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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시각장애우 마라톤 선수 차승우

마음둘 곳 찾아 오늘도 달린다

본문

                                                                                                                      

사람들에게 시각장애우가 마라톤 선수라고 한다면 반응은 아마도 이럴 것이다 “시각장애우가 마라톤을 한다고? 어떻게? 어떻게 앞이 안보이는데 마라톤 그 긴코스를 뛴단말이지. 정말 앞도 안보이면서 별짓 다 하네” 이번 호 사람사는 이야기는 시각장애우 마라톤선수 차승우씨를 만나 그가 벌이는 별짓(?)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려 점심 무렵의 남산은 그지없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 몇일 반 팔 옷을 꺼내 입을 정도로 더운 날씨였는데 가랑비에 젖은 날씨는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오늘 함께걸음이 만나기로 한 사람은 시각장애인 마라톤선수 차승우(40)씨. 약속장소는 명동역. 인터뷰 장소는 남산으로 정해졌다. 매주 토요일 동료들과 만나 함께하는 운동에 동행하기 한 것이다. 명동역을 나와 주택가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니 그 유명한 남산의 산책길이 나왔다.
산책길에는 일부러 달리기 위해 남산을 찾아 온 사람들이 많다. 길게 난 남산의 산책길을  따라 걷거나 뛰고 있는 사람들을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달리기 전에 준비운동을 하는 사람들, 뒤로 걷고 앞으로 걷는 사람, 데이트를 즐기는 사람들...반가운 것은 간혹 보이는 시각장애우 산책객들이다. 비록 지팡이를 이용하고는 있지만 도심 한가운데서 맘 편하게 산책하고 있는 시각장애우를 만난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긴 시각장애우들을 위한 산책길이기도 하니까요. 우리들이 여기서 모여서 마라톤을 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에요. 안전하기도 하고 익숙하니까요”
차승우씨의 설명이다. 차승우씨 역시 마라톤 연습은 주로 남산의 산책코스를 이용한다. 산책로가 시각장애우들에게도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 정리 돼 있고, 무엇보다 차량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시각장애인 마라톤클럽 회원들이 모이는 곳도 남산 산책로근처에 있는 남산록색체육관이다. 매주 토요일 2시면 이곳에 모여 함께 마라톤 연습도 하고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도 즐긴다. 오늘은 차승우씨가 회원들 가운데 가장 먼저 도착했다.
“요즘은 일을 안하고 있으니까 일주일에도 적어도 3번, 많이는 5번까지 남산에 나와서 연습을 해요. 1급이라고는 하지만 전 앞을 좀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혼자서도 잘 뛰어요. 더군다나 내일(20일)은 노동부에서 주최하는 하프코스 마라톤대회가 상암동 경기장에서 있으니까 오늘은 모여서 내일 경기를 대비한 연습을 중점적으로 하게 될 거에요.”
내일 경기를 준비하는 차승우씨의 모습에서 베테랑의 노련미가 엿보인다. 하지만 차승우씨 역시 처음 마라톤을 시작할 때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나도 뛸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차승우씨가 뛰는 즐거움을 알게된 건 도우미로 마라톤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마라톤과의 인연이 시작된 건 2000년도의 일이다.
“시각장애우 마라톤이 있다는 건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디 엄두가 나야죠. 비장애우들이 눈을 감고 마라톤을 뛴다고 생각해보세요.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잖아요. 전 시각장애우라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어요. 그러다 처음 마라톤을 뛴 건 승화라는 친구 때문이었어요. 그 친구 도우미를 하기 위해 찾아갔는데, 처음에야 아무 것도 몰랐죠. 평소에 알고 지내던 승화가 도와달라니까 갔다가 얼떨결에 마라톤을 뛰게 된거죠. 그 친구는 전맹이거든요. 그런데 함께 뛰고 났더니 기분이 너무 좋은 거에요.‘나도 뛸 수 있다’는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뒤늦게 도착한 승화씨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승우형이랑 만난 건 전에 산악회에서 였는데요, 제 마라톤 도우미를 하러 왔다가 마라톤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저보다 훨씬 잘 뛰어요. 전 남산에서 뛸 때도 도우미가 있어야하는데 승우형은 남산 같은 곳에서는 그냥 뛰니까요. 아마 이제는 승우형이 풀코스를 저보다 많이 뛰었을 걸요 기록도 좋은 편이에요”
처음 승우씨에게 마라톤을 소개했고 주말마다 같이 뛰는 박승화씨의 질투 어린 말이다. 승화씨의 말을 끝내자마자, 두사람은 서로 풀코스를 몇 번 뛰었는데, 넌 얼마나 되냐며 한동안 마라톤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마라톤 선수들답게 누가 더 풀코스를 많이 뛰어 봤냐가 그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장애우 참가자에 대한 배려가 아쉽다〉
시각장애우의 마라톤 하면, 언뜻 생각하기에도 걱정스러운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줄기차게 달리기’만 한다는 것이 왠지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가다가 어디 부딪히지나 않을까, 울퉁불퉁한 길에 다치거나 돌이라도 밟아서 넘어지면 어쩌나, 결승점은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등등. 누구나 궁금한 문제점들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을 다 끌어 앉고 시각장애우들은 달린다. 보완책이라고는 도우미뿐이다. 끈으로 자신의 손과 비장애우의 손을 묶고 방울을 달아 소리를 들어가면서 달리는 게 고작이다.
“마라톤 대회에서 제일 어려운 건 시작점이에요. 일반 대회 같은 경우, 몇 만 명이 달리니까 우리같이 앞이 안보이는 사람은 한참 헤매게 되거든요. 10km까지는 사람들이 많아서 부딪히는 일도 많아요. 비장애우들이 다 빠져나가고 나서야 제코스를 유지하면서 본격적으로 달릴 수 있어요. 물론 달리는 도중에는 도우미의 보조가 많은 도움이 되지만 그래도 가끔 넘어지거나 부딪히기도 해요.”
시각장애우 마라톤 선수로 유명한 사람 중에 하나가 미국의 말라 러년(33)이다. 그녀의 풀코스 기록은 뉴욕 마라톤대회 세운 2시간 27분 10초. 1위를 차지한 비장애우와 불과 1분14초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녀가 이렇게 좋은 기록을 세운 데에는 대회주최측의 세심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속해있는 여성부를 30분 더 일찍 출발하도록 배려함으로써 뒤로 쳐지는 남자들과 부딪히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쓴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우의 마라톤 참여는 불편함 그 자체일 수 밖에 없다.

〈이게 왠일? 내일이 경기날인데 번호표도 못받아...〉
인터뷰 도중 차승우씨는 흥분해 있었다. 하프마라톤이지만 내일 있을 경기를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일주일에 몇 일을 남산에서 뛰고 있지만, 대회참여는 다른 여느 달리기와는 또 다른 흥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내일 대회에서 등에 달고 뛸 번호표가 안왔다단다. 인터뷰 도중 대회신청을 한 형에게 물어봤지만 ‘아직 안왔다’는 말뿐이다. 그렇게 몇 번을 더 물어보고 나서, 토요일 2시가 넘어 버렸다. 이제 번호표를 받기는 힘들테니 결국 내일 대회는 포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데... 다른 동료들도 그렇지만 차승우씨는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대회 측에서는 보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럼 안 왔을 리가 없죠. 그 말도 명확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내일 경기는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번호표도 없이 달릴 수는 없으니까요”
실망하는 표정이 안쓰러울 정도다. 내일 대회에 참여하려 했던 다른 시각장애우 선수들도 한마디씩 거든다. ‘이런 경우가 어딨냐’고. 결국 일요일에 열린 마라톤대회에 시각장애우 선수들은 참가하지 못했다.

〈뭐니 뭐니 해도 풀코스를 완주하는 게 최고죠〉
모여 앉은 선수들의 화나고 울적한 기분이 전환된 건 마라톤 풀코스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부터다. 지금까지 참여했던 경기 중에 어떤 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차승우씨 역시 선뜻 ‘풀코스요’ 소리부터 한다.
“풀코스는 다 기억에 남아요. 현재 우리 클럽 회원이 20명 정도 되는데, 그 중에 풀코스를 뛰는 시각장애우는 8명이 다에요. 풀코스를 뛸 때, 35km가 넘으면 40km까지는 발바닥이 아파와요. 그래도 참고 달리는 거죠. 그 맛에 달리는 거거든요. 작년에는 1월에 거제 마라톤에 참여했고, 2월에는 금강산마라톤, 3월에는 서울마라톤, 국제마라톤, 충주마라톤에서 뛰었어요. 4월에는 전주군산을 풀코스로 뛰었고.”
작년 자신이 참가했던 마라톤대회를 줄줄이 외우면서 승우씨는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 풀코스만 6번을 뛰었고, 작년 10월에 있었던 춘천대회에서는 1만 5천명이 풀코스로 뛰었는데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등수를 했다며 웃는다. 5,555등. 정말 잊어버릴 수 없는 등수 같다. 그 대회에서 자신의 완주기록이 4시간 3분이었다는 말과 함께, 참가자 중에 2천명이 기권하는 대회에서 시각장애우인 자기가 완주를 했다는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비장애우도 힘들어서 기권하는 대회에서 시각장애우들이 완주를 해냈다는 뿌듯함이 그를 흥분시키는 것 같았다.

〈인생살이를 생각하면서 뛰는 마라톤〉
“뛸때요? 아무 생각없어요. 힘든데 생각은 무슨 생각이요”
뛰면서 무슨 생각을 하냐는 물음에 승우씨는 아무 생각 없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승화씨가 또다시 끼어든다.
“여자생각이요(웃음). 형 여자 생각 안해? 난 여자생각 하는데...”
장난끼 어린 승화씨의 대답에 모두들 한차례 웃었다. 잠시 후 아직 웃음이 안가신 표정으로 승우씨가 말문을 열었다.
“제 나이가 이제 40이잖아요. 앞으로 많이 살아야 2∼30년인데 뭘해야 할까 고민도 되고, 그러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요. 결혼도 해야 할텐데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도 하구요. 5월에 있을 대회가 끝나고 나면 뭘 할까 생각도 하게되고.....지금은 그 동안 해오던 안마사 일을 쉬고 있지만, 5장애인체전에 참가하고 나서는 다시 일을 알아봐야죠. 요즘은 뛰면서 그 생각을 많이 해요.”
차승우씨는 5월 충남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참가하고 나면 물리치료 일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체전참가에 대비해 연습도 해야하지만, 일자리도 알아봐야 하고 마음만 급하다. 하지만 지금은 온통 5월 체전에 마음이 가 있다. “몇 등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선뜻 “2등”이라고 말한다. 시각장애인 마라톤 클럽에서 제일 잘 뛰는 임성훈(25)이 1등이고, 성우씨 자신은 2등이라는 것이다.

〈방울소리와 끈으로 달린다〉
정식 경기에서도 그렇고 연습을 할 때에도 시각장애우가 마라톤 풀코스를 제대로 뛰려면 호흡이 맞는 도우미의 보조가 절실하다. 선수와 도우미가 끈을 같이 잡고, 방울 소리에만 의지해 풀코스를 완주해야 하는 것이다. 시각장애우 선수는 도우미가 같이 뛰면서 내는 방울소리에 의지해 방향을 잡고, 장애물이 나오면 피하라는 주의에 따라 움직인다. 시각장애우에게 방울소리는 완주를 위한 나침반과도 같은 존재로 느껴진다. 선수의 안전은 순전히 도우미에게 맡겨져 있고, 그래서 도우미와 선수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년에 동아마라톤에 참여할 때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만난 박복진(54)씨가 도우미 활동을 해주셨어요. 그 뒤로도 가끔 이런저런 대회나 연습에 도우미활동을 부탁드리는데, 저랑 잘 맞아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작년 여름에 비 오는 날이었는데 여의도에서 비 맞으면서 같이 뛰었거든요. 정말 좋더라구요. 비 맞으면서 뛰는데, 색다른 경험이었죠. 박복진씨도 좋았던지 저랑 뛰고 나서 "시인에게 보내는 방울소리"라는 시를 지어서 발표했다고 하시더라구요”
승우씨는 대회 기록증이나 메달을 볼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하나 하나가 소중한 경험이고 추억이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끝나자 모두들 연습을 시작하기 위해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얇은 천의 소매 없는 티와 반바지. 춥지 않냐는 질문에 승우씨는 돌아보며 씩~ 웃어보인다. “뛰고 나면 더워진다”며 겸연쩍어 하는 승우씨의 미소가 환하기만 하다. 비록 내일 경기는 무산됐지만 아마도 승우씨와 선수들은 다음 경기를 위해 오늘도 남산 산책로를 열심히 달리고 있을 것이다.

※ 기자와 차승우씨와의 몇 가지 문답

기 자 :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려면 대회참가비를 내야하는데, 돈내고 뛸 만큼 좋아요?
차승우: 한참 마라톤에 빠져 있을 때는 더 심했어요. 밤새 일하느라고 잠 한숨 못잤는데도 아침에 9시에 풀코스 대회에 참가했으니까요. 사람들이 나중에 미쳤다고 뭐하고 하더라구요. 무안해서 신청해 놨으니까 뛴다고 했지만 그 땐 그렇게 뛰는 게 좋을 수 없었어요.
기 자 : 마라톤으로 뭔가 하겠다는 계획이라도 있는 거에요? 전업선수라도...?
차승우: 그냥이요. 건강에도 좋고 앞으로도 계속 뛸 계획이에요.
        특별한 목적이 있는 건 아니고....
기 자 : 왜 뛰어요?
차승우: 마라톤이 희망을 줘요. 혼자서 사니까 마음 줄 곳이 없는데... 그래서 더 마라톤에 전념하면서 마라톤에 마음을 주나봐요. 달리면서 잊어버리기도 하고, 생각하며 달릴 수도 있으니까요. 말이 안되나요?
기 자 : 앞으로 마라톤과 관련된 계획은 어때요?
차승우 :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싶은 게 많아요. 우선 시각장애인 마라톤 대회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아직 국내대회는 없었거든요. 그걸 위해서라도 내년쯤에는 개인이 비용을 써서라도 일본 대회에 가보고 싶어요. 마라톤 선배로써 다른 시각장애우들이 함께 뛸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싶은데...욕심이 참 많죠(웃음)

글 서현주/ 사진 윤정은 사진기자

작성자서현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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