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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삶1] 근이양증 장애우와 함께하는 삶

잔디회 김한미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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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삶1]

 

근이양증 장애우와 함께 하는 삶
잔디회 김한미 간사

 

우연한 만남이 꼭 필요한 사람으로
 "그 해 처음으로 바닷가로 캠프를 떠났습니다. 안면도 앞바다를 보며 회원들 모두가 즐거워했고, 유난히도 그 때 연희가 사진한번 찍자고 따라다녔는데..." 눈시울을 붉히며 앨범을 뒤적이는 김한미 씨는 결국 그 바다를 마지막으로 근이양증 장애우 "연희"가 세상을 떠난 것이 잔디회에서 가장 마음 아픈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치료약도 원인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근육디스트로피"라는 병과 싸우는 사람들. 잔디회(한국근육디스트로피 협회)의 간사는 그렇기에 그들의 진한 아픔 속에 함께 하며 친한 사람들의 죽음과 맞닥뜨려야 하는 힘겨운 자리이다.
 그 자리를 4년째 특별한 보수 없이 지키고 있는 김한미 씨가 잔디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근육디스트로피라는 병이 있는지조차 모르던 92년 막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시험을 준비하던 김한미 씨는 한 신문사에서 편집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때 신문사에서 당시 잔디회 회장 일을 하면서 컴퓨터 판매를 하고 있던 정철영 씨를 통해 컴퓨터를 구입하게 되면서 처음 잔디회를 방문하게 된다.
 그 후 컴퓨터 조작법을 배우기 위해 정회장의 사무실을 드나들던 김한미 씨는 잔디회 수익금 마련을 위한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던 한 회원을 만나게 되고 그 음악회의 팜플렛 제작을 돕게 되었다. 그것이 잔디회에서 하게 된 그의 첫 일이었다.
 "정말 어색했어요. 근육에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에 힘없이 앉아있는 잔디네 식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척 당황스러웠어요."
 그렇게 조금씩 잔디회와 가까워지고 있는 사이 운명이었는지 기존에 간사로 일하던 사람이 잔디회를 떠나게 된다. 대학원 시험을 끝내고 여유가 있던 그에게 정철영 회장은 도움을 요청하고 입학 때까지라고 생각하며 그 빈자리를 채워나가던 김한미 씨는 결국 잔디회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유치원 교사의 꿈을 접고
  유복한 가정의 1남 4녀 중 셋째 딸인 김한미 씨는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이미 유치원을 경영하고 있는 언니를 도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희망이었던 그가 잔디회 간사 일을 하게 된 것을 장애우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던 집안 식구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장애우에 대한 인식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매우 좋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저도 대학원이 끝날때까지 한 2년 정도만 학교 다니면서 잔디회에서 일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어머니께만 말씀드리고 아버지께는 비밀로 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결심과는 달리 대학원을 수료한 후에도 김한미 씨는 잔디회를 떠날 수 없었다.
 "개인적인 욕심을 부릴 수 없었어요. 신앙안에서 기도하면서 내가 공부한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나도 떠나버리고 나면 인건비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이곳에 누가 올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이유로 떠나지 못한 채 그는 계속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하고 잔디회 일을 해왔다.
 이런 개인적이 우여곡절을 제외하고도 금전적인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잔디회의 일을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김한미 간사의 고충은 결코 적지 않다.


잔디회 회원들의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불치병이고 언제 치료가 될지 모르는 장애예요. 하지만 언젠가는 치료약이 개발되겠죠. 그때까지 회원들에게 집안과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 세상에서 일반 사람들과 어울리며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그런 궁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밑받침이 되어주는 것이 잔디회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에 대한 의지가 없는 회원을 만나면 그 회원을 설득해 내는 일이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해마다 열리는 일일찻집과 여름캠프, 그리고 가을에 열리는 음악회, 그 행사에 덧붙여 연말과 연초에 한번씩 떠나는 지방 회원 방문이 한 해 동안 김한미 간사가 처리해야 하는 최소한의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잔디회의 간사로 활동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이런 지속적인 행사의 개최나 운영이 아니라고 김한미 씨는 이야기한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성과가 보이지 않을 때 실망하게 되죠. 특히 회원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무엇을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가끔 회원들을 만났을 때 장애가 더 진행된 모습을 보면 정말 힘이 빠집니다."
 지금 "잔디회"는 법인으로서의 새로운 모습을 갖추기 위해 준비 중이다. 더불어 김한미 씨는 유아교육이라는 꿈을 잠시 접고 체계가 갖추어지고 있는 협회안에서 더 나은 서비스를 회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새로운 공부를 할 예정이다.
 언젠가 치료약이 개발되고 근육디스트로피라는 병명이 더 이상 불치병으로 불리지 않을때까지 아직은 그를 필요로 하는 회원들과 함께 하기 위해 김한미 간사는 힘찬 발걸음을 다시 한번 내딛을 것이다.


글 / 김성연 기자

작성자김성연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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