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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착한사람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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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착한사람 박성현

 

  박성현씨는 우연이 일치인지 몰라도 소설‘착한사람 문성현’의 중인공과 성만 다른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그리고 소설의 주인공과 매우 흡사한 조건을 가지고 살고 있다.
  현실의 박성현 씨가 휠체어를 탄 중증 뇌성마비 장애우이다.
그런 그가 소설의 주인공처럼 그동안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의지해 삶을 살아온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랬는데 소설 내용과는 달리 요즘 성현 씨와 어머니 사이가 심상치 않다.

 

▲소설가-박성현씨

 

  시중에 나와있는 소설 중에 "착한 사람 문성현"이라는 제목의 중편소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유명한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소설은 문성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뇌성마비 장애우가 태어나서 서른 아홉 살에 사망하기까지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다. 평론가들은 이 소설을 한 장애우가 고통스러운 내면의 투쟁을 거쳐 세상과 인생에 대한 아름다운 대긍정에 이르는 과정을 뛰어나게 형성화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장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 소설이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장애우 아들을 둔 어머니와 당사자인 장애우 아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애증관계이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중증 뇌성마비 장애우인 아들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들은 끊임없이 어머니를 괴롭히고 울린다. 어머니는 장애우 자식을 둔 죄로 가슴에 피멍이 드는 고독한 형극의 일생을 묵묵히 살고,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우 아들이 염려스러워 병석에 누워서도, 나중에는 생의 끈을 놓는 그 순간까지도 한시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한다.
  그렇게 어머니는 가시밭길 인생을 살다가 간다. 남겨진 아들은 버팀목을 잃어 휑한 가슴을 부여안고 버둥대며 살다가 역시 어머니를 따라 간다. 가설이지만 틀림없이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난 아들과 어머니는 부여안고, 그 눈물이 반가움의 눈물인지, 아니면 서러움의 눈물인지 몰라도 대성통곡을 했을 것이다. 때문에 사견이지만 만약 지상에 큰 비가 내리면 한 번쯤은 한 많은 인생을 살다간 어머니와 장애우 아들의 애끓는 사연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올해 서른 살인 박성현 씨는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소설 제목인 문성현 씨와 성만 다른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과 흡사한 조건을 가지고 살고 있다.
  현실의 박성현 씨는 휠체어를 탄 중증 뇌성마비 장애우이다. 그런 그가 소설의 주인공처럼 그동안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의지해 삶을 살아온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랬는데 소설 내용과는 달리 요즘 성현씨와 어머니 사이가 심상치 않다
  얼마 전 성현 씨는 집을 나왔다. 그는 지금 서울 마천동에 있는 비닐하우스로 지어진, 열악한 장애우공동체에서 살고 있다. 멀쩡한 집을 놔두고 또 장애우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고 성현 씨가 가출한 이유는 도대체 뭘까?
  여기서 성현 씨가 가출하기 전 어머니와 성현 씨 사이에 있었던 대화 한 토막을 들어보자.
  "너도 이제 네 앞가림을 해야 할 나이가 됐다. 당장 동생들이 결혼해야 하는데 집안 형편도 넉넉치 못한 실정에서 장애우인 네가 집에 있으면 누가 시집 장가 오겠니? 마음 아프지만 별 수 없다. 네가 알아서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수용시설을 찾아 들어가거라."
  "싫어 엄마, 큰 시설에 들어가면 우리같은 장애우들은 억눌리고 짓밟히고 이용만 당한단 말야. 왜 내가 그런 시설을 찾아 들어가? 나는 싫어."
  "그래도 할 수 없다. 어미도 이제 기운이 없어 네 뒷바라지를 못하겠다. 그리고 동생들을 생각해야지. 나는 어미인 죄로 할 수 없지만 동생들이 무슨 죄가 있니? 동생들 앞날을 생각해 아무 말 말고 네가 죽을 때까지 먹고 재워줄 수 있는 데를 찾아가거라."
  "그럼 엄마가 시설을 알아봐줘. 큰 시설에서 나를 받아줄 줄 알아?"
  "네가 컸으니까 이제는 네가 알아서 시설에 찾아가야지. 허구헌날 이 어미가 알아서 해줘야 하니?" 말 끝에 어머니는 역정을 내고, 성현 씨는 어머니가 못내 섭섭해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성현 씨가 어머니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집안 형편은 어머니가 쉰 아홉 살이라는 나이에도 옷수선 공장을 다녀야 할 정도로 어렵고, 동생들은 모두 다 결혼을 해야 할 나이다. 하지만 과거 특수학교에 딸린 수용시설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수용시설의 폐해를 직접 겪은 성현 씨 입장에서는 큰 수용시설에 들어가라는 어머니 성화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더구나 성현 씨는 생활보호대상자가 아니어서 막상 큰 시설에 들어가려 해도 들어갈 수도 없다. 그런 사정을 모르고 어머니는 재촉만 하고 있으니 성현 씨 입장에서는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어머니가 말은 심하게 하셔도 나 때문에 잠 못 이루시고 나 때문에 한이 맺히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나도 사람인 이상 그걸 느끼죠. 하지만 그래도 섭섭한 건 사실이요."
성현 씨 말이다. 성현 씨가 어머니에게 섭섭해하는 건 시설에 들어가라고 재촉하는 것말고도 또 있다. 성현 씨는 오래 전 어머니가 군대에서 제대를 앞둔 남동생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보고 "엄마, 동생은 건강한 데 무슨 걱정이야. 막말로 얘기해서 할 거 없으면 공사판에 나가도 못 벌어도 오만원 육만원씩은 벌잖아. 그렇게도 살 수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동생 걱정할 여유 있으면 나한테 신경 좀 더 써줄 수 없어?"라고 말을 건넨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때 어머니는 정색을 하고 "너는 무슨 걱정이 있어. 동생들이 잘되면 너를 맡아줄텐데, 어떡하든 동생이 잘되는 쪽으로 신경을 써야지. 너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다"고 말씀 하시는 게 아닌가. 그런 어머니를 보며 성현 씨는 크게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말이라도 집안 형편이 어렵지만 어떻게든 살 길을 마련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면 그 말을 믿고 용기를 내서 살아갈텐데, 어머니 안중에는 동생들밖에 없는걸 확인하고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설상가상으로 성현 씨는 어머니와 갈등 외에도 바로 밑에 동생들과도 관계가 좋지 않다. 성현 씨에게는 스물 여덟 살인 남동생과 스물 네 살 먹은 여동생이 있다.
  동생들은 요즘 어머니 때문에 걱정이 많은가보다. 남동생은 툭하면 성현 씨에게 "어머니가 연세가 많으셔서 이젠 힘도 없다. 그런 어머니가 어떻게 형을 끝까지 돌봐주느냐"며 제발 어머니 속을 썩히지 말라고 면박을 준다. 여동생은 한술 더 떠 "밖에 나가지 말고 차라리 집에만 있어라"라고 충고한다. 성현 씨가 밖에 나돌아다니면서 사고만 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족과의 갈등으로 인해 어쨌든 성현 씨는 집을 나왔다. 어머니 말대로 큰 시설에 들어간 건 아니지만 큰 시설이든 작은 시설이든 시설에 들어가 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 성현 씨가 기숙하고 있는 곳을 어머니도 알고 있다. 어머니는 성현 씨에게 "왜 그렇게 형편없는 시설에 들어가서 이 어미를 괴롭게 하느냐"고 또 역정을 내신다. 예전 같으면 성현 씨도 어머니에게 "그럼 어떡하냐?"고 댓거리를 했겠지만 성현 씨는 이제는 싫은 표정을 짓지 않고 담담히 어머니의 역정을 받아들인다. 그럴 수 있는 건 어머니에 대한 기대를 포기해서이기도 하다. 또 하나 성현 씨 표현에 따르면 이제 집을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성현 씨를 들뜨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현 씨는 "그동안 어떡하든 집에서 해방되고 싶었어요. 이제 소원을 이룬 셈이죠"라고 말하며 웃는다.
  그렇지만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알겠지만 성현 씨가 말하는 해방감이, 그리고 그 웃음이 성현  씨 진심에서 우러나온 웃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역으로 성현 씨는 지금 몹시 불안해하고 있다. 왜 안그래겠는가, 장애우에 대한 사회보장이 완비돼 가족 도움없이 장애우 혼자서 충분히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서구라면 몰라도 가족의 품을 벗어나면 그 순간부터 장애물 천지인 이 땅에서 장애우가 가족이라는 끈을 놓고 독립한다는 것은 모험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본인 신변처리도 혼자서 할 수 없는 중증장애우라면 사정이 매우 심각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성현 씨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성현 씨가 가지고 있는 비극이 있다.
  이제 성현 씨는 집을 나온 이상 어떻게든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 도대체 성현 씨의 홀로서기가 가능한가?
  이런 문제제기는 비단 성현 씨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문제제기가 아닐 것이다. 바로 중증장애우들 전체의 문제인 것이다. 만약 성현 씨가 홀로서기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다른 중증장애우들도 충분히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건 절대 과장이 아니다. 그만큼 성현 씨는 중증장애우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사회에 던져졌다.
  사실 중증장애우들 문제는 누구나 아는 출구 없는 답답한 이야기이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 왜 중증장애우 얘기를 다시 꺼내는가. 그건 적어도 장애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중증장애우 문제를 늘 기억해야 한다는 소박한 믿음 때문이다.
  이제 성현 씨의 과거 얘기를 해보기로 한다. 성현 씨가 살아온 과정에는 취업을 할 수 없는 한 중증장애우가 겪어야 하는 고통스런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성현 씨는 나이 열한 살 때 특수학교에 들어갔다. 초등학교는 대전 성세학교, 중학교는 명혜학교, 고등학교는 주몽특수학교를 다녔다. 일 년 전공과를 더 다녀서 십삼 년을 꼬박 학교를 다녔지만 졸업 후 성현 씨가 취직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성현 씨는 비교적 일찍 취업할 곳을 알아보고 다닌 경우이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고용촉진공단이 생기기 전 장애우 취업알선창구였던 재활협회를 찾아가 상담을 하고 취업 희망 카드를 작성했다. 공단이 생기면서 그 카드는 공단으로 넘어갔고, 성현 씨는 십 년이 넘게 공단 취업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다. 그랬는데 그동안 성현 씨가 공단으로부터 통보받은 말은 "중증장애우는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비관적인 말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보호작업장이라도 들어가기 위해 여기저기 장애우시설을 알아보고 다녔다.
  정립전자, 경인전자, 국립재활원 등 서울에 있는 장애우 자립작업장 치고 그가 취업 의뢰를 하지 않은 작업장은 없다. 그랬지만 역시 돌아오는 말은 장애가 심해서 어렵겠다는 말뿐이었다.
  취업을 거부당한 성현 씨, 남은 선택은 거리로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성현 씨는 한동안 시장에서 잡화를 파는 속칭 수세미장사를 했다. 그렇지만 수세미장사 역시 얼마 안가 그만두어야 했다. 수세미 장사는 바닥을 기며 리어커를 밀고 다녀야 했는데 장애가 심한 그는 리어커를 밀며 기어다닐 수 없었고, 한 곳에 앉아 장사를 하다보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장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수세미장사를 그만두면서 성현 씨는 오토바이를 구입해 화장지장사로 나섰다. 화장지 장사는 그런 대로 할 만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떼어다 파는 장애우 상표 화장지가 워낙 질이 낮아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아무리 장애를 빌미로 사람들의 동정을 구해 파는 거지만 너무 질이 낮아 이건 완전히 장애우 모독하기였어요. 내 얼굴에 침뱉기였죠." 그래서 화장지 장사도 그만뒀다. 그러고 나니 성현 씨는 할 게 없었다. 아참 한, 가지 남은 일이 있다. 얼마 전 성현 씨는 우연히 거리에서 앵벌이를 해서 먹고사는 한 장애우를 만났다. 그 장애우는 성현 씨에게 "할 게 없으면 앵벌이 일을 같이 하자"고 권유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에 엎드려 노래를 부르며 동정을 구하는 속칭 앵벌이 일은 성현 씨가 오래 전부터 생각해온 마지막 카드였다. 살다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면 결국 앵벌이 일을 할 수밖에 없겠구나. 성현 씨는 오래 전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권유를 받게 되자 성현 씨는 주저하고 있다. 바로 자존심 때문이다.
  성현 씨의 자존심의 실체는 뭔가? 성현 씨는 지금 뇌성마비 장애우 모임인 "바롬히"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 모임에 성현 씨는 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성현 씨는 모임을 이끌며 자신과 같은 처지의 장애우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은 생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적이 있다.    그렇게 결단한 그로서는 아무리 할게 없기로서니 전적으로 비장애우들의 동정을 구해서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성현 씨는 "언제 나도 편의시설을 마련해 달라고 절규하다 자살한 김순석 씨처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장애우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대의를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현 씨는 이어 "이 사회가 지금 앵벌이 하라고 내몰고 있다"고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사정을 알고 보면 성현 씨 분노가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장애우가 심한 장애 때문에 취업을 할 수 없다면 당연히 정부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해 약간의 생계비를 지원하는 생활보호 혜택을 줘야 한다. 하지만 현행 생활보호법은 성현 씨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생활보호대상자가 되려면 세대주가 되어야 하고 부양의무자가 없어야 하는데, 성현 씨는 세대주도 아니고 호적상 가족이 있기 때문에 법이 정한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다. 그래서 성현 씨는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이 하나도 없다. 성현 씨가 알아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성현 씨는 하도 답답해 언젠가 어머니한테 "차라리 어렸을 때 나를 버렸으면 지금 생활보호대상자나 됐지. 그때 왜 나를 버리지 않았느냐?"고 항의한 적이 있다며 "나는 어떻게든 혼자 살려고 노력하는데 이 사회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래저래 성현 씨는 요즘 걱정이 많다. 장애가 점점 더 심해져 혼자서는 용변처리도 힘든 상태에서 지금 몸담고 있는 공동체 환경도 열악해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 성현 씨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다. 전자부품공장이라도 한 달에 삼십만원만 주면 들어가서 일하고 싶다는 게 그가 바라는 전부다. "나는 휠체어에 한 번 앉으면 내린 적이 없기 때문에 하루 종일 꼼짝 않고 앉아서 일할 수 있어요. 채용만 해준다면 정말 열심히 일할 수 있죠." 성현 씨는 이렇게 일을 하고 싶다고 절규하고 있다. 그 누가 있어 성현 씨의 절규에 귀 기울일까?
  "가끔 생각해요. 나 때문에 어머니가 고통받고 있다는 거 나도 잘 알아요. 누가 뭐래도 세상에서 나를 돌봐주는 사람은 어머니뿐인데 내가 어머니한테 잘못하고 있는 거 같아요. 어머니한테 정말  미안해요. 사시는 동안이라도 어머니가 나 때문에 속 썩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이야기 끝에 먼 산을 바라보는 성현 씨 눈가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힌다.
이런 꿈은 어떨까? 성현 씨가 들뜬 목소리로 어머니한테 말한다. "엄마 나 취직했어. 이제부터 내가 열심히 일해 엄마 모실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 기특하구나, 그래도 이 어미 생각하는 건 너 밖에 없구나." 그러면서 어머니와 아들이 감격스럽게 포옹하는 그런 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박성현 힘내자!고 한 번 외쳐보면 어떨까.

 

글/ 이태곤 기자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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