다. 이러한 성격은 전문서와
문학서를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을 때와 색깔에 관한 상상을 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낄 때
나도 몰래 "어차피 장님은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자포자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 포기와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자주 있었다.

 그러한 나에게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대학 졸업을 얼마 앞둔 어느날 나의 써클 후배가
동경에서 왔다. 그는 T군이라는 뇌성마비의 장애인이었는데 하숙집으로 나를 찾아왔다. T
군은 지금까지 내가 만나지 못했던 매우 심한 뇌성마비이다. T군은 나에게 다음과 같이 천
천히, 그러나 대단히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선배님은 정말로 자기
가 살아가는 모습,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속속들이 드러냈습니까? 우리들(뇌성마비)
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속속들이 드러내지 않는 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따라
서 우리는 어떠한 도시에서도 설사 모든 사람들이 싫어해도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에 의해서만이 우리의 자각을 고양시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의 말을
많이 듣고 나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지금까지의 나는 어떠했는가? 다만 자기의 삶을 은폐시키고 "나는 정상인과 다르지
않다. 정상인 대열에 끼게 되었다."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볼 수 없다는 것을 잊으려고 하
지 않았는가? 확실히 볼 수 없는 것은 불편하다. 때문에 보는 쪽이 좋다. 그러나 지금 나는
볼 수 없으면서 왜 그것을 당당히 주장하면서 살아가지 않는가? T군의 말은 그와 같은 것
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내가 대학에 가기까지의 삶의 방식, 대학에서의 운동 등이 결국 겉
껍데기뿐인 허약한 것이 아닌가? 나는 깊이 반성했다.
 그 후 나는 이따 받은 충격과 문제 제기를 나 자신과의 투쟁이라는 중요한 원점의 하나로
삼았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자기 자신의 나약함으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차별의 현실과
맞닥뜨리는 것, 우리들이 잊어버리기 쉬운 원칙을 우리들의 생활이며, 운동의 장면장면에게
까지 점검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후 나는 또하나의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협산차별재판규탄(狹山差別裁判
糾彈)」투쟁을 통해서 부락해방운동을 만난 것이었다. 부락문제에 관해서는 북해도(北海道)
태생인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었으나 등촌(藤村)씨의 《파계(破戒)》며 대학에 입학한
직후의 일본공산당계열의 부락연(部落硏)과의 관련 등을 통해서 약간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협산투쟁(狹山鬪爭)의 집회에서 들은 "우리들은 스스로가 부락민이라는 것을 자랑으
로 여긴다."는 저 수평사선언(水平社宣言)가운데 몇 마디는 내 마음속 깊숙이 자리잡은 나약
함을 도려내 주었다.
 그 후 급속히 고양된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억압을 문제로 한 이른바 입관투쟁(入管鬪
爭)에도 나는 열심히 참여했다. 이러한 두 개의 반차별투쟁기의 참가를 통해서 나는 스스로
의 과제인 장애인 해방운동의 기초적 사유방식을 획득했다.
 대학을 졸업한 나는 취직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나는 우선 대판부(大阪府)의 교육위원회
로 가서 "영어선생이 되고 싶기 때문에 교원채용의 시험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
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잠시 대학원에 남아서 공부를 계속하면서 기회를 기다릴 뿐이었
다.
 그러다가 우연히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대판(大阪)시내 천왕사고교(天王寺高校)라고 하
는 정시제(定時制)의 고등학교에서 영어비상근강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볼 수 없는 사람
이 볼 수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전국에서 내가 처음이었다.
 물론 직장에서도 저항이 대단했다. 나 자신도 의욕은 있었지만 불안했다. 몇 번이고 그만둘
까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여하튼 지금까지 9년간 계속해오고 있다.
 지금 나는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고교에서 일을 하면서 장애운동과 씨름하고 있다.


 <장애인 해방운동의 원점>
 이러한 내 자신의 피차별체험과 그것을 용수철로한 해방운동의 자각으로 획득한 스스로의
과제로서 장애인해방운동의 기본적 사고방식과 체험에서 얻은 원점과 같은 것에 관해서 몇
번인가 다루고 싶었다.
 장애인운동은 좀더 명확히 말하면 장애인의 해방이다. 부락해방이라는 말은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이 장애인 해방이라는 것은 상당히 낯설은 말이라고 여긴다. 이 해
방이라는 말이 다만 부락해방이 있기 때문에 똑같이 장애인의 해방을 말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장애인 문제는 결국 무언가의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연금의 증액,
공공요금의 할인과 같은 물질적 보장을 요구한다는 것에만 주안점이 두어진 것이 아닌가 생
각해본다.
 물론 이러한 요구 하나 하나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자기들이 이
익을 얻을 것인가?
 「장애인이 어느 정도 이득을 얻을 것인가와 같은 발상만은 아니었던가?」「더욱 적극적인
문제 해결방식을 찾으면 안되는가?」그러나 이와 같은 것을 생각에 머물러 있을 따름이었
고, 그것이 장애인의 해방은 아닌가라고 생각할 뿐이다. 장애인해방의 의미를 나는 나름대로
크게 세 가지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첫째, 우선 장애인 자신이 강하게 되는 것. 그것은 절대로 비장애인과 똑같이 도는 것이 아
니라 장애인 자신이 자기의 생애를 당당히 주장하면서 살아가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자립을
쟁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빼고서 오직 여러 가지 것을 보장시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본래의 인간으로써 살
아가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차별, 여러 분류의 인간으로부터 퍼부어지는 경시에 대해서 장애인의 입장을 명
백히 부각시키면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며, 거기서 자립할 수 있다고 생각
한다.
 
둘째, 장애인을 둘러싸고 있는 비장애우들을 변화시키는 것, 또는 변화시키려는 것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장애인에게 무언가를 도와주려고 한다든지 협력하려고 한다든지 그러한 것뿐만 아니
라 장애인이 특히 중증장애인이 살아가는 방식, 그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서 주위의 사람들
이 스스로 인간에 대한 사유방식,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파악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누워서 지내야만 하는 중증장애인이고, 사회에서도 자립할 수 없어
주위의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칠 뿐 아니라 스스로도 살아가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
다하자.
 그러나 이 때 이른바 "가치가 없다."라고 말할 때 인간에 대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떠한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누워서 지내야만 하는 중증장애인이 "스스로 밥을 먹는 것, 혹은 스스로 화장실에 가는 것"
그 자체가 목숨을 걸고 하는 필사적인 행동이다. 삶에 그들만큼 진지하게 목숨을 걸고 투쟁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는 나 같은 사람도 고개를 들 수 없는 것이다.
 그것 하나만으로 살아가는 의미를 충분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로 어느 정도인
가?
 그것 하나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역할을 할 수 없다"라든가 "가
치가 낮다"라고 하는 사람이야말로 근본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삶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
가?
 중증장애인과의 접촉을 통해서 주위 사람들의 인간관, 살아가는 방법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세 번째로서 그러한 장애인 자신의 자립과 비장애인의 변혁을 통해서 이익중심의
인간을 사회와 서로 북돋아주는 사회, 그러한 사회로 변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때문에 나는 단지 몇 차례의 선거에서 「어느 당이 우리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가?」정
치 역시 그러한 차원에서만 보지는 않았는가? 인간이 인간으로써 살아가기 위한 사회를 하
나씩하나씩 만들어 나가야 하고, 그러한 정치를 하나씩 만들어 나간다라는 시각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의 살아가는 방식, 투쟁을 통해서 사회 그 자체를 변화시켜가고, 정치를 하는 방식도
바꾸어가려고 하는 입장을 명확시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장애인의 해방 내지 인간해
방에도 관계된다.


 역자 주1) 《함께걸음》1990-10(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작은자운동모임)의 <장애해방이
란 무엇인가>의 "제1장 나의 성장과 해방운동에의 자각"을 이번 호에서 완역했다. 다음 호부
터는 "제2장 장애인해방운동소사"를 번역하겠다.  
 

작성자함께걸음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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