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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사람] 윤흥로 2002 부산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장애우체육,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균형 있게 발전해야”

본문

 2002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아래 아·태장애인경기대회)가 지난 10월 26일 부산에서 개막되었다. 11월 1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대회는 아시아와 태평양 43개국 2,5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하여 회원국 장애우들간의 상호이해와 친선을 도모하고, 스포츠를 통한 아·태 지역 장애우들의 재활을 촉진하는 자리이다.
그러나 대회 개막을 한달 앞두고 훈련 중이던 장애우국가대표선수들이 훈련환경 및 처우개선, 선수 직업안정, 장애우체육 활성화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는 등 장애우체육을 둘러싼 선수들과 정부간의 입장 차이로 인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개막식 다음 날인 10월 27일, 부산의 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실에서 윤흥로 아·태장애인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을 만나 대회 준비 상황과 장애우체육 현안에 관한 입장을 들어보았다.

  제 8회 부산 아·태장애인경기대회 개막 

▲윤흥로장애인경기대회사무총장


― 아·태장애인경기대회가 어제 개막식을 시작으로 6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는데요. 개략적인 대회 소개를 해주시지요.
“1975년에 시작된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는 이번 대회로 8회 째를 맞이합니다. 이번 부산 대회에 참가한 국가는 총 43개국입니다. 1974년 일본에서 출범한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연맹(FESPIC: Far East and South Pacific Games for the Disabled)에 가입한 나라는 총 42개국인데 그 중 37개국이 참가를 했습니다. 그리고 동티모르,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6개국이 특별초청국으로 참가했습니다. 북한까지 7개국을 특별초청했는데 북한은 참가하지 못했구요.
300여명 규모인 우리 선수단을 포함해 호주, 일본,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가 많은 숫자의 선수단을 파견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차기 대회 개최국이지요.”
― 2006년 아시안게임은 카타르에서 개최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시안게임을 개최하는 곳에서 아·태장애인경기대회를 개최하는 것 아닌가요?
“1975년 시작된 아·태장애인경기대회는 5회 대회까지는 개최 희망국에서 개최되었구요. 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이 똑같은 장소에서 개최되는 것처럼 1994년 제 6회 북경 대회 때부터 아시아경기대회를 개최하는 도시에서 함께 개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경기대회연맹 회원국에는 중동지역 국가가 포함되어 있지만, 남태평양지역 국가는 회원국이 아닙니다. 반대로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연맹의 회원국에는 남태평양지역국가는 포함되어 있지만, 중동지역 국가는 회원국이 아니지요. 2006년 아시아게임을 개최하는 카타르는 우리 회원국가가 아니거든요. 카타르 도하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가 2006년 아시안게임 유치 경쟁을 했는데, 근소한 차이로 카타르 도하가 선정되었답니다. 그래서 4년 후 아시안게임은 카타르 도하에서, 아·태장애인경기대회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각각 열리게 되는 것이지요.”

 부산 대회, 6일간 501개의 세부종목에서 열전 벌여

― 이번 아·태장애인대회에 걸린 메달 수는 총 몇 개입니까?
“금메달이 501개 걸려있습니다. 그 중 471개가 정식종목에서 나오고, 30개는 시범종목에서 나옵니다”
― 메달 수도 아시안게임보다 많네요?
“많지요. 서울 장애인올림픽때는 세부종목이 729개에 달했거든요. 일반올림픽의 금메달수가 237개였으니까 3배 이상 많은 숫자지요. 장애인스포츠의 세부종목도 점점 통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는 마라톤경기가 대회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아·태장애인경기대회는 어떤가요?
“처음에는 저희도 마지막 경기를 휠체어마라톤으로 정하려고 했는데요. 휠체어마라톤 도착지점이 트랙 안인데, 폐회식을 준비하기 위해 트랙 안에 장치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방해물이 있으면 기록이 좋고 나쁘고 여부를 떠나 IPC(International Paralympics Committee: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로부터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휠체어마라톤은 오전에 하기로 했습니다.”
― 이번 대회의 경기 종목은 무엇입니까?
“경기종목은 주최국과 연맹이 협의해서 결정합니다. 이번 대회에는 양궁, 배구, 축구, 펜싱, 유도, 역도, 수영, 배드민턴, 휠체어농구, 휠체어테니스, 육상, 보치아, 사이클, 골볼, 론볼링, 사격, 탁구 등 17개 종목의 경기가 진행됩니다. 이중 배드민턴을 제외한 16개 종목은 IPC 공인 종목이기 때문에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습니다.”
― 기록을 인정받는다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각 종목마다 의미가 조금씩 다른데요. 예를 들면 어떤 종목은 금메달을 딴 경우에 차기 장애인올림픽대회 출전권을 주기도 하구요. 은메달까지 주는 종목도 있습니다. 종목마다 승인조건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기록은 전부 인정됩니다. 만약 세계신기록을 세우면 그것을 공식기록으로 인정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번 대회는 IPC에서 파견된 감독관이 와서 종목별로 기록을 인정하게 됩니다.”
― 약물테스트는 어떻게 진행되는지요?
“약물테스트에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모든 선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기는 어렵습니다. 날마다 무작위로 종목을 선택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보통은 금메달을 딴 선수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지요.”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이 장애우를 이해하는 계기로 삼겠다

― 부산 시민들의 관심은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 가려서 주목받지 못했는데요. 지금은 관심을 많이 보여주고 계십니다. 자동차 홀·짝수제를 개·폐회식이 열리는 10월 26일과 11월 1일에 실시하는데요. 대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시민들도 자동차 홀짝수제를 실시하고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리니까 관심을 갖게 되지요.
일반인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장애우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지 않습니까? 장애우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내용들이 초·중·고 교과과정에 들어있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겠지요. 그래서 부산시 교육청과 협의를 거쳐, 이번 대회가 학생들이 장애우를 이해하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 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부산시 교육청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제외한 초·중·고 학생 한 명이 최소한 한 경기를 관람하도록 해보자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경기를 관람하고 나서는 그림 그리기 대회나 글짓기 대회 등의 자리를 통해 느낌들을 정리할 기회도 마련할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실제로 경험하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정부기관이나 언론기관을 통해 장애우를 올바로 이해하자고 홍보하는 것 보다, 57만 명이 경기를 직접 관람하고 나서 느낌을 남에게 전하는 것이 더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거든요.‘발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도 있듯이, 사람의 입을 통한 홍보를 무시할 수 없지요. 그리고 부산시내에 47개의 사회복지관이 있는데, 한 복지관 당 250명에서 300명 정도 각 경기장에서 각 나라를 응원할 예정입니다. 또한 많은 수의 서포터즈도 활동하고 있고요. 이들은 공항에 나가서 국가 이름을 연호하며 입국하는 선수들을 환영하기도 합니다. 한번은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인 통가 선수들이 입국할 때, 많은 수의 서포터즈가 나가 국가 이름을 연호하고 환영하니까 선수들이 ‘이런 대접은 처음’이라며 감격했다고 하더군요.”

 서울 장애인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우체육과 인연 맺어

― 사무총장님께서는 언제부터 장애인체육분야와 인연을 맺으셨는지요?
“1985년 8월부터니까 햇수로 벌써 17년이 넘었습니다. 홍보 관련 일을 하다가 1985년부터 서울 장애인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일하게 됐지요. 대회 조직위원회의 홍보부 책임자로 있다가 대회 때는 보도운영단장으로 일했습니다. 1989년에 지금은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로 이름이 바뀐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가 생기면서 기획 업무를 담당하다가, 2000년 3월까지 사무총장을 맡았습니다. 2000년 3월 사무총장직을 사임하고 대회 조직위원회 일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 일을 시작하신 1985년 당시는 지금과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요. 당시는 장애우체육 자체가 정말 열악했어요. 장애우복지의 우선 순위에 장애우체육은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으니까요. 서울 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할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올림픽을 유치하던 1980년 무렵, 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을 함께 유치하는 것이 국제관례였기 때문에 IPC로부터 대회를 유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생긴 것이 1981년인 것을 감안하면, 당시 장애우복지의 현황을 짐작할 수 있지않습니까?
‘지금 우리 나라 장애우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세계의 장애우들을 서울에 불러놓고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냐?’고 하면서 강력하게 반대한 국무위원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장애우단체나 개별적인 의견도 부정적이었어요. ‘지금 우리 나라에 생활이 어려운 장애우들이 얼마나 많은데 수십 억의 예산을 들여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돈으로 생활이 어려운 장애우들의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하지 않은가’라며 대부분 반대했습니다. 대회 조직위원회가 생기고 난 이후에도 장애우단체들의 반발이 계속되기도 했고요. 그러나 서울 장애인올림픽이 장애우체육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당시에는 장애우체육이 장애우복지의 우선순위에서 한창 밀렸고 그나마 상이군경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측면이 많았는데, 서울 장애인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선수 양성도 이루어졌고 적은 수나마 체육관도 건립되었지요.
뿐만 아니라 극히 미비하기는 하지만 편의시설이 도입되기도 했지요. 을지로입구역과 종합운동장역 두 곳에 불과하긴 했지만, 서울 장애인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지하철역에 휠체어리프트가 설치되기 시작했으니까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액에도 미치지 못하는 장애우국가대표선수 연금

―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장애우국가대표선수들이 비장애우국가대표선수들에 비해 연금이나 훈련환경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언론기관의 보도가 있었습니다. 열악한 운동환경과 불평등한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한, 대회를 거부한다는 선수들의 결의도 있었는데, 개최하신 입장에서 이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에 불거진 문제들은 처음이 아니라 2000년 시드니 장애인올림픽때 이미 나온 요구사항들입니다. 당시 보건복지부와 장애인복지진흥회, 대표선수 사이에 의견교환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후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별다른 해결 노력이 없었던 것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지요. 종사했던 사람 중 한 명으로 책임감도 느낍니다.
다만 연금 문제 같은 경우를 보면요. 연금 도입은 노태우 대통령의 공약이었습니다. 장애우단체의 건의를 받아들여서 공약에 반영했던 것이지요. 연금 지급은 당시 장애인체육진흥회의 기금에서 하기로 하고, 지급 기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금장, 은장, 동장을 기준으로 금장 20점, 은장 10점, 동장 5점씩의 점수를 계산했어요. 1점 당 1만원씩 계산해서 금장을 땄을 때는 20만원을 지급하고 한 대회에서 금메달을 두 개 따면 50%만 가산하기로 했습니다. 이 경우 액수는 30만원이 되지요. 그것이 최고 액수였어요. 다시 말해 30점이 상한선이지요. 금메달을 세 개 땄을 경우, 한 개에 대한 부분은 일시격려금이라는 형태로 받고요. 비장애국가대표선수들도 지금 그렇게 받을 겁니다. 비장애선수들의 경우 연금 상한선이 100만원이고 나머지 점수는 계산해서 격려금 형태로 일시금으로 받습니다.
4년이 지난 후 똑같은 액수로 지급할 수 없다고 해서 연금 액수를 20% 상향조정했어요. 그래서 36만원이 상한선이 됐고, 4년 후 다시 한번 20% 상향조정했습니다. 지금은 연금 상한선이 80만원인데요. 다만 다관왕이 되거나 은메달을 따는 경우 연금에 추가되지 않고 일시격려금을 받는데, 그 금액이 비장애선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문제지요.
지난 번 보건복지부가 주관한 회의에서 선수대표들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자가 되면 4인 가족 기준으로 월 96만원을 받는데 장애우선수 가운데 최고로 받는 금액이 월 80만원이다. 연금을 받으면 수입이 있다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자 자격에서 탈락되는데, 이로 인해 연금만으로 생활해야 하는 대다수의 장애우선수들이 겪는 어려움은 클 수밖에 없다’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안정된 환경에서 선수생활을 하려면 일반선수와 비슷한 연금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겠지요.”

 장애우체육,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두 축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은 국위를 선양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연금 등을 받지 않습니까? 장애인스포츠도 그러해야 하는지, 아니면 순수하게 장애우가 스포츠를 즐기는 차원에서 이런 대회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요?
“장애우체육의 활성화에 따른 국위선양을 물론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처럼 국위선양을 이루려면 전국민들의 열망과 호응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축구선수들이나 유명한 체육선수들처럼 말입니다.
장애인올림픽이나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대표선수들도 우리 나라 장애우체육의 선두그룹 아닙니까? 이들이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거든요.
저는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선수와 생활체육을 함께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활체육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서울 장애인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갑자기 국가대표선수들을 양성해야 했잖아요? 서울 장애인올림픽 이후 태동한 장애우생활체육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요. 일반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장애우체육도, 옳은 명칭인지 모르지만 엘리트체육이라고 불리는 것과 생활체육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큽니다. 생활체육이 활성화되어야만 스포츠 저변이 확대되거든요. 생활체육이 장애우체육계라는 피라미드의 밑변을 든든히 지켜주어야 합니다.
이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서 열성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그냥 생활에서 운동을 하다 보니까 소질이 있어서 대표선수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드물어요. 게다가 지금 우리 나라의 장애우체육선수들이 노쇠해 가는 과정에 있거든요. 그만큼 새로운 선수들이 많이 육성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지요.
국민생활체육협의회에서 내년에 장애우생활체육 분야의 예산을 늘려 지원한다고 합니다. 반가운 소식이지요. 그렇지만 지도자 양성이나 시설보강에 많은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는 어렵습니다. 서울의 경우, 각 구 문화체육센터가 장애우들의 접근성이 보장되도록 편의시설을 갖추어 비장애우와 장애우가 함께 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생활체육은 동료의식도 중요합니다.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오지 않으면 왜 오지 않았는지 챙기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전문적으로 가르칠 지도자가 없으니 한두 번 나가다가 안 나가게 되지요. 생활체육이라는 것은 매일의 삶에서 생활화되는 것이 중요한데 말입니다. 그리고 집단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장애우생활체육프로그램이 어려운 또 한 가지 이유입니다. 장애유형과 특성에 맞게 개별적인 지도를 해야 하니까요.
이번 부산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를 치르고 나서 우리 나라의 장애우체육정책의 방향을 점검하는 공청회 같은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장애인체육정책이 이해당사자의 요구에 따라 그때그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과 전망 속에서 차근차근 발전했으면 합니다.”

 

대담 김정열 편집주간/ 사진 이태곤 기자/ 정리 이수지 기자(soo3881@naver.com)

작성자이수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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