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장애우 부모체험수기] 희망, 저편을 바라보며... > 함께 사는 세상


[지체장애우 부모체험수기] 희망, 저편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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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기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들을 둔 한 어머니가 22년 간 생활해 온 것을 편지 형식으로 정리한 것임.

사랑하는 나의 아들 의용이에게-
어느새 긴 겨울이 지나고 온 몸으로도 한껏 품을 수 있는 따스한 봄이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곁에 찾아왔구나. 그 동안 찬바람에 꼭꼭 닫아 두었던 창문들을 모두 활짝 열고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훔치면서 절로 돋는 봄기운에 하나도 힘든 줄을 몰랐단다. 그러다가 문득 경대 위에 놓여있는 너의 백일 사진에 눈길이 머물렀단다. 마주 쳐다보는 너의 눈빛이 어찌나 맑던지 네 눈 속으로 빨려드는 착각이 잠시 일어날 정도였단다. 그리고 아직껏 그 눈빛을 간직하고 있는 네가 무척이나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아이인 너를 임신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 그렇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고, 성격이 급하지도 않은 네가 그때는 열 달도 되지 않아서 나오겠다고 야단이었단다.
이 엄마가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너를 출산했을 때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마치 큰 쥐같이 생각될 정도로 아주 조그마한 모습을 하고 있었단다. 1.5Kg이 채 안 된다고 했으니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 의사 선생님은 목욕도 시키지 않고 인큐베이터에 넣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 당시 어느 병원에서 아기 바뀐 일이 있은 지 얼마 안된 때라 너희 아버지가 극구 반대하셨단다. 집에 데리고 가서 키우겠다고,

그 어린 너를 안고 젖을 물리면 그래도 살겠다고 입을 오물거리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가여웠단다. 다행이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잘 자랐는데 6개월이 되어도 앉지도 못하고 돌아눕는 행동조차도 못하더구나. 소아과가 있는 병원은 다 가 보았지만 병명조차 알려주지 않고 단지 영양이 부족해서 그렇다고만 하더라. 용하다는 병원, 한의원을 찾다가 전라도에 있는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 먹였더니 효험이 있었는지 엄마 손을 잡고 일어서기도 하고, 제법 의사소통도 하더구나. 그런데 "감기"에 한 번 걸리더니 그나마 했던 말도 못하고, 앉아 있지도 못하고 말았지. 일련의 희망들이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남은 것은 절망  뿐이었단다. 그래도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인지 이웃집 아주머니로부터 아현동의 "한마음 병원"에서는 무슨 병이든지 다 치료해 준다는 얘기를 듣고 절망 중에서도 한 가닥 남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단다. 부랴부랴 너를 업고 그곳을 찾아갔지만 아직까지도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의사의 말 한마디를 들었을 뿐이란다.
"빨리 나가시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무슨 병인지 진찰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쳐대는 그 소리는 아직껏 그 병원의 진찰권을 간직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세월 전이고, 지금쯤은 잊어버릴 때도 됐건만 쉬이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충격이 컸었던 때문인 것 같다. 아무튼 엄마는 그토록 가혹한 말을 처음 들었지만 살아가면서 그 소리보다 더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때까지도 이 엄마는 잘 몰랐단다. 네가 영 말을 못하고 다른 정상아와는 틀리다는 것을 안 친척들의 눈빛, 더군다나 족보를 갱신한다고 돈을 걷어간 후 새 족보 위에 올려진 너의 이름 옆에 쓰여진 "병신"이라는 두 글자는 너무도 선명하게 그리고 똑바르게 내 가슴에 박혀 있단다.
네가 아마 11살 때였나 보다 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있을 때에 텔레비전에서 삼육재활원이 설립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 건물이 완공도 되기 전에 입원 신청을 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단다. 그때 처음으로 너의 병명이 "뇌성마비"라는 것을 알았지.

첫날, 널 입원시키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왜 그렇게 떼어지질 않던지....
눈물이 앞을 가려 온통 희뿌옇게만 보였고 가슴은 겨울 바람이 지나간 것처럼 텅 비어지는 듯 했단다. 한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단다. 그 버스에 탄 사람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도 모른 채.
(계속)

작성자박춘화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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