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더 일찍 엄마가 되지 못한 게 후회스럽네요 > 세상, 한 걸음


[사람사는 이야기] 더 일찍 엄마가 되지 못한 게 후회스럽네요

예쁜 공주 낳은 김진옥씨

본문

   마흔 살의 나이로 비장애우 남성과 결혼을 하면서 주위의 부러움과 염려를 한 몸에 받았던 뇌성마비 여성장애우 김진옥씨가 지난 해 구월 예쁜 공주님을 낳아 또 한번 주위의 관심이 그이에게 쏠리고 있다.
  "이이를 낳고 보니 세상이 너무나 신기하고 경이로와 보여요, 왜 진작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못했는지, 조금은 더 용기가 있었다면 마흔살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해서 좀 더 빨리 아이를 낳았을 텐데, 어려서부터 결혼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결혼하고는 담쌓고 산 것이 너무나 후회가 돼요."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는 기쁨이야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텐데 진옥 씨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유독 더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아마도 그이가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이가 결혼을 할 때도 축하하는 마음 한 켠에는 결혼생활을  잘 해야 할텐데 하고 염려하는 마음도 조금은 자리잡고 있었던지 모른다.
  게다가 진옥 씨 부부는 지난 해 유월 천장어머니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강동구 길동에 작은 화장품 가게를 냈다. 그래서 요즘 아이 키우랴 가게 보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가게운영과 함께 아이 양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 지 더욱 궁금해져 함께걸음은 진옥씨 부부에게 세 번째 프로포즈를 신청했다.
  첫 번째 프로포즈는 재작년 겨울 사랑하는 남편 김정근 씨를 만났을 때였고 두 번째는 지난해 삼월, 진옥씨가 임신 삼개월에 접어들 때였다.

 


“장애아 낳을 까봐 걱정 많이 했어요”
  결혼 후 진옥씨는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을 했었다. 텔레비전에서 낙태에 대한 내용을 담은 방송프로그램을 봤는데 그 광경이 너무나 끔찍해서 아이를 낳아 끝까지 잘 키울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 진옥 씨의 생각을 바꾼 것은 남편 정근씨 였다. 출산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아이를 낳아 열심히 키웠을 때의 기쁨을 삶의 또 다른 큰 행복이라며 결혼을 결심했던 마음으로 아이를 낳는 것도 고려해 보라고 권유를 했다.
  그렇게 해서 진옥씨는 결혼하고 곧 아이를 가졌는데 아이를 갖고서도 이 아이에게 혹시 장애가 있지 않을까 해서 오랫동안 마음을 졸였다. 그래서 의사에게 뇌성마비 장애우가 아이를 낳을 경우 유전될 확률이 없는지부터 묻기도 했다. 의사의 말은 뇌성마비는 유전될 가능성이 없으니 안심하라는 것이었다.
  "의사가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출산할 때까지는 계속 불안했어요. 장애우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제가 잘 알기 때문에 또 장애아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친정어머니도 그 점을 많이 염려하셨고요, 또 아이 낳아서 어떻게 키울 거냐는 걱정도 많이 하셨죠."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혹시 장애가가 태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보다는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입덧이 심해 임신 초기 사 개월 동안은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게다가 뱃속의 아이가 자라면서 진옥 씨가 아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앉지도 눕지도 못해 무척 고생을 해야 했다. 병원에 장애우 용 침대가 없어서 침대에 오르내리기도 여간 불편하지가 않았다.
  결국 평소 운동량이 부족했던 진옥 씨는 몸 상태도 좋지 않고 골반이 열리지 않을 수 있다는 의사의 충고를 받아들여 제왕절개를 해 아이를 낳았다.
  다행히 아이는 아주 건강했다. 그러나 진옥 씨는 아이를 낳고도 최근까지 골반, 다리, 허벅지에 계속 통증이 와 약을 먹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여성장애우가 아이 키우기란...
  진옥 씨 부부가 운영하는 화장품가게는 항상 세 사람이 손님을 맞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진옥 씨가 활짝 웃는 얼굴이 보이고 그 옆에는 딸 서경이가 얌전히 누워 잠을 자고 있다.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아직까지는 잠을 자는 시간이 더 길다. 그리고 계산대에 남편 정근씨가 앉아 있다.
  근처 동사무소나 복지관에 여성장애우의 육아 및 가사를 돌봐줄 프로그램이 있는지 알아 봤지만 모두 없다고 해 결국 서경이를 데리고도 일할 수 있는 화장품 가게를 열기로 결정한 것이다.
  시장골목에 있는 진옥 씨네 화장품 가게는 주로 동네 사람들이 찾기 때문에 진옥 씨네 사정을 알고 있고, 손님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기 때문에 정근 씨와 진옥 씨가 아이를 돌보면서 가게를 꾸려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움직이는 일을 주로 정근 씨가 도맡아서 하기 때문에 서경이 기저귀 갈아주고 우유 먹이고 식사 준비하고 손님까지 맞으려면 아무래도 정근 씨에게는 벅찬 일이다. 게다가 물건을 떼러 가거나 서경이 정기검진 받으러 병원에 갈 때는 세 사람이 모두 외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가게문을 닫고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옥씨 네는 새벽 두 시가 돼야 겨우 잠자리에 들곤 한다. 이런 일이 매번 반복되고 보니 나이 사십을 넘긴 정근씨 역시 피로가 쌓이게 마련인데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낼 때도 있다. 진옥 씨는 그런 정근 씨를 다 이해하면서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기 때문에 그저 미안하고 안쓰러워서 퉁명스럽게 대할 때도 있다. 그렇게 해서 진옥씨 네도 가끔 부부싸움을 하기도 한다.
  "한일장애우교류대회 때 만난 일본 여성은 저보다 더 심한 뇌성마비 장애우인데도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 키우는데 별 어려움을 못 느꼈다고 했어요. 정부에서 유료 도우미를 고용하는데 드는 비용을 지원해 주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 나라는 아직도 여성장애우가 혼자 힘으로 아이 낳고 키우기에는 어려움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두 사람이 이미 각오하고 결혼했고, 아이도 낳은 만큼 부부싸움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특히 서경이가 해 맑게 웃고 엄마 아빠 앞에서 재롱을 떠는 모습을 보면 평소 인상이 딱딱해 보이는 정근 씨마저도 그저 "허허"하고 웃고 만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 어려움도 많지만 매일 아침 아기 곁에 엎드려서 볼을 비비고 뽀뽀도 하고 그림책도 읽어주면서 저는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제 알게 됐어요.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정말 세상이 달라 보이고 모든 게 경이로와 보여요. 여성장애우 여러분도 이런 느낌 꼭 경험해 보길 바래요."

 

글/노윤미 기자   사진/김학리 기자

작성자노윤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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