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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이 만난사람] 김정문 알로에 김정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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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이 만난 사람]

 

 

"기업은 사회를 위해서 존재합니다"

  김정문 알로에 김정문 회장

 


  대담: 이남진(변호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

 

  김정문 알로에의 김정문 회장은 시민단체와 고아, 장애우 등 소외 계층의 든든한 후원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을 위해 평생을 바쳐왔고, 남은 생도 약소계층을 위한 봉사의 삶을 다짐하는 그를 만나 보았다.

 

 


사회에 빚진 자
이남진: 회장님께서는 작년 95년을 잊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큰 불행을 겪으셨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김 정문: 다 아는 사실이지만 95년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처자식을 모두 잃었습니다. 그때 그래도 나는 이십여일간을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실제로 십팔일만에 구출된 아가씨가 있죠. 그래서 저도 처의 건강상태도 좋았고 아이도 아주 건강했기 때문에 행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피가 마르도록 기다리다가 결국은 처자식이 시신으로 발견된 것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 불행이 있고 난 후 저는 사업 자체가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일이니까 사명감을 가지고 계속 사업에만 전념하면 그 속에서 비극을 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남미와 미국 출장도 갔다오고, 강연도 많이 나갔는데, 하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길에서 아이만 하나 지나가도 죽은 내 아이 생각이 나서 망연자실해하고, 예를 들어 얼마 전 직원들과 제주도 연수를 갔는데 내 처와 아이들 데리고 간 장소에 가게 되니까 아픈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거예요, 결국 극복을 하고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잊어버리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실존이거든요. 그러니깐 틈틈이 찾아오는 비애와 분노 때문에 한동안 힘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사회의 부패 때문에 엉터리 건물을 짓고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5백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는 데에는 사회적인 분노를 삭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겠다. 나는 내 혼자 몸이 아니다. 그런 결심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요즘도 상당히 많은 위로의 편지들이 오는데 그 분들의 힘내라는 격려에 용기를 얻습니다.

이남진: 김정문 회장님은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에 있어서 모범이 되고 있는 기업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회장님이 기업을 운영하시는 철학이나 신조, 혹은 이념같은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정문: 저는 기업을 운영하면서 기업은 사회를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기업을 위해서 착취당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인류의 복지를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기업이 오직 이윤을 위해서 공해물질을 배출하고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기계화해서 비인간화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모름지기 기업인은 회사 이윤의 사회 환원을 위해서 존재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남진: 그동안 회장님은 공익을 추구하는 시민단체나, 회장님이 늘 강조하시는 약소계층의 든든한 후원자로 상당히 많은 액수의 후원금을 기부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회장님이 도와주는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밝혀 주시지요.

김정문: 법적으로는 순이익의 3%만 세금 공제가 되는 기부금으로 처리됩니다. 가령 내가 세금 다 내고 10억원의 이윤을 올렸다면 1년에 3천만원 밖에 못 도와주게 돼 있습니다. 이 금액은 제가 한 달에 후원하는 금액밖에 안되는데 그대로 따를 수는 없으니까 제가 몸담고 있는 바른경제동인회에서 주장하는 것이 미국처럼 사회환원한 돈은 액수와 상관없이 세액 공제를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세법대로라면 제가 사회환원 한 돈의 90%는 세금을 내야 하는 판입니다. 저는 그동안 공익단체 수 십개 단을 뒤에서 이름없이 도와왔는데 사실은 법적으로는 불법인 셈이죠. 하지만 지금 내 나이가 우리나라 나이로 예순아홉살입니다. 그래서 난 잡혀가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단체들을 돕고 있습니다. (웃음) 어쨌든 나는 항상 사회의 빚진 자다 라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남은 생도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에 바칠 것입니다.

이남진: 회장님 말씀을 들어보면 다른 어느 기업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계신 것 같은데 그렇게 되기까지 어떤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김정문: 저는 3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어머니도 교회 전도사를 18년간이나 하셨죠. 이런 기독교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이광수의 흙으로부터 상록수까지 많은 계몽 소설들을 탐독했습니다.
 특별히 청소년기에는 갖은 질병으로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서 독서로 소일하며 지냈는데 그때 읽은 것이 일본말로 된 세계대사상전집입니다. 그 두꺼운 책들을 읽으면서 지금도 내가 잊어버리지 않는 책이 영국의 산업 혁명을 다룬 책입니다. 탄광에서 온가족이 일해도 배고픈 시절에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경제 정의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하는데 플랭카드에 뭐라고 썼냐면 "자선은 싫다 우리는 정의를 요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구절을 대하는 순간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후 저는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약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평생을 살겠다고 결심을 굳혔습니다.
 일단 결심을 굳히자, 제가 부산 동아대학을 다닐 때에 6.25가 발발했는데, 그 전쟁의 와중에서 저는 민주화 운동과 학생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저희가 운동권의 1세대인 샘인데 다만 지금하고 틀린 것은 당시 우리의 주장은 자유 · 평등 · 박애라는 고전적인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해서 운동을 했다는 것이죠. 그 덕분에 저는 경찰의 요시찰 인물이 되었는데 그에 굴하지 않고 서울로 와서 학생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면서 그때는 꿈 같은 얘기입니다만 약한 사람을 돕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데 헌신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개인으로 약소계층을 열 명, 스무명 도울 수는 있지만 사회구조 자체가 계속 약소계층을 많이 생산해낸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회구조를 바꿔야 된다고 생각하고 사회개혁을 위한 조직으로 기독교사상 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조직을 운영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니깐 그때부터 몇가지 사업을 시작 했죠 결국은 실패했지만 그때 저하고 같이 활동을 했던 학생들이 지금은 대학 총장 등 사회지도층이 돼서 우리가 가졌던 사상의 길을 따라서 이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약한 편에 서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다
이남진: 젊었을 때 가졌던 소신을 나이가 들어서까지 계속 간직하기는 무척 힘이 드는게 사실입니다. 또 기업이라는 것이 속성상 계속해서 이윤추구를 해야 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 또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회장님 말씀을 들어보면 회장님은 젊었을 때 가졌던 신념을 위해 지금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신 것 같은데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신념은 무엇인지요?

김정문: 나 자신도 국민학교 2학년 때 아이스케기 장사를 했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보니, 사실은 약한 편에 서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거든요, 강자 편에 서는 것이 아니고, 편리하게 사는 것이 아니고 정의의 길을 가는 것이 기독교 정신입니다. 제가 얼마전에 관여하고 있는 바른경제동우회에서 역사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 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강연 요지는 우리가 역사라는 것을 신문이나 텔레비전으로 보고 지나가는 역사속에 살아온 것이 아니다. 기업인은 역사 속에서 부정과 부패와 같은 불의에 맞서서 기업 이윤을 약한 편에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게 해야지 역사속에 살아있는 것이지 역사는 역사이지 나랑 상관없다고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지구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 역사 개혁을 위해서 기업인들이 참가하지 않으면 그것은 말하자면 기업인도 아니고 인간의 존재 가치도 없다. 그래서 역사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고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내가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내 사명이다 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내 소유는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 자금담당 직원이 회사도 어려우니까 이윤을 회사 발전을 위해 재투자를 하자고 그러는데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사회 환원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지금 회사 건물도 임대로 빌려 쓰고 있고, 제가 기거하고 있는 집도 전세금을 다 못줘서 한 달에 6백만원에 대한 이자를 주고 기거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김제와 제주도에 있는 알로에 농장 두 곳이 있는데 사실상 이 농장은 내 소유가 아니라 회사 소유입니다. 아마도 내가 죽을 때 내 소유라고 하는 것은 내가 사는 셋방 정도가 남지 않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남진: 저희가 87년에 처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시작할 때, 돈이 없으니까 저를 포함한 젊은 변호사 4명이 5백만원 빚을 얻어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다른 동료들로부터 들은 얘기가 이 변호사 당신도 제대로 생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돕느냐고 나서느냐는 아픈 말이었습니다. 제 동료들처럼 지금 우리 사회는 자선단체에 돈을 기증 한다든지 사회봉사를 하는 것은 자기가 경제적인 여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회장님께서 해주실 말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김정문: 저도 물론 최소한 집이라도 한 채 가지고 싶고, 영화 보고 싶을 때 영화 보고 외식하고 싶을 때 외식하는 그런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지만 남을 돕다보니 그럴 여력이 없죠. 어떤 때는 돈은 없는데 어디서 도와달라고 그러면 밤늦게까지 어떻게 도와주나라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도 많이 합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결국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물질은 이슬과 같다는 것입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은 모두 이슬입니다. 반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영원합니다. 성경에도 고린도전서13장에 보면 사랑은 영원하다 단절되지 않는다. 인류가 끝이나도 사랑은 그 속에 살아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역사속에 내가 살았다는 증거는 우리보다 못한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분배하지 않으면 불안한 사회 지속
이남진: 지금 우리 사회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건으로 사회의 도덕성에 대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셨는지요.

김정문: 적어도 일국의 대통령이면 최고의 명예를 가진 것인데 그 사람들이 도둑질 하는데 시간을 다 보냈으니까 나라가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대통령이 썩다보니 모든 공무원들이 다 썩을 수밖에 없고, 나도 기업을 운영하지만 바칠 데가 하도 많아 곤란을 많이 겪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나라는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썩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김영삼 정부가 역사청산을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역사에 남는 정부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처벌받을 사람은 법 앞에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하고, 그렇게 해서 사회 역사의 정의가 바로 세워져야 젊은 사람들이 권력에 붙으면 쉽게 돈을 번다는 생각을 안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역사는 바로 잡아져야 됩니다.

이남진: 지금 우리 사회는 한편으로는 장애우를 비롯한 소외계층의 문제가 심각한 실정입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정부의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미진해서 소외가 소외를 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제가 소송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현재 생활보호대상자들의 최소한의 삶도 보장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김정문: 일단 사회복지비가 작은 데서 생기는 문제라고 봅니다. 국민소득으로 보면 상당히 상위권에 있지만 국가 예산에서 지출하는 사회복지비는 전세계적으로 최하위권에 있습니다. 때문에 김영삼 정부든지 어느 정부가 들어서건 간에 복지비 지출에 있어서 개혁을 철저히 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윤을 남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줘야 사회가 건강한데 결국 거기에는 전혀 가치를 두지 않는 사회 풍토도 걸림돌입니다. 결국은 분배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항상 불안한 사회가 되는 겁니다.

이남진: 얘기의 주제를 잠시 바꿔보죠. 회장님이 알로에 사업을 시작하신 게 79년부터라고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계기로 알로에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요?

김정문: 내가 청소년기에 폐결핵에 걸리면서 류마티스 관절염, 위궤양, 중증변비 등 친구의 표현대로 산부인과에 갈 병 말고는 전부 다 앓았습니다. 심지어는 75년에 이번에 돌아가신 부산의 장기려 박사로부터 사형선고까지 받았습니다. 인간으로서의 모든 직무를 포기하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는데, 그랬다가 알로에 때문에 구원을 받으면서 알로에 보급운동 그 자체가 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알로에 보급은 기업으로서도 상당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공해에 찌들리는 세상이니까 사천만이 시장이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 같이 병들어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금덩어리를 갖다 주는 것 보다 낫게 해 주는 것이 더 낫죠. 다행히도 제가 가지고 있는 사상인 사회 환원 정신에도 알로에 보급 사업은 맞는 사업 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알로에 사업이라는 것은 이웃에 도움을 주면서 돈도 벌 수 있다. 돈을 벌어 사회 환원하는 것은 좋은 길이다. 이렇게 생각해서 회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남진: 마지막으로 저희 연구소에서 활동하는 방향은 사회와 비장애우들의 장애우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불식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도 하지만 또 하나 장애라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약간 불편할 뿐이기 때문에 장애우 스스로 장애를 극복하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같은 관점에서 장애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시죠.

김정문: 제가 사실은 작년에 장애우들에게 용기를 주려고 제가 운영하는 백제출판사에서 『이 여인을 보라!』라는 장애 극복 수기를 펴낸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도 나와 있지만 장애를 극복하는 길은 결국 자기자신의 정신적인 용기가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하지 말라. 네 마음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장애우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사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남진: 오늘 장시간 말씀 고맙습니다.

 

 

사진/ 조철근 기자

정리/ 이태곤 기자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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