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애인의 삶]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전 할 수 있어요. > 함께 사는 세상


[어떤 장애인의 삶]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전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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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각오로 이번 하계 올림픽 때 한 몫을 한 윤오근 군(18세 대경상고2년)
윤 군은 비록 뇌성마비를 앓고 몸이 불편하지만 이번 88서울 올림픽, 그것도 장애인 올림픽도 아닌 비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곳에서 "단지 몸이 불편할 뿐이지 장애인은 결코 아니다"
라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윤오근 군은 자원봉사 요원으로 열심히 뛰었다.
세살 때 뇌성마비를 앓아 힘이 들었지만 작은 힘이지만 꼭 동참하고 싶었다는 윤 군은 하마터면 포기 할 뻔했다. 주위에서 힘들 테니 그만두라는 권유가 많이 들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집에서 가만히 놀고 있느니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윤 군은 지금도 그때의 일을 잊지 못해 했다.
윤 군이 하는 일은 하루 정해진 매수를 찍는 것이다. 즉 나오는 경기결과 자료를 모아다가 대기중인 70여명의 같은 학교 메신저들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하루일과는 오전 7시 30분부터 시작하여 저녁 5시 30분까지 10시간을 불편한 몸을 이끌며 복사기 사이를 뛰어다녀야 했지만 마음은 언제나 즐거웠기에 항상 미소가 넘쳤다고
옆에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교대하면서 잠깐씩 쉬어가며 했다는 윤군은 서울 올림픽에서 한몫을 했다는 흐뭇함에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밝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밝게 살아가도록 뒷바라지 해주는 주위사람들의 노고가 윤오근 군의 청초한 웃음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일을 하기에 앞서 나는 할 수 없어 도저히 안 돼 하며 미리 절망의 늪에 들어가기를 자처하는 사람을 본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 앞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절망을 희망으로 보며 도전하는 사람을 볼 때 전자의 생각이 어리석다는 것을 깨우칠 것이다.
바로 이러한 데서부터 출발한 윤 군이지만 소심한데도 있었다.
 앞으로의 사회진출에 대해서 물어보았을 때 윤 군은 "그저 셀러리맨이 되었으면 해요"
그냥 직장만이라도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리라 다른 친구들은 뚜렷한 계획을 세우며 얘기를 해도 윤 군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학교 성적이 하위도 아닌 상위 급인데 말이다.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등본 두통만 내면 취직 시켜준 데요" 하며 말을 잇는 윤 군은 그나마 희망이 생겼다며 기뻐했다.

<어린 날 그 여선생님의 손은 따뜻했다>
4남 1녀 중 넷째인 윤오근 군은 다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구청에 다니며, 형들은 직장생활을 하고 여동생은 염광여고1년이다. 유난히 여동생과 친구처럼 지내는 윤 군은 집안에서 웃음꽃을 끊어지지 않게 한다.
국민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장충국민학교는 유난히 가팔랐기에 윤 군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은 올라가기 힘들 정도다. 특히 겨울이면 더욱 힘들다. 그러나 그에게 따뜻한 손길이 있었기에 추운 겨울에도 견디었다고,
고사리 같은 손을 붙잡고 가파른 길을 내려오는 여선생님의 손은 유난히 따뜻했다는 윤군은 지금도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만은 마음속에 남아있다고 했다.
이렇게 고마운 손길들이 윤 군주위에는 많다. 같은 동네에 살았던 조명섭 군은 매일 윤 군의 가방을 들어주었고, 또 중학교 때 수학선생님은 지금도 점심시간만 되면 윤 군을 상담실로 불러 수학도 가르치며 많은 이야기를 해 윤 군에게는 더 없는 스승이다. "주위에서 너무 잘 해주니까 불편한 것을 못 느껴요, 제가 장애인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라는 윤 군은 금오3가 동네에서도 명랑하다고 소문날 정도다.

<학교생활>
인문계로 갔으면 약대를 지원했을 거라는 윤 군은 어릴 때부터 약국에서 약을 짓는 약사를 보면  부러웠고 훌륭해 보였다고, 그리고 지금도 가장 부러운 사람은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사라며, 학교생활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론과목은 자신 있는데 실기과목 음악, 미술, 체육, 교련, 서예 등은 정말 자신 없어요"라는 윤 군은 이때만큼은 장애를 입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이다. 덧붙여 이러한 생각은 장애를 입은 사람은 누구나 순간 순간 느끼는 안타까움이라며 눈을 아래로 내렸다.
 다시 화제를 돌려서 학교생활은 재미있냐는 말과 등·하교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집 앞에서 새마을 버스가 출발해 편하게 가지만 하교 때는 그냥 가파른 길을 걸어 내려온다는 것이다. 왜 하교 때는 마을 버스가 오지않냐는 질문에 오지만 그냥 걸어가고 싶어서 이다. 간단하게 말했다. "항상 산길을 따라 걸어 다녔어요" 중학교 때도 지금도 그 산길을 걸어가며 혼자서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다녔던 추억의 길이라 눈을 감고 명상에 젖어도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 있다는 윤 군.
그는 오늘도 그  을 걸어가며 코스모스 향기와 억새풀의 흔들림에서 내일의 꿈,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에서 꼭 필요로 하는 셀러리맨이 되기 위한 다짐을 한다. 

작성자함께걸음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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