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장애인부모 체험수기] 고통후에 오는 평안함을 믿으며 > 세상, 한 걸음


[지체장애인부모 체험수기] 고통후에 오는 평안함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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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도 곧잘 하는 미선이 이고 보니, 언니 곁에 바싹 다가가서는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언니는 왜 머리가 이만큼 크지? 언니는 똥만 싸고, 나는 이렇게 잘 다니는데, 언니는 맨 날 일어나지도 못해. 그지 엄마?」 이럴 때면 나는 더 없이 마음이 아파 왔습니다. 철없이 떠들어대는 어린것을 나무랄 수도 없었습니다. 미영이의 생명이 시급한 이때, 나는 교회 맨 앞에 나아가 낮이나 밤이나 울며 하나님께 미영이를 제발 살려만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제는 못 일어나도 좋으니 오직 살려만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미영이의 병세는 악화되어 갔고, 병원에서 주는 약도 모두 토해냈습니다. 우리 집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마다 미영이의 모습을 보고는, 「어머나!」하며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신체 부위보다 머리통만 커져 있었기에 모두들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밤새 철야를 하며 기도하는 그 순간, 나는 한참이나 내 마음 속에 평안이 찾아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이 성경 말씀이 떠오르면서 나는 미영이가 주님의 품안에 안겨서 평안히 있는 것을 순간적으로 보았습니다.  기도 중에 떠오른 환상이었습니다.  나는 기도를 마친 후 그 환상이 희한해서 얼른 집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아랫목에 누워있는 미영이를 바라보았습니다. 미영이는 내가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던 순간에 이미 주님품 안으로 안겨간 것이었습니다.  얼굴에 붉은 혈색은 있는데 맥박은 벌써 끊겼습니다. 너무나도 조용하며 포근하게 누워있는 천사와도 같은 미영이의 모습이었습니다. 나의 눈에는 끝없는 눈물이 솟구쳐 흘렀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아무소리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의 슬픔과 고난 속에서 사는 미영이의 영혼을 주께서는 걷어 가셨습니다. 미영이를 잃은 지금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통곡하며 이 슬픔을 몸부림쳐도 시원치 않을 텐데, 나는 그리 할 수가 없이 몸이 말을 안 들었고, 오히려 나의 심령 깊은 곳에서 감사의 찬양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필경 지금 이 순간 나의 세상 적인 육의 마음을 주께서 붙잡고 계심이 틀림없었습니다. 곧 날이 밝기 전에 아빠와 이웃집 아저씨가 미영이를 싸안고 아무도 모르는 수색동 뒷산에 묻고 오셨습니다. 이 허망함! 갑자기 성서의 전도서에 있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헛되니,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 도다.」그 말씀이 나의 마음 속 깊이 진리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날이 갈수록 죽은 미영이의 모습이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항상 방 아랫목에 누워 있었던 미영이의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하고, 고생만 하다 간 가엾은 미영이를 생각하면 목이 메어서 밥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차차로 정신을 차리고 미선이를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기로 했습니다. 이따금씩 미선이는 또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미영이 언니는 어디 갔어? 응? 보고 싶어......」 「미선아? 언니는 며칠 전에 하나님이 하늘나라로 데리고 올라 가셨단다.」 「엄마! 그럼 나는 언제 하늘나라에 가지? 나도 가서 우리 언니 만나고 싶은데,」 어린것이 언니가 보고 싶다고 하는 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은 더욱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세월이 약이라 더니 기실 그런 것도 같습니다. 미영이를 잃은 지 벌써 3년이 되었고, 미선이가 6살이 되던 때였습니다. 나는 그 해 봄에 아들을 출산하였습니다. 이름은 성경 말씀에서 따서 「요나」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보다도 이천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무척이나 아들을 낳은 것에 대해서 기뻐해 주셨습니다. 나는 이때부터 가정생활의 형편이 평안으로 찾아오게 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미영이의 괴로움을 통해서 귀한 아들을 생명의 선물로 대신 주셨음을 알고, 더욱 더 신앙생활에 열심을 다하였습니다. 아이들은 해마다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서 나에게는 아무 걱정이나 근심이 없었습니다. 막내 아이인 요나는 내가 낳기 전부터 하나님께 소원한 바, 아들만 주시면 이 아이를 목사로 키워서 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게 하겠다고 한 소원기도가 있었으므로, 요나가 5살이 되었을 때부터 나는 그 아이에게 목사가 되는 꿈을 심어 주었고, 이제는 요나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도록 장성하여 어엿한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미선이도 이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나가고 있습니다. 두 아이들이 모두 말도 잘 듣고 교회의 신앙생활도 충실히 하고 있어 여간 대견하질 않습니다. 이것마저도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주께로부터 물려받은 자녀의 축복이라 생각하니, 지난날의 나의 눈물로 지새웠던 고통들은 소나기가 온 후에 무지개가 서듯이 말끔히 가셔진 채, 내 마음 속에는 강 같은 평화만이 풍요롭게 채워질 뿐입니다.

아무쪼록 이 두 자녀들이 훌륭한 인격자로 자라서 훗날 이 나라에 없어서는 안 될 큰 일꾼이 되어, 주님의 쓰임 받는 충성된 청지기가 되어 줄 것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겠습니다.  지난 시절 미영이를 키워가며 당하였던 나의 고통이 나마의 고통이 아니었고, 지금 이 순간도 이 땅의 그늘진 곳곳에서 눈물짓고 있는 어머니들 그 모두의 고통임을 깨달았습니다. 「신체 장애인의 해」도 있었듯이, 이제 나의 삶에는 그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참으로 그들 속에서 도움이 되어 주고 내 작은 힘이라도 그들에게 빛이 되어주기를 바래서, 앞으로 나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그들을 무한히 감싸주면서 살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그리고 보면 하나님께서 일찍이 나에게 이 세상에 고립된 신체장애인들을 도우라고 그런 모진 아픔의 훈련을 나에게 주신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내 나이 이제 47세가 되었습니다. 나의 남편의 이마에도 굵은 주름이 훈장처럼 그어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가정은 너무나도 평안하고 화목합니다. 경제적인 생활의 안정도 찾아왔습니다. 불행했던 나의 삶이 기쁨의 삶이 되었듯이, 내 이웃의 모든 이들의 삶이 고통 속에서 평안함을 찾는 기쁨과 즐거움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염원합니다. 9월에 세계 올림픽 경기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될 것이고, 10월에는 우리 지체 장애인들을 위한 올림픽 경기가 시작 될 테니, 이 얼마나 축복된 잔치인지 모릅니다. 이런 기회에 우리나라의 평화적 통일이 속히 온다면 너와 나의 맺힌 가슴의 한이 강물처럼 풀어지리라 믿습니다.

나는 지금 나의 나 된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한 알의 썩어진 밀 알이 되어 많은 결실을 맺는 사랑의 어머니 상이 되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기도하며 인내로 현실을 극복해 가는 슬기를 배우려 합니다.  무지와 빈곤 속에서 사랑하는 자녀를 잃는 슬픔이 아닌, 진정 이 땅의 어머니들이 넉넉한 부유함 속에 지식과 지혜를 얻어, 하나님의 생명의 선물로 부여받은 친자녀들을 건강하고 바르게 양육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의 훌륭한 인재로서의 일꾼들로 성장시켜 주실 것을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감미로운 노래 소리가 정겹습니다. 평화의 비둘기들이 날아들고, 행복의 파랑새가 찾아오는 밝은 사회 속에 우리의 자녀들은 보금이를 만들어 쉬어 갈 것입니다. 어두움 후에 밝은 빛이 임하듯이 나에게도 아늑한 평안의 쉼이 찾아온 듯 싶습니다. 지금까지의 내가 있기까지,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의 날개로 감싸주신 우리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 영광을 돌리며,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끝>

작성자김필환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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