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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사람]정신과 전문의 김병후 박사-편법이 판치는 사회

분노-우울-자살의 악순환 고리

본문

                                                                                    
자살이 늘고 있다. 경제적 파산 때문에, 가정불화를 비관해서, 인생이 하찮은 게임 같아서, 성적이 안 올라서, 부모에게 야단맞을 것이 두려워서,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소중한 생을 마감하려 할까? 과연 그들에겐 자살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었던 걸까?

정신과전문의-김병후박사

 

 함께걸음은 정신과 정문의 김병후(부부클리닉 "후" 대표, 김병후 정신과의원 원장) 박사를 만나 요즘 바이러스와 같이 확산되는 자살에 대해 총체적이고 심도 있는 진단을 시도해 보았다. 김병후 박사는 자살은 대다수가 우울증의 한 증상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사회적으로 개인의 분노를 일으키는 조건이 충분한 상황에서 이를 막을 수 있는 애정과 정서의 지지망까지 파괴되고 있는 것이 자살율 증가의 근본원인으로 지적했다.


<언론이 자살가능성 높이는데 일조>
김정열(이하 "열") 요즘 자살문제가 참 심각합니다. 신문, 뉴스에 거의 매일 보도될 정도니까요. "공무원 시험 준비생 목매 자살" "아들 카드 빚 부담 때문에 부부 농약 자살" "쌍거풀 수술 잘못 된 주부 음독 자살"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기가 막힌 것은 초등학생도 자살했더라 고요. 정말 충격적입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자살이 늘어나는 걸까요?

김병후(이하 "후") 제 생각엔 예전에도 자살은 있었습니다. 물론 현대에 와서 증가되는 추세지만 요. 문제는 언론에서 너무 자살 사건을 경쟁하듯 보도한다는 데 있습니다. 자살은 우울의 극단적인 표현입니다. 우울은 감염력이 높거든요. 가족 중에 한명이 우울하면 가족 전체가 우울해 집니다. 자살도 모방할 수 있고 따라할 수 있습니다. 언론이 자살가능성을 높이는데 일조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자살하겠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그걸 보면 분명 영향을 받거든요.

열 과거 민주화 투쟁이 한창일 때  문익환 목사님이 제발 분신자살 하는 거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기자들에게 부탁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런데 방금 자살이 우울증에서 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우울증 성향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거 아닌가요? 우울하다고 다 자살하진 안잖아요? 누구에게나 있는 이 "우울한 기분"이라는 것과 우울증은 어떻게 다른가요?

후 그것은 기간을 가지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우울의 정서가 혹은 그 신체적 반응이  3∼6개월 지속 될 때 우울증이라 진단합니다. 또 사람에 따라 별것도 아닌 경우가 어떤 사람에게는 우울증으로 악화되기도 하는데 이는 신체적 조건에 의한 우울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뇌에 정서를 담당하는 호르몬인 페르토닌이라는 화학물질이 떨어지면 이러한 우울이 만들어집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입맛이 떨어지고 잠을 못 자고 말과 행동이 느려지고 하는 등의 반응들이 나타나죠. 이것이 신체적 조건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열 우울증에 이르게 하는 특별한 요인이 있나요?

후 우울증의 가장 큰 요인은 상실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던가, 재산을 잃거나, 내 몸의 일부를 잃었거나, 실직했다거나, 출산을 한 여성이 처녀의 몸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거나 하는 무언가의 "상실"이 우울증의 대표적인 원인입니다. 우울증은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질병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류에게 가장 고통을 주는 질병이 뭐냐고 묻는 다면 우울증이 단연 1위입니다. 우울증은 단순한 정서가 아니라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질병입니다. 자살에 이르는 우울증의 대부분은 사전에 치료만 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상황들이 대부분 입니다.

<자살방지기제 붕괴>
열 자살의 형태도 예전과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혼자 죽었거든요.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죽고 나중에야 자살로 밝혀지고 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공개된 장소에서 자살하고, 자살사이트를 통해 만나서 동반 자살하는 경우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후 사실 동반자살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은 혼자 죽습니다. 아무래도 같이 죽으면 이것이 이슈가 되고 신문에 실리지 않겠습니까? 물론 자살사이트 같은 커뮤니티가 영향을 주긴 줬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살할 마음이 있는 사람이 함께 죽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무래도 영향을 받겠죠.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일정정도 해소 시켜줄 수도 있고요.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도 죽음이란 두려운 겁니다. 그래도 죽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그것보다 현실이 더 힘들다라는 거죠. 그런데 누군가 함께 한다면 그 불안은 감소됩니다.

후 문제는 지금 자살이 너무 친숙해져 있다는 데 있어요. 제가 상담하는 분들 중에도 죽음을 너무 쉽게 이야기합니다. "나 아파트 꼭대기 올라가서 떨어져 죽겠다"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더란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매스컴에서 매일 떠들어대니까, 매일 자살을 접하니까 자살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되는 겁니다. 저는 언론이 사명을 갖고 자살에 대한 보도를 자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열 얼마 전 신문을 보니까 한국에선 평균 하루에 36명이 자살한다고 하더군요. OECD국가 중에서도 상위더라고요. 우리 사회에 왜 이렇게 자살이 많은지, 그만큼 세상이 사람들을 우울하게 하는 건지, 그렇게 살기가 힘든 건지 참 안타깝습니다.

후  삶이 재미가 없어요, 피곤합니다. 초등학생도 자살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보세요. 너무 불쌍합니다. 아이들한데 가장 좋은 공부는 바로 "놀이"입니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세상 살아가는 지식을 배우고 정서적 안정을 가집니다. 그런데 부모의 불안과 경쟁심 때문에 학원이니 과외니 하면서 놀 시간이 없어요. 거기에 가족 마저 해체되고 있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부모가 놀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열 맞아요. 요즘 초등학생들은 방학이 싫데요.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일주일 평균 16.3시간을 공부하는데 방학 때는 학원가고, 캠프가고, 과외받고 해서 일주일에 46시간을 공부하는데 보낸다고 합니다. 대학도 일주일에 22시간 정도 되는데 말이죠.

후 저는 지금 자살율이 높은 것이 우리가 예전 보다 살기 힘들어졌다 라는 것 보다 자살을 방지하는 정신적인 완충 기제가 붕괴되었다 라고 보는 쪽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 보면 한국사회처럼 괴로운 나라가 없어요. 애들은 애들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노년은 노년대로 다 괴롭습니다.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을 만한 구석이 없습니다. 따뜻한 구석이 없단 말이죠. 애들은 학교에서, 가정에서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죠. 젊은이들은 실업문제, 카드 빚 문제에 시달리죠. 장년층은 고용불안에 가정에서도 인정 못 받고, 노인들은 소외당하고... 

<편법이 판치는 사회 기댈 곳 없어>
후 한국사회를 보면 정당한 게 없어요. 전부 "편법"입니다. 과외라는 게 대표적인 편법 아닙니까? 자식에게 부모의 돈을 써서 뭔가 이득을 취하려 하는 거잖아요. 서양 사람들이 과외를 몰라서 안 시키겠습니까? 그것이 뭔가 폐해가 있고 좋지 않으니까 안 하는 거겠죠. 왜 그들은 아이들을 학교에서 놀게 합니까? 그게 정서 발달에 좋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는 애들을 잡아서 공부시키고 그 학벌로 줄대서 취직하고, 취직해선 뇌물 줘서 승진하고 아이 낳으면 또 학원 보내고 과외 시키고... 뭔가 편법을 써야 살아 남을 수 있는 나라가 이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은 편법이 통하고 편법을 방조하는 나라입니다.

열 쌍거풀 수술 때문에 자살한 주부의 경우도 외모지상주의가 만들어 낸 안타까운 죽음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결국 성형수술을 한다는 것도 뭔가 편법을 사용한다는 거 아니겠어요?

후 성형외과 열풍이나 과외열풍이나 저는 다 같다고 봐요. 뭔가 외부적인 걸 들여와서 나를 보완하려 합니다. 내 원래 있는 모습을 갖고 거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정정당당하지 않다는 말이죠. 그런데 외모가 좋으면 취직도 잘 되고 대우도 좋습니다. 이게 우리 사회입니다. 그것이 통용되고 인정되는 사회란 말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상당히 높이고 있습니다. 

열 결국 자살이라는 것이 개인의 선택이긴 합니다만 그것에 이르게 하는 과정은 사회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불안, 불평등, 경쟁... 이런 것들이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요즘의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까지 여겨지는 데요. 우리 사회가 자본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 아닙니까? 대부분 돈 문제 때문에 자살하고요.

후 자본주의체제에서 돈은 힘이고 권력이죠. 여기에서 다 억울함이 생기고 남과의 비교가 생기고 절망감이 생기는 것이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가 사람들을 자살에 이르게 했다 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사회가 자살율을 높일 만한 충분한 조건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자살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거든요. 그들에게 사회라는 것은 나하고 먼 존재입니다. 자살은 본인이 속해 있는 환경 즉, 개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충돌로 인한 영향이 더 큽니다.

열 그러나 사회적으로 소외 받는 계층, 이를테면 빈곤층에서 자살율이 더 높게 나타나지 않을까요? 생계가 곤란한 상황은 인간에게 고통스러운 것이니까요. 카드 빚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 때문 아닐까요?

후 자살과 경제적 빈곤과의 관련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자살은 어느 특정한 계층에 국한되어 나타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모든 세대에서 모든 계층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것이 자살입니다. 인간을 괴롭히는 "문제"는 어느 세대나 어느 계층이나 다 똑같습니다. 카드 빚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도 경제적으로 빈곤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과소비가 주원인이거든요.

<너만 문제야 라는 식으로는 절대 문제 해결할 수 없어>
후 자살의 증가는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힘들다라는 것보다는 힘든 부분을 완충시켜주는 정서적 지지기반이 파괴됐다는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청소년의 경우 설사 부모가, 학교가 힘들게 한다 치더라도 친구랑 뛰어 놀고 이야기하고 하는 환경이 있으면 괜찮거든요. 그런데 이들이 아파할 때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같이 놀 친구도 없고 학교에서는 경쟁해야 되고 부모는 공부 안 한다고 혼내죠. 친척들도 남 같죠. 대안이 없는 겁니다.  

열 선생님 말씀은 자살은 개인적 문제로 보되, 사회적 환경, 제도에 의해 유발되는 개인의 억울함이나 분노를 완충하고 이길 수 있는 애정과 정서적 지지망의 파괴가 자살율을 높인다는 것인데요.

후 사회 자체가 불평등하고 편법이 통용되는 사회라 분노를 일으키는 기제가 많습니다.
요즘 신문을 보면 참 짜증이 납니다. 왜 저렇게 미워할까? 뭐가 그렇게 문제일까? 어딜 가나 억울한 사람들뿐이에요. 다들 분노 덩어리입니다. 사랑이 없어요. 진보와 보수가 있다면 양쪽 다 소중하거든요. 과거를 지키고 책임지는 것이 보수라면 문제가 있으면 빨리 고치고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 진보입니다. 양쪽이 같이 병행이 되야 하는데 이건 무조건 나만 옳고 상대는 나쁜놈이야 라고 말합니다. 한겨레신문을 보면 노조가 불쌍하고 조선일보를 보면 기업이 불쌍해요. 어떻게 이렇게 자기 이외에 나머지 사람들을 부정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서 양쪽 다 편법을 써요. 요즘 정치권에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이 편법을 없애자고 하는데요. 이것도 가만히 보면 내가 쓰는 편법은 괜찮고 상대가 쓰는 편법은 안 된다는 식입니다. 그러니 개혁이 되겠어요? 한쪽 개혁만 되는 거 아니겠어요?

열 어떻게 하면 이러한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바로 잡아서 사회가 유발시키는 개인의 분노를 감소시키고 자살을 예방할 수 있겠습니까?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후 힘있는 쪽에서 먼저 해야지 않겠어요? 지금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사회적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각성하고 먼저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전문분야가 부부갈등인데요. 부부싸움이나 정치싸움이나 똑같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너무 권위적이고 나를 무시한다고 하고 남편은 아내처럼 요구만 하는 여자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네는 싸움만 있지 조정과정이 없어요.
이렇게 너만 문제야 라는 식으로는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서로 다 문제있다 우리 함께 해결하자가 정답입니다. 
너만 문제 있어가 아니라 같이 문제를 풀자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함께 해결하자는 자세로 주변을 돌보는 것. 이것이 죽음의 문턱에 이른 사람들의 분노를 달래고 자살을 예방하는 첫 걸음 아닐까요?


    대담 김정열 소장 / 정리 함은혜 기자  / 사진 윤정은 사진기자

작성자함은혜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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