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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이 만난 사람] "손끝으로 보는 세상도 아름답다"

존 헐(John. M. Hull) 영국 버밍햄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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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이 만난 사람]

 

"손끝으로 보는 세상도 아름답다"
존 헐(John. M. Hull) 영국 버밍햄 대학 교수

만난 사람 이성재 국회의원

 

 한 인간이 자신의 위치에서 당당하게 역량을 발휘하고 멋진 삶을 영위하는 모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한한 감동과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지난달 (9/12 ~ 20) 내한한 영국의 시각장애우 존 헐 박사. 그는 중도 시각장애우로서 버밍햄대학 교수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종교학자 겸 저널리스트이다.  이순을 넘긴 나이에도 건강한 젊음을 간직하고 있는 그를 15대 국회위원인 이성재 의원이 만나 서로의 사는 이야기를 잔잔하게 나누어 보았다.

 

 

서른여덟 살에 완전히 시력 잃어

이성재 ; 박사님을 뵈니까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실감나는군요. 굉장히 건강해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오신 거죠. 어떠십니까. 한국의 첫인상이?

존 헐 ; 사람들이 친절하고 따뜻한 나라라고 여겨집니다.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죠. 짧은 기간에 놀라운 경제성장을 한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의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많은 분들의 희생의 대가로 어느 정도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방한일정 중에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광주를 방문하는 일도 끼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환경이나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사람들이 "빨리빨리"라는 말을 너무 많이 사용하더군요. 급변하는 현대사회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급하게 서두르는 데는 적응이 잘 안됩니다.

이성재 ; 저도 빨리빨리 진행하겠습니다.(웃음) 박사님은 영국의 유수한 대학인 버밍햄대학 학장을 역임한 바 있으시고,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종교교육학자신데, 한국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지요?

존 헐 ; 1968년부터 버밍햄대학에서 종교교육학을 강의해 오고 있습니다. 영국의 종교교육학회지 편집장 및 세계 종교교육학회 총무도 겸임하고 있죠. 한국의 종교교육계 인사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면서 서로의 철학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원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죠. 세계의 여러 나라들을 가보았는데, 평소 한국에도 꼭 한번 오고 싶었습니다.


이성재 ; 박사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양쪽 눈이 다 안 보이는 것 맞죠? 패션 감각이 있는 멋진 안경을 쓰셔서 전혀 표가 안 납니다. 시력은 어떻게 잃게 되셨는지요?

존 헐 ; 저는 원래 호주 태생입니다. 1935년 호주 북동부의 작은 마을 코리용에서 영국인 이민 2세로 태어났지요. 아버지는 감리교 목사,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 셨는데, 태어난 지 며칠 안돼서 알레르기성 피부발진이 시작 됐습니다. 그래서 저의 유년시절의 추억은 하얀 반창고와 늘 함께 했죠. 피부염이 선천성 백내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13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아침 눈앞에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안과에 가서 진단 받은 결과는 백내장이었고 그때 바로 한쪽 눈은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 후 다른 한쪽 눈도 점점 희미해져 갔는데, 의사가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을 볼 수 없다고 마지막으로 말해 주던 때는 제 나이 서른 여덟, 이미 영국으로 건너와 버밍햄 대학에서 전임으로 종교교육학을 강의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원래 저는 20대 초반에 호주의 맬버튼 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 중등하교 교사로 재직하다 캠브리지대학에서 다시 신약학을 공부했습니다. 그 후 런던대학과 버밍햄 대학에서 기독교 교육을 전공하고 버밍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한 후 강단에 서게 되었죠.
 그 당시 그래도 보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는데, 갑자기 안구에 심한 그림자를 느끼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수술결과가 무척 좋아 희망적이었어요. 그런데 몇 주인가 오히려 악화되더니 다른 한쪽인 왼쪽 눈마저 볼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내게 "시각장애"는 오히려 행운이었다
이성재 ; 그러니까 중도에 실명을 하신 거군요. 많은 분들이 말하기를 중도에 시력을 잃는 경우 오히려 어려움이 많다고 하던데. 박사님은 어떠셨습니까? 사회생활 하는데 지장이 없으셨는지요. 오히려 마흔 이후에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계신데 특별한 비결이 있으신가요?

존 헐 ; 시력을 완전히 잃은 후 81년에 장애등록을 했고 그 후 대학에서 교수로서 3번의 승진을 했습니다. "시각장애우"라는 그 자체는 제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일 가슴 아픈 것은 눈이 보이지 않음으로써 아이들, 아내, 그리고 친구들의 얼굴과 표정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보이지 않는다는 그 자체였죠. 또한 주변 사람들도 제가 시각장애우라는 것은 이해하면서도 "시각장애" 즉 보지 못한다는 그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더군요. 시력을 잃은 그 당시는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데, 볼 수 없다는 그것은 갈등의 소지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죠. 저도 일 년 정도는 꽤나 헤맸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비록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손끝으로 만지고 느끼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됐습니다. 그 속에서 진실한 하나님의 얼굴을 발견했고, 세상을 이해하게 됐으며 그전에는 불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 거죠.

이성재 ; "터칭 더 락(Touching the rock 손끝으로 보는 세상)" 이라는 박사님의 저서가 세계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독자들도 얼마 안 있으면 완역된 박사님의 책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 책을 쓰시게 되었는지요?

존 헐 ; 그 책은 시력을 완전히 잃은 후 82년부터 84년까지 2년 동안의 제 변화된 생활을 녹음해서 기록한 일기문 입니다. 89년에 출간했죠. 한마디로 말해서 두 눈 대신에 손끝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한 인간의 고백입니다.

이성재 ; 박사님. 저도 사실 어릴 때 소아마비 장애를 가지게 돼 목발을 짚고 다니는 지체장애우입니다. 하지만 저도 "장애우"라는 그 자체 때문에 비관해 본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법과대학 입학 시, 또한 사법고시 합격 후 법관 임용 시 많은 사회적 장애를 경험했고, 좌절도 맛보았습니다. 결국 장애우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장애라는 불리한 조건보다는 사회적 편견이나 인식의 문제가 아닐까요. 사회마다 다른 거긴 하겠지만 영국에서 박사님은 어떠셨는지요?

존 헐 ; 우선 저는 행운이 따랐습니다. 다행히 학업을 다 마치고 대학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을 때 시력을 잃었으니까요. 물론 상실했던 적도 있지만 결코 절망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아니면 나이가 더 들어 시각장애를 입었다면 상황이 달라 질 수도 있었겠죠. 저는 오히려 행운이었다고 느끼며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시각장애란 이유로 특별히 불이익을 당한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버밍햄의 집에서 직장인 대학까지는 20분정도 걸리는데, 걸어서 출근하고 있고 강의 할 때는 브레일 라이트 같은 보조기구를 이용하는 등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그런데 현대는 정보화 사회로서 아무래도 저와 같이 시각장애라는 신체적 불리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정보습득에 많은 어려움이 있죠. 다른 장애우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저는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센터 운영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의사, 간호사, 병원 등에 관한 재활정보는 물론 일반 정보에 이르기까지 장애우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컴퓨터 전산망을 통해 알아내고 이를 알려주는 일이죠. 우리 센터에서는 1주일에  약 8백통의 전화를 받아 안내 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원하는 장애우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시켜 전문가를 양성하기도 합니다. 제가 잘 아는 시작장애우중에는 러시아어를 전공한 젊은 친구가 있는데 우리 센터를 통해 컴퓨터를 배운 후 전문가가 되어 번역 일을 아주 잘 해내고 있습니다.

이성재 ; 박사님의 말씀처럼 정보를 보다 빠르고 쉽게 접하는 것, 아주 중요한 문제죠. 장애우들에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맹인복지관 같은 곳에서 음성서비스를 통해 이를 시도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초보단계입니다.
 정보량도 적고, 오히려 인터넷 등 컴퓨터 통신을 이용해 정보를 습득하는 경우가 많죠. 장애우를 대상으로 컴퓨터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센터는 아직 없지만 현재 우리나라 장애우들에게도 컴퓨터는 점차 보급되고 있고, 개인적으로 기술을 습득하여 컴퓨터 전문인으로 활동하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사회속의 한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 중요
존 헐 ; 한국의 시각장애우들은 어떻게 교육을 받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94년 특수교육진흥법이 새로이 개정되어 교육환경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이성재 ; 95년도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특수학교는 108개교, 그 중에 시각장애우학교는 12개교로 나타나 있습니다. 현재 세계의 장애우 교육의 추세는 통합교육이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 일반 학교 내에 설치되어 있는 특수학급은 초, 중등학교를 합하여 약 3, 440개 정도로 자료에 나와 있습니다. 어쨌든 숫자적으로는 많이 늘어났고 취학률도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사회적인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아 전체 취학률은 46.3% 정도로 모든 장애학생들이 교육의 기회를 보장받고 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박사님. 영국은 어떤지요?

존 헐 ; 장애우 교육의 흐름은 한국과 마찬가지겠지만, 전체적인 수치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성재 ; 개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제가 미국에 얼마동안 체류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 자신의 집, 고향 보다 더 좋은 곳이 있겠습니까. 만은 미국생활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장애우들의 생활이 법이라는 제도장치를 통해 보장되어 있다는 것과 장애우, 비장애우가 구분 없이 자연스러운 삶을 통해 서로가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존 헐 ; 잘 아시겠지만 영국은 스웨덴과 함께 20세기 초부터 일찍이 사회보험 및 사회보장 제도가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폐비안 사회주의자니 베버리지형 사회개혁이니 하는 말들도 영국의 사회복지에서 연휴한 말들이죠. 장애우들의 생활도 그러한 사회보장제도의 발전 속에서 안정을 얻게 되었죠. 그런데 사실 현재 영국은 급격한 실업률의 증가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동시에 사회보장제도가 주춤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빈익빈 부익부라는 말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고, 현 보수당 정부는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상태죠.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정부는 빈곤층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양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한 정부라야 호응도 얻죠.

이성재 ;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박사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생활 속에서도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베어 나오시겠죠?

존 헐 ; 자연스럽게 대답을 하죠.(웃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자연스럽게 장애우, 비장애우가 어울리는 생활이 아주 중요하죠. 그러한 면에서 저는 아주 편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시력에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죠. 장애우라고 해서 능력이 없다거나 뛰어난 다른 감각을 가졌다고 말하는 그 자체가 우스운 거죠. 단지 사회 속에 한 사람일뿐입니다. 참. 비장애우를 대상으로 이런 훈련을 하는 것도 어울리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네요.
 유럽에서는 가끔 볼 수 있는 일종의 시각장애 체험으로 트레이닝 코스인데, 유수한 기업체의 경영진을 상대로 캄캄한 장소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만든 후 생활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발을 벗고, 시작장애우 바텐더에게 서비스 받으며 음식을 먹고 직접 치우고 정리하게 하는 등 장애체험을 하게 것이죠. 그러고 나면 그곳은 엉망진창이 되지만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여운과 많은 생각을 남기게 됩니다.

이성재 ; 좋은 방법이군요. 우리나라에서는 뜻있는 젊은이들이 그러한 유의 장애체험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저도 한번 해보고 싶군요. 그러한 작은 노력들이 우리 사회를 좀 더 따뜻하게 만들이라 생각합니다.
 
존 헐 ; 일정에 여유가 있으면 한국에 여러 곳을 방문하고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데 , 9박 10일의 일정이 아쉽습니다. 제가 듣기로 의원님은 정기국회 기간 중이어서 무척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요즘 어떠세요? 영국에서도 정치인 중에 장애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성재 ; 저는 국회 상임위 보건복지위원회 소속당 간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초선으로서 의욕은 앞서는데 아직 경험이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나 장애우  직능대표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며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사님도 저 못지 않게 바쁘게 지내시죠? 앞으로 개인적인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존 헐 ; 버밍햄 대학의 학장도 해보았고 교수라는 명함 외에도 영국 개혁교회 전국 어린이 위원회 위원, 종교교육학회 총무 등 부끄럽게 직함만 많습니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욕심내지 않고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책도 더 내고 싶고 기회가 허락되면 한국에 꼭 다시 오고 싶습니다.

이성재 ; 건강하고 진지한 박사님의 모습 늘 간직하겠습니다. 한국에의 남은 시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기회가 있다면 버밍햄에서 뵙기로 하죠.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통역 ; 이상진(직업 재활 전문가)
정리 ; 조 옥 기자
사진 ; 이정률 기자

작성자조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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