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주부 고민숙 > 세상, 한 걸음


[사람사는 이야기] 주부 고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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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숙, 그이에게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삼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그치고 말았지만 남편과의 연애시절, 그때 남편은 그이에게 지극한 정성을 쏟았다. 남편의 정성은 그 기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이에게 전화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아침 여섯시면 남편은 밤새 안부를 물어왔고 그이가 출근을 해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그 날 만날 약속시간과 장소를 일러주기 위해 남편은 또 전화를 걸어왔다. 남편은 전화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어린아이처럼 매일 만나자고 졸라대기도 했다.
  그래서 퇴근시간이 되면 그이의 직장이 종로에 있어서 두 사람은 종로 거리에서 만났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그것도 모자라 밤을 하얗게 밝히며 거리를 쏘다니곤 했지만 피곤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남편은 목소리를 높여 장밋빛 미래를 얘기했고 그이는 무엇보다 남편의 그이를 대하는 성실성에 감복했다. 그래서 그이는 갈등 없이 쉽게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빛바랜 사진첩을 넘기듯 쓸쓸한 심정으로 그 시절을 회상할라치면 그이는 한없이 가슴이 갑갑해 온다.
  그이가 남편을 만난 것은 일천구백팔십오 년 봄의 일이었다. 오빠친구 부인의 중매로 그이는 처음남편을 만났다. 당시 그이는 시청각기기를 판매하는 소규모 상점에 오 년째 다니고 있었다. 그이의 나이 스물 여섯 살, 남편은 서른한 살의 노총각이었다. 남편은 자신을 소개하기를 외국에서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은 무역업체인 아무개 종합상사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이는 그런 남편의 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더욱이 남편은 그 나이에는 이르게 자신의 소유로 된 단독주택까지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이는 남편이 가지고 있는 괜찮은 조건이 천부적인 성실성에서 기인한다고 믿었다. 오 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그이는 가장 우선의 결혼 조건으로 안정된 생활을 꼽고 있었는데, 남편이 가지고 있는 조건과 성실성은 어쩌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다. 그때는 아무 문제 가없었다. 그이는 그 해 팔월, 마침내 남편과 결혼했다. 결혼할 무렵 남편은 숭인동에 있던 집을 팔고 지금 살고 있는 성동구 자양동 방 세 개 짜리 집을 삼천팔백오십만 원을 주기로 하고 계약했다. 그래서 신혼생활은 자양동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그이의 바람과는 어긋나게 그이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직장에 다녀야 했다. 여건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선 집을 살 때 빌린 은행 융자금 일천만 원을 갚아야했다. 남편이 집을 살 때는 어떤 대책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이는 한 달 월급 이십 오만 원을 받아 매달 십수만원씩 돌아오는 이자를 갚아야만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믿었던 남편과의 사이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혼한 지 이십여 일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남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신혼여행 다녀오느라 일주일 빠지고 동원훈련 갔다 오느라 일주일을 더 빠졌다고 회사에서 자꾸 눈치를 주는데‥‥‥ 내 생각에는 이참에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채용시험 준비를 했으면 하는데 어떨지‥‥‥"
  그이는 황당했지만 짐짓 쾌활한 음성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세요. 그럼 회사 그만두고 시험공부나 열심히 하세요."

남편은 자신을 소개하기를  외국에서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은 무역업체인 아무개 종합상사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이는 그런 남편의 말을 추호도의심하지 않았다. 더욱이 남편은  그 나이에는 이르게 자신의 소유로 된 단독주택까지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다음날부터 남편은 회사대신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이제 생계문제는 전적으로 그이의 소관이었다. 생활에 쫓겨서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그이는 점차 정신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그이는 남편이 실업자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터놓고 얘기할 수 없었고, 속으로 끙끙 앓고만 있자니 저절로 화병이 생기는 듯했다.
  어느 날 그이는 몹시 앓았다. 몸 이곳저곳이 쑤셔와서 그이는 못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 상태가 며칠째 계속됐다. 그이는 할 수 없이 병원을 찾았다. 그이를 진찰한서울대 병원 의사는 "아무래도 류마티스성관절염 같다"고 병명을 일러 주었다.
  그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을 맛보며 의사에게 원인을 물었다. 의사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추측하기로 신경을 많아 써서 생긴 병 같다"고 대답했다.
  그이는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남편에게 알려야 할지 말아야할지를 놓고 며칠을 고민했다. 결국 당분간 숨기기로 하고 그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속 직장엘 다녔다.
  그랬는데 파국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됐다. 결혼한 지 한달 여가 지났을 무렵 남편이 그이에게 "각방을 쓰자"고 요구해온 것이었다. 그이는 이해가 안 돼 멀뚱히 남편을 쳐다보았다.
  "왜요, 제가 싫으세요?"
  "그게 아니고 시험 일자가 얼마 남지 않아서 공부에 더욱 매진해야 할 것 같아‥‥‥"
  "‥‥‥"
  그이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는 순순히 안방을 남편에게 내주고 짐을 챙겨 건넌방으로 옮겨왔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이십사시간 꼬박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다른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 같았다.
  그이는 각방을 쓴지 닷새 째에 이를 무렵 안방으로 건너갔다.
  "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군요. 우리는 부분데 왜 각방을 써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물끄러미 그이를 쳐다보던 남편이 천천히 등을 돌리더니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 이유를 몰라? 네 입에서 심한 냄새가 난다고. 네가 말할 때마다 심한 악취가 풍겨서 견딜 수가 없단 말야!"
  그 말은 죽음보다 더한 엄청난 충격으로 그이에게 다가왔다. 그이는 망연자실, 어떻게 건너왔는지도 모르게 건너 방으로 돌아와 까마득히 정신을 쓸고 쓰러졌다.
  다음날 그이는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섰다. 남편과 마주치는 것이 두렵기도 해서였지만 그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병원으로 달려가서 남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은 다급한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이는 병원에서 예전에 자신을 진찰했던 최아무개 박사를 붙잡고 울먹이며 물어 보았다.  "박사님, 혹시 제가 가지고 있는 병이 입에서도 냄새가 나는 병입니까?"
  "무슨 미친 소리 하는 거요!"
  "저는 심각해요.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냄새가 난다고 그러니 제발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 좀 해주세요."
  "그렇다면 좋습니다. 원한다면 일단 검사를 해보죠."
  그래서 그이는 하루 꼬박 내시경검사부터 시작해서 각종 이비인후과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결과를 통보해 주던 의사가 혀를 끌끌 차며 덧붙였다.
  "제 판단에는 남편과 같이 오셔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이는 의사의 말을 남편에게 전했다. 남편은 심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펄쩍 뛰었다. 그이는 이왕 내친김에 남편의 흥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남편은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으로 한참을 그이를 쳐다보았다.
  그것뿐이었다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남편은 보름이 지나도록 단 한마디의 말도 꺼내지 않았다. 거의 매일 그이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남편은 불을 끄고 자고 있기가 일쑤였다. 참을 수 없어 그이가 "얘기 좀 하자"고 보채면 남편은 "피곤할 텐데 가서 자라"며 돌아누웠다.
  그이는 어쩔 수 없이 엄청난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남편이 괜한 트집을 잡는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혹시 내 입에서 정말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이는 예전에 치과 치료를 받은 게 잘못됐나 싶어 다시 치과를 찾아갔고 기관지가 잘못됐나 싶어 약국에서 약을 사먹었다. 나중에는 병원에서 신경성인두염에 걸렸다고 해서 또 한 움큼의 약을 먹었다. 그런 식으로 그이는 이약 저약 닥치는 대로 먹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이는 까만 숯덩이 같은 변을 두 달이 넘게 보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이의 체중은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다. 비단 체중뿐만이 아니었다. 혈압도 떨어지기 시작해서 온몸이 퉁퉁 부어오르기도 했다. 그런 최악의 상태로 그이는 출근길에 나서야 했다. 지하철 안에서 쓰러질 때가 부지기수였지만 남편이 사정을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그이는 절망을 곱씹으며 하루하루를 지내야 했다.
  결혼한 지 칠 개월이 지났을 무렵, 남편이 갑자기 직장엘 나간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이는 "무슨 일을 하느냐" 물어 보았다. 남편은 "노동 일을 나간다." 퉁명스럽게 대꾸한 후 더 이상 정확한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얼마 후부터 남편은 조금씩 돈을 갖다 주기 시작했다. 어떤 달은 이십만 원, 어떤 달은 삼십만 원, 많은 달은 오십만 원, 일정하게 정해진 액수 없이 돈을 들여놓았다. 그이는 남편이 벌어온 돈을 꼬박 꼬박 은행 빚을 갚는데 충당했다.
  남편의 수입 덕분인지 생활은 조금씩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부부간의 갈등은 여전히 지속된 채 이어졌다. 남편은 그이가 아침을 차려주면 "밥 먹을 시간이 없다"며 그냥 나가곤 했다. 저녁에 들어오면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 그이는 갈등의 원인이 남편의 자격지심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남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눈치까지 보면서 은행 빛을 갚고나면 나아지겠지,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 중에 그이는 엉뚱하게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워낙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아이는 뱃속에서 자연 유산됐다. 한차례 하혈을 쏟아내고 일주일을 쉰 후 그이는 몸을 추슬러 다시 직장에 나갔다.
  결혼한 지 일년 육개월이 지난 팔십칠 년 초, 마침내 심신이 지친 그이는 남편을 붙잡고 사정했다. "이제 우리도 어느 정도 은행 빚을 갚았잖아요. 저 이제 회사를 그만두었으면 해요. 우리에게도 아이가 필요할 것 같기도 하구요. 빨리 건강해져서 아이를 갖고 싶어요."
  "좋을 대로 해. "
   남편은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래서 그이는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집에서 쉬면 건강이 좋아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그이를 덮쳐서 그이는 심하게 앓아야 했다. 다시 혈압이 떨어져 서 온몸이 퉁퉁 부어 올랐다. 그이가 누워만 있자 남편이 말했다.    "그러지 말고 친정에 가서 몸조리를 하고 오는 게 어때?"
   그이는 서울 서초동에 있는 친정 집으로 갔다. 거기서 친정어머니의 간호를 받으며 꼬박 오개월을 누워지냈다. 매일 한약을 달여 먹고 앞뒤 전신에 침을 이백 대나 꽂는 치료를 받은 덕에 그이의 몸은 어느 정도 회복이 줬다. 그이는 다시 남편이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이가 돌아오자 남편은 사흘을 일찍 들어왔다. 나흘째 되는 날 남편이 술에 취한 채 그이를 찾았다.
  "내 친구도 우리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어. 부인이 자꾸만 아파서 결혼생활이 불가능해지자 친정에서 알아서 데려가더군."

  그이는 섬뜩 불길한 느낌을 맛보았다. 이이가 내가 친정에 너무 오랫동안 있어서 오해한 걸까? 그이는 남편의 말에 뭐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다. 불길한 느낌은 곧 사실로 나타났다. 남편의 귀가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은 자정, 새벽 두시, 네 시나 돼야 들어왔다. 남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어느 날 "출장을 간다."며 주섬주섬 짐을 쌌다. 그이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남편은 "나도 몰라" 그러더니 가방을 메고 훌쩍 떠나버렸다. 그리곤 근 한 달이 넘게 남편에게선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이는 너무나 답답하고 기가 막혀 미칠 지경이었다. 다시 그이의 병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이는 점차 삶을 포기하게 됐다. 살고픈 마음이 들지 않아 바깥출입하기도 싫을 정도였다.  남편은 사라진지 정확하게 한 보름만에 불쑥 나타났다. 며칠 집에서 머물다가 남편은 역시나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다시 불쑥 떠났다. 황폐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이는 자신이 미쳐 가는 것이 아닌가,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때는 팔심구년 초, 구정연휴였다. 그이는 탈진 상태에서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연휴를 맞고 있었다. 꿈결에서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남편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남편은 아무 표정 없이 그이를 일별 하더니 가방을 손에 든 채로 돌아섰다.
  "나 다시 출장 간다."
  "가지 마세요!"
  그이는 절박한 심정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남편에게 애원했다. 그 순간이었다. 그이의 사지가 흡사 벼락을 맞은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 것은. 그이는 이젠 죽는구나. 죽음이 나를 데리러 왔어‥‥‥ 까마득히 정신을 잃었다.
  그이가 눈을 뜬 곳은 병원 응급실이었다. 남편이 곁에 서 있었다. 그이는 왈칵 울음부터 터뜨렸다. 입원한지 이틀만에 그이는 서둘러 퇴원했다. 의사는 "관절염이 심하게 진행돼 부위 부위를 수술해야한다"며 퇴원을 만류했지만 의료보험 수첩이 없었던 그이로서는 수백만 원에 달하는 수술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이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남편이 말했다. "일을 대충 정리하고 올 테니까 몸조리 잘하고 있어." 다음날 거짓말처럼 남편이 돌아왔다. 그 날부터 보름 여를 그이는 이게 꿈이 아닌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남편의 극진한 간호를 받았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이때가 남편과 결혼한 후로 유일하게 맛본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보름 후 남편이 그이에게 일방적으로 통고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이러다간 직장에서 짤릴 것 같아, 장모님을 부르든지 다시 친정으로 가든지 알아서 하라고."
  그래서 그이는 다시 혼자가 됐다. 늙으신 친정어머니가 오가며 돌봐 줘 끼니는 이을 수 있었지만 병세는 좀체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 해 여름 때마침 전국의료보험이 확대 실시됐다. 그이는 보험수첩을 발부 받아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 그이는 피주사를 네 봉지나 맞았다. 비로소 몸이 날아갈 듯 가뿐해졌다. 의사는 그이의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일러 주었다.의사가 통원치료를 받아도 상관없다고 해 그이는 퇴원했다.  이 무렵부터 남편이 이혼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이혼 강요는 짜증을 내는 형태로 표면에 드러났는데 남편은 출장에서 돌아오면 "언제 낫느냐?"며 그이를 다그쳐댔다. 그래서 그이는 남편이 올 때쯤 되면 몸이 아파도 평소보다 진통제라도 한 알 더 먹고 안 아픈 척 해야 했다.
  짜증을 부려도 그이가 이혼에 동의하지 않자 남편은 방문을 발로차기도 하고 유리병을 깨뜨리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그래도 뜻대로 안 되자 남편이 한걸음 더 나아가 취한 조치는 그이에게 생활비를 전혀 주지 않는 것이었다. 은행 빚을 갚기 전에는 약간의 생활비나마 건네줬는데 사년 만에 빚을 다 갚고 나자 남편은 "나는 능력이 없으니 적금을 해약해서 쓰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며 단 한 푼의 생활비도 주지 않았다. "나도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래서 술 마시는 데도 돈이 모자란다."며 화를 내며 소리치곤 했다.

  남편은 또한 한 집에 살면서 드러내놓고 딴살림을 함으로써 그이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그이가 보는 앞에서 빨래를 했고 라면을 사다 끓여 먹으며 너한테서 도움을 받지 않을 테니까 너도 나한테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라" 윽박질러 댔다.
  그렇게 서로 간에 원수로 지내던 어느 날 이었다. 하루는 남편이 집에 없을 때 남편 친구가 집으로 찾아 왔다. 남편 친구는 "젊은 사람이 계속 아프기만 하면 어떡합니까. 남편이 돈도 잘 버는데 빨리 약이라도 사먹고 낳아야지요."라며 안됐다는 듯 위로했다. 그이는 남편이 돈을 잘 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얼마를 버는데 잘 번다는 거예요?"라고 물어 보았다. 남편 친구는 의아한 표정으로 "아니 여태 몰랐어요? 그 친구 철근 기술자예요. 많이 벌 때는 한 달에 이백만 원도 넓게 번다고요. 정말 몰랐습니까?"
  그이는 한순간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남편이 번 돈 남편이 쓰는데 내가 뭐라고 할 것인가. 나는 약자에 지나지 않는 데"라는 생각이 들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십년 가을, 그이는 친척을 통 해 관절염에 좋다는 민간요법을 소개받았다. 친척의 말에 의하면 "잘 아는 전신통풍성난청관절염을 심하게 앓아온 환자 한 명이 지금 은 깨끗하게 나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는데 비결이 다름 아닌 민간요법을 꾸준히 실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이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민간요법 치료를 받아 보기로 했다. 그래서 친정으로 가 삼 개월여를 자연식품만 섭취하며 온 몸에 숯가루를 바르고 한두 차례 목욕을 병행하는, 참기 힘든 극기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그이의 애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치료는 철저한 실패로 끝났다. 낫기는커녕 온몸이 다시 퉁퉁 부어 올랐고 걸어 다닐 수조차 없는 최악의 상태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그이는 자신의 장애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장한 심정으로 그이는 이젠 이혼을 해줘야 한다는 결론에도 도달하게 되었다.
  남편에게 이혼 예기를 꺼내기 전 그이는 마지막 치료법으로 쑥뜸을 떴다. 어떻게든 낫고 싶어 그이는 한 달 여를 그 뜨거운 불덩이를 열 시간도 넘게 몸 위에 올려놓고 진땀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렇지만 역시나 치료는 실패였다. 훈장처럼 흉측한 흉터만 곳곳에 생겼을 뿐이었다. 그이는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는 틀린 것 같아요. 우리 이혼해요."
  그이는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파 몸이 아픈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얼마 후 남편이 수화기 저편에서 대답했다.
  "그래 ? 네가 원한다면 이혼하지."
  "저는 걸어 다니지도 못해요. 서류를 가져오세요. 제가 도장을 찍어드릴 테니까요."
  "알았어."
  남편이 전화를 끊었다. 이제 이혼인가. 그이는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이는 치료를 중단했다. 후유증으로 무릎이 기역자로 꺾인 채 굳어지고 팔도 쓸 수 없는 중증의 장애를 가진 채 그이는 남편을 기다렸다. 하지만 남편은 좀체 오지 않았다. 그이는 할 수 없이 친정 집을 나왔다. 더 이상 신세를 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막상 갈 곳이 없었다. 차마 걸어서 나와 누워서 들어갈 수는 없어서 남편의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이는 강원도 태백에 있는 한 기도원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친정어머니의 수발을 받으며 육개월을 지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지내다보니 그이는 잠시나마 아픔을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모든 걸 다 털어 버리고 눌러앉고 싶었는데 생활비가 없었다. 그이는 눈물을 머금고 다시 서울 친정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때가 올 이월 달이었다.
  그이는 연락처를 수소문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서류를 가져오지 않는 거예요? 이혼은 당신이 원했잖아요."
  "얘기해 봐.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많은 걸 원하지는 않겠어요. 물리치료나 받으면서 생활할 수 있게끔 약간의 치료비와 방 한 칸 얻을 돈만 주세요."
  "도대체 얼마를 원하는 거야?"
"  ‥‥‥‥오천만 원만 주세요."
  "뭐라고!"
  "왜요 많은가요? 그렇다면 좋아요. 나한테 위자료로 얼마를 주고 했는지 말씀해 보세요."
  "난 돈이 없어. 그래서 삼천 오만 원 만드는 것도 벅찰 것 같아."
  "  ‥‥‥‥알았어요. 거기다 나를 마지막으로 도와주는 셈치고 오백만 원만 더 얹어 주세요."
  "알았어. 하지만 돈을 마련하려면 두 달은 지나야 될 거야. 일단 가지고 있는 돈을 줄 테니까 이혼부터 하자고."
  "아니에요 한꺼번에 주세요. 피차간에 깨끗하게 끝냈으면 해요. 돈이 마련되면 전화 주세요."
  그이는 보름 후 다시 전화를 걸어 남편을 찾았다.
  "안 되겠어요. 저는 하루가 급해요. 빨리 치료를 받아야 되겠어요. 제가 양보하죠. 마련된 돈이라도 주세요."
  "그때 내가 얼마 주기로 했지?"
  "무슨 소리예요. 사천만원을 주기로 했잖아요!"
  남편이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야! 사천만원이 누구 집 강아지 이름인줄 알아! 사천만원을 벌려면 내가 얼마를 고생해야 하는데, 자그마치 십년을 썩어야 된다구. 너도 알다시피 내가 결혼을 해 얻은 게 뭐가 있다고 너에게 십년세월을 바쳐야 한다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렇다면 나는 결혼해서 얻은 게 뭐가 있죠? 사지 건강해서 들어가서 나을 때 얻은 건 병든 육신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내가 여태껏 희생을 했잖아. 그만큼 해줬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는 거야 ! "
  "이 개 같은 새끼야! 네가 나한테 뭘 그렇게 잘해줬다고 그러니 ! "  그이는 생전 처음 남편에게 욕을 했다. 남편도 지지 않았다.  "개 같은 년 목을 따서 죽여 버리겠어! 너, 분명히 알아둬. 돈을 길거리에 뿌리는 한이 있어도 너한텐 돈 못 줘. 이혼을 해주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
  남편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이는 한순간 앞이 캄캄해 옴을 느꼈다. 어떻게 할 바를 몰라 그이는 한참을 몸을 부들부들 떨어야했다.
  올 봄, 그이는 어떤 식으로든 끝장을 봐야 되겠다는 각오를 하고 남편이 없는 틈을 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휠체어를 타고서였다.  그이가 돌아오자 남편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연이은 한숨이었다. 남편이 말했다.  "나도 고생 많이 한 사람이다.오죽하면 우리 집 식구들하고도 등을 돌렸겠니. 제발 부탁이다. 나도 이제 편하게 살고 싶어. 너에게 위자료를 줄려면 이 집을 팔아야 하는데 그건 죽는 한이 있어도 못할 짓이다. 내 심장을 떼어 파는 한이 있어도 이 집은 못 판다고‥‥‥‥  그때로부터 십 개월째, 고민숙 그이는 식물인간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남편이 의도적으로 보일러를 고치지 않아 온기 하나 없는 냉방에 누워서 숨을 쉬는 게 활동의 전부인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최근에는 끼니마저 제대로 이을 수 없어 그이는 굶주림의 고통까지 겪는, 그야말로 극한 상황에 놓여 있다.
 
남편은 여전히 한 달에 한번 꼴로 모습을 나타낸다. 그때마다 이어지는 말다툼, 그이는 "법에 호소하겠다. "는 말까지 꺼냈지만 남편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다. 남편은 "맘대로 해라"고 응수하곤 더 이상의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이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남편이 시가 일억 육천만 원에 달하는 집을 딸아 그이가 요구한 위자료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죽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는 하지 못한다."며 버티고 있다. 그래서 문제는 늘 원점에서 맴돌고 있다.
  그래도 그이는 어떻게든 물리치료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이에게도 의료보험 수첩이 있다. 그러나 돈이 없어 병원엘 갈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그이는 하도 답답해 얼마 전 관할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호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동사무소 담당자는 그이가 남편이 있고 집이 있어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한마디로 그이의 요청을 거절했다. "사정이야 어쨌든 남편 집에 살고 있지 않느냐, 그러면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는 것이었다.
  "약한 자는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죽음만을 기다려야 하나‥‥‥"
  벽 앞에 선 그이가 심한 자괴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무척이나 당연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숙 그이는 오늘도 자신이 일어서서 걸어 다니는 꿈을 꾼다. 그 꿈마저 꿀 수 없다면, 그런 날이 온다면‥‥‥ 그이의 삶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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