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 근이양증 장애우와 함께 콘서트 연 음유시인 > 세상, 한 걸음


[더불어 사는 삶] 근이양증 장애우와 함께 콘서트 연 음유시인

하덕규

본문

[더불어 사는 삶]

 

근이양증 장애우와 함께 콘서트 연 음유시인
하덕규

 

“피곤한 얼굴로 돌아오는 저 나그네의 지친 어깨위에 시장어귀에 엄마품속에서 잠든 아가의 마른 이마위에 공원길에서 돌아오시는 내 아버지의 주름진 황혼 위에 아무도 없는 땅을 홀로 일구는 친구의 굳센 미소위에 사랑해요 라고 쓴다 사랑해요 라고 쓴다“

 


11월 23일 저녁,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는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과 무대 위에서 서서 열창하는 이가 서로 한 덩어리가 돼서 "사랑해요"를 뜨겁게 외치고 있었다. 초겨울 샛바람이란 손님은 멀리 내보내고서.
바로 "근이양증 장애우와 하덕규가 함께 하는 사랑콘서트"란 타이틀로 열린 잔디회 자선음악회장. 물론 이날의 주인공은 휠체어에 앉은 채로 자원활동자들과 함께 등장해서는 있는 힘껏 목청을 빼며 열창하는 8인의 용사들과 객석 군데군데에 자리한 근이양증 장애우였다.
이들 주인공과 함께 시종일관 노련한 진행솜씨로 음악회를 이끌고 "얼음무지개" "사랑일기", "가시나무" 등 자신의 히트곡들을 부르며 듣는 이의 마음을 얼렸다 녹였다 하는 이는 다름 아닌 가수 하덕규(38세)씨.
"두 달 전에 잔디회측의 출연 제의를 받고 망설임 없이 참여하게 됐습니다. 음악회 취지를 듣자 바로 제가 서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지요."
이번 자선음악회를 위해 준비하기 전까지는 근이양증 장애우에 대해 잘 몰랐다고 솔직히 말하는 그는 자신이 오히려 음악회를 통해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강원도가 고향인 가수 하덕규씨는 1981년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시인과 촌장"의 "꽃을 주고 간사랑"으로 가요계에 첫선을 보였다. 그 후 "우리에게", "사랑일기", "숲" 등의 앨범과 "쉼", "광야" 등의 가스펠집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고 현재는 기독교방송의 음악프로인 "하덕규의 CCM 캠프"의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제가 뭐 한 일이 있어야지요. 요즘 젊은 가수들처럼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하는데, 아마도 별 움직임 없다가 가끔씩 자선콘서트에 참여하게 되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이겠죠."
다른 연예인들에 비해 자선음악회나 장애우행사에 게스트로 참여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운을 뗀 기자에게 하덕규씨는 못내 쑥스러워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이러한 그의 겸손이 겉치레가 아님은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사십 고개를 바라보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동안의 얼굴을 붉히며 멋쩍은 듯 그 큰 두 눈의 시선을 의자 밑으로 가져가는 그의 모습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고백은 장애우들과 늘 같이 호흡하며 장애우들의 생활이 곧 자신의 삶 일부가 되어버린 수많은 자원활동자들을 떠올린다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중의 인기를 먹고살며 화려한 곳을 찾아 불나비가 되는 연예계의 현실 속에서 하덕규씨 같은 이들은 결코 흔치가 않다.
몇 년 전 흰눈이 내리던 밤. 한 사회복지단체의 자선이란 이름을 내건 공연장인 광화문 어느 교회당에서 노래하는 그를 봤고 "사랑의 수화제"를 비롯한 크고 작은 장애우관련 행사장에서도 그는 자주 보였다. 또한 그는 2년 전에 동료가수들과 함께 한국기아대책기구 기금 마련을 위해 미국, 캐나다, 브라질, 멕시코 등 해외 공연을 가진 바 있다.
이러한 활동들로 우리 눈에 목격되던 하덕규씨의 모습만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그를 남다르게 우뚝 서 보이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그의 시처럼 아름다운 노랫말과 멜로디를 통해 피곤해 지치고 찌든 우리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쉼" 즉 위안이라는 큰 선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음유시인" 하덕규, 이러한 수식어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특히 1989년 세상에 선보인 하덕규씨의 시집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에 나오는 시들은 음유시인으로서의 그의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시인 하재봉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참된 세상을 구현하기 위한 현실적 투쟁과 몸부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분명 세계 이해의 한 방법으로 시를 선택했다. …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어느새, 이 더럽고 악취나는 세상을 빠져나가 마치 어릴 때 동구 밖으로 사라지던 꽃상여의 행렬 뒤, 가시나무에 하얗게 찢겨져 남아있는 수많은 만장의 흔적들처럼 순결하고 신비한 영혼의 오랜 방황의 흔적을 읽을 수 있으리라"
"즐거운 토요일 서울역 지하도/ 어미거지 새끼거지 도합 네 마리/ 아비는 끝없는 농군이었단다/ 어미 거지가 울자 새끼들이 따라 울었다/ 사람인 나도 사람이 창피한 채로 그냥 창피한 채고 엉엉 울어버렸다"
"눈물일기"라는 그의 시다. 우리 사회의 소외에 대해 그가 품고 있는 마음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 한창 "집"이라는 타이틀로 나올 세번째 가스펠 음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집은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가정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존재의 고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의 근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며 계속해서 그는 말을 이었다.
"현대인들은 마음이 병들어 있습니다. 무력감, 상실감 등에. 그러나 장애우들을 대하면서 강하고 깨끗한 면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 오히려 제가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소외된 이들을 위해 섬기는 자세로 노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장애우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이런 자리에 많이 설 생각입니다."
이렇게 말을 맺는 가수이자 종교인 그리고 음유시인 하덕규씨.
"새날이 올거야/ 새날이 올거야"
"장애우"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장애우들에게 그의 외침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글 / 조옥

작성자조옥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과월호 모아보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