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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한국은 이제 제 일부인 걸요”

일본인자원활동자 사또치카오 씨

본문

 

조명희 할아버지 이야기
  올해 일흔살의 조명희 할아버지. 이십칠년전인 칠십삼년도에 그는 경기도에 사는 평범한 소장수였다. 노구임에도 훤칠한 킹 건장한 체격을 보면 씨름판에서 상대를 가볍게 넘어뜨리는 젊은 시절의 그를 쉽게 그려볼 수 있을 듯도 하다.
  그 날도 여느 날처럼 장터에 소를 몰고 가고 있었다고 했다. 느릿느릿, 간간이 길 가운데로 몸을 이끌려는 소를 뒤에서 요령껏 잡아채며 걷는 모습은 얼핏 보기에 평화로운 시골길의 정경이 아닐 수 없다. 뒤에서 회전하던 택시가 미처 그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아 버리기 전까지는.
  그 때 조명희 씨는 허공을 날아 인근 논에 떨어졌다. 그런데 그 때만 해도 의식을 잃지 않았고, 몸도 제법 운신할 수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병원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몸이 교정되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부러진 뼈가 척수신경을 끊어놓았는지 그는 한쪽팔도 불편하고 하반신은 전혀 쓰지 못하는 장애우가 됐다.
  그 가해 운전사에게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세 식구가 병원에서 아예 살림을 차려 살다가 "병원비를 내지 못해 병원 이불에 둘둘 말린 채 버려"졌던 그이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휠체어를 타고 동네를 돌 정도의 건강은 있었다고 한다.
  얼마 후 어떤 분의 도움으로 부인 김경자 씨가 조그만 구멍가게가 달린 집을 빌려 생계를 꾸리던 삼년 동안 그는 좁다란 방안에서 계속 누워서 지내야 했다. 부인이 아들 키우랴 가게 보랴 집안일 하랴 도저히 남편의 운동과 외출을 도울 형편도 안됐지만 그보다 "나 같은 장애우가 있다고 소문나면 가게에 손님이 떨어질까봐 더 쉬쉬하며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는 조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여하튼 그러다 보니 그 삼년간 모 전체의 근육은 굳을대로 굳어 버려 앉아 있는 일조차 힘들어졌고, 그렇게 할아버지는 이십여년을 꼬박 누워만 있었다. 올해 예순여덟살인 할머니도 혈압이 높고 디스크로 허리가 안 좋아 거동을 하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이들 부부는 노인수당과 교회에서 주는 약간의 후원금만으로 살아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할아버지가 6.25 한국전쟁때 무공수훈을 세운 국가유공자이기 때문에 이들 부부의 약 정도는 무료로 보훈병원에서 타올 수 있다는 점이다. 결혼한 아들이 하나 있지만 중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공사판일을 하는 형편이고 IMF 한파로 요즈음 더 힘들어져 기댈 형편이 안되는 건 마찬가지다. 먹고 살기 힘든 아들, 며느리의 얼굴도 자주 보기 어렵고 외출도 전혀 할 수 없어 조 할아버지는 라디오, 텔레비전과 할머니가 인근 수서복지관이나 시장 등을 오고 가며 들은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이 생활의 낙이다.

 


사또 씨 이야기
  그런데 매주 토요일 이들을 찾는 반가운 손님이 있다. 바로 일본인 사또 치타오(35) 씨다. 그는 인근 수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소개를 받고 이들 노부부를 돕고 있는 자원활동자. 반도체 전문 무역업체인 미카사쇼지유한공사 서울지점에서 영업과장으로 일하는 평범한 샐러리맨인 그는 근무가 없는 매주 토요일이면 용산 집에서부터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수서육단지를 찾는다. 벌써 꼬박 일년째다.
  그는 이 곳에 오면 조 할아버지의 뻣뻣한 팔과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화장실 등 이들 노부부의 손이 잘 가지 않은 집안 이곳 저곳을 살펴 개끗이 청소한다. 무엇보다 조 할아버지 부부가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다른 여느 자원활동자들 보다 약속을 철저히 지킨다는 점이다. 토요일에 개인적인 다른 일이 있으면 그 다음날인 일요일에라도 꼭 온다. 그렇게 약속을 미루는 일도 드물다. 그러다 보니 매주 토요일마다 사또 씨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들 부부의 낙이다.
  그는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노동력을 할애해서 도움을 주는 입장이면서도 맨 처음엔 그 연배의 한국 사람들이 뿌리깊게 갖고 있을 반일감정 때문에 자신을 꺼리지는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공연한 걱정이었다. 사또 씨가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해 의사소통하는데 아무런 불평이 없다는 점이 일조를 했겠지만 조 할아버지 내외는 한번도 그를 이물스럽게 대한 적이 없다.
  한국인 여성과 일년 반 전에 결혼을 했고, 그래서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과 일본의 이중국적을 갖고 있는 아들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사또 씨는 "이제 한국은 내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처음 오기 전에는 누구 못지 않게 한국에 대해 적지 않은 동경심을 가졌다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생활인으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지하철에 침뱉는 아저씨,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고 자연스럽게 일본 사람들과 비교가 되면서 그 "무질서"에 놀랐지만 그렇게 비판적으로 바라 보던 눈길도 이내 접었다.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기 때문이다.
  사또 씨는 일본 나라현에 있는 대학에 한국어를 전공했다. 당시에는 일본 전국적으로 한국어과가 있는 곳이 네 개 대학밖에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있는 곳이 아닌 미지의 개척분야를 열어 보고팠던 그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듯한 한국이란 나라의 말과 역사에 대해 알기 위해 한국어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팔십팔년 처음 어학연수를 위해 한국을 찾아 일년여 연세어학당에서 언어연수를 마치고 돌아간 후 취직한 무역상사의 한국지사에 발령받아 현재 육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이곳에서 그가 자원활동까지 시작하게 된 계기다 궁금해진다. 그 이야기는 대학 시절의 경험으로 거술러 올라갔다.
  대학시절 친구를 따라 올랐던 "평화의 배(Peace Boat)"는 그의 인식에 하나에 전환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 배에 오른 일본의 청년들은 중국 상하이에서 베트남까지를 항해하고 또 각 나라에 머물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핵실험문제나 대인지뢰문제 등을 놓고 직접 그 나라의 피해 당사자들과 함께 토론을 진행했다.
  "맨 처음엔 뭐하는 건지도 모르고 그냥 친구따라 갔는데 캄보디아에서 지뢰 때문에 팔다리를 잘린 어린아이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일본 내외의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래서 일분의 "세이브(Save Children)"이란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에 온 후 결혼을 해서 안정을 되찾고 사회봉사활둥을 생각했을 때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원하기도 했었다. 한국의 세이브 칠드런 단체를 일본에 수소문해 그 한국본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수서종합사회복지관을 알게 됐는데, 사회복지는 뜻밖에 "노인분도 괜찮냐"며 조명희 할아버지 부부를 소개해 준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 만났을 때 이들이 평범한 노인분도 아니고 척수장애라는 중한 장애를 갖고 있는 할아버지와 디스크로 고생하고 있는 할머니라는 사실을 알고 청소외에 어떠한 방법으로 도와드려야 할지 그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것이 할아버지에게 알맞은 마사지 방법인지 잘 모르지만 어쨌든 마사지를 해서 굳었던 근육을 풀어드려야겠다 싶어 열심히 주물러 드리기도 했다.
  사또 씨의 정성스러운 치료와 할아버지의 노력으로 기적처럼 근육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면서 휠체어에 옮겨 앉을 수도 있게 되자 사또 씨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바깥 외출을 감행해보기로 했다. 처음 간 곳은 걸어서 약 이십분 정도 걸리는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이었다. 그가 배낭을 매고 할아버지의 휠체어를 밀고 갔는데 처음엔 길을 건널 마땅한 다리나 횡단보도를 찾지 못해 서너시간을 해매기도 했다. 이제는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길도 알고 야채들도 싸게 살 수 있어 그곳을 자주 찾곤 한다.
  또 한 번은 사또 씨 자신이 서울지하철의 휠체어리프트가 어떻게 운행되는지 알고 싶어서 할아버지에게 미리 얘기하고 수서역에서 양재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보기도 했다. 원래 미리 신청한 장애우들에게는 리프트 열쇠 하나씩이 지급됐는데 처음 지하철을 타보는 할아버지에게는 그 열쇠가 없었다. 그러나 그 날 외출 이후 할아버지에게도 열쇠가 생겨 다음엔 더 부담없이 외출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할아버지도 갖는 눈치였다.
  그러다 마침 올해 삼월경 중계동지역에 이어 수서지역으로 진료지역을 바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부설 의료특별위원회 의료자원활동자들과 만나게 됐다. 의사와 작업치료사, 간호사들이 함께 방문해 조명희 할어버지 부부의 혈압을 제기도 하고 할아버지에게 줄잡고 일어나기, 바로 앉기, 중심잡기, 휠체어에 옮겨타기 등의 바른 자세를 가르쳐주고 열심히 연습하도록 독려하는 모습을 보며 사또 씨는 자신의 일처럼 기뻤다.
  그리고 하나라도 더 자세히 보고 배워 할아버지에게 해드리기 위해서 매주 진료팀과 일정을 같이 하며 올바른 치료법을 익혀가고 있다.


 

"한국 경제 부실 공사한 아파트 같아요"
  그의 회사는 현대식 상가와 호텔이 들어서 있는 무역센터빌딩에 있다. 그래서 그의 서울생활은 사무실과 그가 살고 있는 이촌동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지역 안에서의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쓰임새 같은 것만 보고 들으며 마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한 아파트촌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영세민 밀집지역인 수서육단지를 오고 가며 그가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서울의 모습은 어떠할까 자뭇 궁금해진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오히려 수서지역을 보고 한국 사회 수준이 더 높게 보였어요. 아, 그래도 한국 정부가 이렇게 집도 임대해주고 수당지원도 하고 있구나 하고요. 솔직히 말씀드려 한국은 아직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표면적으로 보면 경제가 발달했지만 경제의 기초나 토대가 너무나도 부실하고 허약해보여요. 꼭 여기 수서단지 아파트 건물 같아요, 여기 아파트도 그렇고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말도 못하게 부실공사더라고요. 한번은 제가 시계를 걸어 드릴려고 벽에 못질을 하는데 벽이 그냥 합판이라 못이 쑥 들어가버려요. 그래서 다시 시멘트 쪽을 찾아서 못질을 하니까 그 부분의 시멘트가 후두둑 떨어지고 금이 가는 거예요. 얼마나 놀랐는지..."
  사또 씨 자신이 건축공사판일고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건물뿐만 아니라 도로의 보도블럭을 쌓는 것도 유심히 보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 공사장 아저씨들이 보도블럭 까는 것을 보니 그냥 모래를 놓고 그 위에 차곡차곡 놓더군요. 시멘트 같은 걸로 고정도 안 시키고 그러니 한 번 비가 와서 속에 있는 모래가 씻겨 나가면 움푹움푹 속이 패이는 거예요. 휠체어나 자전거를 탈 때 그게 얼마나 장애가 되는데."
  그리고 수서단지를 보며 걱정되는 것도 하나 있다고 한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아이들과 그 옆의 부잣집 동네 아이들이 만약 한 반에서 함께 공부를 할 때 혹 아파트 아이들이 놀림이라도 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장애우 직접 돕는 일 하고파
  조 할아버지 가정을 찾는 의료진료팀을 거의 매주 만나고 그들이 장애우의 불편한 팔 다리를 어루만지는 동안 마술처럼 놀라운 치료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어깨너머로 목격하면서 사또 씨는 남몰래 꿈을 꾼다. 조명희 할아버지와 같은 장애우나 노인들이 보다 빨리 신체적인 장애를 이겨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또 씨가 "착한 일"을 하려고 하는 사뭇 흥미로운 이유가 하나 있다. 그의 종교는 일본에서 오대 종교 중의 하나인 천리교(天理敎)인데 그 종교의 속설 중에 하나가 "자식은 열다섯살까지는 부모의 인덕으로 산다"는  것이란다.
  "조명희 할아버지 댁은 매주일 찾아가도 장인 장모님은 한달에 한번 찾아뵙지 못할 때도 많다"는 그이지만 그의 아내가 적극적으로 남편을 지원하듯 장인장모님도 그가 "착한 사위"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드리고 또 그의 칠개월 된 아들도 황금 같은 토요일에도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깊은 뜻"을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다

 

 

글/ 한혜영  사진/ 김학리 기자

 

작성자한혜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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