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김창민. 최창섭. 오에 겐자부로.박옥희 > 함께 사는 세상


[사람과 사람] 김창민. 최창섭. 오에 겐자부로.박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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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손가락만이라도 쓸 수 있다면....."

컴퓨터사업가 김창민


  유난히 부각된 엄지발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누르는 모습의 장애우가 지난해2월 <함께걸음> 표지모델로 나와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 바 있었다. 그 표지의 주인공이 바로 김창민씨(22)다.
  뇌성마비 장애우 김창민씨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신체부위는 오로지 왼쪽발가락 뿐이다. 발가락으로 컴퓨터의 자판을 움직여 문서를 만들고 오락을 하며 통신도 하고 프로그램도 만든다.
  검지발가락으로 쉬프트(shift)를 누르고 엄지발가락으로는 쌍기역( ᄁ )을 누르는 등, 발가락하나로 처리되지 않는 글자는 이렇게 발가락두개를 이용하여 찍지만 이제 제법 그의 발놀림이 노련하다.
  "컴퓨터가 좋아요. 컴퓨터에 빠져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요즘은 프로그램에 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려고 정보수집하고 있어요"
  그는 정규 학교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어릴때는 대부분의 장애우가 그렇듯이 어떻게든 고쳐보려는 부모의 열성으로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해야 했고 학령기가 되었을 때는 재활원이 딸린 특수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집안 형편도 어려웠고, 또 어느 학교에 보내야 될지 몰라서 그냥 집에 두게 된 것이 한해 두해 지나다보니 14살까지 가게 됐다는 김창민씨 어머니의 설명이다.
  그는 14살 되던 해 성남에 있는 소망재활원에 들어갔다. 20살까지 그곳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자신과 같은 장애우들을 만났고, 물리치료와 운동도 했다. 또 순전히 독학으로 글자를 익혀 책을 보고 영어공부까지 하면서 컴퓨터를 배웠는데 처음에는 심심해서 하기 시작한 컴퓨터가 그를 매료시켰다. 그가 컴퓨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운 것이 있다면 "잔디네 집" 에 가서 한달 간 열심히 익힌 것뿐이다(이때<함께걸음> 이정률 기자를 만나게 되어 사진을 찍게 됐다).
  "재활원에서 나와서 기계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났어요. 한 친구는 몸이 조금 불편한 친구이고 또 한 친구는 휄체어를 타는 친군데 , 우리 셋이서 아주 잘 맞아요. 내가 아이디어를 내고 마로하면 다른 친구들이 그것을 실행하는 일을 하죠. 또 부품을 사거나 데리고 다니는 일도 어렵지 않게 해결되었어요. 협조가 잘되어서 한달 동안 집을 뛰쳐나가 여관을 사무실로 잡고 일을 한 적도 있었어요"
  그의 이런 열성탓일까, 그의 매형이 컴퓨터 사업을 하는 친구와 연결시켜 주었고, 그사람을 통해 고장난 컴퓨터를 수리하는 일을 시작했는데, 아직 몇 달되진  않았지만 제법 인정을 받고 있다.
  "가게를 내서 본격적으로 컴퓨터 사업을 하고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는 김창민씨."누군가는 꼭 옆에 붙어있어서 밥을 먹여주는 등 도움을 주어야한"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는 "손가락만이라도 쓸수 있다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아들이 아니었다면 오만한 지식인으로 살았을 것"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겐자부로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가 한국에 왔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의 아들 히카리는 뇌성마비와 정신지체의 중복장애를 가진 장애우이다. 그는 이아들을 낳으면서 겪게 된 심리적 갈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내 아들 히카라는 장애 때문에 지금도 언어능력은 4살 정도 밖에 안됩니다. 히카리의 출생은 나에게 굉장한 절망이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그 어두운 운명에서 도피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나는 히카리와 함께 제기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아들과 함께 생활한 개인적 체험을 통해 소설가로서 제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처음 그는 그가 직접 경험했던 전쟁속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고통과 기쁨에 대해 썼었다. 그러나 자신의 소설이 일본의 소설이 아닌 영국,미국,프랑스의 소설을 모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후 자신의 작품에 깊은 회의를 가지게 된다. 그때 그의 아들인 히카리가 태어난 것이다.
  "히카리가 태어난 이후 나에게는 항상 실망과 어둠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히카리"라는 이름그대로 빛이 되었습니다. 히카리가 태어난 이후 작품경향이 바뀌어 지금까지 구원의 문제를 주제로 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아들과 함께하는 생활에서 그는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쳤다. 혼자 놔두면 위험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함께 있어야했다. 그는 이러한 곤란을 이기면서 조금씩 자신의 소설이 변화 했다고 고백한다.
  "히카리는 새소리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새소리가 담겨져 있는 레코드를 항상 들려주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새소리입니다. 라고 말해주는 레코드 였어요. 하루는 아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었는데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히카리가"구이나데스(구이나새소리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히카리가 얘기하는 것을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아들이 얘기할 수 있기를 바라다보니 지금 공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번만 더"구이나데스"라고 말해줬으면 하고 바람이 생겼습니다. 잠시후 아들이 다시한번 "구이나데스"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나의 기원, 내 아들에게 구이나데스를 다시한번 발성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고 희망하는 것, 이것은 바로 내가 소설을 쓰는 일과 똑같습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한국에 와서 "아들 히카리가 아니었다면 오만한 지식인으로 한평생을 살았을 것" 이라는 말을 남기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참고로 오에겐자부로의 아들 히카리는 지금일본에서 작곡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나눔입니다"

서강대 언론대학원 원장 최창섭

 

  올해9월이면 라디오에서 장애우 관련 내용만을 모아 방송하는 장애우 방송국을 만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현재 준비작업이 한창인 장애우 방송국은 프로그램제작은 서강대에서 맡고 송축은KBS에서 하게 된다. 송출에 있어서는 SCA라는 기술을 도입, 기존에 방송되고 있는 채널을 변조시켜서 방송을 내보내는 독특한 방식이 사용된다. 때문에 9월쯤 장애우들이 이방송을 청취하려면 특수하게 제작된 수신기가 필요하다.
  다소 복잡한 방식이지만 어쨌든 전문성을 담보한 방송국이 생긴다는 것은 장애우의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수 없다.
  장애우 방송국은 지금 서강대 언론대학원 원장인 최창섭 씨가 실무를 맡고 있다. 그는 2년전인 1993년초부터 방송국 설립을 진두지휘해 오고 있는데 장애우 방송국 설립을 추천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방송을 뜻하는 커뮤니케이션이란 단어의 뜻은 "나눔"입니다. 내가 오랫동안 커뮤니케이션을 가르키면서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겠느냐를 고민했는데 그 실천의 방안이 장애우 방송국이 아니냐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가고 있다고 그러고, 정보화 사회라고 말들 하는데 그럴려면 정보로부터 소외된 계층과의 나눔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저는 정보로부터 소외된 계층을 장애우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송국을 설립을 추진하게 됐죠"
  그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장애우 방송국이 있는 나라는 미국 한나라 뿐으로"인터치"라는 라디오 방송국이 있다.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가 두 번째로 장애우 방송국이 생기니만큼 그만큼"책임감이 크다"라고 그는 말했다.
  "방송국이 일단 설립되면 운영에 있어서 자원활동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입니다. 우리 서강대에서는 방송 아카데미가 있어서 거기서 방송인들을 훈련시키고 있는데 일단 그분들을 활용하고, 운영자금은 방송 후원회를 구성해서 충당할 예정입니다"
예정대로 추진된다면 9월3일 방송의 날에 첫 전파를 내보내게 될 장애우 방송국은 처음에는 하루 8시간 방송된다.
  장애우 방송국이 장애우 복지에 큰 기여를 하리라고 믿고 있다는 그는 "장애우 방송국이 계기가 돼서 사회 전반적으로 장애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질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며 말을 맺었다.

 

"장애 범위 한정하면 출현율이 높게 나올수가 없죠"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 박옥희
 

  "장애우단체에서는 전수조사를 주장하는데 제가 보기에 전수조사를 하면 장애우 숫자가 많이나올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거에요. 우리나라의 경우 1955년과 1980년에 인구조사를 할때 장애우 전수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공식적으로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는데 왜냐면 장애우 숫자가 턱없이 적게 나왔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표본조사가 전수조사보다 두배 내지 세배 정도 장애우 숫자가 높게 나오고 있습니다."
 3월초부터 5월 말까지 3개월동안 장애인복지법 근거에 따라 전국적으로 장애우 실태조사가 실시된다. 이 조사는 보건복지부 출연 연구 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에서 맡는다.
박옥희 씨는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원이다. 사회학을 전공한 그녀는 실태조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장애우 실태조사에 관심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가 지난 1년간 꼬박 연구해온 주제의 상당부분이 바로 이 장애우 실태조사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장애우 실태조사가 다시 화제에 오르자 표본조사의 불가피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현재의 조사방법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녀도 조사방법의 맹점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본의 장애 분류표를 그대로 들여와 시각․청각 등 다섯가지 장애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일수록 장애 출현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선진국 일수록 장애 범위를 넓게 잡기 때문에 인구의 20%가 장애우로 나타나는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같이 장애범위를 협소하게 한정하면 장애출현율이 높게 나올수가 없죠"
그녀는 얼마전 동료연구원과 함께"장애인복지의 현황과 정책 과제" 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이보고서는 처음에는 올해 실태조사를 앞두고 외국은 장애우 실태조사를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를 알아보려는 생각에서 기획됐다가 막상 연구를 진행하다 보니 내용이 늘어, 전반적인 우리나라 장애우 복지정책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검토하고, 외국의 경우 장애우의 현실이 어떤지를 알아보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결국 방대한 양의 보고서가 나왔다.
  "이번 보고서가 가지고 있는 특징은 보고서 후반부에 있는 외국의 장애우 현황일거예요. 그 부분은 우리나라에서 깊게 연구가 진행된 적이 없는데 이번에 저희가 자료를 수집해서 정리해 놨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료 수집에 애를 먹었다는 그녀는 이보고서가 "장애우 복지를 앞당기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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