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난 장애우] 생존권 보장도 부차적인 근이양증 장애 > 세상, 한 걸음


[이달에 만난 장애우] 생존권 보장도 부차적인 근이양증 장애

한국근육디스트로피협회(잔디회) 회장 정철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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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5일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회의실에서 열린 "심신장애자복지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는 각 장애별로 공술이 진행되었는데, 지체장애우 대표로 정철영씨(한국근육디스트로피협회 회장)가 나왔었다. 그의 공술 첫마디는 "서울에 와서 산지가 5년이 넘었는데 이렇게 땅에서 올라와 시가를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다" 라는 소감이었다. 이어 그는 "근육디스트로피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공술을 시작했는데, 말미에 "여기에 나오신 분은 그래도 행복합니다. 여러분들 주위에는 자기 의사를 밝히려야 밝힐 수도 없고,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우리들이 있음을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해 한때 장내가 숙연히 진 적이 있었다.

근육디스트로피(Muscular Dystrophy, 근이양증)이라고 하는 병은 분명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못하다. 그런 만큼 그 수가 적어 잘 알려지지 않은 병이나 그런 만큼 디스트로피 환우들에 있어서는 고통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근육디스트로피 하면 근육의 소모성질환을 말한다. 간단히 말해, 근육이 점차로 약해져서 혼자 움직이는 힘이 감소함에 따라 결국은 전신이 마비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보통은 근육디스트로피로 통용되지만 이는 "두첸 형", "백키 형", "안면견 갑상완 형", "지대 형" 등 여러 가지로 나뉘어지며 그 나타나는 증상이나 경과도 여러 가지 형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대개는 태어나서 몇 해에는 별 다른 증상이 없다가 5-6세 정도부터 자주 넘어지고, 계단을 올라가기 힘드는 등 근육약화 증세를 보이고, 점차 근육의 힘이 약해져 행동 능력이 부족해짐에 따라 먹고, 입고, 씻고, 앉거나 눕는 일까지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게 되는 공통적인 경로를 겪게 된다. 근육디스트로피의 가장 많은 부분인 "두첸 형"의 경우에는 17세를 전후해서 누워서 생활하게 되는데, 20세 초반에 호흡기에로의 근이양증 진행이 심해지면 폐가 쓸 수 없게 되어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 병은 나쁜 균에 의한 것도 아니고 전염되는 것도 아니다. 가계별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남·여 누구나 다 연령 제한 없이 발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근육디스트로피는 우리 모두의 관심사가 되어야하며 그 환우들은 우리 모두의 형제인 것이다. 9월의 함께 걸음은 우리 형제들의 이야기를 찾아 한국근육디스트로피협회(잔디회) 정철영 회장을 만났다.

- 근육디스트로피 증세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지난 1985년 4월 27일의 잔디네 창립을 눈앞에 두고 의학계에서도 의아한 시선을 보냈던 일이 생각납니다.
아무런 대책이 없는 병을 환자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겠냐며 염려하시던 분들도 많았었습니다.
그만큼, 근육디스트로피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아직 없습니다. 근육디스트로피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유전적 측면과 돌연변이 측면에서 얘기하는 경우도 있으나 설명이 상당히 미흡한 상태입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미국근육디스트로피협회」에서는 이 병을 고칠 수 있도록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거액의 후원을 하며 하루 속히 그 원인을 규명하고 원인에 따른 치료책이 연구되도록 후원하고 있는데, 근육디스트로피 중에서도 가장 그 경우가 많고 진행이 빠른 「듀첸 형」의 원인을 알아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밝힌 「듀첸 형」의 원인은 중요한 근육 단백질에 결함이 있거나 아니면 단백질이 없다는 것인데 이 단백질을 「디스트로핀(Dystrophine)」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치료 책은 이런 단백질을 인공으로 합성해서 인체에 작용하도록 하는 것인데, 지금은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 정도입니다.

-그럼, 지금은 치료가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봐도 무방합니까?
◎그렇죠. 지금에서는 치료가 어렵습니다. 고도로 발달된 현대의 의학도 이 병에 대해서는 "진단"만 있고 "치료"가 없는 의미 없고 쓸쓸한 것이 되어 버린 거죠. 아직 완치시키는 약이나 주사 등이 발명되지 못하였으니, 환우 뿐만 아니라 가족, 의사들도 점점 쇠약해져 가는 사랑하는 아들·형제들을 볼 때 안타까울 뿐이죠.
그렇다고 증세 치료약이 개발 될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는 거죠. 병을 완치할 수는 없으나, 물리 치료 등으로 계속 노력해서 관절의 구축(오그라드는 것)을 방지하며 근력을 가급적 오래 보전하도록 환우 각자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장애우의 의학적 재활은 잔존 능력을 개발·회복시킨다는 의의를 지니고 있으나, 근육디스트로피의 의학적 치료·재활은 단지 그 진행을 늦추는 단계에 머물고 있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물리 치료적 노력도 그 "해당자"가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 근육디스트로피 장애우들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말이 아니죠. 어린아이에게서 이런 디스트로피 증세가 나타나면 부모들은 우선 병원에 갑니다. 지금까지는 병원에서도 정확한 진단을 못 내렸기 때문에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에 "지압 사"다 "접골원"이다 "뜸", "찜"이다 등을 전전하다보면 한 아이에게 1200만원까지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고도 치료는 못하지요. 어린아이가 근육디스트로피 증세를 나타낼 때에는 부모들도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서로의 책임을 물어 이혼하고 다른 삶을 찾는 경우도 많습니다.
「진행성척색경화증」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나타나는데, 대개 직장에서 권고사퇴를 종용받습니다. 얼마 안 되는 퇴직금으로 집안에 눌러앉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생계 유지를 위해서는 부인이나가 돈을 벌여야 하는데, 이도 쉽지 않습니다. 증세가 진행되면 혀가 말려 들어가 말을 못하고 밥도 못 먹습니다. 근육에 힘이 없어 엎어지면 엎어진 상태로 있으니 계속적인 간호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러하지도 저러하지도 못하고 막막할 따름이죠.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 혼자된 사람은 전혀 대책이 없죠. 이런 사람은 재활원 같은 곳에 수용되거나 친척 집 등에 의탁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국가에서 신경을 써야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정회장님은 언제 증세가 나타나셨습니까?
◎저는 "안면견갑상완 형 근육디스트로피"장애우입니다. 원래 이 증세는 7세를 전후해서 나타나고, 그 진행이 매우 느려 중년을 지나도 생활에 큰 영향이 없을 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 좀 특수해서 2살 정도에 증세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탓인지 24살에 폐를 쓸 수 없게 되어 시한부의 삶도 살았었습니다.

- 병을 극복하셨군요.
◎주님께 열심히 기도한 탓인지 24살의 시한부 삶에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 저는 2살 때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보니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는 "나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이 살아야겠다. 나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러한 일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슴 한 구석에 항상 지니고 있었습니다. 24살 때 시한부의 삶에서 살아나면서 이 결심이 굳어졌고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었지요.

- 아! 이것이 잔디회(한국근육디스트로피협회)의 창립 배경이 되겠군요. 그 진행 과정을 말씀해 주십시오.
◎1981년부터 나 같은 장애우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경남과 서울을 오가며 근 3년 동안 13명을 찾았습니다. 85년 1월에는 자원봉사자들을 만나 그들의 도움으로 석 달만에 150명 가까이 찾았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찾고 나서 85년 4월 27일에 세브란스 병원에서 잔디회 창립 총회를 가졌습니다. 지금은 회원이 약 500여 명으로 늘어났고, 부산과 대구에 지부를 개설해 놓고 있습니다.

- 잔디회는 어떤 활동을 해왔고,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그동안 500여 근육디스트로피 장애우를 찾아 서로 연락하며, 소망을 갖고 재활하기 위한 복지 활동과 의료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근육디스트로피가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매스미디어를 활용한 대중 교육과 홍보 활동에도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근육디스트로피 장애우를 위한 센터를 국가 지원으로 건립하여 효과적인 재활과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재활과 연구 센터인 "잔디네 집"을 설립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지요.
우리들이 만들고자 하는 "잔디네 집"은 수용소 같은 시설이 아닙니다. 예전에 내가 살던 집같은 분위기 속에서 개인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치료와 직업 교육을 받아 사회 참여를 도와주는 그러한 집이지요.

- 끝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지요.
◎1년이면 회원들 중에 약 10여명이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근육디스트로피 장애우도 가장 시급한 문제는 먹고사는 생존권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에 앞서 현재의 건강 상태를 얼마나 더 지속시키느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서로 돕고, 보람된 삶을 찾는 노력과 정성이 있어야겠습니다.
근육디스트로피 같은 것들을 누가 갖고 싶어서 갖겠습니까!

김태완 기자

작성자김태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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