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탐방] 마음이 고요하면 보인다. > 함께 하는 세상


[개인탐방] 마음이 고요하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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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장애를 가진 조주학 전도사를 만나고 돌아오던 날은 바람 한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와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때 왼쪽 귓바퀴 부분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뺨을 간지럽혔다. 웬 바람일까 의아해 하며 감았던 눈을 떴다. 양쪽으로 길게 뻗은 터널을 제외하고 사방이 꽉 막혔는데 어디서 바람이 새어들어 오는 것일까. 전광판을 쳐다보았다. 아직 불이 켜지지 않았구나고 확인하는 순간 빨간불이 켜지고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 곧 ○○○, ○○○행 열차가 도착하겠습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 주십시오." 그 순간 왼쪽으로부터 열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소리보다도 빠른 공기의 흐름에 의해 오래 전에 학교에서 배운 바 있었지만 실감나게 깨달은 순간이었다.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촉각은 속일 수 없지요"라고 얘기한 조주학 전도사님의 말을 뒷받침해 주기 위한 하나님 섭리인냥...
함께 걸음 3月호를 받아 보았다는 어느 분으로부터 연락이 있었다. 19년 전 군복무 중 사고로 두 눈을 잃은 친구가 있는데 탐방기 주인공으로 추천하고 싶다고 그 자신 스스로가 "이래뵈도 눈치 하나는 두 눈 가진 사람들 못지 않게 빠르다" 고 우길 만큼 농담을 잘 할 뿐 아니라, 누군가 침체되고 실의에 빠져있을 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 만큼 깊은 영혼의 깨우침을 경험한 친구라고 했다. 올해로 42세이고 보라교회를 개척한 조주학 (TEL. 403-1384)전도사 그는 두 아들이 있다는 말까지 전해 주었다.

버스에서 내려 가르쳐 준대로 따라가니 가락 시영아파트 48호라고 쓰여 있었다. 벨을 누르니 까만 안경을 쓴 분이 나오셔서 반겨 주셨다.
방으로 들어가니 사모님이 뒤따라 들어오셔서 자리를 권하며 전도사님께 기자에 대한 첫 인상을 전해주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알려 주었다. 그러자 자신이 목소리로 상상한 이미지와 거의 비슷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주학 전도사는 24살 되던 해, 1970년 5월 군복무 중 사고로 두 눈을 잃었다. 군에 입대하기 전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는 것을 흑백 TV로 보았고 제임스 본드가 주연한 "007 두 번 산다"라는 제목의 영화를 감명 깊게 보았는데 지금도 그 장면들이 바로 엊그제 본 것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일정기간 치료가 끝난 뒤 살아있는 동안 다시는 볼 수 없는 상태라고 전해들었을 때 자살소동도 벌이고 술독에 빠져 실성한 사람 행세도 했다. 그래도 타는 가슴을 식힐 수 없어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 한라산으로 설악산으로 바람을 쐬려 다녔다. 그러나 바깥바람으로 깨질 성질의 고통이 아니었다.

1971년 12월 눈 부위에 염증이 재발하여 원호병원에 다시 입원을 했다. 이듬해 2월 그가 입원한 병원에서 200m 쯤 떨어진 곳에 있다고 들은 교회엘 혼자 찾아가 보았다.
아무도 없는 교회에서 들어가 그저 소리를 듣기 위해 오르갠을 두드렸다. 그날 이후로 매일 오후되면 습관처럼 그곳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날 텅 빈줄 알았던 교회에서 젊은 청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가슴에 알수 없는 파문이 일었다. 교회란 곳이 "대관절 어떤 곳인데 벌건 대낮에 저 청년이 찾아와 울까?
그날 병실로 돌아온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사람이 사는 목적이 뭘까? 여태까지 그런식의 문제에 의문을 갖지 않은 그에서 왜 갑자기 그 문제가 심각하게 느껴질까? 아니 그런식의 질문이 뇌세포란 물질적인 것에서 우러났다고 믿을 수 없었다. 그 안에 뭔가 비물적인 실체가 살아있어 그로 하여금 그런 문제에 매달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 실체를 찾아 인간이 왜 사는가 물어보고 싶었다. 이튿날 사람이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꼭두 새벽녘에 그는 교회로 갔다. 종교의식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터에 무조건 그는 물었다.

"하나님 당신이 사람을 만들었다고 사람들이 말하는데 그리고 살아 계신다고 하던데 내게 그 증거를 좀 보여주시오" 라고 두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새벽 기도를 시작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모아 쥔 두손 위쪽 팔둑에 농구공만한 것이 굴러 들어오고 "네가 나를 믿으면 뭐든 할 수 있으니" 라는 음성과 함께 무지무지하게 큰 힘을 그의 품에 쏟아부어 주시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로서는 할 말을 잃었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 체험이 있은 뒤 그에게는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하나님에 대해 알아보기로 두 눈을 잃고 그로서는 처음으로 살 맛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그때 자원봉사를 나온 이화여대 특수교육학과 여학생이 그의 병실을 찾아와 "점자를 좀 배워보겠어요?" 라고 말을 건넸다. 그게 뭐냐고 묻는 그에게 그 여학생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시각장애를 가진 분이 점자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느냐고 도리어 반문했다. 사실이지 사고 후 2년 동안 암흑세계에 살면서 그 누구에게도 시각장애를 위해 점자라는 것이 있다는 얘길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튼 새로운 목표를 가진 그에게는 정말 필요한 공부였다. 그 날로 그는 점자를 열심히 익혔다. 그리고 병원 내 기독인 모임에는 자진해서 참석했다. 세례를 받을 즈음해서는 원호병원 내 모범환자로 뽑혀 한글 타자기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타자기를 이용하여 병원에 위문 왔던 사람들과 편지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많이 쌓게 되었다. 그러던 중 신학을 공부했던 휠체어 환우를 알게 되었는데 그의 권유로 74년 2월 안양에 있는 대한 예수교 성결교회 신학대학에 원서를 냈다. 그의 입학을 둘러싸고 개교이래 장애인을 입학시킨 예가 없다며 교수회의에서 논쟁이 있었지만 전영식학장 (뒷날 그 사실을 알고 그가 자기 인생에 잊을 수 없는 분으로 마음에 새겨 두었다고 했다.) 이 책임지겠다는 조건 하에 허락되었단다.

강의는 주로 녹음기를 활용하여 공부했고 시험 답안은 타자기로 작성했다. 성적은 4년 간 줄곧 상위 그룹에 속했다.
78년 졸업할 무렵인 학교측에서 미국에 있는 모 신학교로 유학 갈 수 있게 도와 주겠다는 제안까지 들어왔다.
그러나 그는 자원해서 원호병원으로 왔다. 간호원들과 함께 병원 내 구국선교회를 조직하여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는 사이 그의 나이 서른이 넘게되고 갑자기 허전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단다. 그래서 아는 목사님께 중매를 부탁했다. 결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그 배경에 대해서는 사모님께 얘기를 부탁했다.

4대째 이어지는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 신학교를 졸업하고 모 개척교회에서 전도사로 봉사하던 그녀는 어느 날 목사님으로부터 교회가 경제적으로 사정이 어려워졌다며 다른 교회를 찾아보라는 뜻밖의 요청을 받았다. 그때 그녀의 나이 서른살로 너무나 막막하여 그 날로 수원에 있는 ○○○기도원으로 갔다. 그녀가 기도원 사무실을 지나치는데 어느 목사님이 기도원에서 일하는 여직원들에게 두 눈을 잃은 전사님이 배우자를 찾는 중인데 혹시 관심이 있느냐고 묻는 소리를 밖에서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그러자 직원들의 말이 기도하러 온 분들에게 목사님이 광고를 해 보라고 했다. 그 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걸어 가는데 꽤 저 만치서 오십이 넘어뵈는 늙은 여전도사님이 무거운 트렁크를 혼자서 들고 기도원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분의 표정과 손에 들고 오는 짐 꾸러미가 너무나 외롭고 힘들게 생각되었다. 마치 자신의 미래를 미리 들여다보는 것 같아 서글픈 느낌마저 들었다.  그 순간 그녀는 남자를 돕는 자로 여자를 창조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한 바 이왕이면 자신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두 눈을 읽은 전도사님이 배우자를 구한다고 광고를 낸 목사님께 가서 그 사람을 만나 보겠다고 했다.

그녀가 처음 조주학 전도사를 만났을 때 아무개 목사의 얘길 듣고 자신은 중매장이로 왔노라며 경찰이 조서를 작성할 때 꼬치꼬치 캐 묻듯 조전도사에게 여러 가지를 묻고 나서 이틀 후 좋은 처녀를 데리고 와 소개해 주겠노라는 약속을 남기고 떠났단다.
그녀는 그 길로 인천 맹아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언니를 찾아갔다. 친한 친구가 맹인 전도사와 결혼하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고민스러워 하더라며 언니에게 이것저것을 물어 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언니는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듯 앞이 안보인다고 해서 여늬 사람과 별다른 구석이 있는게 아니라며 어쩌면 겉으로 보기에 멋져 보이는 남자보다 아내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그녀 친구에게 용기를 갖으라고 전해 달라고 까지 대답해 주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그녀는 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았다. 그 말에 시치미를 뗄 수 있느냐며 어이없어 할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확실한 결정을 내릴 때까지는 너무도 괴로웠지만 일단 마음을 정한 후에는 편했다.

"나는 늘 간호원이 되고 싶었는데 그 분이 병원선교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을 때 마음이 끌렸지요. 동정은 아니었어요. 그 당시 내 나이도 적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여자들이 받고 있는 것보다 몇 곱빼기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싶어서 선택했지요. 그로 나의 선택이 정확했다고 결혼 후 지금까지 믿고 있어요".
이틀 뒤 조주학 전도사를 찾아갔다. 그를 소개해 준 목사님과 함께 그녀가 자기마음을 털어놓자 그가 웃으며 "전 아직 결정 안했는데요 우리 같이 식사나 하러 가지요"라고 둘의 데이트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해 (80년)를 넘기지 않고 결혼하기로 했다. 둘 사이에 결혼약속을 한 다음 그녀는 부모님을 모시러 시골로 내려갔다. 그때까지 그녀는 사귀는 사람이 맹인이란 사실만 밝히지 않고 어떤 분이라고 대충 얘길 드렸단다. 그러자 혼기를 놓친 딸이 결혼을 한다는 소식에 그저 흐뭇해 하기만 하셨단다. 두 분을 모시고 서울로 오는 기차에서 그녀는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어머님은 못 들으신 척 묵묵히 창 밖만 쳐다보시고 아버님은 잠시동안 눈을 지그시 감으셨다가 천천히 입을 여셨다. "이 세상에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그녀가 생각했던 것 보다 조용하게 사위가 맹인이라는 사실을 두 분은 받아들여주셨다.
그녀는 결혼한 뒤 남편에 대해 정상인 대하듯 했단다. 그러자 그녀의 부모님들도 다른 사위들에게 하듯 똑같이 대해 주셨다. 그래서 어디든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또 아들을 둘 낳아 키우는데 있어서도 전도사님이 교회 봉사하지 않을 때는 늘 집에 계시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었단다.
그리고 전도사님이 신방을 갈 때나 그 밖의 교역자들이 참석해야하는 모임에 갈 때는 항상 그녀가 동행하기 때문에 무슨 모임이든 혼자만 다니는 보통의 한국 남자들과 달리 그들 부부는 서로 대화가 잘 통한단다.
아이들도 아빠랑 얘기를 많이 함으로써 정서적으로도 안정되고 정신적 발전도 빠른 것 같단다.
시집 안 간 처녀 앞에서 남편 자랑이 너무 지나친 것 같아 기자의 짓궂은 심보가 발동했다.  "저렇게 마음씨 고운 아내 얼굴은 물론이요, 두 아들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한 심정이 어떠세요? 전도사님, 솔직히 고백해 보세요".
"마음이 고요하면 보이지요. 실제로 꿈에서 보았구요. 하나님이 보여 주시더라구요"
라고 말하시고 소년처럼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작성자정형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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